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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별책 부록│초·중등생 학습법 大백과

‘좋은 습관 길러주는 동기부여법’

세 딸 모두 특목고 보내고 카이스트, 행정고시 합격시킨 이금형 총경

2006. 06. 27

‘좋은 습관 길러주는 동기부여법’

과학수사와 성폭력 및 가정폭력 수사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금형 마포경찰서장(48). 77년 대성여상을 졸업하고 순경 공채시험에 합격해 경찰에 입문한 그는 지난 2001년 한국 경찰사상 세 번째 여성 총경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경찰청 과학수사계장, 경찰청 초대 여성실장 등을 지냈다.
이금형 총경은 남편 이인균 신세계 이마트 상무(50)와의 사이에 세 딸을 두고 있는데 한성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맏딸 소라씨(23)는 지난 2004년 제48회 행정고시 통신기술직에 최연소 합격해 현재 과천에서 사무관 연수 중이다. 둘째 딸 진아씨(21)는 카이스트 대학원에 다니며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고, 막내 정아양(20)은 연세대 이학계열에 재학 중이다.
5번의 진급시험을 통과해 경정에까지 오른 후 방송통신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동국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으며 공부에 남다른 열의를 보여왔던 이 총경인 만큼 세 딸을 모두 수재로 키운 남다른 비결이 있을 듯한데 그는 쑥스러워하며 “야근, 특근에 진급시험 준비로 바빠 아이들에게 통 신경을 못 썼다”고 말한다.
“요즘 젊은 엄마들처럼 태교라는 걸 따로 해보지 못했어요. 제가 임신했을 때 주로 한 일이 범인 몽타주 만들고, 신원불명의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이었어요. 매일 험악한 범인들의 얼굴과 시체들을 보면서 지낸 거죠. 끔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이 일을 열심히 해서 가족들을 찾아주면 이 사람의 영혼이 하늘에 가서도 고마워할 거라 생각하고 일했어요.”
81년 충북도경 상황실에서 근무할 당시 전투경찰로 군복무 중이던 남편 이인균씨를 처음 만나 83년 결혼한 이 총경은 그 이듬해부터 시부모와 함께 살았다. 몇 해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딸도 집을 떠나 지금은 식구가 단출해졌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만 해도 시부모와 시누이들까지 9명의 대식구가 30여 평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대가족의 외며느리로 세 아이를 키우며 경찰 생활을 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듯싶은데 그는 집안 살림이며 육아를 시어머니가 도맡다시피했다며 모든 공을 시어머니에게로 돌렸다.
그는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은 시어머니가 일주일에 하루는 쉴 수 있도록 일요일만은 아이들을 직접 챙겼다고 한다. 진급시험이 있는 해에는 일요일마다 아이들을 사무실로 데리고 나와 공부를 했다고.

짜투리 시간 이용해 공부하는 모습 아이들에게 보여줘
워낙 큰살림에 아이도 셋이나 되다 보니 시어머니가 아무리 찬찬히 살펴도 빈틈은 있게 마련.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고,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에 종사하는 그는 아이가 아파도 직접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병을 키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감기가 심했는데 괜찮아지겠지 하고 학교에 계속 보냈어요. 근데 결국은 감기가 심해져 장염을 일으키는 바람에 2주일씩이나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한밤중에 일어나 엉엉 운 적도 많아요. 이렇게까지 하면서 꼭 일을 해야 하나 싶어서요.”
그 무렵 이 총경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을까?” 하고 진지하게 물었다고 한다. 두 손 들어 환영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큰딸이 “제가 엄마라면 그러지 않겠어요” 하고 말했다고. 일하는 며느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시어머니와 바쁜 엄마를 이해해주는 딸들의 격려에 힘입어 그는 직장생활도, 뒤늦게 시작한 공부도 남들보다 두세 배 더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녹음기를 적극 활용했다.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이 없을까. 시부모도 모셔야 하고, 아이도 셋이나 있고….’ 이렇게 불평만 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되는 게 없더라고요. 그럴 게 아니라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진급시험이 있는 해에는 시어머니께 특별히 좀 더 봐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러니 대충 공부할 수 있나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험과목 강의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놓았어요. 밥 먹고, 화장하고, 출퇴근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1시간 이상 되더라고요. 지하철 안에선 이어폰을 꽂고 책을 봤어요. 주말엔 와이셔츠를 모아서 다림질하면서 녹음 테이프를 듣고요.”

‘좋은 습관 길러주는 동기부여법’

이금형 총경의 든든한 지원군인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세딸 정아·소라·진아씨(윗줄 왼쪽부터)


진급시험이 있는 해에는 남들이 다 퇴근할 때도 남아 공부하고,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는 물론 매주 일요일에도 아이들을 사무실로 데리고 나와 시험공부를 했던 그는 “처음엔 자장면과 탕수육 먹는 재미로 엄마를 따라 집을 나섰던 아이들이 점점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며 진급시험에 죽기 살기로 매달려 얻은 가장 큰 보람은 남들 표현대로 ‘초고속 승진’이 아니라 세 딸들에게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습관을 갖도록 한 점이라고 말했다.
“큰딸 소라가 시험공부를 할 때 제가 그랬어요. ‘난 어리니까 이번에 안되면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되지’ 하고 생각하지 말고, 이왕 도전하기로 했으니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라고요.”
첫째와 둘째는 (한성)과학고를 졸업하고, 셋째는 (이화)외고를 졸업했으니, 세 딸을 모두 특목고에 보낸 셈.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 과학고에 갈 만한 성적이 된다고 하고, 아이들도 이공계통에 관심이 많아 지원해보라고 했을 뿐 남다른 입시전략이나 딸들을 위해 세워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들 공부를 일일이 챙겨줄 시간도 없을뿐더러 그럴 만한 능력도 못 돼요. 제가 과학고나 외고에 대해 잘 알고 아이들 입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면 셋째를 외고에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시어머니께서 첫째와 둘째가 대전에 있어 집안이 허전한데 막내까지 과학고에 가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 적적해서 못 산다고 하셔서 외고에 보냈거든요. 그런데 셋째 역시 외고에 다니면서도 언니들처럼 이공계통으로 진학하고 싶어하더니 연세대 이학계열에 진학했어요.”

딸들이 일기 쓰도록 독려하고 매주 일요일 엄마의 생각 달아줘
직장생활과 가사, 학업을 병행해온 이 총경은 “세 딸이 자라는 동안 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고기를 잡도록 동기를 부여했는데 그 방법이 세 딸을 건강하고 강하게 키운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아이들에게 엄마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딸들이 한글을 깨치고 일기를 쓰기 시작하자 이 총경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세 딸의 일기를 모아 읽었다. 그리곤 내용에 따라 별표를 쳐주곤 했는데 그 별이 모아져 30개가 될 때마다 1천원씩 상금을 줬다고 한다. 그랬더니 셋 다 매일 빼먹지 않고 일기를 쓰는 데 재미를 붙였다고.
“아이들이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만 기록하는 게 아니라 일기장에 독후감을 쓸 때도 있었어요.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으면 과거에 제가 읽었던 책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제가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의 내용을 알게 될 때도 있어 참 좋더라고요. 일요일마다 한꺼번에 세 아이의 일기를 읽고 일일이 제 생각을 덧붙여 쓰려면 시간이 꽤 걸렸지만 아이들에게도 제게도 참 좋은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일기 쓰는 습관이 몸에 배 요즘도 그날그날의 일을 메모로 남긴다는 소라씨는 행정고시 통신기술직에 합격한 뒤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꾸준히 일기를 쓰라”고 권한다고 한다. 일기를 쓰면 자신이 언제쯤 체력이 떨어지는지 신체 리듬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실제 소라씨의 경우 시험준비를 하는 동안 며칠 만에 한 번씩 몸의 상태가 아주 나빠지는지를 일기를 통해 파악하고,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식구가 많다 보니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이 총경은 돈을 모아 재산을 늘리기보다는 아이들에게 투자하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다고 한다. 옷은 친척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입히면서도 아이들이 원하는 책은 되도록 다 사줬다고.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동네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을 할머니 혼자 감당하게 할 수 없어서였다. 그는 아이들을 찬찬히 챙겨주지 못하는 대신 매달 학원장을 직접 만나 학원비를 건넸다고 한다. 학원은 밤늦게 찾아가도 된다는 이점이 있기도 했고, 학교보다는 학원 문턱이 낮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바쁜 중에도 1년에 한 번은 담임교사 만나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1년에 한 번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런데 모범생이기만 했을 것 같은 소라씨가 중학교 2학년 무렵 ‘학교짱’으로 불리는 남학생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여 학교 선생님들을 잔뜩 긴장시킨 일이 있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집에 돌아온 그는 거실에 한 대만 남기고 방마다 하나씩 있던 전화기를 모두 없앴다고 한다. 그리곤 딸이 학원 수업을 마치는 시간에 맞춰 학원 앞에서 기다렸다고.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차 안에서 딸을 기다리는 일이 고됐지만 그는 그동안 아이와 제대로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떠올리며 버텼다고 한다.
“학원에서 나오는 아이를 보니 통이 넓은 긴 바지를 입고, 온 동네 흙을 다 쓸고 있더라고요. 그날부터 제가 매일 학원 앞에서 기다리니까 아이가 투정을 했어요.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나봐요. 전 ‘그냥 너 볼 시간이 너무 없어서 그래’ 하고 말했죠. 한 달 정도 지나니 아이가 저와 함께 집에 오는 시간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큰딸이 사춘기를 그렇게 비교적 얌전하게 보내고, 엄마와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가 되자 둘째와 셋째도 언니의 영향을 받아 순조롭게 잘 컸다고 한다.
그는 지금 자신의 가족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어떤 목표를 세워두고 줄달음쳤기 때문이 아니라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얻어진 결과라고 말한다. 물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자신보다 더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이 총경은 “한때 공직에서 물러나면 딸들을 대신해 손주들을 키우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힘들게 공부한 법률지식과 여성·청소년 문제를 다룬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은퇴 후에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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