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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뼈말라 다이어트’ 공유하는 아이들

정세영 기자

2024. 07. 15

날씬함을 넘어 앙상한 몸매를 만들기 위한 ‘뼈말라 다이어트’. 일명 프로아나로 불리는 10대들은 뼈만 남은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초절식을 옹호하며 거식증, 불법 거래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다. 

15세 최하연(가명) 양의 최대 관심사는 다이어트다. ‘장원영 언니’처럼 마르고 가냘픈 몸이 되기 위해 매일 고민한다. 아침은 가볍게 패스, 학교 급식은 반찬만 깨작거린다. 저녁은 방울토마토나 오이처럼 살찌지 않는 과채류를 소량만 섭취한다. 키 156cm에 50kg으로 보기 좋은 체형을 유지하던 하연 양은 현재 체중을 45kg까지 줄였음에도 ‘옷발’을 세우려면 살을 더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아하던 떡볶이며 마라탕이 먹고 싶을 땐 ‘연예인 극세사 몸매’ ‘다이어트 자극 짤’ 등을 검색하며 독하게 의지를 가다듬는다.

취재를 위해 카페에 들어 선 하연 양은 또래보다 훨씬 앙상한 모습이었다. 볼살이 실종된 홀쭉한 얼굴에 팔과 다리는 부러질 듯 말랐고, 허리는 종잇장 같이 얇았다. 하연 양에게 음료를 권하자 “칼로리 높은 음료가 많다”라며 망설임 없이 0kcal인 페퍼민트 차를 주문했다. 함께 시킨 딸기 케이크는 쳐다만 볼 뿐 손도 대지 않았다.

하연 양의 어머니 김현정(가명) 씨는 아이가 댄스 챌린지 영상을 자주 접하면서 마른 몸에 대한 집착이 시작됐다고 했다. “춤 선이 예쁘려면 말라야 한다” “춤출 때 팔뚝 살이 출렁거리는 게 보기 싫다”며 매일 굶다시피 끼니를 해결한다는 것. 그는 “체력이 떨어지는지 전보다 아침에 더 힘들게 일어난다”며 “가끔 폭식을 하고 일부러 토하는 것 같아 너무 걱정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각종 커뮤니티에 자신의 키와 몸무게를 올려놓고 ‘뚱뚱하다’ ‘괜찮다’는 피드백을 기다리는 청소년들도 있다. 심할 경우 몇 년 전부터 화제가 된 프로아나에 관심을 갖거나 프로아나족이 되기도 한다. 프로아나는 찬성을 뜻하는 프로(pro)에 거식증(anorexia)을 더해 만든 신조어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체중을 감량하는 이를 일컫는다. 그들은 쇄골,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몸매를 선호하는데, 이를 ‘뼈말라’로 칭하며 자신도 뼈말라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키에서 몸무게를 뺀 수치가 125 이상이면 뼈말라, 120 이상이면 개말라로 칭하는 등 나름의 명확한 기준도 있다. 키가 168cm일 경우 뼈말라는 43kg, 개말라는 48kg이어야 한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8년 8517명이던 섭식장애 환자가 2022년 1만2714명으로 불과 4년 만에 50%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기할 점은 10대 이하 여성 거식증 환자가 2018년 275명에서 2022년 1874명으로 7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이는 모든 연령 중 증가폭이 가장 컸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2022년 9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소아·청소년 62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아(6~11세)의 1%, 청소년(12~17세)의 2.3%가 섭식장애를 앓고 있으며, 이 중 섭식장애를 앓는 여성 청소년 비율이 3%로 가장 높았다.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이 몸매, 다이어트, 뼈말라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은 왜 마른 몸을 찬양할까? 많은 전문가가 미디어의 영향을 지적한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등에 등장하는 여리여리한 몸매의 소유자들이 미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 당장 뉴스를 검색해봐도 그렇다. 아름답고 날씬한 연예인들의 기사에는 약속이나 한 듯 ‘극세사 다리’ ‘부러질 듯한 팔뚝’ ‘종잇장 몸매’ 등의 수식이 따라붙는다. SNS상에서 유행하는 챌린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레깅스를 입고 허벅지 사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증명하는 ‘레깅스 레그 챌린지’를 비롯해 A4 용지로 허리 가리기, 이어폰 줄로 허리 묶기 등 마른 몸을 과시하는 콘텐츠가 즐비하다.

거식 행위 권하고 독려하는 프로아나의 세계

마르고 가냘픈 아이돌 몸매가 되기 위해 뼈말라 다이어트를 하는 청소년들. 체중감량에 도움을 준다는 마약류 독성물질인 디에타민 불법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르고 가냘픈 아이돌 몸매가 되기 위해 뼈말라 다이어트를 하는 청소년들. 체중감량에 도움을 준다는 마약류 독성물질인 디에타민 불법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다.

뼈말라에 매료된 학생들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이어간다. 특히 스스로를 ‘프아러’로 지칭하는 프로아나들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충격적이다. 6개월 이상 ‘교복 프아(청소년 프로아나)’로 활동하고 있는 17세 채지원(가명) 양은 트위터에서 만난 프아러들과 교류하며 나름의 노하우를 습득했다. gw(goal weight·목표 체중), cw(current weight·현재 체중), 조이다(굶는다), 무쫄(무식하게 쫄쫄 굶는다) 등의 전문(?)용어는 물론이고 체중감량에 효과가 있는 변비약이나 이뇨제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피자를 씹뱉(씹고 뱉기) 하면서 약간의 현미밥을 챙겨 먹으면 위장 장애 예방에 도움이 되고, 먹토(먹고 토하기)를 할 때 색깔 있는 음식을 곁들이면 내용물을 다 게워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프아러들에게 배웠다. 지원 양은 “먹토를 오래 해 이가 상하고 침샘이 비대해졌지만 괜찮다”며 “체중이 내려가면서 교복 핏이 예뻐진 것 같아 거울 볼 맛이 난다”고 말했다.

지원 양과 함께 프아러 생활을 하고 있는 17세 이미영(가명) 양은 자신을 “키 166cm에 체중 47kg의 돼지”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원 양에게 체중감량 방법뿐 아니라 엄마에게 들키지 않는 법, 음식 티 안 나게 조금 먹는 법 등의 꿀팁을 전수해줬다. 미영 양은 “이 모든 정보는 SNS를 통해 배웠다”며 “배고플 땐 먹어라. 대신 핸드폰 기본 카메라를 켠 뒤 카메라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 못생긴 얼굴로 먹는 모습을 보면 너무 역겨워서 음식을 다 토하게 된다는 것. “이는 프아러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프로아나족은 서로의 거식 행위를 독려한다. 미영 양은 “태초에 마른 사람은 거의 없다. 체질은 다 바뀐다. 내가 아는 프로아나 친구는 62kg에서 37kg까지 빼고 뼈말라를 유지 중이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뼈말라를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 “누구나 뼈말라가 될 수 있다”며 기자에게 뼈말라 다이어트를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식욕을 억제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씹뱉, 먹토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며 이를 약물로 막기 위한 위험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식욕억제제 복용’이다. 현재 여러 병원에서 체중감량에 도움을 주는 약들이 처방되고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일명 ‘나비약’으로 불리는 디에타민이다. 이는 마약류 독성물질로 중추신경계에 자극을 줘 음식을 적게 섭취하게끔 도와준다. 효과가 뛰어나지만 장기 복용 시 환각이나 불면증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어 처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실제 의존성이나 내성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폐동맥고혈압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염려도 크다. 따라서 16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애초에 처방이 불가능하다.

나비약을 찾는 청소년들을 표적으로 온라인상에서는 은밀한 불법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실제 나비약을 자신 또는 타인 명의로 처방받은 뒤 SNS상에서 판매하다 구속된 사례가 있었으며, 매 건에 10대가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주로 애용한다는 X(옛 트위터)에 접속해 디에타민, 졸피템 등을 검색하자 “댈구(대리구매) 구합니다” 같은 글이 종종 보였다. 하지만 감시가 삼엄해 진 탓인지 ‘직접 약을 판매하겠다’는 메시지는 거의 없었다. 결과적으로 직접 약을 구입하진 못했지만 사람들의 상세한 후기를 읽다 보니 나비약에 대한 미묘한 호기심이 생기는 건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협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청소년기에 이뤄지는 비정상적인 다이어트는 여러 면에서 악영향을 준다. 김소연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거식증은 정신과 질환 중 사망률이 가장 높다”며 “전해질 이상으로 인한 부정맥, 실신은 물론이고 백혈구감소증, 혈소판감소증, 빈혈 등으로 인해 면역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종, 골다공증, 생리불순, 성장 부진, 피부 트러블, 탈모 등 여러 증상을 동반하게 될 염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 전문가 상담은 반항심 부추길 수도 주변 관심으로 해결해야

거식증에 걸리면 뇌로 가는 영양이 부족해진다. 이로 인해 명료한 사고가 어려워져 체중이나 체형에 집착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김 교수는 “거식증이 심해지면 우울이나 불안 같은 정서적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홍콩에 거주하는 15세 여학생이 다이어트 집착으로 체중을 25㎏까지 감량하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학생은 약 50일 동안 물만 섭취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뼈말라에 집착하는 청소년들도 거식증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거식증은 건강을 해치는 ‘병’이지만 자신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주위의 관심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마른 몸매를 좋아하면서 프로아나 방법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내 몸이니 관심 좀 꺼줬으면 좋겠다” “몸이 상해도 뼈말라 인간으로 살고 싶다” 등 주변의 조언과 관심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프로아나 현상을 주위의 보살핌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프로아나 대부분은 치료를 거부한다. 병원을 찾거나 상담을 하는 등 원칙적인 방법보다는 가족 또는 친구가 치료를 권하는 등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뼈말라 #개말라 #프로아나 #다이어트 #여성동아

사진 언스플래시 
사진제공 스타쉽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사진출처 X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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