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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foodie

집밥으로 시작하는 금자 씨의 인생 2막

글 이미주

입력 2020.07.10 13:15:28

60세까지는 가족들 잘 먹이려고 매끼 따끈한 밥을 지었고, 그 이후에는 자신을 찾기 위해 다시 밥을 짓기 시작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 금자 씨 앞에선 노랫말에 박제된 관용구가 아니었다.

홍제동 골목의 수상한 밥집

홍제동 문화촌의 조용한 골목 안, 오래된 상가 사이로 수상한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새하얀 벽면에 여닫이 나무 문과 반투명 유리창이 굳게 닫혀 있고 간판조차 없어 뭐하는 곳인지 쉬이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이 열리면 신비스러운 외관과 달리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구수한 밥 냄새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고, 나무 선반에 정갈하게 놓인 우리나라 전통 식기와 어디서 본 듯한 정겨운 소품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작년 여름 처음 문을 연 금자씨부엌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원 테이블 팝업 레스토랑이다. 식당 주인 장금자 씨가 제철 채소를 사용해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으로 맛을 낸 집밥을 선보인다. 

갓 지은 냄비 밥과 된장찌개, 우엉과 두부를 활용한 밑반찬, 제철 재료로 만든 일품 반찬이 반상에 담겨 제공된다. 플레이팅이 화려한 것도, 메뉴가 독창적인 것도 아니지만, 내 가족을 위한 밥을 짓듯 정성을 다한 금자 씨의 밥상엔 깊은 여운이 있다. 이토록 평범한 집밥을 먹기 위해 기꺼이 몇 달을 기다리고 부산 등 지방에서도 망설임 없이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맛있는 밥은 흔해졌지만 오히려 정성 들여 만든 밥은 더 귀해진 것 같아요.” 금자씨부엌의 홍보와 마케팅 담당이자 금자 씨 브랜딩을 맡고 있는 딸 손하빈 씨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검박한 집밥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정성이 깃든 평범한 한 끼가 흔치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서글픈 반증이기도 하다. 


다이닝 공간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항아리들. 금자 씨가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이 들어 있다.

다이닝 공간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항아리들. 금자 씨가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이 들어 있다.

금자씨부엌은 어머니를 브랜드화하는 ‘장금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공유 숙박 플랫폼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하빈 씨는 일찍부터 금자 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여행할 때 팜 투 테이블 프로그램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요리했던 레시피 그대로 방문객들과 함께 파스타를 만들고, 정원에서 나눠 먹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엄마가 생각나더라고요. 엄마도 오랫동안 가족을 위해 요리했고, 텃밭에서 가꾼 유기농 채소와 직접 담근 장으로 정성 가득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어머니를 브랜딩하고 싶다는 딸의 바람은 부모님이 서울과 가까운 양평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조금씩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의 능력이 하나씩 보태지면서 그 실체가 조금씩 드러났다. 먼저 홍제동에서 예술 전시 기획과 출판 관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아들 성익 씨가 중심이 되어 어머니의 아지트가 될 만한 공간을 찾았고, 퇴직 후 취미로 목공을 배운 아버지의 손을 거쳐 지금의 금자씨부엌이 탄생했다. 반평생 남편과 자식의 그림자로 살았던 어머니의 인생 2막을 위한 온 가족의 합동작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금자 씨의 못 말리는 집밥 사랑

어머니에 대한 남매의 기억에는 항상 ‘집밥’이 함께한다. 울산에서 살 때는 서울에서 유학하는 아들딸을 위해 매주 고속버스 택배로 반찬 나르는 것을 거르지 않았고, 양평으로 이사한 후에도 종종 성익 씨의 사무실 직원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물론 요즘도 엄마표 건강 집밥을 토요일 아침마다 자식들 집으로 배달 중이다. 자신의 몸이 조금 고달플지라도 가족의 집밥을 살뜰히 챙기는 이유는 밥심을 믿기 때문이다. 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은 금자 씨 요리의 근간이기도 하다.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여겨, 지금도 몸이 아프면 병원과 약국을 찾는 대신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음식을 해 먹는다. “몸이 약한 편이라 젊었을 때 잔병치레가 많았어요. 아들 또한 저를 닮았는지 어릴 때 자주 아팠고 천식도 심했지요.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몸에 좋다는 재료를 찾아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감기를 달고 살았던 금자 씨의 몸은 웬만한 바이러스는 이길 정도로 강인해졌고, 아들 역시 이전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신선한 제철 식재료와 직접 담근 장, 갓 짜낸 기름으로 조리한 금자씨부엌의 한 상 차림은 계절에 따라 구성이 약간 바뀐다.

신선한 제철 식재료와 직접 담근 장, 갓 짜낸 기름으로 조리한 금자씨부엌의 한 상 차림은 계절에 따라 구성이 약간 바뀐다.

식전 입맛을 돋우는 방울토마토절임.

식전 입맛을 돋우는 방울토마토절임.

좋은 재료와 정성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를 체득하고 나니 집밥 만들기에 더욱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정용 착유기로 기름을 그때그때 짜서 쓰고, 해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그고, 텃밭에서 채소를 직접 가꾸는 등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한 ‘피곤한 삶’도 마다하지 않았다. “삶에서 꼼수를 부리거나 지름길로 가는 것보다 정도를 가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한 끼를 대접하더라도 제대로 정직하게 만드는 것. 삶과 요리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있으니 조금 고단하더라도 천천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그 집 음식 맛을 알려면 장맛부터 봐야 한다고 했다. 금자 씨의 장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웬만한 장인 못지않다. “건강한 음식을 만들수록 장맛에 욕심이 생겼어요. 주변 어르신들께 여쭤보고 소문난 집이 있으면 찾아가서 먹어보고, 계속 만들면서 맛을 연구했어요.” 그렇게 15년간 꾸준히 장에 매진하다 보니 자신만의 레시피도 갖게 됐다. 그리고 장에 대한 자신감은 금자씨부엌의 메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감자, 쪽파 등 최소한의 재료만 넣고 된장국을 끓이는데도 그 맛의 깊이는 여느 식당과 비교 불가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금자씨부엌이 만든 기적들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금자씨부엌은 매일 한 테이블의 손님만 받는다. 음식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하는 금자 씨는 온전히 그 한 팀을 위해 상을 차린다. 금자씨부엌의 주방과 다이닝 공간 사이에는 비치는 원단으로 만든 커튼을 걸어 주인과 손님이 부담스럽지 않게 서로를 살필 수 있게 했다. 배달 음식과 숨겨진 공간에서 조리된 음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천천히 조리되어 나오는 ‘금자 씨표’ 음식이 큰 위안과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주방을 오픈한 것이다. 다행이 손님들은 기획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했고, 금자 씨의 손맛을 경험한 사람들은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식사하는 과정을 즐길 줄 알게 됐다. 누군가는 그녀의 집밥을 먹으며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렸고, 누군가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난다고도 했다. “최근에 모녀가 함께 방문했는데, 아버지가 급성 백혈병에 걸려 병원에 계시니 어머니가 밥을 제대로 드시지 못해 모시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금자 씨의 소박한 한 끼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치유의 힘이 담겨 있어 ‘엄마의 약손’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있다. 


금자씨부엌 안쪽에 마련된 다이닝 공간. 커튼 사이로 금자 씨가 요리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금자씨부엌 안쪽에 마련된 다이닝 공간. 커튼 사이로 금자 씨가 요리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금자씨부엌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소셜 다이닝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금자 씨와 하빈 씨의 모녀 협업 프로젝트로, ‘건강클럽’이라는 큰 주제 아래 건강 관련된 책을 읽고 건강한 밥을 나누는 ‘북 클럽’과, 시니어들의 취향과 꿈을 나누는 ‘장금자 친구 클럽’을 2~3차례 진행했다. “장금자라는 이 시대의 어머니를 매개체로 개인이 꿈을 찾아가고 심리적 치유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저와 엄마의 공동 목표예요.” 특히 장금자 친구 클럽은 제2의, 제3의 장금자를 찾는 것에 의의를 둔다. “어머니 세대에는 무언가 자발적으로 일을 벌이는 게 쉽지 않았잖아요. 어머니가 금자씨부엌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한 발짝 나아간 것처럼, 재주 많고 꿈 많은 이 시대 어머니들이 장금자 친구 클럽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힘을 북돋아주면 좋겠습니다.” 

‘열정에 늙음이 없다’라는 말을 신조로 사는 그녀는 지치거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을 때마다 미국 민속 화가 안나 매리 로버트슨 모제스를 떠올린다.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천6백여 점의 작품을 남긴 그녀를 롤모델 삼아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삶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던 모제스의 당부를 되새기며, 금자 씨는 20대보다 더욱 찬란할 70대를 담담하게 준비하고 있다.

사진 김도균



여성동아 2020년 7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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