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디 두아’는 가짜일지라도 명품이 되고 싶었던 여자 사라 킴(신혜선)과 그의 욕망을 추적하는 남자 무경(이준혁)의 이야기를 그린다. 신혜선은 이름과 나이, 학력 등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사라 킴으로 분해 한 인물이 지닌 다층적인 얼굴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정점에 다다를수록 공허해지는 인물의 감정을 몰입도 있게 그려내며 극에 긴장감을 더했다.
신혜선의 놀라운 열연에 힘입은 이 작품은 지난 2월, 공개 하루 만에 ‘대한민국 톱 10’ 1위에 오르며 흥행 신호탄을 쐈다. 이어서 한국을 비롯해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멕시코, 콜롬비아,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 총 33개국에서도 1위에 올랐다. 이탈리아, 프랑스, 튀르키예 등을 포함한 65개국에서도 시청 수 상위 10위 안에 진입하며 현재까지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2월 20일 서울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혜선은 “‘레이디 두아’는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고수해왔던 연기 방식을 완전히 깬 작품이기 때문. 신혜선은 “철저한 계산하에 연기하던 평소의 루틴을 버렸다”며 “각 페르소나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모습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사라 킴 진짜 이름, 저도 몰랐어요”
작품 선택의 기준이 있나요.스스로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야 해요. 연기해야 할 인물에 마음이 꽂혀야 하는 거죠. 사실 처음 ‘레이디 두아’ 대본을 봤을 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스토리가 굉장히 까다롭고, 연기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대본을 읽다 보니 흘러가는 사건 자체가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한 여성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살인 사건인데, 글을 읽는 내내 ‘죽은 여자는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작품의 탄탄한 전개와 시나리오가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이렇게 독특하고 미스터리한 캐릭터를 좋아해요. 그런데 사라 킴은 재미보다는 힘든 느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이 인물이 그려내는 페르소나들을 각각 미세하게, 다르면서도 하나의 인물처럼 표현해야 했거든요. 이러한 부분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려면 ‘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과하거나 단절되지 않은 차분한 톤을 유지해야 여러 페르소나를 하나의 결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다행히 미술팀에서 톤 & 매너를 잘 잡아주셨고, 저는 그 방향에 맞춰서 수월하게 나아갔던 것 같아요.
매회 달라지는 화려한 스타일링이 화제예요.
모두 스태프 덕분이에요. 좋은 반응을 보고 분장팀 실장님이 매일 신나서 메시지를 보내세요(웃음). 개인적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을 또 언제 해볼 수 있을까 싶고요. 캐릭터의 특징이 담긴 꾸밈이 잘 표현돼 더 예쁘게 나온 것 같아요. 사라 킴은 그간 맡은 역할 중 가장 화려한 비주얼을 지녔어요. 덕분에 예쁜 의상을 많이 입게 됐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웃음). 연기의 흐름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됐고요.
스타일링에 직접 의견을 내기도 했나요.
초반에는 의상팀에 제가 해보고 싶은 것들에 관해 이야기했었어요. 사라 킴의 헤어스타일인 긴 히피 펌도 제 아이디어예요. 평소 추구미라서 의상팀에 꼭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거든요. 그 외의 스타일은 피팅 과정을 거쳐 의상팀과 함께 의논하며 결정했어요.
가장 애착하는 페르소나가 있다면요.
어렵네요(웃음). 극에 등장하는 페르소나들은 모두 어딘가 삐뚤어져 있거든요. 그래도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목가희요.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올바른 길로 갔을 것 같아요. ‘레이디 두아’를 ‘진짜가 되고 싶었던 가짜 이야기’라고 하잖아요. 저는 이 말이 목가희를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목가희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이 됐을 것 같거든요. 목가희는 누군가에게 도움받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위치이고 싶은 욕망이 커요. 약간 뒤틀린 선민의식이 있는 거죠. 현실은 가난한데 스스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그래서인지 목가희가 집착했던 가방도 단순한 명품이 아닌, 그의 환경을 상징하는 오브제처럼 느껴졌어요.
일부에서는 사라 킴의 브랜드인 ‘부두아’에서 출시한 명품 가방이 조잡하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어요.
부두아는 사라 킴이라는 인물을 투영해 만들어낸 브랜드예요. 화려한 것이 익숙한 사라 킴의 모습을 부두아 가방에 접목한 거죠. 사라 킴은 실속이나 본질보다는 반짝이는 것들을 얼기설기 덧붙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에요. 이러한 성향을 부두아에 그대로 반영시킨 것 같아요. 또 사라 킴이 김은재 시절에 잡지를 오려서 가방을 디자인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도 큰 보석이나 반짝이는 것만 얼기설기 붙이죠. 저는 그 모습이 사라 킴의 자화상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미술팀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고려해서 부두아의 가방을 디자인한 것 같아요. 만약 사라 킴이 실제 브랜드를 만든다면 이런 가방이 출시되지 않았을까요?
만약 사라 킴이 진짜 태어났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봤나요.
오히려 봉사하고 베푸는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사라 킴은 가진 자의 여유를 누리고, 시혜를 베푸는 인생을 원했을 거예요. 목가희 시절에 위기에 빠진 그를 돕기 위해 동료 직원들이 돈을 모아주자 기분 나빠하는 모습만 봐도 짐작할 수 있어요. 스스로 도움을 받는 위치에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어긋난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거든요.
평소 명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지금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20대 때만 해도 명품에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땐 살 수 없는 형편이라서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명품이 지닌 희소성과 장인 정신을 존중해요. 하지만 명품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삐뚤어진 마음 같거든요.
사라 킴의 진짜 이름이 ‘미정’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사실 저도 미정으로 불릴지 몰랐어요(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니 미정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잖아요. 어떻게 보면 극의 주제를 관통하는 이름 같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신혜선은 여러 페르소나를 가진 사라 킴으로 분해 각 인물들의 다층적인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친척 오빠 같은 이준혁, 내적 친밀감 굉장했어요”
배우끼리 타임라인이나 사라 킴의 진짜 이름에 대해 공유한 적이 있나요.타임라인을 분석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분들도 있다고 하던데, 사실 저희도 헷갈렸어요(웃음). 진짜 이름 역시 대본에 없었고요. 형사 무경이 마지막 질문으로 “이름이 뭐냐?”고 물을 때 사라 킴은 “없어요”라고 하잖아요. 이름이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데 중요한 장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비밀의 숲’ 이후 8년 만에 다시 만난 이준혁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제가 정말 많이 의지했어요. 이준혁 선배님과의 호흡이 중요했거든요. 이전까지는 스스로 연기를 잘 만들어나가는 게 우선이었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현장에서 대사를 주고받는 그 자체가 중요해서 더더욱 선배님께 의지하며 맞춰나갔던 것 같아요. 드라마를 보면서도 ‘무경 역을 준혁 선배님이 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겠구나’ 싶었죠. 대본을 보며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신들도 선배님과 호흡을 맞추면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사실 ‘비밀의 숲’에서는 선배님과 거의 대사를 주고받지 않았어요. 기억에 남는 건 목이 졸리는 신 정도(웃음)? 그때도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무작정 선배님 대기실을 찾아가 고민 상담을 한 적도 있었어요. 친척 오빠 같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레이디 두아’를 통해 다시 합을 맞춰보니 ‘그간 정말 잘 걸어오셨구나’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후배 주제에 참 마음이 놓였습니다(웃음).
실제 혜선 씨는 사라 킴과 얼마나 닮았나요.
저 역시 모순덩어리예요. 싫으면서도 좋고, 좋으면서도 싫은 모순의 감정을 늘 품고 살죠. 특히 사춘기 때 그런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 후에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극 중 분량이 많아졌으면 했고, 주인공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고요. 하지만 실제 생활은 사라 킴과는 정반대예요. 가방은 무조건 편한 게 최고라고 생각해서 보부상 스타일을 메고 다니거든요. 명품 가방에도 온갖 잡동사니를 가득 넣어 막 다루는 편이고요.
대중에겐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해요.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바탕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저 일이 재미있어요. 일상을 지내는 것보다 연기하는 게 훨씬 즐겁거든요. 연차를 거듭하며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지만, 스스로 느끼는 연기에 대한 재미와 에너지가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시청자들께서 그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고요.
혜선 씨에게 ‘레이디 두아’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요.
‘새로운 경험을 하고, 루틴을 깨준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레이디 두아’는 나름 큰 도전이자 경험이었어요. 연기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이 다른 작품과 달랐거든요. 이전까진 연기의 방식과 타이밍을 완벽하고 확실하게 맞추고 들어갔어요. 하지만 ‘레이디 두아’를 촬영할 때는 이러한 루틴을 완전히 깨트렸어요. 스스로를 풀어놓은 거죠. 개인적으로도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요.
저는 다양한 캐릭터를 접해보고 싶어요. 제가 해온 대부분의 역할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었어요. 이로 인해 다양한 캐릭터를 깊이 있게 경험해봤죠. 사실 연기를 더욱 풍부하게 하려면 중심에서 극을 끌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왔고요. 그런데 요즘은 마음이 조금 달라졌어요. 꼭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매력이 있는 캐릭터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잠깐 등장하고 빠지는 인물이라도 제가 해보지 못한 결을 지녔다면 어떤 역할이든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차기작도 궁금해요.
곧 드라마 ‘은밀한 감사’로 인사드릴 것 같아요. 그 후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24분의 1 로맨스’ 촬영에 들어가고요. 두 작품 모두 밝은 캐릭터라 ‘레이디 두아’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듯해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레이디두아 #신혜선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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