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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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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서 뷰티의 신

EDITOR_FASHION 최은초롱 기자 EDITOR_FEATURE 조윤

2019. 09. 26

쇼호스트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홈쇼핑 초창기부터 20년째 업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뷰티 전문 쇼호스트 한창서. ‘뷰티의 신’이라는 화려한 수식보다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일에 대한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과 변화의 파고를 즐길 줄 아는 여유다.



퍼프 소매 셔츠 시스템. 브라운 벨티드 팬츠 문제이. 화이트 스틸레토 힐 마이클마이클코어스.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퍼프 소매 셔츠 시스템. 브라운 벨티드 팬츠 문제이. 화이트 스틸레토 힐 마이클마이클코어스.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은 잘 몰라도 목소리를 들으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중저음의 차분한 톤, 하지만 능란하게 단어에 악센트를 더하고 말과 말 사이의 호흡을 조절하며 듣는 이를 빨아들이는 그만의 독특한 화법은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던 손가락도 멈추게 한다. 쇼호스트 한창서의 이야기다. 슈퍼모델로 데뷔해 1998년부터 쇼호스트로 전향한 그는 CJ ENM 오쇼핑에서 ‘한창서의 뷰티쇼’, ‘뷰티의 신’ 등의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며 20년째 뷰티 전문 쇼호스트로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홈쇼핑이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게 1995년이니 그야말로 홈쇼핑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만하다. 때로는 전문가다운 카리스마로, 때로는 언니 같은 친근함으로 여성들의 ‘뷰티멘토’로 활약 중인 한창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화이트 블라우스 에이치앤엠. 브라운 팬츠 자라.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비즈 장식 숄 에이치앤엠.

화이트 블라우스 에이치앤엠. 브라운 팬츠 자라.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비즈 장식 숄 에이치앤엠.

슈퍼모델로 데뷔해 쇼호스트가 된 독특한 케이스예요. 

슈퍼모델 활동 당시 홈쇼핑에 게스트로 출연했어요. 워킹을 하면서 판매할 옷을 보여주는 역할이었는데 마이크가 있으니 멘트를 했죠. 그런데 그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고 하더군요. 20년 전에는 홈쇼핑에서 워킹을 하면서 말을 하는 경우는 없었거든요. 방송을 본 회사 임원이 ‘당장 저 사람 데려오라’고 했대요. 쇼호스트 제안을 받고선 새로운 길이 열릴 거란 생각에 고민 없이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생방송이 쉽지 않더군요.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고 시작한 데다 대본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지금까지 버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어요. 

뷰티 전문 쇼호스트가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는 패션 쪽으로 시작했는데 홈쇼핑에서 패션은 여름방학이 비수기예요. 그 시즌에 다이어트 제품과 뷰티 제품을 방송했어요. 판매가 잘 돼 이후 계속 제안이 들어왔죠. 옷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데 뷰티 제품은 화면을 통해선 제품을 담은 용기 정도 밖에 보여줄 수가 없어요. 정작 중요한 향기, 제형, 발림성 등은 소비자가 전혀 알 수 없는 거죠. 그걸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예요. 그만큼 뷰티 제품은 쇼호스트가 판매에 굉장한 영향을 미쳐요. 점차 뷰티 방송의 비중이 커지다 보니 다른 방송은 하기 어렵게 됐죠. 지금은 홈쇼핑에서 최초로 론칭하는 제품의 방송 정도만 병행하고 있어요. 

20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킨 비결이 뭔가요. 

목소리가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또 제스처가 많은데 체격이 크다 보니 더 임팩트가 있지 않나 싶어요. 같은 제품을 누군가는 1년 방송하고 저는 단 한 번 진행했는데 다들 제가 계속 판매한 걸로 알더군요. 남들과 똑같이 하는 게 싫어 다른 방송을 모니터링하진 않아요. 사회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사람들의 심리, 집단이 가진 특성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해요. ‘주말에 집에서 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뭐가 필요할까?’ ‘평일 오전엔 어떤 사람들이 TV 앞에 앉아 있을까?’와 같은 생각을 평소에 해보고 멘트에 활용하죠. 또 소비자들은 제품에 대한 생생한 리뷰를 원하기 때문에 방송 전 제가 먼저 써보고 준비해야 해요.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 게 좋은지 알려주면 정말 똑같이 따라 하시거든요. 고객은 장사꾼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눈높이에서 제품을 설명해주는 ‘언니’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거예요. 다만 책임질 수 있는 사실만을 말해야 해요. 그걸 지켜야 소비자들의 믿음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린 컬러 보트넥 톱 자라. 골드 이어링 킵블랙.

그린 컬러 보트넥 톱 자라. 골드 이어링 킵블랙.

쇼호스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방송 밖에서의 역할도 크다고 들었어요. 

말씀드렸듯이 뷰티 방송은 쇼호스트의 역할이 중요해요. 업체와 미팅할 때 어떤 제품을 메인으로 할지, 프로모션은 어떻게 할지, 계절에 따라 상품구성을 어떻게 바꿀지, 용기 디자인과 제형은 괜찮은지 등에 대해 논의하죠. 방송이 결정된 이후에는 물론 무대세팅도 제안하고요. 예를 들어 콜라겐 제품이라면 콜라겐을 슬라이스해서 가져와달라고 부탁해요. 그 다음 이걸 어떤 각도에서 보여줄지, 테이블은 어느 쪽에 둘지, 조명은 어떻게 비출지, 왼손과 오른손엔 각각 뭘 들지까지 상의하죠. 방송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제가 다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원래 이건 전문가들의 역할이기 때문에 충돌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지금은 주변에서 제가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죠. 

대학서 강의도 하신다고요. 학생들에겐 어떤 조언을 해주나요. 

대학생들은 아직 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기회가 되면 무조건 도전하라고 이야기해요. 저도 쇼호스트가 되기 전까지는 늘 직업을 두세 개씩 갖고 있었는데 그래도 더 많이 경험했어야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취직이 힘들다고 해도 취직보다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죠. 10년 안에도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데 한 직업만 바라보면 10년 뒤엔 시대에 뒤떨어진 것에 매달려 있는 것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쇼호스트가 되길 원하는 이들은 특히 많은 걸 경험한 뒤 하라고 조언해요. 너무 준비를 많이 하고 기계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 실제로 내가 써보고 정말 좋았던 걸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란 거예요. 제품에 대한 이론적인 딱딱한 정보는 소비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니거든요. 


체크 슈트 그리디어스. 슈즈 레이첼콕스. 이어링 YYCC. 실버 링 킵블랙.

체크 슈트 그리디어스. 슈즈 레이첼콕스. 이어링 YYCC. 실버 링 킵블랙.

최근 SNS 인플루언서가 홈쇼핑까지 진출하는 등의 변화가 위협으로 느껴지진 않나요. 

이전까지 연예인과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홈쇼핑에 많이 진출했고, 이제는 SNS 인플루언서까지 들어온 거죠. 이런 변화를 보는 게 재미있어요. 그들과 어떻게 경쟁하고 또 어떻게 협업할지 고민해야 해요. 실제로 SNS 인플루언서가 사용해 유명해진 제품을 홈쇼핑에서 판매해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적도 있죠. 요샌 소비자들과 어떻게 더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changseo_han), 카카오스토리에 일부러 같은 글을 올리고 반응을 살피기도 했죠. 반응이 정말 달랐어요. 이후 SNS 라이브로 홈쇼핑 제품을 직접 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는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제품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피부에 대한 개인 고민 상담도 늘어나고 있어요. 쇼호스트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케터로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해요. 변화는 무조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당연한 걸 부정하지 말고 변화의 파도가 올 때 파도를 타면 돼요. 


핀턱 블라우스 바네사브루노. 머스터드 컬러 레더 스커트 이케. 진주 이어링 먼데이에디션. 골드 링 킵블랙.

핀턱 블라우스 바네사브루노. 머스터드 컬러 레더 스커트 이케. 진주 이어링 먼데이에디션. 골드 링 킵블랙.

SNS에는 필라테스 하는 모습을 많이 올리더군요. 

고등학교 땐 무용을 했어요. 그때 저보다 잘하던 친구가 사고 후 무용을 못 하게 된 걸 보고 몸으로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두려워 사회학과에 진학했죠. 너무 갭이 크죠?(웃음) 어쨌든 운동을 했던 몸이라 근육이 많고 자세가 바라요. 그런데 쇼호스트가 된 뒤 치열하게 살다 보니 거의 운동을 못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어요. 일이 매우 불규칙해서 규칙적인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하기 어렵죠. 한동안은 얼굴의 탄력을 위해 배의 탄력은 포기했다고 말하면서 먹는 것도 줄이지 않았어요. 그러다 몸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데 척추와 골반, 목의 근육이 좋아지는 걸 느껴요. 


버건디 레더 트렌치코트 마이클마이클코어스.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골드 링 킵블랙.

버건디 레더 트렌치코트 마이클마이클코어스. 이어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골드 링 킵블랙.

20년간 최고의 자리를 유지했어요. 또 다른 목표가 있나요. 

지금 세상은 너무 많이 발달했어요. 앞으로는 고성능보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회가 올 거고 슬로라이프가 각광 받을 거예요. 정확히 어떤 직업이 될진 모르겠지만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에 대한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전 제가 잘하는 걸 하고 싶어요. 그래야 지치지 않아요. 후배들이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20년이나 해왔냐’고 물어보면 ‘글쎄, 그냥 즐거워’라고 답해요. 세상에 안 힘든 게 어디 있겠어요. 일로써 충분히 기쁨을 맛보고 그 기쁨 뒤에서 쉬고 싶어요.

사진 신유나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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