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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고준희가 스스로를 지켜내는 법

EDITOR 조윤

입력 2020.01.02 17:18:36

연예계를 휩쓴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악성 댓글에 시달려온 배우 고준희가 대중 앞에 섰다. 뷰티 방송 MC로 새 출발선에 나선 그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 속 깊은 이야기.
고준희가 스스로를 지켜내는 법
말의 속도는 느렸고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눈시울은 이따금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내용은 분명했으며 대화에 임하는 태도는 당당함과 솔직함, 그 자체였다. 가장 많이 쓴 단어는 ‘피해자’ 그리고 ‘왜’였다. 

배우 고준희(35)가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해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 사건에 연루, ‘뉴욕 여배우’로 지목돼 곤욕을 치렀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3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시작됐다. 방송에 따르면 가수 승리와 정준영, 최종훈 등은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XX 여배우가 현재 뉴욕에 있어 투자자 접대 모임에 초대할 수 없다’는 등의 대화를 나눴고 일부 네티즌들은 당시 승리와 같은 기획사 소속이자 비슷한 시기 뉴욕에 체류 중이던 고준희를 당사자로 지목했다. 근거는 빈약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이것이 사실인양 소문이 일파만파 커졌고 고준희는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출연 예정이던 드마라 ‘퍼퓸’ 등에선 하차 통보를 받았다. 이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휴지기를 가져야 했던 그가 지난 12월 초 먼저 인터뷰를 청했다. 그사이 2년간 몸담았던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여성 대표가 있는 마운틴무브먼트로 옮겨 새로운 둥지도 틀었다. 근거 없는 악성 루머를 유포하고 성희롱, 욕설 등을 올린 악플러 32명을 고소했고 현재는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했다. 그간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고준희는 활동 재개를 알리며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준희가 스스로를 지켜내는 법
이런 사안에서 여배우가 직접 해명을 하는 건 이례적이에요. 용기를 낸 이유가 있나요. 

기획사 대표님께서 먼저 인터뷰 제안을 하셨고 저도 좋다고 했어요. ‘사건’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악성 루머에 대한 해명이 목적은 아니에요. 그동안 의도치 않게 반년을 쉬었으니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을 통해 찾아뵙겠단 행보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니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할 준비가 됐고요. 이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덤덤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악성 루머와 관련해선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승리 씨와는 행사장에서 만나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친분이 두터운 사이는 아니에요. 다른 분들과는 일면식조차 없고요. 제가 일고여덟 살이나 어린 연예인들과 어울릴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전 클럽 버닝썬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그들이 메신저 대화를 나눈 2015년에는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촬영과 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 홍보에 중국 활동까지 하느라 다른 일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고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뉴욕 여배우’가 저라고 정해놓고 상황극처럼 ‘너 왜 그랬어? 해명해봐’라고 하니 갑자기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했나 멍했죠. 저도 뭘 알아야 이야기를 할 텐데 피해자인 저에게 해명을 하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됐어요. 팩트 체크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SNS를 통해 제가 아니라고 답글을 달았더니 그것만으로도 또 기사가 쏟아지더군요. 제가 중심인 사건도 아닌데 이게 기삿거리가 될 만한 일인가 싶었죠. 그런데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1년 동안 기다린 드라마에선 갑작스레 하차 통보를 받았고, 예정된 해외 스케줄도 모두 취소됐어요. 

피해가 컸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YG와는 지난해 2월 계약이 끝났고 이후 재계약을 논의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소속사를 통해 대응하긴 쉽지 않았어요. 변호사를 선임하러 직접 뛰어다녀야 했죠. 변호사는 자신에게만은 솔직히 이야기해야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만 조금도 말할 게 없었어요. 관련 사건을 보도한 방송을 본 뒤에도 왜 사람들이 그걸 저라고 생각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고요. 피해를 야기한 이들을 다 고소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루머를 만든 악플 중에서도 정확히 저를 어디서 봤다든지, 관련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든지 하는 글을 작성한 사람들밖엔 고소할 수가 없다더군요. 더 힘든 건 고소를 하려면 제가 직접 경찰에 출석해 악플에 대해 이건 명예훼손인 것 같다, 이건 모욕인 것 같다,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 거였어요. 저에 대한 안 좋은 말들을 직접 읽어야 한다는 게 참…. 수사가 마무리 중인 32명 외에 신원 미상, 주소지 미상인 사람들도 있는데 끝까지 추적할 생각이에요. 



이 자리에 앉기까지 마음을 다잡기가 정말 힘들었겠어요. 

모든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다 보면 제 스스로가 힘들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왔어요. 그럼에도 이번 일은 너무 힘들더군요. 무엇보다 부모님이 관련 댓글이나 영상을 찾아 보면서 힘들어하시는 게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에요. 엄마는 충격을 받고 이명 증세까지 생기셨어요. 전 떳떳한데 왜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야 할까요. 악플러에 대한 선처 없이 끝까지 가겠다고 마음먹은 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까요. 말도 안 되는 일 때문에 제가 먼저 무너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요즘엔 제 자신을 돌아보라고, 더 강해지라고 하느님이 이런 시련을 주셨다고 생각하며 극복하고 있어요. 

최근 연예인을 향한 악플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요. 악플의 피해자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흔들어놓을 수 있는지,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어떤 사건인지도 잘 모르면서 생각 없이 말부터 하고 보는 일종의 군중심리 같다고 느꼈어요. 자신의 말과 글이 얼마나 큰 무게감을 갖는지를 인지하고 행동하면 좋겠어요.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욕 못 해요. 자신을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되길 바라요. 


방송 보면서 이불킥, 그래도 즐거운 도전

고준희가 스스로를 지켜내는 법
고준희는 지난 12월 24일 MBC 뮤직 채널에서 첫 방송된 뷰티 토크쇼 ‘핑크페스타’를 복귀작으로 선택하며 MC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고준희 단발’ ‘고준희 운동화’ ‘고준희 립스틱’ 등 자신의 이름을 단 수많은 패션 아이템과 다양한 단발 스타일을 유행시키며 출연하는 작품은 물론 일상에서의 모습까지 대중의 관심을 몰고 다녔던 ‘완판녀’답게 방송 전부터 그의 캐스팅은 화제가 됐다. 

후속작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고준희는 연기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도 내비쳤다. 2001년 교복을 맞추러 갔다가 권유를 받고 SK스마트 교복 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해 금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한 그는 2006년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에서 고현정의 여동생 역할로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추노’(2010) ‘추적자’(2012) ‘야왕’(2013) 등을 거쳐 ‘그녀는 예뻤다’(2015)에서 얼굴도 몸매도 완벽하지만 진실한 사랑엔 서툰 민하리 역으로 첫 주연 자리를 꿰찼다. 동시에 충무로에도 진출,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나의 절친 악당들’에선 레커차 기사라는 전에 없던 여성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는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패셔니스타라는 존재감에 대해서도, 뿌리가 긴 연기자로서의 본질에 대해서도 부담감보다는 설렘으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해냈다. 새 출발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가 다다르자 배우의 얼굴엔 다시 환한 빛이 드리웠다.

‘핑크페스타’ 출연을 앞두고 다시 대중과 가까워지고 싶다고 밝혔더군요. 

악플을 달거나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소수일 거라고 생각해요.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게 목적이잖아요. 그만큼 대중을 존중하고요. 전 대중이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아이템을 의도적으로 띄워보겠다 하면 이미 대중은 눈치 채고 그건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좋아해서 의도하지 않고 한 행동이나 패션에 대해선 열광해요. ‘고준희 단발’이라는 것도 우연히 단발머리를 한 뒤로 작품 때문에 제대로 기를 시간이 없어 계속 유지하던 게 어느 날부터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한 거예요. 운동화나 재킷 같은 것도 평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입고 나오면 더 유행하고요. 이런 게 참 신기해요.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두렵진 않아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대중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요. 

예능엔 자신이 있나요. 

원래 예능 울렁증이 심해요. 말도 잘 못하고요. 예능은 녹화 시간이 굉장히 긴데 한 번이라도 웃기지 않고 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방송 막바지에 개그 본능이 갑자기 올라오면서 헛소리를 한 적이 많아요. 그게 편집이 안 된 채 방송이 나가면 집에 와서 이불킥을 하죠. 그냥 가만히 있을걸, 하고 후회도 하고요(웃음). 그래도 예능은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였어요. 

앞으로 연기자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작품이 있나요. 

제가 연기를 정말 잘해서 이 일을 계속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연기하는 게 좋고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거죠. 작품도 제가 선택하는 거라기보단 선택을 받는 거고요. 안 해본 캐릭터는 다 해보고 싶어요. 그게 저한테 맞는 옷이고 표현해낼 수 있다면 역할의 비중과 상관없이 많이 도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정말 멋진 액션이나 농도 짙은 로맨스는 어떨까요(웃음)?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하기 전에 부모님과 봉사 활동을 한 사실로 먼저 화제가 됐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이제야 시작하게 돼 부끄러워요. 부모님께서 봉사하며 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생각은 많았는데 활동과 겹쳐 여의치 않았어요. 이번에 기획사를 옮기면서 기회가 생겼죠. 같은 소속사 배우 박해진 오빠와 회사 식구들은 봉사 활동을 자주 한다고 하더라고요.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과 설거지 등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갈 생각이에요. 봉사라는 게 말은 거창하지만 대단한 게 아니잖아요. 

이번 일을 계기로 삶의 태도도 달라졌을 법해요. 

사건을 알게 된 날 멍하니 있었던 하루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정말 정신없이 지냈어요.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전 제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흔들리던 순간도 많았죠. 힘든 일을 겪으면 강해진다고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군요. 하지만 확실히 전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자기애라는 건 누가 말해줘서 생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거잖아요. 지금도 조용히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죠. ‘준희야, 너 좀 성숙한 것 같아’ ‘너 좀 괜찮은데?’ 하고 말이에요. 힘든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기획 김명희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마운틴무브먼트




여성동아 2020년 1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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