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애와 군인 정신으로 뭉친 ‘강철부대W’ 우승 팀 해병대 4인
‘강철부대W’는 시리즈 최초의 여군 편으로 육군, 해군, 특임대, 특전사, 707, 해병대를 제대한 최정예 여성 예비역들이 참가했다. 최영재 마스터가 “전 시즌 통틀어 극한의 난도”라고 평가할 만큼 힘든 미션이 주어졌고, 각 부대를 대표하는 여군들은 치열한 전투를 펼쳤다. 출연자들의 끈끈한 전우애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서사가 더해지며 높은 화제성도 낳았다. 12월 10일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에서 ‘강철부대W’는 ‘TV 비드라마 화제성’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TV-OTT 비드라마 화제성’에서 3위, ‘TV 통합 화제성’에서 6위, ‘TV-OTT 통합 화제성에서 10위를 차지하며 차트를 휩쓸었다.
‘강철부대W’의 인기에는 해병대가 보여준 팀워크가 한몫했다. 묵묵히 대원들을 뒷받침한 팀장 박민희(32) 대원을 비롯해 팀의 사기와 멘털 케어를 담당한 윤재인(33), 전무후무 ‘힘캐’로 ‘이 장군’이라 불렸던 이수연(32), 극도의 정신력을 보여줬던 조아라(32) 대원의 케미스트리가 돋보였다.
동고동락하며 우승의 순간을 함께한 네 사람을 동아일보사 충정로사옥에서 만났다. 항상 비장한 표정으로 미션 필드를 종횡무진하던 그들의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서렸다. 팀장 박민희 대원이 “해병대를 응원해주시고, 미션에 임할 때마다 함께 긴장해주신 모든 시청자분 덕에 우승할 수 있었다”며 “응원과 관심에 감사하다”고 서두를 뗐다.
어차피 우승은 해병대
해병대 팀이 ‘강철부터’ 시리즈 최초로 우승을 장식했다. 조아라, 박민희, 이수연, 윤재인 대원(왼쪽부터).
박민희 | 방송을 찍기 전부터, 팀원들을 처음 만났을 때도 항상 저희가 우승할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웃음). 그럼에도 우승 부대를 호명하는 순간 정말 많이 놀랐고 가슴이 벅차올랐죠.
조아라 |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요.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에 정말 감격했습니다. 마지막엔 어쩌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결승 베니핏 2개를 모두 특전사 팀이 가져갔습니다.
이수연 | 특전사 부대는 이전 미션에서 CQB 합을 맞춰본 적이 있기 때문에 확실히 유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해상 미션에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기죽지 않고 임했습니다.
박 | 베니핏을 빼앗겼기 때문에 압박감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최대한 시간을 줄이는 전략을 하자고 마음을 모았고 그게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첫 만남에서 박민희 대원이 팀장에 자원했습니다. 혹시 다른 분 중에 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나요.
조 | 사실 저는 하고 싶었어요(웃음). 하지만 팀장이 누가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미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전략을 짜는 게 맞다고 의견을 모았어요. 박민희 대원이 항상 의견을 잘 수렴했고요.
윤재인 | 저는 사실 (해병대) 후배들이 나오길 기대했거든요. 제가 경력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배가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다른 대원들을 보고서는 팀장이고 뭐고 막내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기수로는 막내인 재인 대원님이 세 분과 함께하며 느낀 점을 설명해주신다면요.
윤 | 팀장님은 기가 세 보이지만 사실은 여린 사람입니다. 강인한 정신력과 여린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수연 대원님은 처음부터 강할 거라는 걸 알았지만 갈수록 더 강한 사람이더라고요. 아라 대원님은 ‘참군인’ 같은 이미지로 굳어졌지만 정말 귀엽습니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잘 부르고요(웃음).
조 | 아 그만하시죠.
재인 대원님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요.
조 | 처음엔 무뚝뚝한 줄 알았어요. 냉정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요. 실제로는 대형견에 가깝습니다. 애교도 많아 미션에서 항상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줬어요.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첫 미션이었던 참호 격투에서 이수연 대원이 엄청난 힘을 보여줬습니다. 다른 분들이 든든했겠어요.
박 |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우리 팀이어서 다행이다’였어요.
가장 견제되는 팀이나 대원이 있었나요.
박 |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강하다고 알려진 707이나 특전사가 신경 쓰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좀 더 전략적으로 임했습니다. 저희가 대진표를 짤 때 특전사와 707을 붙여보기도 했어요. 또 4강에서 베니핏을 받았을 때 707을 떨어뜨릴 기회라고 생각해서 자신 있는 행군을 골랐고요.
이 | 사실 참호 격투 때 특임대 조성원 대원과 한번 붙어보고 싶었습니다. 저보다 어깨가 넓어서 어떤 파워를 가졌는지 궁금했어요(웃음). 아쉽게도 당시 특임대와 붙지 못했는데, 기회가 있다면 조성원 대원과 한번 겨뤄보고 싶습니다.
카메라 밖에서 다른 대원들과의 관계도 궁금합니다.
박 | 사실 되게 화기애애해요. 우선 대한민국의 여군이라는 동질감이 있습니다. 물론 미션에 들어가면 치열하게 싸우긴 하지만요.
가장 힘든 미션은 무엇이었나요.
박 | 행군이죠.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정말 힘들었고, 중간중간 ‘완주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박민희 대원과 마찬가지로 다른 해병대 대원 역시 4강전에서의 ‘전차 포탄 보급 행군’을 가장 힘든 미션으로 꼽았다. 약 1km 거리를 행군해 다리 밑에 있는 35kg짜리 전차 포탄을 끌어 올린 뒤, 다시 약 1km 거리를 행군해 통신소에서 추가 포탄을 받아 나머지 약 2km 거리를 행군해야 하는 극한의 난도. 각각이 메야 하는 25kg의 군장과 소총, 추가 포탄을 합치면 총 178kg을 4명이서 나눠 진 채 수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
173kg, 행군의 무게
해병대 팀이 ‘강철부대W'에서 활약한 미션들. 행군, 타이어 확보전, 참호 격투.
방송으로 볼 때도 행군은 정말 힘든 것 같았습니다.
이 | 포탄을 다리 위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힘을 너무 많이 뺐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통신소까지는 중간중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언덕을 올라갔는지, 조아라 대원님이 돌아온 순간조차 가물가물해요.
조 | 실무 부대에서 하는 행군도 정말 힘들긴 합니다. 다만 이번 행군은 경쟁을 해야 했고, 여기서 이겨야 결승에 올라갈 수 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또 포탄이 손잡이가 있거나 모양이 잡혀 있지 않고 무게가 탄도 쪽으로 치우쳐 있다 보니 정말 들기 어려웠습니다.
윤 | 사실 처음엔 자신이 있었어요. 실무 부대에서 하던 행군과 별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초반에 페이스 조절이 잘 안 돼서 그걸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아라 대원님이 통신소에서 돌아왔을 때 ‘아 왔구나, 이제 살았구나’ 생각했습니다.
미션을 하면서 제작진이 너무한다 싶은 순간도 있었나요.
윤 | 450kg 타이어 확보전을 할 때, 이걸 해보고 시키는 건가 싶긴 했습니다(웃음). 200kg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해볼 수 있었는데, 250kg은 너무하다 싶었어요. 50kg 차이가 그렇게 크게 느껴질 줄 몰랐거든요.
재인 대원님은 어깨 부상을 당해 미션 내내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괜찮나요.
윤 | 결승 이후에 바로 수술했고, 수술이 잘돼서 지금은 재활 과정 중에 있습니다.
박 | 재인 대원이 저희에게도 티를 잘 안 냈어요. 미션 수행 때는 정말 꾹 참고 했던 것 같고요. 옆에서 보는데 정말 안타까웠죠. 계속 참다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많이 회복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온라인상에선 윤재인 대원님을 ‘망구다이(한미 최정예 부사관 훈련)’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망구다이는 얼마나 힘든 훈련인가요.
윤 | 무박 3일로 진행되는데, 전투 식량을 2개 들고 갔습니다. 저는 그때 밥을 안 먹으면 사람이 눈이 돌아간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 자리에 함께했던 동기가 전투 식량 안에 있는 초코볼 하나를 건네줬는데, 그걸 먹고서야 눈이 다시 스르륵 제자리를 찾더라고요. 그만큼 자부심도 느끼고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시청자분들이 ‘망구다이’로 불러주시는 걸 알고 있는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웃음).
조아라 대원과 이수연 대원은 해병대 교육 훈련단에서 교관과 후보생 관계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방송에서 다시 봤을 때 어땠나요.
이 | 저는 촬영 전, 조아라 대원이 출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교관 출신이기도 하고, 저와 같은 달 전역했거든요. 촬영을 시작하며 처음 봤을 때 ‘아, 정말 우리 우승하려나?’ 생각했습니다. 미션에서는 소통이 중요한데, 안면이 있는 사람과 같이하면 훨씬 유리하니까요.
후보생 시절 교관은 ‘신’이라고 하던데, 아라 대원도 많이 무서웠나요.
이 | 그렇죠. 후보생 때 교관은 정말 무서운 존재거든요. 그래도 가끔은 뒤돌아서 웃기도 하셔서 ‘저 사람도 인간이긴 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저 작은 체구로 어떻게 교관 훈련을 받았을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조 | 저는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납니다. 교육 훈련단 정문을 통해서 들어온 인원이 연병장에 일렬로 도열하는데, 그때 이수연 대원의 피지컬이 생각납니다. 경력을 봤는데 체고, 체대를 졸업했더라고요.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친구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때 인상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촬영 후 찾아온 일상의 시간
촬영을 끝낸 뒤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박 | 저는 트레이너로서 다시 수업에 충실히 임하고 있습니다. 회원분들의 다이어트와 건강을 찾아드리려고 해요. 제게 유독 초고도 비만 회원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30kg씩 빼드리고 있어요(웃음).
다이어트 비법이 있다면요.
박 | 제가 강조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규칙적인 생활. 일단 규칙적인 생활만 해도 다이어트가 됩니다.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모두 규칙적으로 해야 해요. 먹는 양은 규칙적인 생활이 이뤄진 다음에 조절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가공된 음식을 줄이는 건 좋죠. 또 근력 위주의 운동을 동반하면 요요 없이 다이어트를 할 수 있습니다.
조아라 대원님은요.
조 | 지난해 5월 전역 후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었는데 바로 ‘강철부대W’를 촬영하게 됐고, 이제야 계획을 세워볼까 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평소엔 등산, 러닝, 크로스핏 등을 하고 있어요. 아, 저 마트 가는 것도 좋아합니다.
요즘엔 보통 온라인으로 장을 보지 않나요.
박 | 하나 알려드리자면, 아라 대원님이 스마트기기를 멀리하십니다.
윤 | 멀리한다기보다 사용할 줄 모르세요. 카카오톡 정산하기를 얼마 전에 성공했다고 자랑하더라고요.
이 | 수기로 다이어리를 작성하셔서, 단체 일정이 있을 때 집에 가서 확인하셔야 하는 분입니다.
조 | 저는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수연 대원님과 윤재인 대원님은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이 | 저도 군 생활을 8년 동안 했기 때문에 전역 후 쉬려고 했는데 바로 촬영에 들어가게 됐어요. 이제야 좀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윤 | 저는 평범한 회사원이라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앞으로 뭘 해볼까, 고민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들 쉴 때도 운동을 하시는군요.
조 | 복무 중일 때는 아무래도 시간이 제한됐었는데 지금은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
방송이 나간 뒤 주변 반응이 궁금합니다.
박 | 트레이닝받는 회원분들이 해병대에 우여곡절이 있을 때마다 걱정이 돼서 못 보겠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습니다(웃음). 가슴이 떨려서 아예 방송이 끝나면 봐야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윤 | 길거리에서는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운동하는 그룹에 가면 확실히 인지도가 다릅니다. 저는 풋살을 좋아하는데, 대회에 나갈 때마다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조 | 최근 마트에 갔을 때, ‘강철부대W’ 종합 선물 세트를 팔더라고요. 대학생 두 분이 “빨리 가야 돼, 가야 돼” 이러면서 행군할 때 했던 저의 성대모사를 하시는 거예요. 그때 많은 분이 저희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시는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네 분은 언제부터 군인을 꿈꿨나요.
윤 | 대학교 다닐 때 국군의 날 행사를 보게 됐어요. ‘나도 저 사람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군인의 꿈을 갖게 됐습니다. 그중에서도 해병대를 택한 건 특별한 소속감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에서였어요. 제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덧붙이자면 빨간색 명찰에 끌렸습니다.
이 | 저는 할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셔서 어릴 때부터 군인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운동선수를 은퇴하고 새로운 일을 찾을 때 군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했고요. 할아버지는 육군이셨지만 저는 ‘소수 정예’라는 말에 끌려서 해병대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재인 대원님이 명찰에 끌린 것처럼 팔각모와 전투화도 멋있어 보였고요. 장교 후보생으로 무박 훈련할 때는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는데, 포기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윤 | 조아라 대원님이 잘못하신 것 같습니다.
이 | 아, 그때는 조아라 대원님이 교관은 아니셨습니다.
윤 | 그럼 사과드리겠습니다.
조 | 하하. 저는 어릴 때부터 제복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언젠가는 꼭 제복 입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2010년 11월 23일입니다.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거실에서 평화롭게 TV를 보고 있는데 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졌어요. 긴박한 순간에 해병대 대원들이 죽음을 감수하고 맞대응하는 걸 봤습니다. 그때 저도 명예롭고 가치 있는 군인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지원했습니다.
박 | 저는 중학교 때부터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군인이나 경찰이 되는 걸 꿈꿨습니다. 저희 집엔 딸밖에 없는데, 아버지가 엄하고 보수적인 편이셨어요. 항상 여자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죠. 그에 대한 반항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역량에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가장 강한 부대인 해병대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연평도 포격이 나를 해병대로 이끌었다”
해병대에 입대하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나요.
박 |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지역 해병대 전우회 분들과 만나고 친하게 지내시면서 해병대 선배처럼 말씀하기도 하세요. 사실 아버지는 방위 출신이거든요(웃음). 주위 분들에게 딸이 해병대라고 엄청 자랑하시고, 저를 아끼는 마음으로 제가 군대에 있을 땐 조언도 엄청 해주셨습니다.
육군 한수빈 대원이 “각 부대에 흩어져 있는 여군들은 자신이 약하지 않음을 증명하며 산다”고 말하는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군으로서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조 | 야외 훈련 중 텐트 대신 시설관리실에서 취침하고, 화장실도 실내를 이용하면 된다는 배려 아닌 배려를 받았어요. 혼자 편하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해 저도 텐트에서 자고, 화장실도 삽으로 땅을 파서 해결했습니다. 또 여군들은 생리로 인한 보건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데 저는 자존심이 상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생리통이 심한 분들도 계실 텐데, 휴가를 쓸 경우 쉬려 한다고 생각하시는 상관이 아직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 | 전방의 헌병 부대에 전입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가기 전까지만 해도 여군은 6개월씩 야간 근무를 서야 하는 독립 소초에 배치받지 않았어요. 여군이 있기에 시설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입 갔을 때 남군 선배들이 싫은 티를 내기도 했습니다. 남군이 오면 교대 순번이 길어져 근무 환경이 나을 테니까요. 제가 먼저 자원해서 독립 소초에 배치받았습니다. 제가 하지 않으면 그만큼 여군 직책이 줄어드는 거라고 생각했고, 후배들이 더 많은 선택권을 갖길 바랐습니다.
해병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조 | 해병대라는 조직이 없다면 저라는 존재도 없죠. 해병대가 있기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강철부대W’에도 출연하게 된 거고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해병대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 투철한 군인 정신을 원하시면 해병대를 추천드립니다(웃음). 저는 아직도 태극기만 보면 뭉클한 기분이 들고, 해병대 팻말만 봐도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이 | 타 부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해병대의 전우애는 정말 다르다고 자부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해병대는 제2의 인생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제 첫출발이 운동선수라면, 해병대에서는 오랜 시간을 보내며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제3의 길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박 | 대원들과 같은 부대를 나왔다는 게 너무 뜻깊고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처럼 무모하게, 열심히 도전하는 생활을 앞으로 할 수 있을까 싶어요. 해병대여서 가능한 일이었고, 제가 가장 뜨겁게 임했던 시절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해병대 팀원들, 해병대 군인들 그리고 모든 국군 장병 여러분에게도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강철부대W #해병대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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