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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연기 괴물’의 탄생 전여빈

글 두경아

입력 2021.05.04 11:52:43

동양적이면서 신비한 매력을 가진 전여빈은 맡는 역할에 따라 매번 180도 다른 얼굴로 변신한다. 뉴 페이스에 목말랐던 영화계에 단비 같은 존재로 떠오른 전여빈을 만났다.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 오가며 흥행 홈런을 날리고 있으니, 이쯤 되면 대세라 할만하다. 배우 전여빈(32)의 이야기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빈센조’ 최종회는 전국 기준 시청률 14.6%로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 동시간 1위를 차지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개봉된 영화 ‘낙원의 밤’은 넷플릭스 내 ‘TOP10 오늘 영화 순위’ 2위(4월 29일 기준)에 올랐다. 주목할 점은 전여빈이 두 작품에서 극과 극의 캐릭터를 소화해냈다는 점이다.같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다.

‘낙원의 밤’은 조직의 타깃이 된 태구(엄태구)와 삶의 끝에 서 있는 재연(전여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아름다운 낙원 제주도를 배경으로 조폭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아이러니하게 그려냈다. 전여빈이 연기한 재연은 조직폭력배에게 가족들을 모두 잃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염세적인 인물이다. ‘빈센조’에서 연기한 유능하고 파이팅 넘치는 홍차영 변호사와는 캐릭터부터 겉모습까지 완전히 다르다. 홍차영이 풀 메이크업에 헤어스타일과 의상까지 완벽하게 세팅했다면, 재연은 후줄근한 후드 티에 거친 피부, 주근깨로 가득한 얼굴이다. 감정 표현도 마찬가지다. 홍차영이 만화 속 캐릭터처럼 얼굴의 모든 근육과 팔다리를 다 쓰며 분 단위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인물이라면, 재연은 말할 때 입술을 조금 움직이는 것 외에는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대신 재연은 차갑고 텅 빈 눈 속에 분노와 그리움, 안타까움, 호기심, 사랑 등 모든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꾹꾹 눌러온 감정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듯 강렬한 액션으로 표현해 낸다.

사실 전여빈은 이제껏 홍차영보다는 재연처럼 내면 연기에 강한 배우였다. 지금은 홍차영에 제대로 안착해 호평을 받고 있으나, ‘빈센조’ 초반 과장된 연기가 어색하다는 평이 나왔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전여빈에게는 홍차영이 새로운 도전이었던 셈이다.

2015년 영화 ‘간신’ 속 궁녀 중 한 명으로 데뷔한 그녀는 단역과 조연을 거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18년 영화 ‘죄 많은 소녀’ 주연을 맡아 대종상, 부일영화상, 춘사영화제 등에서 신인 여우상을 휩쓸며 단숨에 충무로의 샛별로 떠올랐다. 이후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영화 ‘해치지 않아’에서 주연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전여빈과의 인터뷰는 영화 ‘낙원의 밤’이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지 거의 보름 만에 이루어졌다. 대개 인터뷰는 영화 개봉 직전 진행되기 마련인데, 막바지에 접어든 ‘빈센조’ 촬영 일정이 빠듯해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여빈은 인터뷰에 앞서 “‘빈센조’ 마지막 촬영을 방금 마치고 왔다”면서 “요즘 ‘빈센조’로 며칠 밤을 새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서툴고 미숙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에는 밤을 샜다고는 느끼지 못할 정도의 생기가 느껴졌다.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일까.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달뜬 얼굴이기도 했다.



‘낙원의 밤’을 선택한 이유와, ‘재연’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는지 궁금해요.

재연의 성격과 행동은 영화 대부분에 해당하는 ‘기승전’과 마지막 변곡점을 맞이하는 ‘결’에서 완전히 달라져요. 그 부분이 새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와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됐어요. 저는 재연을 성별에 국한하지 않고 하나의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재연은 세상 어떤 것에도 초연하고 바라는 것도 없지만, 삶의 유일한 목표인 ‘복수’를 위해 사격 연습을 열심히 해온 인물이에요. 그래서 총격 신에서 만큼은 전문 사격선수 같은 포즈는 아니지만, (총기 밀매상)삼촌에게 배운 실력을 잘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겉으로는 소녀 같지만, 눈빛은 이 세상 누구보다 매섭고 사격 실력은 아주 뛰어난 캐릭터로 표현하고 싶었죠.

영화의 결말을 책임지는 강렬한 캐릭터인 만큼 어깨가 무거웠을 것 같아요.

책임감마저도 행복했다고 해야 할까요. ‘이렇게 멋있는 캐릭터를 만났으니, 한 번 잘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배우가 되고 싶었고,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던지라 매 작품을 만나는 그 시간, 순간이 무척 소중해요. 그래서 영화를 찍으면서 막연한 무게감은 있었지만 ‘이번에도 재연으로 후회 없이 잘 살아봐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런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보내도 작품이 나오면 늘 후회하게 되거든요. ‘아 나는 왜 저거밖에 안 됐을까, 저게 최선이었을까’하고요.

‘낙원의 밤’ 완성본을 처음 봤을 때 소감은 어땠나요.

넷플릭스에서 선보이기 며칠 전에 봤어요. 정말 마음에 들었고, 매 장면마다 제가 어떤 감정으로 찍었는지 다 기억이 나면서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집중하고 봐서 영화가 끝나고 일어나는데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어요. 특히 마지막 총격 신을 볼 때는 그 당시 상태를 몸이 기억해서인지 정말 긴장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영화를 본 뒤 박훈정 감독님께 “재연으로 살도록 캐스팅해주셔서 감사했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인사를 전했죠. 선배님들의 빛나는 연기와 스태프들의 노고가 너무 많이 묻어나서 모두에게 인사도 돌렸고요.

영화 속에서 총격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감독님은 제대로 된 총격 자세를 배우길 원치 않으셨어요. 여리고 여린 여성이 복수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어색하지만 아주 정확하고 놀라운 총격 실력을 보여준다는 설정이었거든요. 대신 진짜 총을 쏴야했기 때문에 사격 연습장에서 연습했고, 재연이가 항상 총과 함께했던 캐릭터라 총을 계속 갖고 다녔어요.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총으로 장난치는 액션도 만들어놨고요. 총기를 다루는 영화다 보니 촬영장에 총기 실장님이 계셨는데 그분께 자세를 체크받긴 했어요. 또 박훈정 감독님의 전작 ‘마녀’ 주인공이 총을 잘 사용하는 캐릭터라, 감독님께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무엇보다 총알이 발사될 때 반동이 엄청난데, 그걸 이겨내기 위해 근력을 키웠어요. 재연이 총기를 익숙하게 다루는 인물로 보여야 했거든요.

최근 몇 년 사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대세 배우’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어요. 인기를 실감하나요.

사실 8개월 정도 ‘빈센조’ 촬영을 하느라 주변 반응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배우라는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그러다 친구나 가족들이 영화나 드라마 잘 봤다는 말을 전할 때면 실감이 나요. 일례로 해외에 사는 친구가 “너 넷플릭스에 나오더라? 재밌어”라는 말을 해줬을 때 ‘이제는 배우가 돼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구나!’ 느껴지더라고요. 꿈꾸는 것들이 현실이 되고 어렵게 온 행복이 소중하다는 걸 아니까, ‘처음 꿈꾸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한걸음씩 나아가자. 조금이라도 조금씩 나아져보자’하고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배우는 정점이라는 것이 없고 항상 현재진행형인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열심히 해야 하고,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죠.

전여빈 씨의 초심은 어떤 건지 궁금하네요.

감사함과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마음이에요. 가끔 일을 하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을 때면, 저도 사람인지라 열심과 정성의 한계가 100이라면, 70 정도만 할 때가 있어요. 나중에 보면, ‘왜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넘어갔지?’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걸 다잡아 주는 건 감사의 마음인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강요하고 싶지 않고, 저 스스로에게 생각하는 거죠. 가끔은 ‘여빈아! 힘들 때 쉬어가도 돼. 감사하니까 우리 좀 더 힘내보자’ 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싶을 때도 있고요.

블랙 코미디부터 누아르까지 다양한 장르에 출연해왔는데 어떤 매력들이 있나요.

모든 장르가 각각의 매력이 있기에 하나의 얼굴에 갇히지 않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다양한 삶을 살고 싶었고 그걸 동경해서 배우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모든 장르가 다 재미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어렵고, 또 그런 어려움까지도 행복하고 재미있어요. 늘 다시 0에서 시작하지만, 제가 맡았던 캐릭터가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질 때도 있어요.‘이제 시작이니까 여행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배역과 작품을 만나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이 여정에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좀 더 경력이 쌓이면 그만큼 어려운 점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선배들이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하시는데, 왜 그런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엄태구 씨가 전여빈 씨에 대해 ‘연기 괴물’이라고 표현했어요. 전여빈 씨는 엄태구 씨를 어떤 배우로 표현하고 싶은가요.

진짜 연기 괴물은 엄태구 선배죠. 다들 느끼시듯, 선배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훌륭한 배우에요. 자신의 모든 걸 내어서 연기하고,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집중하고, 이 순간을 갖고 싶어서 안간힘을 토해내는 배우라고 느꼈어요. 선배의 연기를 볼 때마다 부끄러웠어요. ‘저 사람은 저 정도의 노력을 할 수 있구나. 나도 여기서 오케이 하지 말자. 더 하자’라고 생각했죠. 만일 노력의 임계치가 10이고 보통 5를 하고 노력했다고 친다면, 엄 선배는 13을 하는 것 같았어요.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할 때가 많아요.

이 작품에서 라이벌 조직의 우두머리 마 이사 역을 맡은 차승원 씨의 존재감도 엄청난데요, 현장에서는 어땠나요.

중국집에서 선배님들(차승원, 박호산, 이문식)이 태구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는 신을 찍는데,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구경하러 갔는데, 모니터링하면서 정말 감탄했답니다. 그 장면에는 쫀득쫀득한 긴장감과 대사가 있고, 서로 호흡으로 살려주는 빛나는 재치의 순간들이 가득해요. 차 선배님은 애드리브까지도 캐릭터의 색깔을 잘 살려서 연기하시더라고요. ‘내가 시나리오에서 봤던 그 대사들 맞아?’할 정도였지요. 저도 차 선배님처럼 재치와 순발력이 넘치는 유연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차승원 선배님은 현장에서 의상이나 헤어를 굉장히 꼼꼼하게 체크하세요. 동시에 장난기도 많으신데, 엄태구 선배나 저나 집중하느라 긴장하고 있다가도 선배님이 오시면 긴장이 풀리면서 현장 분위기가 유쾌하게 전환됐어요. 요리 이야기도 자주 해주셨는데, 하루는 비타민에 대해 말씀해주시다 그 다음 번 촬영 날 복주머니에 비타민을 넣어 선물해주시기도 했어요. 무척 감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나요.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서 힘이 막 솟아나나 봐요(웃음).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고,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제 안에 있고,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많이 얻어요.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느끼다보면 저도 막 채워지는 기분이거든요. 이런 시간들이 소중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도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영화를 찍으며 가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이번 영화가 아니더라도 배우 생활을 하는데 있어 가족들의 사랑은 늘 도움이 돼요. 가족에게 받은 사랑 자체가 무한한 원동력 중 하나랍니다. 또 격려가 담긴 사랑의 표현부터 쓴 조언까지 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반성이 되고 마음도 다잡곤 해요.

‘낙원의 밤’속 재연과는 정반대인, 밝고 씩씩하고 코믹한 ‘빈센조’의 홍차영을 연기하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네요.

홍차영은 이제껏 제가 맡아 왔던 캐릭터들보다 훨씬 범위가 넓고, 그동안 쓰지 못했던 리듬과 호흡을 쓰게 만드는 친구였어요. 제게는 큰 도전이었죠. 홍차영으로 살면서 정말 많이 밝아졌어요. 초반에는 무척 쑥스러웠지만 지금은 차영이에게 많이 물들었어요. ‘빈센조’ 촬영장이 진짜 즐겁고 재밌거든요. 현장을 지휘하신 김희원 PD님이 쾌활하고 발랄하신데, 그런 감독님께도 영감을 많이 얻었죠.

‘빈센조’에서는 특히 송중기 씨와의 연기 합이 너무 좋아보였어요. 현장에서 송중기 씨와의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송중기 선배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많아요. ‘나중에 방송 보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늘 배려하고 격려해주셨어요. 판을 넓혀주는 선배라 저도 홍차영으로서 두려움 없이 달려갈 수 있던 거 같아요. 그런 케미를 잘 담아준 송중기 선배께 감사합니다.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꼽으라면.

매력 하나를 어필하라고 한다면…. 저는 배우로서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갇혀 있지 않은 이미지라는 게 아주 큰 장점이고, 무한동력이 되어주는 ‘열정 만수르’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으며, 연기를 너무 사랑해요. 아마 모든 배우나 혹은 배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다 저 같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저만의 매력이라고 하긴 어렵겠네요(웃음).

전여빈 씨에게 ‘낙원’은 어디인가요.

제게 낙원이라는 건 그냥 지금이에요. 지금을 잘 살아야죠!

사진제공 넷플릭스



여성동아 2021년 6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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