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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취업난이 만들어낸 ‘N일 차’ 도전 열풍

전혜빈 기자

2025. 12. 24

자신의 하루를 꾸준히 기록하는 N일 차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저 과정뿐인 소소한 일상에 많은 이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 세종청년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고 있다.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 세종청년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고 있다.  

한 해를 시작하기 전 누구나 스스로에게 ‘올해 나는 무엇을 이룰까?’ 하고 자문하게 된다. 요즘 Z세대의 SNS에서는 조금 다른 질문이 오간다. ‘오늘 하루, 어떤 도전을 했는지’를 묻는 콘텐츠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1년 365일. 사소하지만 소중한 하루를 기록하는 ‘N일 차’ 계정이 인기를 얻고 있다. N일 차 계정은 평범한 하루를 기록하거나 도전의 과정을 공유하는 콘텐츠다. 도전의 결과가 ‘실패’로 끝나도 주변인들은 오히려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성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니까” 

“N일 차 영상의 가장 큰 장점은 실수나 실패도 이해받는다는 거죠.” 

2025년 초부터 ‘OO 도전 N일 차’ ‘100일 챌린지’ 같은 제목의 영상이 빠르게 확산했다. 대표적으로 오믈렛 만들기에 도전한 쿠킹버드(@cookingbird_), 100일 펜 드로잉 챌린지를 진행한 ‘칠해(@chill_hae_v)’, 그리고 ‘소시지 만들기 N일 차’로 화제를 모은 김보보(@kimbobo) 채널이 있다.

김보보의 채널주 김보(32) 씨는 대기업을 퇴사하고 요식업에 도전할 마음으로 ‘소시지 만들기 N일 차’ 영상을 제작했다. 당시 김 씨는 요리를 전혀 못 하는 ‘요알못’ 상태로 첫 영상을 올렸다. 그러나 ‘소시지 만들기 3일 차’ 영상이 조회수 20만 회를 넘기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N일 차 콘텐츠 제작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도’보다 ‘진정성’과 ‘꾸준함’이다. 실패도 거짓 없이 보여주는 ‘진정성’, 사소한 일상도 꾸준히 올리려는 노력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크리에이터들은 N일 차 영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 서사를 노출하며 시청자들과 관계를 형성한다. 성장 서사를 통해 크리에이터와 팬의 관계는 과거보다 더욱 끈끈한 친밀감을 생성한다.

김 씨는 “실패도 응원하는 댓글이 영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며 “팬들이 ‘N일 차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다’며 성장 과정을 기억해줄 때 가장 뭉클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씨는 경남 의령의 지역 축제에 참여해 소시지 부스를 운영했는데 하루에 소시지가 2000개 가까이 팔렸다. 고객 중에는 “구독자입니다, 팬입니다”라고 말한 손님들이 많았다고. 완성된 결과가 아닌 성장 서사 자체가 대중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실제로 N일 차 계정 댓글에는 “점점 발전하는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는 격려와 “실패도 재밌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중요한 건 대중이 도전의 모든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N일 차 콘텐츠를 즐겨 본다는 황초은(28) 씨는 “반드시 모든 도전에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콘텐츠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콘텐츠 제작자가 도전에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완성도가 높아지는 과정 자체가 좋다”고 말했다.

(왼쪽부터)김보보(@kimbobo)의 소시지 만들기 계정. 이 영상은 조회수 265만 회를 기록했다. @wooom.zip, @cookingbird_, @chill_hae_v, @happymuksyear의 N일 차 영상. 취업, 요리, 그림 등 다양한 주제의 도전을 담았다.

(왼쪽부터)김보보(@kimbobo)의 소시지 만들기 계정. 이 영상은 조회수 265만 회를 기록했다. @wooom.zip, @cookingbird_, @chill_hae_v, @happymuksyear의 N일 차 영상. 취업, 요리, 그림 등 다양한 주제의 도전을 담았다.

성공은 저 멀리, 준비는 매일

Z세대가 이런 ‘과정형 콘텐츠’에 공감하는 이유는 사회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청년층(15~29세)의 고용률은 45.1%로 17개월 연속 하락세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9년(51개월 연속 하락) 이후 최장 기록이다. 역대급 취업난 속에서 Z세대는 무언가를 ‘준비’하는 신분으로 있어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이처럼 확실한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청년층은 ‘결과’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붙잡고자 한다. 2025년 1월 퇴사하고 아직 이직처를 찾지 못한 오혜성(33) 씨. 소위 SKY로 불리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경력도 있지만 올해 이직 자리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오 씨는 “2025년에만 면접 30군데를 봤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결과가 안 좋았다고 해서 열심히 살았던 하루까지 외면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전다현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경기침체와 취업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한 지금 청년들은 확실한 내일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 연구위원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하루에 집중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며 “N일 차 영상처럼 하루의 과정을 기록하는 것에서 자기 효능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삶이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다”고 덧붙였다.

#N일차 #쇼츠유행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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