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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중꺾마’의 원조 ‘슬램덩크’ 신드롬 ① ’슬친자’ 만들어낸 ‘슬램덩크’ 흥행 키워드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3. 02. 24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 자)가 한둘이 아니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에 힘입어 한정판 굿즈, 만화책, 농구용품 등도 덩달아 인기인 요즘, 10대부터 중장년까지 세대 대통합을 이뤄낸 ‘슬램덩크’의 매력을 짚어봤다. 

1월 4일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무서운 뒷심을 발휘 중이다. 2월 9일 기준 2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원작은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가 1990~96년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한 ‘슬램덩크’다.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의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렸다. ‘슬램덩크’는 국내에선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소년챔프’를 통해 연재됐고, 1996년 총 31권으로 마무리된 단행본은 1450만 부 이상 팔렸다. 1998년엔 SBS에서 TV 만화로도 방영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슬램덩크’ 열풍을 이끄는 건 아무래도 유년 시절 ‘슬램덩크’를 접했고 현재 콘텐츠 구매력을 갖춘 30·40대들이다. ‘슬램덩크’는 전설의 NBA 선수 마이클 조던과 빨강 머리 데니스 로드먼에 열광하고, 연세대와 고려대 농구부 라이벌전을 축구 한일전만큼 기다렸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보고 또 보고 ‘N차 관람’하는 이유

‘더 퍼스트 슬램덩크’ 200만 관객 돌파 기념으로 열린 응원 상영회.

‘더 퍼스트 슬램덩크’ 200만 관객 돌파 기념으로 열린 응원 상영회.

30·40대 팬들의 추억 여행은 ‘N차 관람’으로 이어진다. 영화사는 팬덤의 시대를 맞아 N차 관람객을 사로잡는 특전을 선착순 증정하거나 아예 표와 묶어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시 처음부터 ‘슬램덩크’ IP(지식재산권) 활용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전략을 짰다. 극장판의 국내 기획·마케팅을 맡은 이노기획 관계자는 “포스터·엽서 등 주 차별 특전들은 일본 공통 굿즈도 있지만 국내 전용으로 기획한 상품도 있다”며 “개봉 첫 주 차 AR 일러스트 카드가 가장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극장마다 보통 하루 이틀이면 물량이 소진되는 편이다. 200만 관객 돌파 기념 응원 상영회에서는 특별 응원봉을 증정했다”며 “3월에도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사와 홍보사가 준비한 주 차별 특전 외에도 극장에서는 ‘덕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자체 특전을 준비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3회 관람한 40대 회사원 홍기중 씨는 N차 관람자를 대상으로 한 극장 SNS 이벤트에 참여했다. 홍 씨는 “처음엔 어린 시절 추억의 캐릭터가 생명을 얻어 큰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고, 그 후론 특전을 모을 겸 여러 번 보게 됐다”며 “사정상 놓친 4, 5주 차 특전은 중고 거래로 구했다”고 말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굿즈와 더불어 성우 무대인사, 자유롭게 응원하며 볼 수 있는 응원 상영회, 극장 대형 포토 존 등 관객 참여형 즐길 거리가 가득한 영화다. 방학을 맞은 어린이 동반 가족, 데이트족에게도 입소문이 나면서 특정 연령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열풍이 남녀노소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실제로 CGV에 따르면 개봉 초반에는 전체 관객 중 80% 가까이가 30대(43.5%)와 40대(35.8%)였고 성별 분포는 약 7:3으로 남성 관객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그러나 개봉 4주를 넘어서면서 20대 18.7%, 30대 38.6%, 40대 31.8%로 20대의 예매 비율이 점점 늘었다. 성별 예매 분포는 여성 47.5%, 남성 52.5%로 비슷해졌다.



특히 10·20대 사이에서는 몇 해 전부터 이어진 레트로 바람을 타고 영화의 인기가 원작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붙고 있다.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배놀’(만화 ‘원피스’를 좋아한 남매의 뱃놀이가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며 만들어진 일종의 밈으로, 보통 ‘배놀ㄱ?’라고 쓰며 같이 놀자는 의미)에서 유래한 ‘농놀’(농구 놀이)과 ‘슬친자’라는 신조어를 쉽게 볼 수 있다. 한 20대 트위터 이용자는 “내 SNS 타임라인이 ‘농놀’로 뒤덮였다. 팬 아트를 하거나 만화 짤을 찾으며 논다”면서 “‘슬램덩크’를 모르거나 관심 없는 친구들도 명장면은 다 안다”고 말했다.

감독이 던진 승부수, 처음 보는 ’슬램덩크’로!

SNS에서는 ‘농놀’(농구 놀이)가 한창이다.

SNS에서는 ‘농놀’(농구 놀이)가 한창이다.

다만 콘텐츠가 ‘추억 팔이’ 또는 ‘유행 편승’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내용 자체가 재미있지 않으면 열풍은 금세 식기 마련이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단행본 31권에 달하는 원작 중 마지막 에피소드인 북산고-산왕공고전을 주로 다룬다.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시피 모두가 전국 최강자 산왕공고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접전 끝에 북산고가 1점 차로 이긴다.

많은 이가 이미 아는 내용을 2시간가량의 극장판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원작 작가이자 극장판 제작을 총지휘한 이노우에 감독은 과감하게 주전 선수를 교체했다. 극장판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원작 주인공 강백호가 아닌 단신 가드 송태섭이다. 그 이유에 대해 이노우에 감독은 “‘슬램덩크’를 오래전에 읽은 사람이 ‘이런 ‘슬램덩크’도 있나?’ 하고 처음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길 바랐다”면서 “송태섭은 만화 연재 당시에도 서사를 더 그리고 싶은 캐릭터였다”고 밝혔다.

내외곽으로 변형 공격에 들어가면서도 기본 수비를 놓치지 않은 점은 신의 한 수다. 만화 원작의 명대사로 감동을 더한 것. “그래 내 이름은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정대만),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강백호), “농구 상식은 내게 통하지 않아. 나는 초짜니까”(강백호), “아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인가요?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안 감독) 등 적재적소에서 터지는 명대사가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배경 지식 없는 ‘슬램덩크’ 초심자도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영화는 스포츠물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 장면을 위해 모션캡처 방식과 슬로모션, 오디오소스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특히 1점 차로 뒤진 북산고의 후반전 마지막 공격에서는 대사와 음악, 코트와 농구화의 마찰 소리 등이 차츰 사라지고 고요한 가운데 경기는 정점으로 치닫는다. 심지어 서태웅으로부터 처음으로 패스를 받은 강백호가 슛을 던지는 장면에 등장하는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명대사도 과감히 생략했다. 버저비터 이후 이어진 서태웅과 강백호의 로 파이브 이후에야 팝콘 먹는 소리마저 멈췄던 극장에 안도의 한숨이 비집고 나온다.

무엇보다 성장형 먼치킨 집단인 북산고의 매력이 ‘슬램덩크’ 열풍을 이끌었다. “아픔과 상실, 잘되지 않는 것, 살아가면서 누구나 통과하는 길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감독의 의도는 적중했다. 재능은 있으나 처음부터 특출나지는 않은 인물들이 숱한 위기를 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면 된다’는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삶의 진리를 다시 믿어보고 싶어진다.

양경미 영화평론가는 “꿈이 없는 세대, 꿈을 잃은 세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운과 재능이 아니라 노력과 열정의 중요성을 전달한다”고 ‘슬램덩크’ 열풍을 분석했다. 이어 “3040 세대뿐 아니라 지금의 1020에게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겠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만드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자신이 가진 것이 금수저든 흙수저든, 사용하려면 손에 쥐어야 한다. 안경 선배를 제친 주전 강백호도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슛 2만 번의 특훈을 해내지 못했다면 계속 문제아로 남지 않았을까. ‘중간에 꺾이지 않는 마음’의 메시지가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슬램덩크 #중꺾마 #슬친자 #여성동아

사진 뉴스1 뉴시스
사진제공 이노기획 홍기중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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