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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the reader

이지연 아트플러스 소장 & 그 집 아들 박준서 군

대치동의 중심에서 독서를 외치다

EDITOR 정혜연 기자

2020. 02. 09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모든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입시 준비에 열을 올릴 때 ‘독서’에 열중하는 부모와 자녀가 있어 화제다.

책보다 좋은 선생은 없다. 좋은 책 한 권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대부분 자녀가 어릴 때는 책을 많이 읽히지만 학교에 보내고 나면 교과 공부에 급급해 독서 시간을 줄이기 마련이다. 결국 아이들은 책에서 진리를 찾기보다 학원에서 시험 문제의 정답을 찾기에 열심인 학창 시절을 보내는 비극이 벌어진다. 

특히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책 읽을 시간에 문제집 한 권 더 풀기를 선택한 학생들로 넘친다. 그 가운데 중학생 박준서(13) 군은 책 읽기를 선택해 독특한 이력을 쌓아가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책 읽기에 재미를 붙였고, 3년 뒤 엄마와 함께 독서 팟캐스트 ‘그 집 아들 독서법’을 시작했다. 3년 동안 한 달에 3번씩 올린 대화록은 꾸준히 쌓여 지난해 12월 동명의 책으로 출간됐다. 그에 앞서 준서 군은 6월 CBS 교양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에 청소년 강사로 뽑혀 10분짜리 강연을 하는 등 생각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다. 

준서 군의 성장이 가능했던 건 그의 엄마이자 인문·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아트플러스 연구소의 소장인 이지연(41)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목고 출신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진학했으나 사회에 나가서야 비로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이 소장은 자녀에게 자신의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아 다른 선택을 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진로와 공부, 행복을 모두 잡으려면 독서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한 것. 같이 고른 책 한 권을 모자가 번갈아 읽고 팟캐스트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걸 시작한 이유다. 이들을 만나 함께 책을 읽으며 변화된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지연 소장이준서 군 독후 활동 노트를 보여주고 있다.

이지연 소장이준서 군 독후 활동 노트를 보여주고 있다.

‘그 집 아들 독서법’이 서점가에서 화제인데, 어떻게 책을 냈나요. 

이지연 소장(이하 이) 지난해 1월 출판사 편집자가 팟캐스트를 듣고 의뢰를 해왔어요. 편집자가 아이가 셋이라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팟캐스트는 부담 없이 시작했어요. 어차피 아들과 책을 읽고 늘 대화를 나누니 녹음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죠. 주변 지인이나 연구소를 찾으시는 분들이 “책을 읽고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꾸준히 질문하기에 공유 차원에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박준서 군(이하 박)
팟캐스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방송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엄마와 책 읽고 수다 떠는 시간 정도로 여겼죠. 지금은 엄마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워요. 

3년 동안 팟캐스트를 운영했는데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나요. 

준서의 변화는 보여요. 대화 속에서 매년 생각이 자라는 게 느껴지죠. 어느 순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든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할 때 깜짝 놀라기도 해요. 엄마로서는 뿌듯하죠. 독서라는 게 효과가 대번 나타나지 않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행동이나 말, 질문을 통해 변화가 드러나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부담은 없었어요. 책을 읽고 가볍게 30분 동안 엄마와 이야기하는 거니까요. 처음부터 지금껏 대본을 쓰거나 하지는 않는데 최근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준비를 해요. 책이 두꺼워지면서 할 이야기가 많아졌거든요. 각자 주제를 정하고 책을 분석해서 이야깃거리를 준비하는 게 달라진 점이에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책 읽기를 싫어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청소년 강사까지 됐나요. 

팟캐스트를 시작한 이유가 어릴 때부터 말하는 걸 워낙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아빠와 엄마뿐 아니라 주위 사람과 이야기를 많이 했고,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발표로 전환이 됐죠. ‘세바시’ 발표를 위해 연습을 많이 했고 떨렸지만 잘 마칠 수 있었어요. 

말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장점을 살려주고 싶었어요.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책 속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았죠.

생각이 깊은 아들, 준서 군 이야기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책 읽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저학년 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오로지 ‘마법천자문’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엄마가 문학 책을 추천해줬는데 읽고 같이 이야기하다 보니 재미가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깊이가 있는 문학 책을 더 좋아하게 됐어요. 2학년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재미있는 책을 읽었어요.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면 거인국, 소인국에 대해 이야기한다든가 소설 속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한다든가 하면서 엄마와 쉴 새 없이 대화했죠. 그러다 보니 책 읽는 게 더 재미있어졌어요. 

책을 진지하게 읽으면서 학교생활이나 일상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책에 나오는 인물뿐 아니라 현실에서 제 친구들이나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선생님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친구들의 갈등, 다툼 등을 잘 풀어주게 됐어요. 문학 책의 갈등 구조를 이해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웃음). 

책에는 ‘원래 꿈은 변호사였는데 이젠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나와 있어요. 지금도 변함이 없나요. 

네. 지금도 꿈을 실천하고 있거든요. 요즘 제가 뭘 하냐면, 할아버지와 같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방송을 시작했어요. 할아버지와 소통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취미로 가볍게 하는 거예요. 전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게 많아요. 모두 화려하게 마무리하지는 못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편이에요. 

중학생이 된 후로 학과 공부, 학원 숙제를 하기도 버거울 것 같은데 시간은 어떻게 내나요. 

책을 읽는다고 공부를 못 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전 학원을 다니지 않아요(웃음). 방학이라 특강은 하나 듣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하는 편이죠. 평소 팟캐스트 준비하느라 책 읽고, 독후 활동의 의미로 30분 정도 내용 분석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요. 그렇게 하더라도 공부할 시간은 적절하게 배분해 사용하고 있어요. 

초등학생 후배들에게 졸업하기 전 꼭 읽기 바라는 책을 추천해주세요. 

박완서 작가님의 ‘노인과 소년’은 짧지만 내용이 되게 좋아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어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동물농장’도 굉장히 좋아하는 책이에요. 인물과 인물 간의 관계가 많이 나오는데, 관계를 파악하고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됐어요. ‘무민’이라는 만화책도 괜찮아요. 저학년 이후 만화는 잘 안 봤는데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밝게 표현하고 있어요. 책을 읽을 때마다 뇌를 쓰면 피곤하니까 휴식용으로 보세요. ‘있다면? 없다면!’은 과학적 사실들을 재미있게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에요. 엉뚱한 상상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데 비문학 책 가운데 가장 좋아해요.

좀 다른 대치동 엄마, 이지연 소장 이야기

책에서 ‘가짜 독서에 속는 부모들’ 이야기가 와 닿았어요. 일 년에 수백 권씩 책을 읽어도 생각의 깊이가 얕은 아이들이 적지 않은데, 그러면 ‘진짜 독서’란 무엇인가요. 

‘자기화’가 되어야 진짜 독서예요. 책을 읽고 질문을 계속 던져보고, 분석을 통해 자신 혹은 내가 사는 세상과 비교하며 자기중심적 해석을 하는 거죠. ‘나는 주인공이랑 뭐가 다르지?’ ‘책 속 세상은 우리 집과 다른데?’ 등 자녀와 대화를 해야 해요. 이렇게 하다 보면 변화가 느껴지기 마련이에요. 

‘브릭(BRICK) 독서법’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려요. 

이중적 의미가 있어요. ‘책(Book)을 반복(Repeat)해서 읽고, 해석(Inter pretation)하고, 대화와 소통(Conversation/Communication)을 통해 얼개(Knit)를 만든다’는 뜻이에요. 책을 읽고 나면 하나의 브릭이 생긴다는 뜻도 돼요. 다양한 책을 읽어 여러 브릭이 생기면 그것으로 아이는 자신만의 성을 쌓게 되죠. 준서는 말 잘하는 아이만의 고유한 성을 쌓았고, 논리적인 아이들은 그들만의 성을 쌓을 수 있겠죠. 브릭이 많을수록 성은 튼튼해질 테니 책을 다양하게 읽는 것이 좋아요. 또 희귀 브릭을 자기화하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할 테고요. 

준서 군은 자기 생각이 뚜렷해 보이는데, 얼마쯤 책을 읽어야 그렇게 되나요. 

준서가 책다운 책을 읽은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인데, 5학년부터는 주체성이 강해지는 게 느껴졌어요. 그 이후로 좀 정체됐다 싶으면 한 번씩 치고 올라가는 식으로 계단식 성장을 해온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학년이 올라가면서 사회성을 갖게 되고, 사춘기 이후 부모와 분리될 때 자기만의 가치관이 생겨요. 어떤 사회적 관습이나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궁금해하고, 소통하려 하는 어른이 되는 거죠. 

부모들이 자녀에게 독서를 권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 독서가 공부에 방해되면 가차 없이 접죠.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독서가 성적을 올려주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솔직히 말해 ‘점수’는 올려주지 않아요. 소설책을 읽는데 수학 성적이 올라갈 리 없잖아요. 수학처럼 유형을 분석하거나 사회처럼 암기를 해야 하는 과목은 그만큼 시간을 투자해야죠. 그 대신 독서를 통해 교과서 개념을 빨리 이해하는 힘은 길러지죠. 그렇게 되면 공부할 분량을 신속하게 줄일 수 있죠. 선생님들은 시험 문제를 애매하게 꼬는데 그걸 알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느니 그 시간에 책을 더 읽히고 싶어요. 암기는 지나고 나면 잊게 마련이지만 독서는 평생을 가니까요. 

그래서 준서 군의 학교 성적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하는 부모가 많을 것 같은데요. 

중학교 1학년까지 시험이 없어서 성적은 모르겠고, 수행평가는 팀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올 A를 받았어요. 준서 스스로는 ‘중상’ 정도라고 자평하는데, 만족해요. 제가 가르친 아이들 가운데 ‘자신의 목표’가 분명한 학생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치고 올라가기도 하더라고요. 그 목표라는 건 학원 다닌다고 생기지 않아요. 청소년기에 가질 수 있는 세계를 존중해주고 싶어요. 

학부모가 자녀와 함께 책을 읽을 때 꼭 실천했으면 하는 것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절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점은 ‘부모 입장에서 아이의 생각을 평가하는 것’이에요. 부모의 생각은 부모 세대, 과거의 생각이고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애초에 평가라는 건 누군가가 상대의 점수를 매기는 것인데 그건 소통이 아니죠. 꼭 실천했으면 하는 점은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에요. 아이는 어리든, 크든 어른들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 때문에 조심히, 예의를 갖춰 대해야 해요. 책을 읽고 대화할 때도 아이의 생각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죠. 대화를 하다 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배우는 게 더 많을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더 기버:기억 전달자’라는 책이 있는데 색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을에서 유일하게 한 남자가 마을의 모든 기억을 책임지며 살아가요. 그 기억 전달자가 후계자를 뽑아 자신의 기억을 전달해주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후계자인 아이는 색깔을 보고 노래 소리를 듣고 감정을 느끼죠. 독서는 그것과 같아요. 아이들이 책을 읽고 책을 좋아하게 돼서 세상의 색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오, 멋진데요. 저는 그저 많은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한 기억을 공유하고 그 느낌을 오래 간직하길 권하고 싶어요.

준서가 추천하는 책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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