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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성실한 보헤미안 사진작가 박상원

글 두경아

입력 2020.07.01 10:30:01

배우 박상원이 지난해 사진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이번 여름, 지난 시간 동안 카메라를 멘 어깨가 찢어질 정도로 열심히 찍어온 사진을 모아 세 번째 사진전을 연다. 모두 그를 꼭 닮은 사진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신사동 사무실까지, 걸어서 35분 정도 걸리는 2.4km의 거리. 어느덧 환갑을 넘긴 배우 박상원(61)은 이 거리를 전동 킥보드로 오가곤 한다. 그것도 요즘 핫한 공유 전동 킥보드로! 공유 킥보드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결제한 뒤 이용하는, 그야말로 신문물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코로나19로 인해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요즘, 마스크 덕분에 그는 상상만 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스마트폰이나 SNS를 지독하게 싫어한다. 지인들에게 손편지 보내는 것을 즐기는 터라 나름의 타협안으로 종이에 쓴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 전송한다. 여의치 않을 때는 문자 메시지로 보내는데, 그마저도 느낌표와 물음표 등 문장부호를 최대한 넉넉히 사용해 감정을 전달한다. 느낌표를 50개나 보낸 적도 있단다. 

디지털 디바이스보다 노트가 좋은 그는, 언제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그리는 노트가 있다. 그의 손 글씨는 그림같이 아름다워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서체 ‘박상원체’로 개발됐을 정도다. 

아날로그 방식과 최신 디지털 신문물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사용 중인 박상원은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이다. 반듯한 이미지와 달리 “죽을 때까지 철들지 않는 게 목표”라는 그는 진지하게 ‘125분의 1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렌즈로 포착한 결정적 순간

2015 경기도 파주.

2015 경기도 파주.

2018 필리핀 마닐라.

2018 필리핀 마닐라.

2018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왼쪽),     2018 뉴욕 브로드웨이.

2018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왼쪽), 2018 뉴욕 브로드웨이.

125분의 1초. 사진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 흔들리지 않을 최소한의 셔터 스피드(셔터가 열리는 시간)다. 



“특별히 테크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진은 대개 125분의 1초 혹은 250분의 1초에 담겨요. 사진 1장을 찍을 때 125분의 1초가 소요되니, 125장의 사진을 모아야 1초가 되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1초라는 시간 안에 사진으로 표현할 것이 너무 많아져요. 그렇다면 1분, 1시간, 하루, 한 달, 일 년에는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존재할까요.” 

중학교 때부터 누나 사진기를 빌려 찍기 시작한 ‘사진’은 그의 또 다른 직업이자 생활이다. 그는 어린 시절 화가나 조각가, 사진작가를 꿈꾸며 자랐고 배우가 된 이후 뒤늦게 사진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어디가든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요. 해외에 나갈 때는 물론이고, 드라마, 공연, CF, 행사 등을 전부 찍지요.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모든 순간을 찍었고요. 그렇다고 사진을 위해 나를 뺏기는 건 싫어요. 생활하면서 사진을 찍죠. 다니다가 ‘우아~’ 하는 순간이 생기면 그걸 가슴에 담고, 또 사진이라는 장르로 담아내는 거예요. 매 순간, 뭐든 그때 그대로 다 소중한 시간이에요. 사진을 통해 그 시간을 돌아보면 그때도 좋았고, 저때도 좋았고, 지금도 소중해요. 어제, 오늘 모든 순간은 비교 불가죠. 사진은 그 시간을 고정시켜놓은 신(Scene)이에요.” 

박상원의 가슴에 담긴 ‘씬’은 어떤 것일까? 그 답은 그의 사진전 ‘어 씬(a scene)’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7월 15일부터 31일까지 청담동에 위치한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2009년 첫 번째 개인전 ‘모놀로그’로 시작해, 2012년 두 번째 전시를 거쳐 8년 만에 여는 전시다. 그사이 9차례 단체전에 참여했고, 개인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사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결정적 순간’이에요. 첫 번째 전시회 제목은 ‘모놀로그’였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파인더 안에 있는 사람인데, 파인더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했으니 독백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진가에게 결정적 순간은 배우에게 결정적 장면이 아닐까. 그래서 주제가 ‘어 씬(a scene)’이 됐어요.” 

박상원은 지난해 2월 비주얼 저널리즘 전공으로 상명대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 번째 개인전 이후 ‘사진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2010년 석사과정을 시작했으니 꼬박 8년이 걸린 셈이다. 그의 박사 논문 제목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푼크툼 스투디움 연구’. 사회적으로 공유된 코드로 사진을 바라보는 방식인 스투디움(Studium)과 사진을 바라보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으로 일으키는 감성적 동요인 푼크툼(Punctum)에 대한 연구다. 

“사진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면 사진전을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지난해 학위를 받았어요. 8년 만의 개인전이라, 찍어놓은 사진이 그만큼 쌓여 고르는 데만 몇 달이 걸리고 있어요. 그런데 사진을 고르다 보니 소재가 첫 번째 사진전과 같더라고요. ‘왜 이렇지? 카메라를 메는 어깨가 찢어질 정도로 찍었는데’ 싶었죠. 사진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만 찍어서 그렇더라고요. 좋아하는 건 달라질 수 없잖아요. 제 사진은 제 가슴을, 머리를 찍은 CT 촬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전 세계 어딜 가도 비슷한 것만 찍게 되죠. 그래도 신기한 건, 똑같은 건 하나도 없어요. 40년째 하늘 사진을 찍고 있지만 똑같은 하늘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무대는 에너지의 원천이자 혹독한 채찍

사무실 한쪽에 놓인 더블베이스는 그의 하반기 일정을 알려주는 키워드였다. 박상원은 2014년 ‘고곤의 선물’ 이후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1인극 ‘콘트라바쓰’다. ‘좀머 씨 이야기’와 ‘향수’로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으로, 오케스트라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더블베이스(콘트라바스) 연주자를 통해 삶을 성찰하는 내용이다. 희곡집이 인기를 끄는 것은 물론, 지금껏 독일어권 나라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르는 연극이자 전 세계 연극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콘트라베이스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건 더블베이스의 독일식 이름 콘트라바스(Kontrabass)를 섞은 잘못된 명칭이에요. 원래 지난해 소공연장 정미소의 마지막 공연 프로젝트 ‘포에버, 정미소’로 무대에 오르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올해 11월 예술의전당에 대관이 잡혔어요. 콘트라바스가 오케스트라에서 음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홀대받는 이야기로, 우리 사회의 구조 속에 매몰돼가고 고립돼가는 도시인들의 자화상을 담은 작품이에요.” 

박상원은 “연극 속 주인공은 바로 우리”라며,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경제 구조의 수평적 직업군 속에서 고독한 도시인의 자화상”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이 안에는 박상원 자신도 속해 있다. 

“누구나 타인은 가늠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어요. 돈이 있는 사람은 다 행복할 것 같지만, 돈이 있음으로 느껴지는 고통도 있을 거고요. 9백99억 가진 사진이 1억을 더 채우고 싶은 욕망. 인간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진 슬픔, 타인은 가늠할 수 없는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콘트라바스’ 주인공과 같은 모습일 거예요. 극장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무대 위 인물을 보면서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공감대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연을 보고 돌아간 뒤, 무대 위 인물과 똑같은 고민은 아니지만 각자 나름의 도전을 하려는 희망을 갖게 되길 바라요.” 

그는 1978년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들어가 이듬해인 1979년 연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했다. 이 연극 한 편으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막내 무용수로 연극에 참여했던 그는 주인공인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사정상 일정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바람에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이 됐다. 이후 ‘인간시장’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화제의 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됐지만 무대는 그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무대는 제게 영원한 채찍이며 부담덩어리예요(웃음). 올해 개인적으로 무대에 오른 지 41년이 됐어요. 1979년 무서운 마음으로 무대에 섰는데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났어요. 여전히 무대는 제 에너지의 원천이자 나를 혹독히 다루는 채찍 같은 곳이에요. 설렘보다는 떨림이 있고, 오히려 가면 갈수록 무서운 감정이 생겨요.”

렌즈는 나를 보는 거울이자 상대를 보는 튜명 유리

지난해, 박상원은 화제의 드라마 KBS ‘하나뿐인 내편’ 이후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in 순다열도’에서 최고령 병만족으로 활약했다. 그는 김병만도 인정한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로, 철인 3종 경기를 즐기며 수십 번의 패러글라이딩을 경험한 것은 물론 뛰어난 수영 실력까지 겸비해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보유한 익스트림 스포츠계의 고수다. 

“학교 다닐 때부터 별명이 ‘박가이버’였어요. 몸 쓰는 일을 잘하고, 바지런한 편이죠. (이)문세가 ‘정글의 법칙’을 보고 전화 걸어서 ‘너와 딱 맞는 프로그램이다’라고 하더군요. 촬영하면서 한시도 가만히 안 있었는데, 원래 싫어도 움직이는 편이에요. 가족들끼리 놀러 가서는 어디서든 전기선 끌어 오고, 파티장 만들고….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밥 먹으면 꼭 설거지를 하고, 출근하면서 쓰레기를 버리죠(웃음).” 

3년 전에는 아내의 미모를 꼭 빼닮은 딸 박지윤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 tvN ‘둥지탈출’에 출연하기도 했다. 예능은 그에게 의외의 활동인 것 같지만, 그는 스스로를 “대한민국 연기자 중에 누구 못지않게 다양한 장르를 다 해본 연기자”라고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 뮤지컬, 라디오 DJ, 쇼 MC, 심지어 탈춤까지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영어로 배우를 액터라고 하잖아요. 저는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액터가 아닌 머더러(Murderer·살인자), 로버(Robber·도둑)가 되라고 해요. 배우란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일이거든요. 좋은 연기를 보면 ‘죽인다!’라고 표현하지 않나요. 좋은 연극이나 영화를 한 편 보면 마음을 뺏겨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하고요. 머더러, 그것도 일급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해야 하고요.” 

박상원은 “일급 스페셜리스트냐”는 질문에 웃으며 “꼼꼼해 보이나, 완벽하려고 애쓰는 C급이나 D급”이라 답한다. 

“죽을 때까지 연기라는 건 완성이 없으니, 제가 20년 후에 연기를 해도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그 여정 중에 있을 거예요. 지금은 반환점 정도 왔을까요. 반환점을 돌아 목표로 돌아가는 정도라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예술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는 사진과 연기, 둘 사이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어떤 장면을 봤을 때의 감흥, 색감, 결정적 장면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감정이 결국 나중에 연기할 때 근육으로 나타나요. 연기에 모두 녹아나오죠. 엄청난 상호작용이 돼요. 파인더 안으로 밖을 들여다봄으로써 입체적으로 컨버전스(융합)할 수 있고,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일 수 있죠. 객관화는 배우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나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건 우매한 일이죠. 그러기 위해 유리처럼, 때로는 거울처럼 볼 줄 알아야 해요. 나를 볼 때는 거울처럼 돌아봐야 하고, 상대를 볼 때는 유리처럼 투명하게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박상원



여성동아 2020년 7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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