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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엄마라서 단단하게 견뎌낼 수 있어요” 다시 웃고 싶은 싱글맘, 지연수

글 김지은

입력 2021.04.26 10:30:01

레이싱 모델 출신 방송인 지연수가 유키스의 전 멤버 일라이와의 이혼을 둘러싼 속내를 털어놓았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요즘이 더 행복하다는 그녀의 허심탄회한 이야기.
레이싱 모델 출신 지연수(41)와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전 멤버 일라이. 몇 해 전 KBS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그저 알콩달콩 예쁘게 잘 사는 커플인 줄로만 알았다. 물론 지연수가 남편 일라이보다 열한 살 많다거나, 일라이가 어린 나이에 결혼한 아이돌 그룹 멤버라든가 아이가 생길 때까지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쳤던 점은 충분한 가십거리가 될 법했다. 하지만 혹자들이 비난했던 것처럼 그들이 팬들은 물론 일라이의 소속사와 그룹 멤버들에게까지 혼인신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뒤늦은 결혼식 소식을 SNS를 통해 전했던 건 그다지 큰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혼하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일 뿐 주변인들에게 반드시 양해를 구하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어차피 사랑의 여신이 오래전부터 둘의 편이었던 듯 근사해 보였다.

그런데 그 해사한 얼굴의 지연수가 어느 날 TV에서, 밥상을 앞에 놓고 울고 있었다. 얼마 전 SBS 플러스 ‘강호동의 밥심’에 출연한 그녀가 들려준 결혼생활 이야기는 충격적인 부분이 많았다. 지연수를 직접 만나 이혼을 둘러싼 그간의 이야기와, 아들과 행복을 꿈꾼다는 요즘 일상을 들어보았다.


우리는 쇼윈도 부부였다

지난해 11월 26일 일라이는 SNS 계정을 통해 영어로 지연수와의 이혼 사실을 알려왔다. 그는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힘든 한 해였다”면서 “나는 현재 미국에 있고 마이클(민수)은 엄마와 한국에서 살고 있다. 비록 지금은 마이클을 볼 수 없지만, 가능할 때마다 그를 만나러 갈 거고 그가 필요로 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다”라는 말로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울러 “지난 몇 년 동안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결국 이렇게 끝난 것에 사과드린다”고도 전했다. 그 후 세상의 관심은 자연스레 한국에 남은 지연수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전화로 이혼 통보를 받았어요.”

이제는 더 이상 숨을 곳도, 숨길 것도 없었다.



미국과 한국 이중 국적자였던 일라이는 지난해 유키스 탈퇴 후 7월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당시 그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영주권을 준비하던 지연수는 필요한 서류를 보완하기 위해 아이를 두고 잠시 홀로 한국에 다녀오기로 했고,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남편으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또한 지연수는 방송에서 보여준 그들의 사랑스러운 일상이 거짓이었으며,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쇼윈도 부부 행세를 했다고 밝혔다. 결혼 전 꽤 많은 돈을 모아놓았던 그녀는 남편이 타던 자동차 할부금과 생활비 마련 때문에 신용불량자 신세까지 됐다고 털어놓았다. 결혼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지연수는 아르바이트 등 온갖 궂은일을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 와중에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는 일마저 쉽지 않아졌다. 물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동안 일라이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방송에서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새벽에 학교급식 배송 일을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기껏해야 한두 달을 채우기 힘들었다. 소속사에서 반대하거나 멤버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럼에도 지연수는 이혼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여자로서의 인생은 끝일지 몰라도 아이 아빠로서는 유예기간이 필요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쇼윈도 부부로 살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이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나만 힘들면 모두가 괜찮을 거라 생각했기에 가족들에게조차 제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했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게 제일 후회돼요. 그러다 곪을 대로 곪아 터지고 나면 더 크게 상처 받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던 거죠.”

느닷없는 이혼 통보에 미국에 남겨둔 아이와 생이별을 해야 했던 시간,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충격과 공포는 그녀가 매일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컸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견디지 못해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아파트 난간에 서 있다 자신이 죽으면 가슴 아파할 어머니가 떠올라 차마 뛰어내리지 못하고 통곡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던 지연수에게 다시 실낱같은 삶의 희망이 생긴 건 일라이 측에서 양육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합의이혼을 제안하면서부터였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생사를 넘나들던 그녀였기에, 아이만 되찾을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돈을 빌려 여기저기 점을 보러 다닌 적도 있었어요. 혹여나 방법을 알려줄지 모른다 싶어서요. 그런데 가는 곳마다 다시는 아이를 만날 수 없다더라고요. 딱 한 군데만 빼고서요.”

희망은 어차피 다수결이 아니다. 믿고 싶은 쪽에 모든 것을 거는 것, 그것이 베팅의 법칙 아니던가.

“무척 젊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희한하게도 제가 돈이 없는 것까지 다 알고 있더라고요. 지금 지갑에 가진 돈만 다 내놓으면 굿을 해주겠다기에 친구에게서 빌린 10만원을 모두 드렸는데 진짜로 그 돈만 받고 굿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얼마 후 정말 기적처럼 연락이 왔죠.”

이것저것 따질 여유도 없이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남편 쪽에서 지연수에게 내민 것은 양육권 이양에 따른 합의이혼 각서였다. 각서는 양육비와 위자료에 관한, 지연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 가득했지만 거절할 시 그녀는 먼 타국 땅에서 또다시 한국으로 아이 얼굴조차 만져보지 못한 채 돌아와야 할 판이었다.

지연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 가득한 합의이혼 각서를 받아들고, 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직 지연수와 일라이의 이혼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벽을 쌓아준 사람들

“이제 저는 강해졌어요. 일라이를 만난 걸 후회하지도 않아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민수도 세상에 없는 거잖아요.”

아들 민수(5)를 임신하기 전까지 그녀는 체형이 변하고 살이 찌는 일들이 두려웠다. 몸에 변화가 생기는 건 모델 일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고, 일라이를 만나기 전까지 결혼이나 임신보다 일이 훨씬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그것이 남편과의 사랑 때문이라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그가 그녀를 사랑한 시간은 너무 짧았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탓에 가족과 친구들에게까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남겼다. 지연수의 아버지는 이번 일로 충격을 받아 조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민수를 데리러 미국으로 가는 날, 아버지가 현관을 나서는 저를 보고 90도로 절을 하더라고요.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하면서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제가 얼마나 큰 불효를 했는지를요.”

매일 수면제에 의지해 잠만 자는 딸을 두고 어머니 역시 하루도 머리를 바닥에 대고 잠들지 못했으며, 매일 몇 번씩 딸의 방문을 열어 인기척을 확인해야 했다. 어머니 앞에서 그녀 또한 차마 ‘죽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곁에서 가슴 졸이던 가족들도 ‘죽지 말고 버텨라’ ‘견뎌라’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것은 생과 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일종의 금기어 같은 것이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누군가의 불행에서 자기 위안거리를 찾는다. 누군가의 상처를, 약점을 무기 삼아 사람을 괴롭히는 저열함은 그녀에게도 큰 교훈이 되었다.

“이혼 통보를 받고, 신용불량 상태인 것이 알려지면서 주변 정리가 정말 많이 됐어요. 나에겐 상처고 슬픔인 일이 누군가에는 재밋거리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왜 이혼했어? 나한테만 말해봐.’ 그런 호기심 가득한 상기된 목소리들, 제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온갖 추측성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차라리 다 솔직하게 말하자 싶어졌어요.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이혼은 별것도 아니라고, 편견 같은 건 다 사라지고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정말 오랜 친구로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저를 너무 쉬운 여자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아마 앞으로도 사람들은 저에게 이혼녀 꼬리표를 달아놓고 저울질할 거예요.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죠. 우리 민수도 학교에 들어가면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또한 민수가 감당해야 할 몫일 거고요. 그래도 우린 잘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녀가 손에 무언가를 가득 쥐고 있을 때 너무나도 친절하고 좋던 사람들은 다 떠났다. 지금 지연수의 곁을 지키고 있는 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가장 밑바닥인 그녀의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다.

“가까운 친구들은 제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고 해서 같이 붙잡고 울지 않았어요. 오히려 화를 냈죠. ‘언니한테는 언니 아이가 중요하겠지만 우리한테는 언니가 더 중요해’라면서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제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강제로 밥을 먹이려 찾아왔어요. 이혼 통보를 받고 제가 제정신이 아니란 걸 눈치챈 스타일리스트 친구는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짐을 싸 자기네 집으로 끌고 가기도 했어요. 혼자 두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요. 저희가 오랫동안 쇼윈도 부부로 지내는 걸 아는 기자 친구도 있었는데, 제가 입을 열 때까지 기사를 내기는커녕 어디에도 그런 얘길 하지 않았어요. 생각해보니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네요.”

이혼 후 오랜만에 방송에 얼굴을 비친 그녀는 마음고생을 한 탓에 살은 홀쭉하게 빠졌지만 이전보다 더 화사하고 예쁜 모습이었다. 방송 스케줄이 잡힐 때마다 그의 스타일리스트 친구가 기죽지 말라며 어느 때보다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로 스타일링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미용실 메이크업 담당자는 “기죽지 마. 아무도 언니 못 건드리게 할 거야”라며 세상 무섭게 센 캐릭터인 양 메이크업을 해주었다. 그래서 ‘강호동의 밥심’에 출연한 날은 눈물 콧물 흘리며 아이 이야기와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데, 화사한 핑크 블라우스에는 금단추가 달렸고 눈가에는 펄 아이섀도가 한가득 반짝이는 언밸런스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연수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소식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의사 이경제 원장처럼 선뜻 도움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의 이혼 소식을 전해 들은 이 원장은 아무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급한대로 쓰라며 1백만원을 송금해주기도 했다.

“입금되었다는 문자를 받고선 강남 교보타워 빌딩 앞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어요. 너무 울어서 경비 아저씨들까지 다 쫓아 나오셔서 무슨 일이냐며 달래주셨죠. 저는 정말 열심히 살아서 그 돈도 꼭 갚아드릴 거예요. 그래야 우리 아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될 거고, 힘들 때 도와주신 분들께도 보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요즘 아이가 잠들고 나면 매일 밤 습관처럼 영화 ‘노팅힐’을 틀어놓는다. 일라이와 같이 보지 않은 유일한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


어릴 적 엄마가 숟가락으로 긁어 주던 사과

“‘노팅힐’을 보면서, 10년 전 그 영화를 보던 저를 떠올렸어요.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오랫동안 저와 함께 일했던 후배에게 물어보았어요. 남편을 만나기 훨씬 전의 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요. 그랬더니 ‘장미 향이 나는 사람이었어. 언니가 좋아하는 그 록시땅의 보디로션 냄새’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사실 지금은 너무나도 형편없이 가난해서, 그런 보디로션은 살 수도 없지만 다시 그런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모델 일을 할 때부터 묵묵히 저를 지켜봐주시던 팬들, 항상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 마음을 다 전하지 못했죠. 그리고 저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분들의 응원 메시지에도 일일이 답을 드리진 못하지만 그분들에게 저도 똑같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정말 힘내시라고요.”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 잘되었으면 좋겠노라고. 지연수는 정말로 행복이 간절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진짜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TV를 보고 슬라임 놀이를 하거나 한글과 숫자를 가르치는 시간,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일상, 그런 것들이 이토록 가슴 벅찬 일인 줄 몰랐기에 어느 한순간의 행복도 놓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지금의 행복은 마치 어렸을 적 엄마가 숟가락으로 사과를 긁어 주시던 때, 그 따뜻한 느낌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방송 일이든 홈쇼핑 일이든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도 있다고 강조했다.

“빚을 다 갚고 나면 미용 일을 배우고 싶어요. 사람들은 슬플 때 메이크업이 슬픔을 가려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전 헤어스타일링의 힘이 더 큰 것 같아요. 미용실에서 정성스럽게 머리를 만지고 나온 사람에게서 어떤 불행이나 가난의 느낌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잖아요. 슬프거나 힘든 분들 누구나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들의 머리를 기분 좋게 만져주고 싶어요. 여유가 있다면 봉사 활동도 다니고요. 물론 실력이 굉장해진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저를 찾는 분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제가 받은 것처럼 그분들에게 용기와 응원을 해드리고 싶어요.”

사진 지호영 기자 
헤어 지희(더제이) 메이크업 한솜(더제이) 의상협찬 라마르 셀프포트레이트 자라 스타일리스트 로시



여성동아 2021년 5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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