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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이 배우 이정길 & 딸 이자윤

글 이현준 기자

입력 2021.05.03 10:30:02

배우 외길 인생 56년의 이정길은 언제나 자상한 아버지였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은 아버지가 준 사랑만큼만 자녀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마주하는 눈빛만으로도 지극한 사랑이 느껴지는 이들 부녀를 만났다.


배우 이정길(77)은 한국 방송계의 살아 있는 역사다. 1965년 KBS 공채 탤런트 5기로 데뷔, 56년간 배우의 길을 걸으며 드라마 1백40여 편, 영화 16편, 연극 70여 편에 출연했다. 젊은 시절에는 멜로의 제왕으로 군림했으며 중년에 접어들어선 특유의 지적이고 중후한 이미지로 기업 회장, 대통령, 국회의원 등 무게감 있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때문에 ‘회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숱한 톱스타들의 아버지 역을 맡아 다양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자제해왔던 그는 지난해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처음으로 가족을 공개했다. 해당 방송에서 이정길은 미국에 있는 아들 내외, 손주들과 살갑게 통화하고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인 딸 이자윤(46) 씨의 연주 현장을 직접 찾아 응원하는 등 지극한 애정을 보였다.

지난 4월 2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선 이자윤 씨의 바이올린 독주회가 열렸다. 이자윤 씨는 서울예고 2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대학인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The New England Conservatory)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해 현재 서울로얄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 한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멤버 등 왕성한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또 경희대와 중앙대 음대, 선화예중, 서울예고 등에서 강의해왔으며 올해 3월부턴 국민대 예술대학 음악과 관현악부 겸임교수로 임용돼 후학을 양성 중이다.

연주회 직전 만난 이정길은 조금 들뜬 듯 보였다. 이날은 위엄 있는 ‘회장님’이 아닌, 딸의 연주회를 맞이한 여느 아버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데서는 지극한 부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응원에 힘입어 이자윤 씨는 1시간 30분가량의 연주회를 훌륭하게 마쳤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정길은 비로소 안도하며 연주를 마친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큰소리 한번 낸 적 없는 아버지

방송가에서 이정길은 자녀들을 휼륭하게 키워낸 것으로 이미 유명하다. 배우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성공을 거둔 이정길의 비결은 뭘까. 4월 15일 이정길 부녀를 만나 인터뷰했다. 둘은 틈이 날 때마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다정했다. 이정길은 인터뷰 내내 딸의 옷매무새와 머리를 다듬어주곤 했다. 또 “딸은 어릴 때부터 청중을 사로잡는 여유로움이 있어서 예사롭지 않았다”며 딸 자랑도 잊지 않는 모습이 영락없는 ‘딸 바보’ 같았다. 이자윤 씨도 “원래 서울에 살았지만 아버지와 가까이서 지내고 싶어 친정이 있는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정길 선생님이 연주회를 찾은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원래도 아버지가 연주회 때 방문하는 편인가요.

네. 매번 일찍 오셔서 리허설을 지켜보시고 모니터링도 잊지 않으세요. 아버지가 연극을 하셔서 무대 경험이 많으시니까 객관적으로 포인트를 잘 짚어주시죠. 2020년엔 제가 속해 있는 오케스트라가 호국보훈음악회에서 베토벤의 ‘에그몬트’ 전곡을 연주했었는데, 거기서 에그몬트 백작 역할로 내레이션도 해주셨어요. 아버지와 한 무대에 함께 서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요. 정말 기뻤죠. 아버지가 방문해주시면 연주할 때 더욱 힘이 나요.

4월 2일 연주회 땐 시작 10분 후 바이올린에 문제가 생겨 연주가 멈추는 해프닝이 있었다. 하지만 이자윤 씨는 의연하게 대처, 연주를 이어가며 큰 혼란 없이 상황을 넘겼다.

연주회 초반에 잠깐 문제가 생겼잖아요. 무슨 일이었던 건가요.

이자윤 바이올린의 음정을 조율하는 부분을 ‘페그(Peg)’이라고 하는데, 그게 완전히 풀려버렸어요. 악기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데, 강한 조명을 받아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연주를 하며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속으론 정말 당황스러웠어요(웃음). 그래도 잘 마무리돼 다행이에요.

이정길 나도 지금껏 딸의 연주회를 많이 봐왔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딸이 어떻게 상황을 수습해나갈지 걱정했는데, 잘 대처했던 것 같아요(웃음).

아들은 대학 교수, 딸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됐어요. 방송가에서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걸로 유명한데, 비결이 있다면.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가 가장 중요했어요. 저부터, 지금보다 문화예술계가 척박하던 시절임에도 연기자의 길을 선택했으니까요. 연극 70여 편을 했는데, 개런티를 받은 건 몇 번 안 될 거예요(웃음). 돈을 많이 벌기보단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하길 바랐죠. 물론 음악을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딸에게 바이올린을 시킨 건 나와 아내죠. 딸이 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어릴 때니까 재능이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본인이 계속하고 싶어 했으니(웃음). 본인이 행복하게 일에 열정 갖고 살면 된 것이고, 지금도 딸에게 딱 한 가지만 물어봐요. “너 행복하니?”라고. 부모는 그저 자녀가 하고자 하는 바를 도와주는 역할인 거죠. 아들딸이 스스로 삶을 잘 극복해나간 것 같아 다행이고요(웃음).

이정길 선생님은 어떤 아버지인가요.

아버지께 혼난 적이 없어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자식들에게 당연히 있었을 텐데, 일로 바쁘신 와중에도 닦달 한번 없이 항상 대화로 해결하셨어요. 조용히 다가오셔서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시곤 했죠. 절대 화를 내거나 강제로 시키지 않으셨어요. 아버지가 주로 회장님, 대통령 같은 높은 사람 역할을 많이 하셔서 사람들에겐 권위적이고 카리스마가 강한 이미지로 각인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친구 같죠. 저희와 눈높이를 맞춰주세요. 맡아오신 역할보다 훨씬 자상해요.

딸이 고등학교 때 홀로 미국 유학을 갔는데, 그땐 걱정이 많이 됐을 것 같아요.

지도교수가 유학을 권유해 결국 보내기론 했지만 부모 입장에선 딸이 너무 어린 나이잖아요.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간다니 너무 걱정됐죠. 딸을 보내고 몇 년간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자윤이는 편했던 것 같아요. 첫 방학 때 한국에 왔는데,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못 알아봤어요. 아내한테 “쟤가 자윤이야?” 그랬다니까(웃음). 부모는 애가 타도 자식 마음은 편하구나 싶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이자윤 씨는 외로움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살이 쪘던 건 마음이 편해서가 아니라 음식이 바뀌어서 그런 거예요(웃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었던 건 사실이에요.한국에 있을 땐 부모님이 모든 걸 지켜보고 함께해주셨는데, 미국에선 쓰는 언어도 다르고 모든 걸 혼자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매일 부모님과 통화를 한 덕분에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예인 부자, 연예인 모녀 등 연예인 가족도 많은데, 딸이 연기를 하고 싶다 했으면 어떠셨을 것 같나요.

딸이 하고 싶다고 했으면 어떻게 말렸겠어요. 저도 어머니 말씀을 안 들었는데, 시켰겠지(웃음). 하지만 고민은 정말 컸을 거예요.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열정으로 밥 세끼 못 먹어가면서 연기에 매달렸는데도 전 이 정도 배우밖에 못 됐는데, 과연 딸이 해낼 수 있을까 싶었겠죠.

아버지를 보며 연기를 하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나요.

오히려 아버지가 배우가 아니셨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TV에 보이는 모습은 화려하고 멋지니 사람들은 동경할 수도 있지만 저는 과정을 봤잖아요. 얼마나 힘들어 보이던지, 전 엄두도 못 냈어요. 다만 고등학교 때 학교 축제가 있었는데, 제가 속한 음악부에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하게 됐어요. 여자 주인공 ‘크리스틴’ 역할을 뽑는데, 한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오디션에서 기쁨, 화남, 슬픔 등 몇 가지 연기를 했어요. 연기는 처음이었는데도 제가 아무 두려움 없이 그걸 하고 있더라고요. 노래 실력도 성악부 친구들보다 한참 뒤떨어져서 기대 안 했지만 뽑혔지 뭐예요. 뮤지컬을 하는 내내 정말 즐거웠어요. ‘내가 아빠 피를 받긴 받았나 보다’ 생각했죠(웃음).

대를 이어 전하는 내리사랑

이자윤 씨는 아버지가 워낙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이정길 씨의 딸인 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을 것 같아요.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아는 사람이 많았죠(웃음). 유학 갔을 때도 학교에 소문이 다 나서 학생들이 구경 오곤 했어요. 사소한 행동도 구설에 오를 수 있다 보니 조심해야 하는 건 분명 있었죠. 그래도 아버지가 멋있는 역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좋은 점이 더 많았어요. 예컨대 음식점에 가면 주인이 저에게 하나라도 더 주곤 했어요. 예쁨을 많이 받았죠(웃음).

요즘 가족이 함께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이정길 선생님은 방송 생활을 오래 하셨지만 가족을 노출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우선 가족들이 미디어에 노출되길 바라는 성향이 아니어서 그 점을 존중했어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은 평생 타인의 시선 속에 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고요. 연예인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즐기는 것들 중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요. 그게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잖아요. 아이들과 놀이공원 한번 못 가줬어요. 또 일에 치여 아이들에게 관심을 많이 못 준 것도 마음에 걸리죠. 아들은 “아버지 주무시는 모습만 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니까(웃음). 미안함이 크죠.

이자윤 씨는 결혼해 한 아이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휴대전화를 가득 채운 아이의 사진에서는 사랑이 묻어났다. 어린 아들은 운동을 무척 좋아하는 활발한 성격이라고.

이자윤 씨는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하며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 있나요.

그럼요. 전 어릴 때 ‘우리 가족같이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저희 집 같은 가정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진 않더라고요. 점점 커가며 우리 가족처럼 사는 게 쉬운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도 많잖아요. 아버지를 보며 가부장적이지 않은, 유머 있고 편안함을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생각했어요. 지금은 제가 원하는 가정을 꾸린 것 같아요(웃음).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해졌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맞아요. 저도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죠.

태어난 지 1년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이정길은 대가족을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정길의 가족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그는 모친과 장모가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두 분을 함께 모시고 살았다. 또 그는 그러한 애정이 자녀가 가족에 대해 갖는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줬다고 했다.

이정길 선생님은 어머니와 장모님을 한집에서 모셨다고 들었어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가족은 제 분신과도 같습니다. 저는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일반적인 가정의 틀 속에 살지 못했어요. 그래서 결혼을 하면 경제력과 상관없이 아이를 많이 낳아 대가족을 이루리라 다짐하곤 했죠. 뜻대론 안 됐지만(웃음). 그래도 자식들이 잘 커줘서 가족이 확장돼 정말 행복합니다. 또 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시느라 힘든 건 없었어요. 오히려 좋은 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자라며 가족에 대한 이해심과 애정이 더욱 커졌거든요. 예컨대 딸이 30대였을 때였는데, 장모님이 돌아가셔서 염을 해야 했어요. 대개 장례식장 관계자들이 그 일을 하잖아요. 하지만 딸은 자신이 직접 시신을 닦으며 장모님을 보내드렸어요. 이런 건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몸에 배지 않으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자녀들도 다 아이를 낳아 손주들이 생겼는데,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시나요.

저는 손주가 생기기 전엔 조부모들이 왜 손자 손녀라면 이성을 잃곤 할까 의아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까 그 마음을 알겠더라고요(웃음). 지금 손주가 각각 열한 살, 아홉 살,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까지 해서 셋 있는데, 정말 놀랄 만큼 하루하루 착실히 성장하는 게 보입니다. 손주들이 벌써 스마트폰을 잘 다뤄서 스스로 많은 정보를 습득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왔던 예전 교육 방식은 설득력이 전혀 없을 겁니다. 물론 아이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인성입니다. 인내력, 근성도 있어야겠지요. 이제 어른은 인성교육에 집중하고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선 조언자 역할만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로서, 아버지가 많은 귀감이 될 것 같아요. 이자윤 씨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나요.

흔히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자녀 사랑은 자신의 부모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특별한 노하우나 철학을 갖기보단 그저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관심을 제 아들에게도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제 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도 하거든요(웃음). 저는 제가 받은 사랑을 잘 돌려주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사진 박해윤 기자



여성동아 2021년 5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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