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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밖에 할 줄 몰라 아내에게 늘 미안하죠” 이진복 전 의원·김진희 부부

글 최호열 기자 김지은

입력 2020.10.30 14:43:47

할 줄 아는 건 정치밖에 없는 남자와 그 남자를 위해 남자가 할 줄 모르는 모든 것을 해온 여자가 있다. 누군가 보기엔 희생이고 누군가 보기엔 낭만이지만 이들에겐 그냥 그것이 ‘자신들이 선택한 인생’이었다. 결혼 36년 차, 이진복 전 국회의원과 그의 아내 김진희 씨가 그렇다.

“아휴, 별별 얘기를 다 하게 되네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이 사람과 만나길 참 잘했다’ 싶은 때가 있다. 원래 서로 알던 사이처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편 멀리 묻어둔 채 잊고 살았던 기억이 두서없이 소환되기도 하고, 그 틈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괜스레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진복(63) 전 의원 부부와의 만남이 그랬다. 

“아휴, 여성지랑 인터뷰를 하니 별별 얘기를 다 하게 되네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부부가 가장 많이 한 말이다. 결혼 36년 차, 꽁꽁 숨겨두었던 부부만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니 새삼 수줍기도 하고 ‘우리가 그랬나’ 감회에 젖어들기도 했다.

두 분은 처음에 어떻게 만났나요. 

이진복(이하 이)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 잠시 부산 국제신문에 근무했는데, 그때 아내가 제 선배로 일하고 있었어요. 회사를 다닐 때는 그다지 친했다고 할 수 없었고, 신문사를 그만둔 후로는 따로 연락하지도 않았죠. 그러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선거운동 참모로 일하는 동안 우연히 재회했어요. 반가운 마음에 차 한잔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더라고요. 

이 전 의원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요. 

김진희(이하 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보았지만 이 사람만큼 남자답고 진실되고 박력 있는 분은 만나보지 못했어요. 말이 많은 건 아닌데, 말을 참 잘하더라고요. 그런 점도 매력적이었죠. 



연애를 5년 동안이나 했던데, 연애 기간이 길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저희 집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연애 시절에 남편이 4번이나 인사를 왔는데 부모님께서 그때마다 자리를 피하셨죠. 야당에서 청년부장을 하고 있다 했더니 절대 안 된다며 얼굴도 안 보려 하시더라고요. 

네 번째에 비로소 장인어른께서 오라고 하셨는데, 결혼 허락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안 된다”는 말씀을 하려고 부르신 거였더라고요. 장모님께서 결혼을 허락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가 제가 술을 너무 좋아한다는 거였어요. 장인께서도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평생을 당신이 고생하셨는데 “내 딸도 술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시킬 수는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둘째는 “직업이 너무 별로다. 정치하는 사람은 평생 빌어먹기 딱 좋다”는 말씀이셨어요. 세 번째는 친구를 너무 좋아한다는 게 이유였는데, “친구가 그렇게 좋으면 친구랑 살지 왜 내 딸을 고생시키려 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말씀을 드렸죠. 첫째, 이 순간부터 술을 끊겠다. 둘째, 정치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저는 좋은 정치를 하겠다. 셋째, 친구는 못 끊는다. 친구는 가진 것 없는 제게 전 재산이고 밑천이다. 그것만큼은 장인, 장모께서 양보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죠. 

정말로 술을 끊으셨나요. 

주량이 새우깡 한 봉지만 있으면 소주 두 병을 한자리에서 다 마실 정도였죠. 하지만 그때 이후로는 술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라도 입에 대기만 하는 정도입니다. 


“집을 팔아서라도 당신 하고픈 거 하세요”

30여 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이진복 전 의원 부부. 아내 김진희 씨는 
남편이 정치 활동을 하는 동안 크고 작은 봉사에 앞장서며 내조했다.

30여 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이진복 전 의원 부부. 아내 김진희 씨는 남편이 정치 활동을 하는 동안 크고 작은 봉사에 앞장서며 내조했다.

이진복 전 의원이 월급다운 월급이란 걸 받아본 것은 결혼을 하고도 한참 후인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하면서였다. 진희 씨는 “그때서야 겨우 내 집 마련의 꿈이란 걸 꿔볼 수 있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결혼한 게 1985년이었으니 8년 가까이 이 전 의원은 월급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 쓰고 다녔던 것이다. 9년여를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모시고 살았다기보다는 얹혀살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2002년 남편이 부산 동래구청장 후보로 나섰을 때, “집을 팔아서라도 당신 하고픈 거 하세요”라고 했다던데,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남편은 할 줄 아는 게 정치밖에 없는 분이에요. 그런 사람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죠. 어차피 우리는 시작부터가 무일푼이었고 물욕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어서,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될 바에야 가진 걸 내놓고서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정치하는 남편을 둔 아내로서 힘든 순간은. 

많았죠. 아이 분윳값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데도 이 사람은 전혀 신경을 안 쓰더라고요. 그런저런 일들로 결혼 초엔 섭섭하고 속을 많이 끓였는데,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으니 서럽다고 친정에 하소연할 수도 없고. 그러다 첫아이 돌잔치 때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게 되었어요. 그때는 집에서 손님을 치렀는데, 3일 동안 1백50명이 넘게 찾아오더라고요. 그런데 3일 내내 음식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때 알았죠.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모든 걸 인내하면서 살게 되더군요. 지금은 ‘내가 남편 덕에 이렇게 성숙한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나고 나니 ‘이 남자랑, 이 여자랑 결혼하길 잘했구나’ 생각될 때가 있을 거 같아요. 

남편은 보기보다 잔정이 정말 많은 사람이에요. 신혼 때는 바깥으로만 다니니 서운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는데, 살아보니 알겠더라고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야 행복하다는 걸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도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라고 이야기해요. 

저와 아내는 자석의 N극과 S극 같은 관계입니다. 서로가 가지지 못한 면들을 갖고 있어 더 끌린달까요. 외향적인 저와 달리 아내는 차분하고 말이 없는 편인데, 지나고 보니 그게 정치인의 아내로서도 큰 장점이더라고요. 집사람은 특히 밖에서 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도 꼭 해야 하는 이야기만, “밖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더라” 정도로 아주 신중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정치인 가족으로 사는 것이 좋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늘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고요. 

지난봄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아들과 며칠 동안 한강변을 산책하며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첫날은 제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이튿날은 아들 이야기를 제가 듣기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죠. 그때도 새삼 느꼈는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정말 쉽지가 않더군요. 

사실 저희 부부가 제일 괴로울 때가 자식들 앞에서인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너희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니까 그렇다”는 소리가 나올까 봐 무조건 양보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뭘 하려고 해도 아버지 덕 봤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저 하고픈 대로 못 한다고 그러는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많이 미안하지요. 

정치인들은 집안 대소사도 챙기기 힘들 때가 많잖아요.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였는데, 그 무렵 남편은 당내 공천 문제로 동래구청장에 무소속 출마했다 낙선하고 주위의 권유로 일본으로 건너갔었어요. 그 일로 충격을 받은 어머님께서 쓰러지셨고, 다시 일어나지를 못하셨죠. 남편이 일본의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라 장례만 치르고 돌아가야 했는데, 그때는 정말 견디기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저희 부부가 더 성숙해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람이 늘 잘되기만 하면 겸손한 마음을 잃기 쉬운데 그런 점에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어머님의 공덕으로 오늘의 이진복이 있습니다”

3선 국회의원 아내로서의 내공에 대해 묻자 김진희 씨는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봉사 활동을 다닐 기회가 참 많아졌다”고 했다. 나눌 기회가 많아졌고, 그 기꺼운 마음이 부산 시민들에게 잘 전해진 덕분이 아닐까 했다. 

손에 쥔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이들 부부의 성품은 돌아가신 어머니께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어머니를 아는 동네 분들은 “오늘의 이진복은 어머님의 공덕”이라 말할 정도니 없는 살림에도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봉사 활동을 갈 때면 누가 시킬 새도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고무장갑부터 끼는 진희 씨의 일머리도 모두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다.

생전에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제가 손이 큰 것도, 일을 겁내지 않는 것도 모두 어머님한테 보고 배운 거예요. 시집와서 9년여를 시어른들과 함께 살았죠. 어머님은 김장도 300포기나 하셨어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김장을 하시는데 처음엔 깜짝 놀랐죠. 그런데 그 덕에 지금도 봉사 활동을 가면 제가 가장 먼저 고무장갑 끼고 배추를 잡습니다. 머뭇거리지 않으니 다들 좋아해주시고, 편히 다가와주시더라고요. 모든 것이 어머님의 공덕이죠. 

어머님께서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물에 빠져 죽고,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을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저는 그 말씀을 정치하는 사람은 말로도 사람들에게 아픔을 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대 국회의원에게도 함부로 삿대질을 하거나 욕을 하지 않습니다. 정치도 배려가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 의원은 국립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죠. 

제가 입학할 무렵은 산업화가 막 일어나던 시기라 모교가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졸업생 중 일부를 독일로 유학 보내주는 제도가 있어 저처럼 집안은 가난한데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 많이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학하고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간첩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더 이상 유학을 보낼 수 없게 되었어요. 너무 속이 상해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는데, 끝까지 다니길 참 잘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제가 선거에 나갈 때마다 저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거든요. 


“부산의 열정이 참 좋습니다”

이 전 의원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 토박이 중에 토박이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주말부부로 지내왔으니, 부산 동래구청장과 동래구 3선 국회의원 타이틀을 제외하고서라도 그의 인생에 부산을 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부산은 어떤 의미인가요.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사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나는 나이가 들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거다. 부산이 너무 좋다”고들 합니다. 부산에는 앞으로 넓은 바다가 있고, 뒤로는 금정산 같은 엄청나게 큰 산들이 있습니다. 저도 무슨 일이 있으면 부산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곤 합니다. 

저는 부산 사람들의 ‘호연지기’ 성격이 참 좋습니다. 부산이 좋다는 건 사직야구장에 가보면 가장 많이 느끼게 됩니다. 사직야구장을 세계에서 최고로 큰 노래방이라 하지 않습니까. 거기 가보면 사람들이 전부 반쯤 미쳐서 떼창을 부릅니다. 그러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또 그 열정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요. 맺고 끊는 것이 그만큼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정치에서 발을 뺀 상태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만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아내와 책을 읽고 봉사활동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계획들을 좀 더 뒤로 미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한번 부산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사진 조영철 기자



여성동아 2020년 1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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