CULTURE

명성황후의 진짜 얼굴

성지연 에세이스트, 국문학 박사

2023. 05. 17

1895년 명성황후는 경복궁에서 일제에 의해 시해돼 시신이 불태워졌다. 그는 조선 말 어떤 존재였기에 참혹한 비극을 겪었을까.

권오창 화백이 그린 명성황후 어진.

권오창 화백이 그린 명성황후 어진.

주말에 날씨까지 좋아서였을까, 경복궁 매표소 줄이 길었다.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활짝 핀 매화만큼이나 화사했다. 정문으로 들어가 근정전을 돌아 북쪽을 향해 걸었다. 경회루를 돌아 지나자 길은 한산해졌다. 향원정이란 연못이 나타났고, 건청궁이란 현판을 건 건물이 보였다.

1873년 고종은 궁궐 안 깊숙한 북쪽에 건청궁을 지었다. 1873년은 고종이 대원군의 섭정에서 벗어나 친정을 선언한 해이기도 하다. 건청궁 건립은 고종의 정치적 자립의 의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책을 읽다 문득 이곳에 가보고 싶었다. 곤녕합은 건청궁 건물 중 하나다. 명성황후가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1895년 황후가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10월 8일 새벽 6시경이었다.

황후의 나이는 44세였다. 어떤 국가든 타국의 황후를 살해하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을미사변 후 전국에서는 황후의 시해와 단발령에 저항하는 의병이 일어났다. 이를 을미의병이라고 한다. 황후는 어떤 존재였기에 이런 참혹한 비극을 겪어야만 했던 걸까.

뚜렷한 얼굴과 날카로운 눈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독립정신’에 실린 명성황후 사진. 권오창 화백이 이를 바탕으로 어진을 그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독립정신’에 실린 명성황후 사진. 권오창 화백이 이를 바탕으로 어진을 그렸다.

1990년대까지 황후의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정치학자 이희주에 따르면 “시아버지 대원군과 권력투쟁을 벌인 패륜의 여성” “고종을 마음대로 조종하여 국정을 농단한 인물” “조선을 망하게 한 여성” 등의 어구가 그를 수식해왔다.

그런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왜 황후를 시해하게 됐을까. 그가 나쁜 인물이었다면 을미의병까지 일어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이희주의 ‘명성황후 평전’은 바로 이러한 황후의 삶과 정치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책이다. 내게는 황후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1883년 부임한 초대 조선 주재 미국 특명전권공사 루시어스 푸트의 부인인 로즈 푸트는 황후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푸트는 황후를 만나기 전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다. 폐쇄적 사고의 소유자라거나 지식을 사적인 권력 쟁취에만 이용하는 권력 집착형 인물, 사치스러운 인물 등 당시 황후에 대한 풍문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푸트는 황후를 만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푸트는 남편과 본국으로 돌아가던 중 일본 천황 비의 대접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황후에 대한 험담을 듣고 “황후는 고귀하고 고상하며 열정적인 성품을 지녔고, 조선을 일으키려는 열망을 가졌다”고 반박했다. 연세대를 세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의 부인이자 황후의 어의(御醫)였던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는 황후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약간 창백하고 아주 가냘프며 어느 정도 뚜렷한 얼굴과 명석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진 그는 언뜻 보기에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어느 누가 보기에도 그 얼굴에서 보이는 힘과 지적이고 강한 성격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한 묘사다. 당시 정세를 고려하면 황후는 외국인들에게 친절했을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들은 황후에 대해 우호적인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여러 기록을 보면 그가 지적이고 강한 여성이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