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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이성배 아나운서 런던에서 길을 찾다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0.08.06 10:30:01

아침 방송을 책임지던 아나운서가 정치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훌쩍 떠났다. 코로나19 여파로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긴 했으나 반년 동안 더없이 값진 추억을 쌓았다는 이성배 아나운서를 만났다.
직장 생활 10년 차 전후로 누구나 한 번쯤 번아웃을 겪는다. 원대한 꿈을 품고 입사했던 초년병의 생기는 온데간데없고, 하루하루 소모되는 조직의 부품 같은 자신의 모습에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된다. 보통은 그즈음 회사에서 주어지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도전하거나 자아실현을 위해 취미 활동에 뛰어들기도 하고, 못다 한 공부를 하려고 대학원에 들어가기도 한다. 

2008년 MBC에 입사한 이성배(39) 아나운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방송 활동을 이어가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 짬짬이 시간을 내 공부해온 케이스다. 그는 새내기 아나운서 시절 ‘섹션TV 연예통신’ ‘스포츠 매거진’ ‘불만제로 UP’ 등의 리포터 및 MC 등을 맡으며 인지도를 쌓았고, 2015년 ‘진짜 사나이2’와 2016년 ‘복면가왕’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한창 바쁠 때인 2015년에는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 들어가 저널리즘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중앙대에서 2년 동안 강의하기도 했다.

아나운서 12년 차, 공부에 갈증 느껴 유학길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이성배 아나운서는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영국 골드스미스런던대학 대학원 정치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전 세계에서 국가별로 1명씩 20명 정도 발탁해 유명 교수진들과 토론식으로 수업하는 정식 학위 과정이다. 30대 후반 한국의 직장인이 20대 언론 학도들과 공부하겠다고 야심 차게 도전한 것. 그것도 7년 전 이혼하고 홀로 키우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데리고 단둘이 런던 생활을 하면서 말이다. 

이성배 아나운서는 짬짬이 한 일간지 칼럼을 통해 소식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친구 집에 머물다가 아들의 초등학교 학군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좀 더 좋은 지역으로 이사하며 등급이 높은 학교로 배정받아준 이야기, 그곳에서 영국 친구들 및 학부모와 교류하며 아들의 생일 파티를 열어준 이야기, 함께 스페인으로 축구를 보러 간 이야기 등 소소한 일상을 공개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코로나19 발발로 영국도 위기를 맞았고, 4월 이후 학교와 관공서 등이 셧다운되면서 이 아나운서는 반년 남짓한 영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복직했다. 귀국 전후로 영국과 한국에서 한 달 가까이 자가 격리 생활을 하며 ‘확찐자’가 됐다고. 이 아나운서의 유학 도전기와 한국에서의 싱글 대디 라이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복직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4월 말에 복직했는데 사업국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콘텐츠 제작, 행사, 콘서트 등 MBC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사업을 담당하고 있어요. 원래 아나운서로 일하기 전 삼성전자 IT 마케팅 부서에서 2년 정도 근무했고, 그 전에는 제일기획 PR팀에서도 일해봤어요. 아나운서 이외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어요. 이제는 한 개 직업만 갖고 살아가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아요. 아나운서들도 1인 다역을 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영국 유학도 그러한 맥락에서 결심한 건가요. 

맞아요. 보통 우리 나이대는 연수를 많이 가는데 저는 학위 과정으로 지원했어요. 그만큼 공부에 대한 열의가 컸어요. 사실 입사했을 때 회사에서 “무난하게 생겼다” “오래 걸리겠다”는 평을 많이 들었어요. 솔직히 제가 오상진 선배처럼 잘생기거나 전현무 선배처럼 캐릭터가 확실하진 않잖아요. 각종 연예, 스포츠, 경제 프로그램 리포터 및 MC를 주로 했어요. 그때는 아쉽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차근차근 밟고 올라간 거 같아요. 그런 경험이 쌓여 예능 패널로도 출연하고, 아침 방송 진행도 맡게 됐죠. 그렇게 7년 정도 일하고 나니 공부에 대한 열정이 생겼고, 연대 대학원에서 최고위 과정을 끝냈어요. 당시 ‘진짜 사나이’를 찍을 때였는데 방송하랴 시험보랴 정신없었어요(웃음). 이후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됐는데 가르칠수록 부족함이 느껴지더라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갈까, 고민했죠. 육아휴직을 내고 1년 동안 공부하러 간 거예요. 


1 아들의 초등학교 배정을 위해 이사까지 강행했던 이성배 아나운서. 
집 뒷마당에서 아들 친구와 노는 모습.
2 런던 유학 당시 집으로 놀러 온 친구와 나란히 선 아들. 
이 아나운서의 걱정과 달리 아들은 영국 초등학교에 적응을 잘했다. 
3 아들 생일 파티를 직접 준비해 열어준 이성배 아나운서. 그날 반 친구들 30명이 모두 참석해줘 잊지 못할 생일이 됐다.

1 아들의 초등학교 배정을 위해 이사까지 강행했던 이성배 아나운서. 집 뒷마당에서 아들 친구와 노는 모습. 2 런던 유학 당시 집으로 놀러 온 친구와 나란히 선 아들. 이 아나운서의 걱정과 달리 아들은 영국 초등학교에 적응을 잘했다. 3 아들 생일 파티를 직접 준비해 열어준 이성배 아나운서. 그날 반 친구들 30명이 모두 참석해줘 잊지 못할 생일이 됐다.

홀로 초등학생인 아들을 키우며 유학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힘들 때도 있었지만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대학원 합격하고 혼자 가려고 했는데 아들에게 미안하더라고요.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얻었지만 안타깝게 각자의 길을 가게 됐고, 이를 알리지 못한 채 활동하다가 이혼한 지 3년 뒤에 공개가 됐어요. 사실 전 회사 다니느라 바빴지, 아이는 저희 어머니가 키우셨거든요. 아이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같이 떠난 거예요. 제가 먼저 가서 세팅을 하고 아들이 혼자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공항에서 딱 만나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이후로 아이가 학교에 생각보다 잘 적응했고, 공부하고 살림하는 데 루틴이 생기니까 점점 좋아졌어요. 

유학 생활을 하면서 연재한 칼럼을 보니 아들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집을 옮겨서까지 좋은 초등학교를 배정받게 해주는 열정적인 아빠더군요.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심이 생겼어요. 아빠란 사람들이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고 사는구나, 하는 걸 느꼈죠. 홀로 청소, 빨래, 설거지하면서 아이 밥해주고 학교까지 보냈거든요. 거기다가 공부도 해야 해서 거의 맞벌이 주부의 생활과 다름없었어요. 전 고작 몇 개월 했을 뿐인데도 정말 힘들었어요. 만약 재혼하게 되면 영국 유학 생활을 거울삼아 제 역할을 잘할 거 같아요(웃음). 

좋은 초등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이사까지 했다는 게 놀라워요. 

영국의 공립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배정되는 시스템이에요. 영국은 학교평가기관에서 수년에 한 번 등급 평가를 하는데 ‘Outstanding(훌륭함)’ ‘Very good(매우 좋음)’ ‘Good(좋음)’ ‘Requirement improvement(개선 필요)’ 네 단계로 나뉘어요. 원래 친구네 집에서 지내며 학교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하필 가장 낮은 등급의 학교로 배정받아 심난하더라고요. 영어도 못하는데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덩치 좋은 아이들에게 맞고 오진 않을까 걱정이 됐죠. 고심 끝에 비용이 좀 들더라도 좋은 지역으로 옮기는 게 낫겠다 싶어 윔블던으로 이사를 갔어요. 다행히 그곳에서는 가장 높은 등급의 학교에 배정받아 기쁘게 학교를 보냈죠. 

영국 학부모들도 교육열이 높은가요. 

영국 학부모의 교육열은 한국 못지않아요. 특히 제가 이사 간 윔블던은 런던에서도 교육에 욕심이 많은 부모들이 선호하는 곳이에요. 한국인들 가운데 언론사 특파원, 대기업 파견직 등 회사 지원을 받고 영국으로 간 가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죠. 전 퇴직금까지 중간 정산을 받아서 갔기 때문에 과감하게 윔블던으로 이사를 했고, 짧게나마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어 만족했어요. 

아이에게도 오롯이 아빠와 함께한 시간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것 같아요. 

영국에 있을 때 한 번도 한국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둘 다 축구를 좋아해서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축구 경기도 보러 가고, ‘해리포터’ 스튜디오도 갔어요. 사실 영국 가기 전에는 아이가 영어를 못해 걱정했는데 친구도 곧잘 사귀고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런던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질 무렵 아이에게 “영국에 있을까, 한국으로 갈까” 물어보니 “한국 갈래”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 먼저 비행기 태워 한국으로 보내고 저도 정리할 것들을 정리한 뒤 귀국했어요. 

자가 격리 생활을 한 달 가까이 했다고요. 

영국에서 돌아오기 직전 열은 안 났지만 감기 증상이 심했어요. 그대로 한국에 돌아갔다가는 커다란 민폐를 끼칠 수도 있을 것 같아 2주 동안 자가 격리를 하고, 증세가 호전되면 입국해야겠다 싶었죠. 거기선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고, 혹시나 걸리면 어떡하나 온갖 상상을 하게 되니 정말 무섭더라고요. 귀국하고 나서 곧바로 검사를 받고 격리 시설에서 기다리는데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어요. 집에서도 2주 동안 자가 격리했는데 그러고 났더니 10kg 가까이 쪄서 인생 최고 몸무게를 기록했어요. 지금 다이어트 중입니다(웃음).

이성배 아나운서는 아침 교양 프로그램 ‘생방송 오늘 아침’을 다년간 진행하며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스스로 인정하다시피 미남형 아나운서는 아니지만 진중한 목소리와 반듯한 태도로 깔끔하게 생방송을 이끌어가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다. 

일적으로는 승승장구했지만 사생활에 있어서는 세간의 시선을 받는 일도 있었다. 2012년 결혼과 동시에 아들을 얻었으나 이듬해 이혼했고, 이를 밝히지 못한 채 방송 활동을 이어갔다. 한창 인기를 끌던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2’ 출연 당시에도 시청자들은 그의 이혼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2016년 이혼 사실이 공개됐을 때 다행히 많은 이가 그를 응원했고, 지금은 사석에서 편하게 이야기할 정도로 무뎌졌다.

처음 아나운서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중학교 2학년 때 웅변으로 대통령상, 국회의장상 등을 받았어요. 부상으로 세계 여행을 다녀왔을 정도였죠. 그때 ‘나이가 들면 말하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면서 아나운서에 대한 꿈을 굳혔고요. 졸업 후 일반 기업에서 마케팅, 홍보 일을 두루 하긴 했지만 가슴속에는 아나운서에 대한 꿈이 남아 있었죠. 

아나운서가 적성에 맞던가요. 

천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당시만 해도 방송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합격하던 시기였는데 전 카메라 앞에 서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자신감이 충만해서 그걸 알아보셨던 부장들이 리포터만 4년 반을 시키셨어요(웃음). 입사 동기인 배현진 씨는 앵커로 자리 잡아 잘나가는데 전 리포터를 계속하니까 스트레스 받기도 했죠. 그런데 지나고 나니 다 자양분이 됐어요. 시사, 경제, 스포츠, 연예 등 모든 쪽에 리포터 경험이 쌓이면서 입사 5년 차부터 쫙 올라갔어요. 

기억에 남는 방송이나 진행 경험이 있나요. 

2012년부터 5년 동안 진행한 ‘생방송 오늘 아침’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1백여 명의 스태프와 패널이 매일같이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라 보기보다 많은 이의 공이 들어가요. 진행자들은 지휘자나 다름없죠. 애착이 큰 프로그램이라 생각도 많이 나고, 또 주부 시청자들께서 좋게 봐주셔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요. 

그때 운동을 열심히 해서 보디 프로필 사진을 찍은 게 온라인을 통해 알려졌어요. 그 사진을 본 연출진이 연락해왔고 인터뷰 후 발탁돼 멤버로 투입된 거죠. 아나운서 역사상 처음으로 삭발하고 촬영했던 터라 아침 방송에는 가발을 쓰고 출연해야 했어요(웃음).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그때 30대 중반이라 야간 행군하다가 굴러떨어져서 무릎이 나가기도 했고, 고공 낙하를 해야 하는데 연출진한테 못 한다고 말했다가 결국 뛰어내리는 등 진짜 힘들었거든요. 

결혼도 이혼도 상당히 화제가 됐어요. 지금은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데 힘들진 않나요. 

시간이 꽤 흘렀으니까 지금은 다 잘 지내고 있어요. 아이가 내색하진 않는데, 내적 결핍이 있진 않을까 걱정은 해요. 그래서 아들에게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 할머니, 아빠’라는 걸 심어주고 싶어요. 참 고마운 게 아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할 때마다 연락하면 잘 받아줘요. 그래서인지 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크게 느끼진 않아요. 그 유대감을 지속시켜주고 싶어요. 

재혼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요.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아이 딸린 이혼남에 대해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소개팅을 하더라도 애가 있는 조건으로 맞춰야 하니까 사람 만나기가 힘들더라고요. 관계가 지속되려면 서로 생각도 맞아야 하고요. 그래도 재혼 생각은 늘 해요. 아이를 더 갖고 싶다는 생각도요.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새 가족이 생기는 것에 대해)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많은 아나운서들이 인지도를 얻은 후 프리랜서로 전향하는데 어떻게 보나요.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의 직업으로 사는 세상은 지나갔어요. 저도 입사 10년 차를 넘기니 개인적으로 발전에 목마르기도 했고, 직업을 하나 더 가지려면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국으로 유학 간 것도 준비 과정의 일환이었고요. 정치 컨설팅에 관심이 많아서 학위를 받은 뒤 향후 그쪽으로 진출해보고 싶었거든요. 지금 사업국에서 일하는 것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이제 입사 13년 차인데 감회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아나운서로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다 해봤어요.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토론 진행이나 인터뷰 프로그램을 맡아보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한순간도 후회가 남지 않아서 행복해요.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이성배



여성동아 2020년 8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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