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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OTT추천| 과거를 추적하는 영화

문영훈 기자

2024. 02. 16

‘O!리지널’은 OTT 플랫폼 오리지널 콘텐츠 및 익스클루시브 콘텐츠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범람하는 콘텐츠 세상 속 등대까진 못 돼도 놓치고 갈 만한 작품을 비추는 촛불이 되길 바랍니다.

영화의 신, 스필버그의 탄생 설화
‘파벨만스’

엔지니어 아빠와 피아니스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이 있다. 1952년 1월, 소년은 부모님과 함께 간 극장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본다. 세시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 집으로 돌아와서도 소년은 열차가 탈선해 자동차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잊을 수 없어 장난감 열차와 자동차를 충돌시킨다. 장난감이 망가질까 우려하는 엄마는 말한다. “아빠 카메라로 찍어놓자.” 새미는 그렇게 감독이 되었다.

‘파벨만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자전적 영화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자신의 영화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고, 영화와 자신을 위한 영화가 탄생했다. 여든 살을 바라보고 있는 거장의 자기 회고에 팬데믹으로 침체한 영화계는 열렬히 응답했다. ‘파벨만스’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포함해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영화 전문지 ‘씨네21’은 2023년 개봉한 외국영화 중 1위로 꼽았다.

“예술이 하늘의 왕관과 땅의 월계관을 줄 테지. 그러나 네 가슴을 찢어놓고 널 외롭게 할 거다.”

새미 외할아버지의 말처럼, 새미는 영화로운 청소년기를 보내며 영화가 자신에게 주는 아름다움만 깨닫는 것은 아니다. 가족여행을 영상으로 담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친구 베니가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식 파티에서 상영할 영화를 제작하며 카메라와 필름이 현실의 조각을 이어 붙이면서 사실을 왜곡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하지만 새미는 아니,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할리우드에 투신한다.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영화 ‘바빌론’



죽은 남편이 간직한 비밀
‘한 남자’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사람을 파헤쳐서 알게 된 과거의 흔적들은 현재의 그 사람을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는가. ‘한 남자’는 리에와 그와 결혼한 한 남자, 다이스케를 통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리에는 남편 다이스케 죽음 이후에야 그의 이름이 다이스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에는 변호사 키도에게 죽은 남편에 대해 조사를 부탁한다. 키도는 다이스케의 행적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까지 도달한다.

자신의 신원을 속인 사람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화차’가 떠오른다. 사회파 추리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는 ‘화차’를 통해 일본의 경제 위기로 발생한 사채와 신용불량자 문제를 꼬집었다. ‘한 남자’의 원작 소설을 쓴 히라노 게이치로는 ‘분인주의’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하나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어떤 상황에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영화 후반부 리에는 죽은 남편의 과거를 알게 되자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알게 되고 나니 하는 말이겠지만, 꼭 진상을 알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마을에서 그를 만나고 좋아하게 돼서 가족이 되고, 하나(딸)가 태어나고. 그건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니까요.”

영화는 다소 어려운 질문을 담고 있지만 흥미로운 캐릭터와 리에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 등 배우의 호연으로 흡인력을 획득한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2023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한 8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영화 ‘화차’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오바마가 만든 새로운 디스토피아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재난영화라고 하면 으레 지구가 얼어붙거나(‘투모 로우’), 지진으로 폐허가 되거나(‘콘크리트 유토피아’), 좀비 떼가 지구를 점령하는(‘월드워Z’) 설정이 떠오른다.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한 ‘카톡 먹통 사태’를 떠올려보면 21세기의 재난은 통신 장애가 벌어지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가능하다.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속 재난 상황도 사이버 공격으로 미국 국가 기반 시설이 마비되면서 발생한다.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어맨다는 사람들이 끔찍하게 싫다.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떠날 교외 휴가지를 충동적으로 정한다. 어맨다가 예약한 별장은 넓고 쾌적하다. 하지만 도심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하고 별장의 주인 GH라는 남자가 딸과 함께 펜션으로 돌아오면서 재난 상황에서 외부인과의 동거가 시작된다.

이 영화가 기존 재난영화와 또 다른 점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생중계하는 대신 두 가족이 지내는 별장과 그 주변 상황만을 보여준다는 것. 통신이 차단된 상황에서 혼란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신경증에 점점 빠지는 듯한 어맨다의 연기가 영화 도처에 깔린 불안감을 증폭한다. 줄리아 로버츠와 에단 호크가 주연을 맡고, 무려 버락·미셸 오바마 부부가 제작했다. 던져놓은 떡밥을 회수하지 않은 채 모호한 결말을 제시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건물 몇 채만 한 유조선이 해수욕장으로 돌진하는 장면, 하늘에서 의문의 붉은 리플릿이 떨어지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영화 ‘돈 룩 업’

“기사에 이름 써도 된대요”
‘그녀가 말했다’

2017년 10월 5일,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의 거물 하비 와인스틴이 배우나 직원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해왔다는 사실을 보도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전 세계적인 미투(#MeToo) 운동이 시작됐다. 영화는 해당 사건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한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의 취재 과정을 서사로 구현했다. 실제 피해자인 기네스 팰트로와 애슐리 저드 역시 자기 자신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하비 와인스틴은 1970년대 미라맥스를 설립하고 1990년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시네마 천국’ ‘펄프 픽션’ 등 영화사에 남을 명작을 연달아 제작하며 할리우드의 거물로 떠올랐다. 투자 배급사의 힘이 막강하던 시절 그는 영화에 대한 편집권을 행사해 ‘가위손 하비’라 불리기도 했으며 캐스팅을 좌지우지할 만큼 권력을 휘둘렀다. 30년간 80여 명이 그에게 성폭력을 당했으나 입을 열 수 없는 이유다. ‘그녀가 말했다’의 두 기자는 천천히, 밀도 있게 취재를 시작한다. 피해자를 찾아내 증언을 수차례 부탁하고 이를 알아차린 하비 와인스틴의 협박을 받기도 한다. 두 여성 기자가 처한 현실적 상황도 함께 묘사해 직업인과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강조한다.

“She said, yes”(기사에 이름 써도 된대요) 영화 제목은 피해 여성이 실명 보도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고 동료 기자에게 전하는 대목에서 따왔다. 실제 사건을 다루는 영화의 사려 깊은 태도가 돋보인다. 피해자가 당한 성추행을 재현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가해자 하비 와인스틴은 고압적인 목소리로만 영화에 나온다. 2020년 3월 11일 하비 와인스틴은 23년 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영화 ‘스포트라이트’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파벨만스 #한남자 #리브더월드비하인드 #그녀가말했다 #O!리지널

사진제공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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