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볼 수 없었던 독보적인 친자연주의 콘셉트의 릴스. 방송국과 연예인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도 활발한 컬래버 촬영을 이어간다.
본업은 소 키우는 농부이자 3남매의 엄마. 김선 씨는 지난해 1월 ‘소녀감성으로 살기’라는 채널명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열었다. 개설 1년여 만에 각각 구독자를 약 6만3000명, 4000명을 모았고 조회수 1000만 이상 릴스도 속속 탄생시켰다. 주목할 점은 구독자의 대다수가 MZ세대라는 점. 스스로를 ‘평범한 시골 아줌마’라고 부르기가 무색할 정도로 이미 1020 세대 사이 김선 씨는 유명인이다. 올 1분기 가장 핫한 유행어인 ‘◯◯ 감성 모르면 나가라’ 밈을 활성화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선 씨의 댓글 창은 ‘김선 감성 모르면 나가라’는 밈으로 수백 개씩 도배된다. 무례한 댓글이 아니다. 김선 씨만의 감성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하겠다면 이 피드에서 나가달라는 정중한(!) 요청이다.
비단 소수만의 취향도 아니다. KBS ‘개그콘서트’, 방송인 유병재, 배우 남보라 등 방송국부터 연예인들까지 김선 씨에게 러브 콜을 보내왔다. 개그우먼 안영미는 그를 따라 하는 영상을 올렸고, 모델 정혁은 김선 씨의 집을 방문해 함께 ‘소녀 감성’으로 릴스를 촬영했다. 김선 씨의 소녀 감성이 처음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모은 것은 아니다. 식물을 다소 기상천외하게 활용하는 모습이 과연 콘셉트인지 진실인지 공방이 일어나기도 했다. 혼란스러워하며 ‘대체 왜 이러느냐’는 반응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보여주기식 일상이 판을 치는 SNS에서 김선 씨만의 무해한 감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그는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부엌을 정원처럼 꾸미고, 소녀풍의 원피스가 좋아서 직접 만들어 입는다. 나이 혹은 타인의 시선을 이유로 망설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세상에서 마음껏 자신의 취향을 누리는 모습은 여러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네티즌들은 “정형화된 사회 속에서 찾은 작고 소중한 보물 같다” “웃기지만 우스운 사람은 아니다” 등 응원의 목소리를 보낸다.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로 불리는 타샤 튜더는 30만 평의 대지에 정원을 일군 가드닝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자연주의 삶의 아이콘으로서 ‘타샤 튜더 나의 정원’ ‘비밀의 화원’ 등을 출간했다.
다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 체면을 차리고, 늘 이성적으로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저는 나이 많은 아줌마지만 마음만큼은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거든요(웃음). 작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예쁘고 귀여운 게 마냥 좋아요.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처럼 유치한 감성도 좋아하고요. 10대나 20대가 아니라도 소녀 감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타샤 튜더’가 롤 모델이라고요.
꽃밭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저도 늘 문명을 떠나 인디언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지난 20년 동안은 농사일이 바빠서 정원을 가꾸거나 집을 원하는 대로 꾸밀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야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부엌을 제가 동경해온 스타일로 바꿨어요. 과감히 뜯어 고치고 곳곳에 식물을 들여와서 정원처럼 만들었죠. 자연을 부엌으로 옮겨오니까 늘 카페에 있는 기분입니다. 특별한 곳에 가지 않아도 여기서 요리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진짜 소녀 시절 김선 씨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학교를 못 가고 열네 살 때부터 공장에 다녔는데, 솔직한 마음으론 연예인이나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도 옷을 직접 만든다고요.
10대 때부터 미싱 일을 해오면서 옷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결혼하고 아이 키우느라 생활이 바빠지면서 따로 옷을 짓지는 못했지만 가벼운 소품들은 하나둘 만들었죠. 그러다가 10년 전부터 여유가 조금 생기면서 한복 공방에서 옷 짓는 법을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농사일이랑 집안일을 끝내고 나면 저녁 시간 내내 미싱을 돌렸어요. TV도 안 보고 옷만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 가끔 네이버 밴드의 ‘옷 만들기’ 그룹에 제가 직접 만든 옷 사진이나 간단한 영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원래 SNS를 했군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었어요. 유튜브도 그때 같은 그룹에 있던 한 선생님이 해보라고 권유하셔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 선생님께서 직접 전남 화순까지 와서 유튜브 영상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셨죠. 배워놓고도 막상 실천에 옮기진 못하고 1년을 보냈는데, 유튜브를 해보라고 또 연락이 왔습니다. 세 번이나 말씀 주신 만큼 이번에는 정말 해보자고 결심하고 영상을 올렸던 게 지난해 1월이었어요.
처음에는 유튜브가 중심이었네요.
솔직히 인스타그램은 큰 기대를 안 했습니다. 초창기만 해도 유튜브 구독자는 수백 명이었는데 인스타그램은 인기가 전혀 없었어요. 유튜브에 쇼츠를 올리면서 인스타그램에 릴스로 겸사겸사 올리는 정도였죠. 특히 릴스는 글로벌하게 인기 있는 노래들을 자유롭게 배경 음악으로 활용할 수 있잖아요. 인스타그램은 좋은 노래를 듣는 용이었어요. 외국인들이 올리는 릴스를 보고 있으면 세계여행을 다니는 기분도 들었고요. 인스타그램이 지금처럼 ‘떡상(급상승이라는 뜻의 인터넷 속어)’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인스타그램이 인기를 끈 계기는 무엇인가요.
영상 편집을 가르쳐주신 또 다른 선생님이 계신데요. 그 선생님께 대체 왜 조회수가 이렇게 안 나오냐고 여쭤봤어요.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쇼츠는 길면 조회수가 안 나온다고, 더 짧게 끊어서 올려보라고 하더라고요. 이전까지는 쇼츠도 딱 60초에 맞춰서 올렸거든요. 반신반의하며 “비자나무? 피자나무?”라고 말하는 장면만 찍은 6초짜리 영상을 업로드했어요. 그런데 노래도 넣지 않고 한마디만 말한 그 영상이 대박 났죠. 그때부터는 짧은 영상을 위주로 올리고 있어요.
전복 선글라스, 포도 모자 등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요.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그때그때 시장에서 채소를 사거나, 요리하다가 아이디어가 스쳐가죠. 처음 영상을 업로드한 날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영상을 올리면서 노하우가 생기기도 했고요.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부분들이 막 떠올라요.
영상 촬영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꽤 많이 걸려요. 운 좋게 한 번에 촬영이 끝나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는 수십 번씩 반복해서 촬영해요. 말투도 더 부드럽게 하고 실수 없이 말하려다 보니 똑같은 문장을 계속 연습하고요. 말은 똑바로 했는데 얼굴 표정이 밉게 나와서 다시 찍을 때도 많아요. 그렇게 수차례 찍은 영상들 가운데 딱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시간이 걸리죠.
소녀 감성이어도 멘털은 ‘강철’
희화화된 모습 뿐만 아니라 김선 씨에게는 ‘진짜’ 소녀감성이 내재돼 있다.
주제를 가리지는 않는데, 주로 외국 계정을 봐요. 하루에 2~3시간씩 계속 보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릴스에 사용하는 노래나 촬영 방법을 공부했어요. 똑같이 따라 해보기도 하면서 감각을 익히려고 노력했죠. 그 자체가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너무 재미있어요. 제가 약간 ‘연예인병’이 있거든요(웃음).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 자체가 연예인이 된 기분이라서 너무 즐겁고 지치지도 않아요.
가장 마음에 드는 본인 영상은 무엇인가요.
초창기에 찍은 60초짜리 쇼츠들을 좋아해요. 그때는 하루 종일 고민해서 옷부터 꽃까지 가장 예쁜 것들로 골랐고, 음악도 고심해서 선정했죠. 정성을 들인 영상들이 잘되면 좋겠는데, 그것보다는 덜 열심히 만든 몇 초짜리 영상이 뜨는 걸 보면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웃음).
남편은 출연하실 생각이 없나요.
남편이 원래 스타예요.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도 탔고, 말도 정말 재미있게 하거든요. 아마 남편이 릴스 찍으면 대박 날 거예요. 그래도 같이 할 생각은 아직 없어요. 이미 저는 혼자 찍는 콘셉트라서 갑자기 같이 찍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아서요.
SNS의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죠. 비록 영어는 못 하지만 릴스로 최신 팝송도 듣고 요즘 인기 있는 노래 흐름도 알게 되고요. 해외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것도 너무 좋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영상을 세련되게 찍는지도 알 수 있고요. 주어진 일과대로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것을 보고 또 배우면서 생각도 많이 열립니다.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저는 SNS에서 인생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일찍 SNS를 시작하지 않은 게 아쉬울 것 같아요.
아깝지만 어떡하겠어요. 여건이 안 되고 기회가 없으니 순리대로 살아왔죠. 나름대로 즐겁게 살다가 언젠가 기회가 오면 그때 펼쳐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회가 안 온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온다면 정말 멋지게 펼쳐보겠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왔네요.
기회가 안 와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어쩔 수 없죠.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만족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실은 몇 년 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제가 옷 만드는 걸 보면서 “언젠가 성공하겠다”고 말해줬어요. 은근히 기대감을 키웠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기회가 전혀 없었죠. 끝내 평범한 시골 아줌마로 살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웠어요.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노력하면 운 좋게 누군가 알아봐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계속 연마했어요.
멘털이 강하세요.
강한 편인 것 같아요(웃음). 그렇지 않으면 자꾸 비참해지니까요. 남들이 저보고 손재주가 좋다고 하는데, 써먹지도 못하고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이 속상했죠. 노력해도 세상에 보일 기회가 제게만 안 주어지는 것 같아서 서럽고요. 이런 생각에 빠져들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주문을 외웠어요. 영화 속 슬프고 힘들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언젠가 마법처럼 공주로 바뀌는 것을 상상하면서, 저 역시 영화배우처럼 살고 있다고 되새겼어요. 지금은 가정주부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도 삶이 바뀌어서 멋진 인생을 살기를 기대하면서요(웃음).
지금의 ‘김선 소녀 감성’처럼요.
저는 절실했거든요. 기회가 오면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 기회가 드디어 왔잖아요. 그만큼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죠.
막상 기회가 와도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평생 무엇 하나 끝맺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며 살아왔어요. 그 세월이 한스러워서 스스로를 ‘멍청이’ ‘바보’라고 부르며 자책해왔죠. 그렇게 후회하다 보니까 마음이 너무 괴롭고 속된 말로 미쳐버리겠더라고요. 지금까지 포기하며 살았던 삶이 싫어서,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수백 번 다짐했어요. 하나를 선택했고, 또 시작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김선 감성 몰라도, 나가지 말아라
김선 씨의 SNS 댓글 갈무리.
아직 그렇게 소통이 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웃음). 제 감성 자체가 애들 같고 유치하다 보니까 통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일부러, 억지로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못 해요. 댓글 다는 아이들이랑 저랑 유치한 감성이 딱 맞는 거죠.
다소 무례하게 느껴지는 댓글도 있습니다.
“병원에나 가라” 이런 댓글을 보면서 처음에는 속상했죠. 그런데 그렇게 댓글 다는 사람은 저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해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김선 감성 모르면 나가라’ 밈을 처음 봤을 때 어땠나요.
들어오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왜 나가라고 하는지 황당했죠. ‘나가라’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지내다가, SNS로 알게 된 젊은 지인이 한번은 저한테 묻더라고요. 사람들이 댓글로 ‘김선 감성 모르면 나가라’를 시그니처로 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MZ세대에 대해 잘 모르니까 “왜 자꾸 나가라고 하는 건지 기분 나쁘다”고 말했는데 차근차근 이해시켜주더라고요. 나쁜 뜻이 아니고 김선만의 감성을 이해 못 하고 못 받아들이겠는 사람은 이 채널에서 나가라는 의미라고요. 긍정적인 뜻이라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는 저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최근 방송사와 연예인 유튜브 채널의 러브 콜이 많습니다. 어떤가요.
다들 알아주시니까 솔직한 마음에 좋기는 하죠. ‘내가 그 정도가 되나’ 싶어 의아하고 믿어지지 않기도 하면서 인정해주는 분들이 있으니까 기분은 좋고요. ‘스타는 평소에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김선 감성’이 희화화되는 점이 걱정스럽지는 않나요.
영상을 세상 밖으로 보인 이상 제 손을 떠난 거예요. 영상을 찍을 때까지만 제 감성으로 만족하고 끝나는 것이지, 그 영상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니까요. 제가 통제할 수도 없고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아니고요. 이미 제 힘 밖의 일이니까 신경 안 써요.
유명해질수록 인기가 식을까 봐 걱정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제가 탤런트나 영화배우가 아닌 이상 언제까지 인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안 하죠. 아무리 소녀 감성으로 산다고 한들 나이가 많기도 하고요. 그때가 되면 서운한 감은 약간 있겠지만 받아들이고, 저는 저대로 또 살아가는 거죠. 부정적으로는 생각 안 하려고 해요. 지금 이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하니까 쓸데없는 데 제 감성을 써서 에너지를 빼고 싶지도 않고요. 그동안 힘들게, 역경 속에서 살아왔던 인생이 너무 슬프고 싫어서 그보다 수백 배 더 행복하고 아름답게 제 삶을 꾸려가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더 하고 싶나요.
원래 자원봉사나 재능 기부에 관심이 많았는데 여유가 없어서 못 했어요. 음악으로 봉사하고 싶었지만, 악기 연습도 해야 하고 시간도 없었고요. 앞으로는 어디서든 부담 없이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악기 연습도 더 하고, 수익화가 되면 기부도 많이 하고 싶어요. 젊은 친구들에게 이런 작은 감성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우리는 귀중한 존재라는 긍정 마인드도 많이 알리고 싶어요.
#소녀감성 #김선 #여성동아
사진출처 김선 인스타그램 네이버 영화 ‘유병재’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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