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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박 하 선

글 두경아

입력 2021.02.19 14:00:31

최근 박하선의 활약이 눈부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지금 얻고 있는 인기와 관심은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기간 중 쌓아온 시간과 경험 덕분이다.
박하선(34)이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 라디오, 예능, 광고 등 출연하는 곳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이며 두루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연기력에 대한 호평 역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방영된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신선한 소재와 내용으로 화제가 됐고, 카카오TV ‘며느라기’는 누적 조회 수 1천7백만을 넘겼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에서는 드라마와는 또 다른 친근한 매력으로 인테리어를 소개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합류한 SBS 라디오 ‘박하선의 씨네타운’은 2월 9일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얼어붙은 극장가에 단비가 되어줄 박하선표 영화 ‘고백’(2월 24일 개봉)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은 7일간 국민 1명당 성금 1천원씩을 모아 1억원을 만들 것을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유괴 사건이 일어난 날, 사라진 아이와 그 아이를 학대한 부모에게 분노한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를 의심하는 경찰, 다시 나타난 아이의 용기 있는 고백을 그린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박하선은 극 중 사회복지사 박오순 역할을 맡았다.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학대의 아픔을 딛고 사회복지사가 된 그는 학대아를 돕지만,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학대 부모들과 자주 트러블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박하선은 이 영화를 통해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 배우상을 수상했다. 일명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목소리가 높은 요즘, 영화 속 박오순이 보여준 아이를 학대하는 어른과 사회를 향한 폭발적인 연기는 많은 공감대를 불러왔다는 평이다. 

2005년 SBS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로 데뷔한 박하선은 ‘동이’ (2010), ‘투윅스’(2013), ‘유혹’(2014), ‘혼술남녀’(2016) 등 사극부터 정통멜로까지 다양한 분야의 드라마에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그동안 대중에게 각인됐던 단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엉뚱한 매력을 선보이며 인기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2017년 배우 류수영과 결혼 후 딸을 낳고 키우면서 작품을 하지 못했고 절망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영화 ‘고백’은 바로 그때 박하선에게 손을 내밀어준 작품이었다. ‘고백’은 ‘Go back(회복하다, 돌아가다)’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데, 이는 아내와 엄마에서 배우로 돌아간 박하선에게도 적용되는 뜻이 아닐까 싶다. 절실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던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다가온 기회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이제는 그 누구보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화 개봉을 앞둔 그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고백’의 어떤 점에 끌려 출연을 결심했나요. 

시나리오 마지막 부분에서 ‘쿵’ 하더라고요. 울림이 있었고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행하다가 투자가 안 돼서 영화가 엎어질 뻔한 적도 있었지만, 꼭 하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2018년 여름에 찍었으니 벌써 2년 정도 지났네요. 영화 개봉 전 정인이 사건이 있었어요. 국민적 관심이 있는 시기에 맞물려 개봉하게 됐는데 그마저도 미안하고, 이로 인한 관심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서 씁쓸합니다. 

영화에서 특히 공감 갔던 장면이 있다면. 

오순이가 엄마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고 우는 장면과, 마지막에 경찰관 김지원(하윤경)이 제게 처음으로 “박오순 씨” 하고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장면요. 엄마와 함께 있는 그 신은 찍으면서 진짜 너무 아팠어요. 오순이가 엄마에게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너무 아프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는데, 트라우마는 본인이 직접 “아프다”고 말할 때 비로소 치유되는 것 같아요. 저도 20대 중후반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부모님께 어릴 때 마음에 담아둔 일을 말하며 “그때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아팠다고!”라고 말하는데, 부모님께서는 “그래서 언제까지 그 시간에 갇혀 있을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했어요. 사실 부모님 탓, 과거 탓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 이후 조금 치유가 됐던 것 같아요. 오순이도 엄마와 이야기하며 트라우마를 깨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아동학대에 관한 영화라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 같아요. 

그동안 이런 영화(아동 문제를 다룬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자극적인 작품이 많더라고요. ‘고백’에는 직접적인 아동학대 장면은 없고, 학대 전과 그 이후 상황만 나와요. 다만 시나리오 볼 때부터 힘들었던 장면이 딱 하나 있었어요. 아이가 먹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 있어서 찍기 전부터 “이건 어떻게 촬영되나요?” 묻기도 했지요. 그런데 다행히 감독님이 아역을 정말 배려해주셔서 촬영할 때는 생각한 것보다 심하진 않았어요. 아이에게 혹시 영향을 줄까 걱정했는데, 그런 부분 전혀 없이 밝게 진행됐고요. 

영화 속에서 아이를 납치했다고 밝힌 범인이, 국민 모두에게 1천원씩 입금받아서 1억원을 만들라고 하는 에피소드가 나와요. 박하선 씨라면 실제로 돈을 입금할 건가요. 

네, 당연히 할 것 같아요. 의도가 순수하지는 않지만 1천원으로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누구나 하지 않을까요. 저는 오히려 그 부분이 영화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더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 매일 뉴스에도 보도되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우리조차도 ‘냄비 근성’이라며 낮춰 봤지만, 그런 강력한 화력이 올라올 수 있는 민족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듯해요. 

영화에서는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무기력한 사람들이 나와요. 오순이는 그들과 극도로 대비되는 캐릭터인데, 어떤 식으로 이해했는지 궁금해요. 

오순이가 어릴 때 가정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 행동이 과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요. 자기에게 닥쳤던 일들이 되풀이되는 게 싫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사실 현실에서는 제도적인 문제가 크다고 봐요. 동생이 자폐가 있어서 집을 나갈 때가 종종 있었어요. 그럴 때는 초기 대처가 무척 중요한데, 제 동생을 찾으러 다니면서 고마운 분들도 많았지만 제도적인 시스템 문제, 무관심 같은 걸 많이 느꼈어요. 현실이 이렇다 보니 허구라도 오순이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지랖이 넓긴 하지만 그런 국민적인 마음을 대변하는 인물 같아요. 

드라마 ‘산후조리원’부터 이번 영화까지 모성이나 아이와 관련된 작품에 출연하고 있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 연기자로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일단 (아이에게) 고마워요. 출산 후 감수성이 폭발하더라고요. 뉴스 헤드라인만 봐도 눈물이 나고요. 제가 뜬금없이 울면 남편은 “칸에 가겠다” “청룡상 타겠다”고 해요(웃음). 그동안 저는 감성이 메말라 있고 이성적이고 잘 울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연기하면서조차 ‘이게 뭐가 슬퍼’ 하며 공감을 못 할 때도 있었지요. 지금은 딸아이 덕분에 펑펑 울 수 있고 배우로서 감수성도 풍부해졌어요. 배우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의 큰 경험은 자원이고 원동력인 듯해요.

출산 후 첫 작품이고, 아동학대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 더 감정 이입이 됐을 것 같아요.

2년 동안 아이를 키우다 나왔고, 출산 후 첫 복귀작이라 좀 더 간절했고, 연기적으로도 파이팅이 넘칠 때였어요. 힘든 부분은 없었어요. 일이 고팠던 시기고,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생각해서 그런지 촬영하는 동안 누구도 부럽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다른 배우들을 바라보며 질투하고 부러워하고 ‘나는 왜 저기까지 못 갔지’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 전에는 찜찜하게 연기한 날이 있었다면, 이 작품을 촬영할 때만큼은 시원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영화 ‘고백’

영화 ‘고백’

연기를 시원하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시나리오를 통으로 외웠어요. 드라마라면 대본을 5~6부 정도 외우고 들어가는데, ‘고백’ 시나리오는 암기의 수준을 넘어 자다가 일어나서도 대사를 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그 덕분인지 연기가 뭔가 달라지고 현장에서도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다만 딱 하나, 잊었던 상처들을 끄집어내고 그걸 극대화해서 내 상처를 마주 보는 것이 싫고 어려웠어요. 물론 극 중 보라나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요. 

보라 역할을 맡은 감소현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아역 배우는 어른스러운 친구와 아이 같은 친구가 있는데, 소현이는 아이 같고 순수한데 연기를 참 잘했어요. 정말 순수하고 예뻐서 응원하고 싶었답니다. 아이가 혹여나 상처 받지 않도록 촬영 내내 여러 스태프들과 더불어 필요한 부분을 설명해줘 소현이 특유의 밝음을 영화를 찍으면서도 잃지 않았어요. 

딸이 엄마가 배우라는 걸 알고 있나요. 

이제 다섯 살인데 제가 TV에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나랑 안 놀고 왜 저기 있어’ 하는 느낌이었는데, tvN ‘산후조리원’부터는 드라마를 보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자기를 사랑하는지, 극 중 제 아이로 나왔던 사랑이를 사랑하는지 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저건 가짜고 엄마는 너를 사랑하지. 사랑이를 사랑하지는 않아”라고 말하니 안심을 하더라고요. 딸아이가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산후조리원’에 나오는 ‘딱풀이 엄마’를 “까투리 엄마”라고 하고, ‘며느라기’는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는지 ‘동그라미 머리’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최근에 단막극을 찍었는데 극 중 제 아이 이름이 ‘행운’이었어요. 대본 연습을 하고 있는데 행운이가 누군지 묻더라고요. 요즘은 대본 연습을 하면 상대역처럼 맞장구도 쳐줘요. 

부모가 모두 배우니 아이 역시 연기 재능이 있을 듯해요. 

인형 놀이를 하면 대사를 지정해줘요. “이렇게 이야기해봐. 이렇게 말해야지” 하면서 대본을 자꾸 줘요(웃음). 까다로운 작가님이시죠. 퇴근해서도 저는 대사를 해야 한답니다. 

영화 촬영 후 아이를 대할 때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아이에게 화가 나더라도 참게 돼요. 화가 머리끝까지 날 때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요. ‘내가 그래도 뉴스에 나와서 아동학대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아이에게 화를 내서는 안 돼’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요. 그러다 비법을 찾았어요. 아이가 아무리 달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그러면 엄마도 화나!”라고 하고, 아이가 울면 저도 “나도 울 거야!”해요. 그럼 어느 정도 이해하더라고요. 

보통 배우들은 결혼 후 경력 단절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박하선 씨는 오히려 결혼 이후 더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어요. 

저 역시 경력 단절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결혼 후 선택지가 좁아진 상태에서도 최선의 작품을 골랐는데 다행히 잘됐어요. 데뷔 14년 만에 소속사가 바뀌었는데, 이전 회사에서는 저를 너무 아껴서 예능도 못 하게 하는 편이었어요. 이제는 트렌드에 맞춰 이것저것 도전해보려고요. 

결혼 전후 방송 환경이 많이 바뀌었던가요. 

요즘은 드라마 계약 조건들이 좋아지면서 일주일에 4일밖에 촬영을 안 해요. 밤도 새우지 않고요. 그 덕분에 나머지 시간에 예능과 라디오 방송을 병행할 수가 있어요. 드라마 회차가 줄어서 가능해진 환경인 듯한데, 다만 회차가 줄면서 수입도 줄더라고요(웃음). ‘산후조리원’은 길게 하고 싶었는데, 짧게 끝난 감이 있어요. 

지난해부터 그야말로 ‘열일’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배우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끼리 경쟁했다면 이제는 나이나 이미지 모두 상관없더라고요. 사실 결혼을 미뤘던 건, 자리 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기 때문이에요. 아닌 것 같았지만 실제로 출산 후 경력 단절이 있는 걸 보니 정말 자리 잡지 못했던 거더라고요. 지금은 계속 그걸 깨는 과정에 있어요. ‘아니 나는 이것도 할 수 있어, 저것도 할 수 있어’라고요. 

도전해보고 싶은 연기는요. 

장르물도 해보고 싶고,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퀸 연기나 액션에도 도전해보고 싶고요. 드라마   ‘동이’ 끝나고 너무 오래됐는데 사극이나 시대극에도 관심이 가요.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요. 

마음을 울리는 영화고 메시지가 좋으니 꼭 보셨으면 해요. 극장에 가지 못하더라도 IPTV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에서 시청이 가능하니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영화를 찍고 나서 아이를 대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듯, 작품을 본 뒤 뭔가 바뀌는 게 있을 듯해요. 관객들에게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그런 작품이 됐으면 합니다.

사진제공 리틀빅픽처스



여성동아 2021년 3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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