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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세잔이 그린 ‘생 빅트아르 산’의 두 얼굴… 이지현의 아주 쉬운 예술이야기

우먼동아일보

2013. 07. 08

세잔이 그린 ‘생 빅트아르 산’의 두 얼굴… 이지현의 아주 쉬운 예술이야기

 ▲ 폴 세잔 ‘생 빅트아르 산’ (1887년, 캔버스에 유화, 67×92cm, 코톨드미술관)



캠핑과 등산, 삼림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죠?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매일 가도 늘 다른 매력이 있는 곳. 올라보고 걸어보고 바라볼수록 오묘한 대상이 바로 산입니다.
제주도 사람에게 한라산이 남다르듯, 세잔에게 고향 엑상프로방스의 산은 특별했나 봅니다. 그는 1877년부터 20여 년 동안 생 빅트아르 산을 수십 점이나 그렸습니다. 같은 산을 20여 년에 걸쳐 그리고 또 그리면서 세잔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세잔이 처음 그린 생 빅트아르 산은 위의 그림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생 빅트아르 산에 둘러싸인 마을이 평화로워 보이죠?


세잔이 그린 ‘생 빅트아르 산’의 두 얼굴… 이지현의 아주 쉬운 예술이야기

 ▲ 폴 세잔 ‘생 빅트아르 산’ (1904년~1906년, 캔버스에 유화, 65,6×81cm, 필라델피아미술관)



세잔이 말년에 그린 생 빅트아르 산은 조금 다릅니다. 형태가 단순해진 산이 마치 평원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묘하게 연결되는 산과 나무, 마을이 마치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그린 것 같습니다. 자연이 변한 걸까요? 자연을 보는 세잔의 눈이 변한 걸까요?
 
“예술은 순수한 마음을 완전히 바쳐야만 결실을 볼 수 있는 사제직 같은 것인가?”
세잔이 남긴 말입니다. 세잔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에서 삼각형, 사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의 자연을 그리게 되기까지 이런 고뇌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구도자의 자세로 자연을 탐구한 그의 작품을 보면 “세잔은 종교를 그려냈다”는 릴케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고, 외양에 숨겨진 본질이 중요하다”고 여긴 세잔에게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찰을 배웁니다.





글·이지현(‘예술에 주술을 걸다’ 저자)

글쓴이 이지현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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