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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어쩌면 연기봇, 전미도의 슬기로운 연기생활

글 김현정 엑스포츠뉴스 기자

입력 2020.08.26 10:30:01

단 한 편의 드라마로 안방극장을 들었다 놓고 다시 무대로 금의환향한 전미도의 슬기로운 배우 생활.
이런 걸 내공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단 한 번의 기회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내는 것. 뮤지컬계에서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온 배우 전미도(38)가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홍일점 주인공 채송화 역을 맡아 “역시 전미도”라는 평을 이끌어냈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얻은 것은 물론이다. 

명지전문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2006년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로 데뷔한 전미도는 이후에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어쩌면 해피엔딩’ ‘베르테르’ ‘원스’ ‘닥터 지바고’ ‘빠리빵집’ 등에 출연하며 안정적인 연기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성공 이후 그가 다시 선택한 건 고향과도 같은 뮤지컬 무대다.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로봇 클레어로 변신해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바로 뮤지컬로 복귀한 그는 워커홀릭이 아니냐는 질문에 “쉬고 싶기는 했는데 감사하게도 공연 제안을 많이 받았다. 피해갈 수 없겠구나, 싶었다”며 미소 지었다. 아울러 그는 “공연이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는 관객들을 보면 울컥하게 된다. 더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미도는 2014년 ‘어쩌면 해피엔딩’의 기획 단계부터 2016년 초연, 2017년 앙코르 공연에까지 참여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특히 그에게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인기상을 안겨준 뜻깊은 작품이기도 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시즌제라 연말에 촬영을 들어가요. (그사이에) 공연을 한 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어쩌면 해피엔딩’이 스케줄상 적합하더라고요.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 클레어 역할에 캐스팅된 다른 친구들과 열 살 차이가 나거든요. 내가 빠져줘야 하는데 눈치 없이 여기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죠. 사실 신인들이 로봇의 순수한 면을 잘 표현할 수 있어 더 어울린다고 느끼거든요. 뜻하지 않게 욕심을 부렸지만, 신인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간보다 인간적인 로봇의 사랑 이야기

전미도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발랄한 로봇 클레어를 연기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함께 출연했던 정문성이 상대역 
올리버로 출연한다.

전미도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발랄한 로봇 클레어를 연기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함께 출연했던 정문성이 상대역 올리버로 출연한다.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21세기 후반 서울 메트로폴리탄의 로봇 전용 아파트를 무대로, 버려진 구형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을 그린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용도 폐기된 로봇들이 슬픔, 고통, 그리움 같은 감정을 깨닫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맨 처음 시놉시스에는 ‘미래에 헬퍼봇이라는,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이야기’ 이 정도로만 돼 있었어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로봇을 연기하는 만큼 감정적인 부분이나 움직임 등을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확히 어떤 노래인지 모르지만 당시 먼저 만들어진 한 곡을 들었는데 너무 재밌을 것 같았어요.” 

올리버와 클레어는 사랑에 빠지지만 더 이상 교체 부품이 생산되지 않는 구식 로봇이기에 인간처럼 유한한 생명을 지닌다. 곧 이별을 겪을 수밖에 없는 두 로봇은 슬픈 운명을 직감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지워버리기로 약속한다. 

“극 중에서 올리버와 클레어가 기억을 지우기로 결정한 건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상대방이 (혼자 남겼을 때) 고통스러워할 게 마음이 아파서죠. 사람들은 보통 내가 싫어서 헤어지고 내 감정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데….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인 것 같아 참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올리버가 기억을 지우지 않은 사실은 그의 애틋한 눈빛과 행동을 통해 관객에게 드러난다. “괜찮을까요”라고 걱정스레 질문하는 클레어에게 올리버는 말한다. “어쩌면요.” 클레어는 과연 기억을 지웠을까. 보는 관객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결말로 여운을 남긴다. 

전미도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매력 포인트로 순수함을 꼽았다. 

“무대에서도 처음에는 기술이 좋은 배우들이 눈에 들어와요. 하지만 결국엔 진정성을 가진 배우가 이기더라고요.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순수함이구나’ 했는데 ‘어쩌면 해피엔딩’이 그런 것 같아요. 남녀노소 누가 보더라도 이 작품이 주는 정서를 조금씩은 다 느끼고 돌아간다고 생각해요.” 

전미도가 맡은 클레어는 올리버에게는 없는 사교 기능을 갖춘 로봇이다. 활발하고 능동적이고 똑똑하다. 하지만 옛 주인에게 버림받은 상처 때문에 냉소적이다. 

“대본에 쓰인 대로, 작품이 원하는 클레어를 연기하면서도 에너제틱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올리버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고 늘 고정된 방법으로 일상을 보내거든요. 이와 반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최대한 다양하게 즉흥적인 기운을 가진 클레어를 연기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야 상처 받을 때 대비되는 모습이 보이면서 더 마음이 가는 인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전미도는 로봇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발랄한 클레어 그 자체다. 그는 “실제 성격도 클레어와 비슷한 면이 있다. 기분 좋을 때 애교가 많이 나온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미도 안에는 수다스러운 아줌마 같은 면도 있고, 클레어처럼 발랄하고 귀여운 구석도 있고, 채송화처럼 진지하고 차분한 점도 있거든요. 극 중 상황에 따라 저의 다른 모습이 나오는 듯해요. 기본적으로 전 사랑스럽습니다(웃음).”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슬기로운 의사생활’

데뷔 15년 만에 처음 출연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전미도의 연기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기존 뮤지컬 팬뿐만 아니라 드라마로 그를 알게 된 대중들까지 ‘어쩌면 해피엔딩’에 관심을 갖고 있어 티켓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예전 공연들은 여러 번 보러 온 관객들이 꽤 많았어요. 초연과 앙코르를 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거의 다 관람했던 관객들이라 반응이 점점 없어져요(웃음). 두 로봇의 관계를 이미 알고 초반부터 감정에 젖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처음 보는 관객들의 반응이 많더라고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그는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이자, 환자들에게는 따뜻한 신경외과 채송화 교수 캐릭터를 연기했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매 공연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거쳐요. 그리고 베스트를 뽑아서 무대에 올리는데, 드라마는 순간에 확 집중해서 뽑아내는 게 있더라고요. 드라마는 처음이라 나름의 재미도 컸어요. 무대에서는 내가 어떻게 연기하는지 구체적으로 볼 수 없고 디렉션이나 관객의 반응을 통해 제 연기를 판단하는데, 드라마는 TV를 보면서 ‘내가 저런 연기를 했구나’라고 깨닫게 되더라고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뮤지컬 배우로 고민이 많아진 시기에 운명처럼 찾아온 작품이란다. 

“2018년 뮤지컬 ‘닥터 지바고’를 끝내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성장이 멈춘 느낌이 들더라고요. 거리를 둬야겠다, 휴식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그해에 공연 스케줄을 다 피했죠. 그러다 드라마 ‘마더’(특별출연)와 영화 ‘변신’을 찍으며 새로운 장르에 재미를 느끼고 있을 때 ‘슬기로운 의사생활’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뮤지컬로 복귀하니 무대 위에서의 재미를 다시 찾게 됐다고 한다. 

“무대에 대한 감사함 등 저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깨달았어요. 드라마 덕분에 힐링됐다고나 할까요. 촬영 스케줄로 인해 밤낮이 바뀌는 걸 제외하고는 현장에서 좋은 분들이 일할 즐거움이 가득한 환경을 만들어줘 힐링된 것 같아요. 저와 공연의 소원해진 관계가 회복된 듯해요.” 

‘슬기로운 의사생활’ 종영 이후에도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는 배우들도 얼마 전 ‘어쩌면 해피엔딩’을 관람했다. 조정석, 정경호, 유연석, 김대명 등이 공연 직전 극장에 와서 먹을 것도 사주고, 다 같이 공연을 보고 가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한 것. 

그동안 신원호 PD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출연한 유연석, 손호준, 안재홍, 류준열, 고경표, 박보검 등의 배우들은 나영석 PD의 ‘꽃보다 청춘’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었다. 드라마 종영 후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 올라온 영상에서 나영석 PD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배우들을) 어딘가로 끌고 가는 걸 추진해보겠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다시 해보자고 얘기하고 있다”고 말해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이와 관련해 전미도는 “내가 예능을 무서워하는데, 아마 다들 나를 설득하지 않을까. 모두 한다고 하면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15년 차 배우로 지금까지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자신만의 매력을 입혀 소화해낸 전미도. 드라마와 뮤지컬 모두 흥행을 이끌며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그는 앞으로 어떤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갈까. 

“데뷔할 때는 지금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그냥 밥이라도 먹고 살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운이 좋았어요. 이렇게까지 꿈꾸지 않았는데 너무 감사해요. 하루하루, 또 매번 작품을 제안받을 때마다 기적 같아요. 처음 배우를 꿈꿀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을 잃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해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분장실에서 열정도 재능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사실 일은 하고 있지만 열정이 식은 사람도 많거든요. 그럼 늘 했던 걸 하게 마련이죠. 일에서 열정을 갖는 게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전미도는 늘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려 노력한다. 기존의 이미지를 깨려고 애쓴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한 작품을 마친 뒤 다음 작품에 들어가면 비슷한 배역보다 다른 걸 하고 싶어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작품을 해올 수 있었죠. 동안인 탓에 20대 후반까지도 10대 연기를 계속했어요. 당시엔 고민이 많았는데 뮤지컬 ‘영웅’을 할 때 조승룡 선생님이 ‘외면은 바꿀 수 없어.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해’라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그때가 서른이었는데, 더 이상 10대 연기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과감하게 포기했어요. 그랬더니 연극 ‘갈매기’처럼 성인 배역이 오더라고요.” 

무엇보다 뜻깊게 올해를 보내고 있는 전미도는 마흔 살을 코앞에 두고 있다. 나이 듦이 조급하기보다는 오히려 여유가 생기고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져 연기할 때 도움이 된다고. 

“나이 드는 게 나쁘지만은 않아요. 어릴 때 연출가는 모두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능력이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은 연출가를 만나면 ‘왜 그럴까’ 의구심이 생겼는데 나이가 드니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연기할 때 캐릭터를 해석하는 갈래도 더 많아졌고요. 그전에는 항상 좋은 사람 완벽한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죠.” 

내공을 켜켜이 쌓아온 전미도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분명한 건 앞으로도 공연을 놓지 않을 거란다. 

“계획이 따로 있진 않아요. 드라마, 연극, 영화, 뮤지컬 등 인연이 되는 작품이 있으면 하지 않을까요. 저 역시 어떤 작품이 들어올지 궁금해요. 그 시기에 저와 마음이 맞는다면 아마도 선택하겠죠. 즐기면서 참여한 작품은 모두 상을 받았어요. ‘원스’ ‘스위니 토드’ ‘어쩌면 해피엔딩’인데, 어려운 점은 분명히 있지만 스트레스를 안 받고 즐겼더니 좋은 평을 받더라고요. 앞으로도 공연은 놓지 않을 거예요. 마지막까지 연기하게 될 장르는 공연이 될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면 더 좋겠죠.”

사진제공 CJ ENM



여성동아 2020년 9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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