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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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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렙과 인싸 되는 지름길, 제페토에서 보낸 3박 4일

글 이진수 기자

2021. 09. 14

셀렙과 인싸의 꿈을 안고 Z세대들이 몰려든다는 메타버스. 지갑을 열게 하는 신공과 함께, 돈도 벌 수 있는 신기한 나라 체험기. 

얼마 전 지인 A(25) 씨가 “제페토 아이템 출시 해떠여.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라는 코멘트와 함께 강아지 얼굴 모양의 헤어밴드를 착용한 아바타 캐릭터 사진을 SNS에 올렸다. 제페토(ZEPETO)는 네이버에서 운영 중인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메타버스(Metaverse)란, 가상을 의미하는 단어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 세계를 말한다. A 씨는 워낙 트렌드에 밝은 인싸였기에 ‘메타버스를 하는구나. 역시 빠르네’ 생각하면서도 제페토 아이템을 출시했다는 말을 그냥 큰 관심 없이 넘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상현실에서 직접 제작한 의류를 판매하고 있었다.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옷을 판다고?” 이에 대해 A 씨는 “플랫폼에 있는 크리에이터 기능인데, 유저가 직접 제작한 아이템을 판매하고, 본인이 그 아이템을 착용해볼 수도 있다”고 했다. 자신의 반려견을 그려 넣은 헤어밴드와 슬리퍼 등 7가지 제품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었다.

또 다른 지인 B(26) 씨는 SNS에 “신기하다”는 코멘트와 함께 제페토 안에서 만난 이와 나눈 채팅을 공유했다. ‘제작 아이템으로 월 1천만원을 버는 창작자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제페토 주이용 연령층이 고등학생, 대학생 아닌가? 1천만원을 번다고?’라는 의문에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경제력 없는 10대가 개인 창작물로 놀면서 용돈벌이를 할 수 있다면 그곳은 기회의 땅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타버스 제페토는 가입자가 약 2억 명, 국내 유저 중에서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그들이 메타버스에 빠진 매력이 무엇인지 직접 체험해보고자 제페토에 가입했다. 이곳은 블랙핑크가 팬 사인회를 열고, 가수 선미가 새 미니앨범 ‘1/6’ 컴백을 앞둔 시점, 콘셉트 포토 의상과 소품을 가상에서 착용·구입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해두었다. 특히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빠져나가기 힘든 개미지옥이다. 크롭트 티, 비즈 네클리스 등 트렌드 아이템부터 구찌, 크리스찬 루부탱, 랄프 로렌 등 명품 브랜드 실물 상품을 가상화한 아이템도 있었다.

패션 핵인싸들의 새로운 핫플

제페토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아이템 판매 체계, 수익 창출이 가능한 ‘제페토 스튜디오’ 기능이다. A 씨처럼 유저들은 이곳에서 의상과 액세서리를 직접 제작, 판매해 수익을 낼 수 있다. 제페토 스튜디오 사이트에 접속해 아이템 파일을 올리고, 검토 과정을 거쳐 승인을 받으면 된다. A 씨는 자신이 디자인한 패션 아이템으로 30젬을 벌었다고 한다.

제페토의 모든 아이템은 가상 화폐인 코인과 젬으로 구입 가능하다. 코인은 출석 체크나 각종 미션 등을 성공하면 받을 수 있고, 젬은 실제 유저가 ‘현질(현금을 지불해 화폐 구입)’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14젬당 1천2백원. 제작 아이템의 판매 수익금이 5천 젬(약 43만원) 이상 모이면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A 씨가 출시한 헤어밴드는 하나에 2젬. 헤어밴드 기준 30젬을 벌었다는 건 15개가 판매됐다는 의미고, 현금으로 받으려면 최소 2천5백 개의 헤어밴드를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5개 파는 것도 어려운데 2천5백 개라니. ‘저걸 언제 다 팔까’ 싶지만 개인 능력에 따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보니 기회의 땅이 맞겠다.



하지만 가상세계에서도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훨씬 쉽고 재밌다. 기자는 가입 초기 투자금 8천5백 코인으로 진청색 데님 탱크 톱(1천8백80코인)과 팬츠(1천8백50코인), 흰색 농구화(9백80코인), 비즈 네클리스(9백80코인)를 구입했다. 제품은 제페토 자체 의류, 브랜드 컬래버레이션 아이템, 유저가 직접 만든 크리에이터 상품 등으로 구성된다. 평소 갖고 싶었던 블랙&화이트 컬러의 구찌 ‘재키 1961 스몰 호보백’을 찾아보니 60젬. 현금으로 계산하면 약 5천1백원에 살 수 있다. 실물 가격은 2백35만원. 약 4백60배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니 지갑이 절로 열렸다. ‘이런 재미구나. 나도 못 산 호보백을 얘(캐릭터)가 드네.’ 명품 패션 브랜드 외에도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퓨마,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키르시, 걸 그룹 트와이스의 무대 의상 등 탐나는 아이템이 많았다.

그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건 ‘스타일’ 기능. 내 캐릭터의 비주얼을 뽐내는 서비스다. 캐릭터 사진과 캐릭터가 착용한 아이템 리스트는 유저들끼리 공유한다. 다른 유저가 내 스타일을 참고해 마음에 드는 아이템 몇 가지를 구매할 수도 있고, 의상 그대로를 살 수도 있다. 룩에 대해 ‘좋아요’ 평가도 받는다. 옷을 잘 입힐수록 따라오는 인기는 당연지사. 자랑 기능이 곳곳에 대놓고 있다. 스타일 공유를 위해서는 캐릭터 의상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포즈 사진 4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선택한 포즈를 토대로 캐릭터 사진이 올라간다. 사진을 공유하자마자 팔로어 4명이 늘었다. “어머, 나 옷 너무 잘 입힌 거 아냐?” 곧 인싸가 될 것만 같았다. 초기 의상을 사고 남은 돈과 출석해 받은 돈으로 네클리스와 원피스 한 벌을 골라 갈아입히고 바뀐 스타일을 다시 공유했다. 팔로어 3명이 더 늘었다. 스타일을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현실 SNS가 ‘보여주기’ 방식이라면, 제페토는 ‘보여줘야 하는’ 곳이다. 가상 세계에서의 셀렙은 자신의 스타일 감각을 인정받아 따르는 팔로어가 많다는 걸 의미한다. 제페토는 내 개성을 드러내고 공감받음으로써 팔로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명품부터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입고 싶은 옷과 액세서리 등을 실컷 착용할 수 있으니 셀렙을 꿈꾸는 인싸에게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2백만~3백만원짜리 제품을 할부로 어렵게 사서 입어야 하는 현실보다, 출석 체크 꾸준히 하고 게임 열심히 해 받은 코인으로 제페토 명품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현생에서는 취향 맞는 친구 찾기가 어려운데 이곳에선 말 잘 통하는 친구까지 만날 수 있으니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다. 기자는 조만간 내 부캐에게 구찌 호보백을 사줄 생각이다.

사진제공 네이버, 제페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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