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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challenge

'검객' 신아람, 펜싱클럽에서 새로운 도전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0.09.03 10:30:02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1초 오심’으로 개인전 메달 획득에 실패했던 신아람 선수. 그가 펜싱클럽을 오픈하고 지도자로 새롭게 피스트에 섰다.
새하얀 선수복에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아찔하게 뻗은 검을 휘두르는 펜싱 선수들. 오로지 두 사람만 마주 선 경기장 피스트 위에서 격렬하게 공방을 벌이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꾸준히 펜싱 선수들을 양성해오며 국제대회에 출전해 해를 거듭할수록 높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동양의 작은 나라 선수들이 아직도 생소하기만 한 서양 전통 종목에서 승전보를 남길 때면 감회가 새롭다. 

특히 여자 펜싱 선수 가운데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이가 적지 않다. 신아람(34) 선수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녀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에페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신 선수는 화제의 중심에 섰다. 앞서 열린 에페 개인전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해 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기 때문.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과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마지막 1초를 남겨두고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하이데만이 결승에 올라가자 많은 국민들이 충격에 빠졌다. 체감상 2초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경기 종료 부저가 울렸고, 1초가 넘어간 뒤에 이뤄진 하이데만의 공격을 심판이 인정했던 것. 코치진이 심판에 항의하는 사이 하염없이 피스트를 지키던 신아람 선수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 진행된 3위 결정전에서 신아람 선수는 아쉽게 역전패 당해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그 후 8년이 지난 지금, 신아람 선수는 계속해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세종시체육회 소속 선수로 활동하며 국내외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다른 도전에도 나섰다. 지난 7월 자신의 이름을 건 펜싱클럽을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오픈한 것.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펜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을 위해 그녀가 지도자로 나섰다. 8월 중순, 펜싱 대중화에 앞장서고 싶다는 신아람 선수를 만나 궁금한 근황에 대해 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요. 

지난해까지 충남 계룡시청 소속 선수로 활동하다가 올해 초 세종시체육회로 소속을 옮겼어요. 한 달 전에는 펜싱클럽을 오픈했고요.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사업이 자리를 잡으려면 선수 활동 비중을 차츰 줄여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펜싱클럽을 열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 펜싱을 대중화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많은 펜싱 선수들이 개인 클럽을 냈는데 아직도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종목이다보니 여전히 어렵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다른 운동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펜싱은 기본기부터 차례로 배워야 해서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해요. 펜싱을 하면 심폐 기능이 향상되고 근력, 지구력, 민첩성 등도 좋아져요. 경기에 임할 때는 상대 움직임을 잘 봐야 하니까 집중력도 높아지죠. 이제 100세 시대인데 펜싱 같은 종목을 새롭게 배워두면 지루하지 않고 좋잖아요. 어려워 보이지만 7세 이상이면 누구나 할 수 있죠. 직접 가르치고 싶어서 클럽에 오는 사람들을 거의 다 지도하고 있어요. 



얼마 전 MBC 예능 ‘복면가왕’에도 출연해 화제가 됐는데 방송에도 뜻이 있나요. 

노래를 잘 못하고 끼도 없어요. 섭외는 2월부터 왔는데 나갈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펜싱은 마스크를 쓰고 하니까, 평소엔 얌전하다가도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하거든요. 마찬가지로 ‘복면가왕’도 마스크를 쓰고 노래를 부르니까 잘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제작진도 잘할 수 있다고 독려해주셔서 나갔는데 막상 노래하려니 너무 떨렸어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선수 생활하면서 선수촌 안에만 갇혀 지냈는데 이제는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방송에 뜻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도전을 해보려고요. 

부드럽고 내성적인 성격 같아요. 어떻게 펜싱에 입문하게 된 건지도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운동이라면 다 좋아해서 크면 꼭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종목은 특정하지 않았고 중학교에 운동부가 있으면 들어가려 했죠. 그 당시 제일 흔한 종목이 육상이었는데 제가 입학한 충남 금산여중은 육상부는 없고 펜싱부만 있었어요. 무슨 운동인지 모르니까 바로 들어가지는 않았죠. 어느 날 체육 선생님이 핸드볼 수업 때 공 던지는 걸 보시고 “펜싱부에 들어올 생각 없냐”고 하시더라고요. 가르쳐준 대로 바로바로 따라 하니까 민첩해 보였나 봐요. 멋모르고 들어갔죠. 

중학교 때 단체전 후보 선수였다가 고등학교 때 기량이 향상돼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됐다고 하는데, 그때 기량이 급상승했나 봐요. 

금산여중 펜싱부 선수들은 대부분 금산여고에 진학해 펜싱부에 들어가거든요. 저 역시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고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놀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어요. 그런데 입학 시즌을 앞두고 금산여고 펜싱부 담당 선생님이 “우리 학교 올거니?”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아, 내가 못 들어갈 수도 있겠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죠. 그때부터 제대로 했고 다행히 들어갈 수 있었어요. 2학년 때는 유소년 대표로 선발돼 국제대회에 나갈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어요. 국가대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선배들 출전하는 걸 보고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는 내가 나가야겠다’ 결심했죠. 

2005년 한국체육대학교 장학생 입학,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은메달 등 연달아 메달을 획득하며 어릴 때부터 유망주로 주목 받았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제가 제일 잘했던 것 같아요. 대학 시절에는, 전국체전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딱 1명만 나갈 수 있었는데 교수님이 1학년이던 제가 나갈 수 있게 해주셨죠. 실업팀 언니들이랑 경기해도 밀리지 않고 이겼거든요. 어른들이 유망주로 봐주시니 기분 좋았고 감사했죠. 그런데 아시안게임에 나가서 금메달을 못 따 자괴감을 느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어요. 고작 스무 살이었는데…. 대표팀 막내였지만 욕심을 많이 냈던 것 같아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것은 충격이었을 것 같아요. 

그때 당시 개인전만 나갈 수 있었는데 1명만 선발하니까 저보다 세 살 많은 언니한테 밀려서 못 나갔죠. 그때 심하게 좌절했어요. 빨리 어느 정도 목표치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거든요. 다음 올림픽 때는 나이도 많아지니까 ‘난 이제 선수로서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이후로 여러 선생님들께서 “아직 젊다” “할 수 있다”고 해주셔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다음 2012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들어가 올림픽 티켓을 따기 위해 심기일전했죠. 


런던 올림픽에서 세계 랭킹 3위 안카 마로이우(루마니아) 선수를 꺾고 준결승에 올라 브리타 하이데만 선수를 상대로 잘 싸웠어요. 마지막 1초가 문제였는데 그 일이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 같아요. 

지금도 유튜브를 찾아보면 경기 영상이 나오는데 그걸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사실 생각해보면 올림픽 개인전에서 메달 따기가 정말 어려우니까 그만큼 한 것도 잘한 건데 싶기도 하죠. 그러다가도 짜증 나고 억울해서 지금도 이불킥해요. 선수들이랑 술 한잔하면 자연스레 그때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하죠. 

그 경기 이후 2013년부터는 남은 시간 10초 이하부터 0.01초 단위까지 표시하는 걸로 국제 규정이 바뀌었어요. 뒷북 같기는 하지만 본인으로 인해 규정이 바뀐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세계대회 관전할 때 남은 경기 시간이 0.01초 단위로 뜨는 걸 보면 굉장히 벅차올라요. 주변 선수들에게 “저거 저렇게 된 거 내 덕이잖아”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경기할 때도 저런 게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죠. 보고 있으면 뿌듯하면서도 씁쓸해요. 

런던 올림픽 당시 개인전의 트라우마 때문에 단체전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땄어요.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기 위해 같이 고생한 동료들이 있으니까 나 하나 때문에 피해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하려고 했죠. 고맙게도 동료들이 제가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걸 알고 배려를 많이 해줬어요. 서로를 위하는 그런 마음들 때문에 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운명의 장난인지 이듬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월드컵에서 브리타 하이데만 선수를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어요. 연장전 끝에 6 대 5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을 때 짜릿했을 것 같아요. 

결승에 제가 먼저 올라가서 하이데만 선수의 4강 경기를 지켜봤어요. 안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기더라고요. 런던 올림픽 경기 이후에 인터넷 댓글을 봤는데 “마지막에 찔렸으니까 시간이 약간 지났어도 신아람이 진 거 아니냐”는 말도 많았어요. 다음에 다시 만나면 반드시 이겨야겠다 생각했죠. 그날 이후로 마지막 경기가 꿈에 계속 나왔고, 그걸 떨치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정말 많이 했어요. 결승전에 딱 들어갔는데 각자 경기 스타일이 있으니까 ‘이 선수랑은 연장전까지 갈 수밖에 없구나’ 싶더라고요. 그렇게 연장전에 들어갔고 그동안 연습했던 대로 해서 결국 이겼어요. 그때 속으로 ‘봤지? 내가 이겼지?’ 하며 웃었죠. 

보통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선수들은 30대를 전후로 은퇴하기도 하는데 계속 선수 생활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2012년 올림픽 전부터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때 메달을 따든 못 따든 은퇴해야겠다 생각했는데 타이밍을 놓쳤어요. 그러다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나갔죠. 심적 부담이 되니까 연습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돼서 시합 당일 컨디션이 저조해 첫 경기에서 탈락했어요. 어쨌든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제 과거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요. 다시 돌아가도 더 잘할 자신이 없거든요. 아직 은퇴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까지도 경기를 하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은퇴를 했다가 번복하는 선수들도 있어서 그렇게 하긴 싫거든요. 점점 기량이 떨어지더라도 하고 싶은 만큼 선수 생활을 하려고요. 


신아람 선수는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면서 펜싱 지도자로 나섰다.

신아람 선수는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면서 펜싱 지도자로 나섰다.

집안에서는 어떤 딸인지 궁금해요.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선수 생활하면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책임졌다고 알려졌는데,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할 것 같아요. 

아들 같은 딸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한테는 남편이자 친구이자 믿음직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어요. 엄마도 남동생보다는 저를 더 신경 써주셨고, 그런 마음 때문에 늘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정을 꾸릴 계획은 없나요. 

어릴 때는 한 스물일곱 살 즈음 결혼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막상 그 나이가 됐을 때 운동하느라 결혼은 뒷전이었죠. 올림픽 끝나면 결혼해야지 했는데 계속 미뤄졌고요. 비혼주의는 아니에요(웃음). 결혼하고 싶은데 아직 상대를 못 만났어요. 

펜싱을 거의 20년 정도 해왔는데 후회 없이 열심히 달려왔는지 궁금해요. 

서른 살 전까지는 제 삶에 후회가 없었어요. 사람들은 “20대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전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죠. 서른이 딱 넘어가니까 ‘여자 신아람’에 대해 생각해보니 하나도 해본 게 없는 거예요. 밤새 놀아본 적도 없고, 미팅이나 소개팅도 해본 적 없고, 보통의 20대 여성들이 누리는 삶을 살아보지 못한 게 아쉽더라고요. 지금 펜싱클럽을 오픈한 것도 그런 아쉬움을 달래고 다양한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예요. 

중학교 1학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펜싱을 할까요. 

네. 펜싱을 만난 건 제게 큰 행운이었어요.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선수 생활은 하고 싶은 만큼 할 거고, 앞으로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운동만 하느라 배우지 못한 세상 물정을 더 많이 알고 싶거든요. 사업하는 게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일단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걸 경험 삼아 또 도전하면 되니까요.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신아람



여성동아 2020년 9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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