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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파격 토크 ②

이상봉에게 누드란…

자유를 디자인하는 남자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금산갤러리 제공

2013. 02. 19

잘나가는 디자이너 이상봉이 누드 사진을 촬영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첫 반응은 ‘정말?’ 그다음은‘왜?’가 아니었을까. 그는 옷으로 몸을 포장하는 디자이너, 게다가 그리 자랑할 만한(?) 몸매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이상봉과 그를 카메라에 담은 사진작가 이엽 씨를 함께 만나 사연을 들었다.

이상봉에게 누드란…


1월 23부터 2월 16일까지 서울 중구 회현동 금산갤러리에서는 ‘입는 예술-벗는 예술’이라는 타이틀로 이상봉 누드 사진전이 열린다. 모델은 이상봉, 그를 카메라에 담은 인물은 15년지기 사진작가 이엽 씨다.
사람이 옷을 입는 이유는 첫째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둘째 돋보이고 싶어서다. 그리고 디자이너의 소명은 아름답게 입(히)는 것이다. 이상봉이 옷을 벗은 것은 그래서 신선하고 놀랍다. 무엇이 그를 이 용감한 도전에 나서게 했을까. 호기심을 가득 안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상봉의 작업실을 찾았다. 셔츠에 조끼, 코트까지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중무장한 그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민머리와 동그란 안경, 시그너처 같은 반지를 보니 누드 사진에서 봤던 ‘그 이상봉’이 분명하다.
“누드가 꽤 화제가 되고 있다”고 인사를 건네자 이상봉은 “너무 이슈가 되면 안 되는데…”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 먹어서 주책이랄까봐 걱정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지 않으냐”며 사람 좋게 웃었다.

이상봉을 벗긴 건 사진작가와의 의리
그가 알몸으로 피사체가 된 건 다름 아닌 이엽 작가와의 의리 때문이다. 이엽 작가는 지난 15년 동안 이상봉의 분신이었다. 파리, 모스크바 등 이상봉이 패션쇼를 여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그 모든 기록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다 문득, 이상봉을 벗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거장의 내면을 담아보고 싶었다는 것. 이상봉은 의외로 순순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엽 작가의 첫 개인전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고, 그동안 힘든 과정을 거쳐온 만큼 이번 전시가 터닝포인트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물론 덜컥 약속한 다음엔 후회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신경이 쓰였던 건 사실.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분명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 안 해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이걸 정말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고요. 1980년대 디자이너 이브생 로랑이 누드로 향수 광고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이브생 로랑도 젊은 나이가 아니었는데, 저 사람 용기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지 제가 벗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죠. 우리 가족들도 전혀 몰랐어요. 사진을 보여줬더니 어린 손자가 깔깔깔 웃더군요(웃음).”
디자이너는 모델의 몸에 민감하다. 모델이 조금만 살이 쪄도 “핏이 살지 않는다”며 호되게 야단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상봉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가 모델로서 자신의 몸은 어떻게 평가할까.
“벗는 것 자체에 대한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것이지, 육체미를 과시하는 건 아니니까 모델처럼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데도 작업을 마치고 사진을 보면서 ‘이게 과연 나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연극을 할 때(그는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출신이다)부터 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거울도 잘 안 봤어요. 더군다나 누드는…낯설더군요.”
예쁜 옷으로 사람들의 몸을 포장해주는 그가 벗는다는 건 얼핏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어떤 옷으로 아름답게 치장해도 결국 가장 아름다운 건 인간의 몸이에요. 옷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건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는 웨딩드레스고요. 목욕탕 가서 벗고 보면 다 동등한데 포장지를 달리 해서 더 고급스럽게 보이고 싶은 것은 어떻게 보면 욕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내면이죠. 디자이너의 궁극적인 소명도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옷으로 표현하는 것이고요.”

이상봉에게 누드란…

1 나를 입다, 2012, Digital C-print, 152.5×91.5cm 2 표출, 2012, Digital C-print, 152.5×91.5cm 이엽 작가가 촬영한 이상봉의 누드. 이 작가의 눈에 비친 이상봉은 아이처럼 순수하면서도, 예술가로서 창작에 대한 열망도 강하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이상봉에게 누드란…

이상봉과 그를 벗겨 카메라에 담은 이엽 작가. 두 사람은 15년 이상 디자이너와 사진작가로 인연을 맺어 왔다.



이상봉은 2002년 파리 컬렉션에 진출하며 해외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2006년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린제이 로한 등 패션계에 영향력이 큰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의 의상을 입으면서 해외 유명 편집숍들의 러브콜을 받았고 파리, 뉴욕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이후 의류뿐만 아니라 도자기·휴대전화·자동차·아파트 등 한글을 응용한 다양한 산업디자인 작업을 통해 국내외에 한글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렸다. 행남자기와 협업한 그의 도자기 작품은 현재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에 영구 전시돼 있다.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 보이지만 사진으로 표현된 그의 내면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면과 함께 뱀을 집어삼킬 듯한 강렬한 열망과 예술가로서의 영원한 생명력, 그리고 동시에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하다.
“저는 계속 도망갈 거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대학 때 연극 공연을 일주일 남기고 도망을 간 적이 있어요. 그게 평생 트라우마가 돼서 디자이너가 된 후 10년 넘게 저를 벼랑 끝에 세우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신을 몰아넣었죠. 항상 쇼가 끝나면 감사하는 게 ‘내가 포기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았어!’예요. ‘잘했어’ ‘못했어’ 평가는 2차적인 거고 ‘이번에도 해냈어!’인 거죠. 그렇게 이를 악물고 살아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요. 의도했던 건 아니었는데 돌아보니 제가 새와 나비를 모티프로 작품을 많이 했더라고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자유롭고 싶은 욕망을 그렇게 표현해왔던 게 아닌가 싶어요.”
넘칠 때까지 가득 채워 창작을 하고, 또 새로운 작품을 위해 채웠던 것을 깨끗하게 다시 비우는 것은 예술가가 감내해야 할 숙명이다. 거장의 반열에 오를수록 그 과정이 더 고통스럽다. 이상봉은 쇼가 끝난 후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비우고 채우는 의식을 치른다.
“우리 일에는 성공이나 만족이 있을 수 없어요. 그걸 느끼는 순간 죽는 거죠. 저는 여행을 가거나 혹은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몇 시간씩 누워 있어요. 그러면 햇볕에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면서 무아지경에 빠져요.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죠.”
그동안 이상봉은 자신의 나이를 서른일곱 살이라고 말해 왔다. 육체는 늙을지언정 정신은 늙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알몸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으로 이를 입증했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엽 작가는… 월간 ‘오디오’, 월간 ‘세븐틴’ 등의 사진기자를 거쳤으며 1997년 잡지 화보 촬영을 하면서 이상봉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02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밀라노의 Istituto Italiano di Fotografia에서 인물과 패션 사진을 전공했다. 2002년 모다돈나, 2006년 이상봉 한글 전시회 ‘물위를 걷다’, SFAA 등 다수의 전시와 컬렉션 사진을 담당했다. 서울종합예술학교와 경민대에서 강의를 했으며 사진을 통해 거장의 내면을 읽고자 한다. 그가 지켜 본 이상봉은 “계속 진화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며 발전한다는 것. 이상봉 주변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에너지를 나눠 받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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