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빠였어. 제대로 해주진 못했어도 그래도 6년 동안 아빠였어.”
료타는 6년간 키운 아들 케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야 자신이 돼먹지 못한 아버지였음을 고백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묻는다. 과연 가족은 주어지는 것인가.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성동아’가 만난 여섯 모양의 가족은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됐다”고 말한다. 한일 커플은 국경을 뛰어넘어 결혼하기 위해, 입양 가족은 내가 낳지 않은 아이와 가족이 되기 위해 수십 장의 서류를 정부에 제출했다. 네 자매는 “언젠가 같이 살자”는 어릴 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남편을 비롯해 15명의 동의를 구했다. 수많은 난관을 뚫었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가족이 되지 못한 레즈비언 커플과 그 딸도 있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사돈지간이 함께 사는 가족), ‘일상과 마음을 나눌 존재’(네 자매 가족), ‘함께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이민 가족),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레즈비언 커플) 등 각각 정의하는 가족은 다르지만 마음은 어딘가 닮아 있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언젠가 꼭 다시 같이 살자.” 결혼 전까지 함께 살던 네 자매는 한 명씩 결혼할 때마다 이런 약속을 했다. ‘언젠가’라는 공수표에 머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뿔뿔이 흩어진 지 꼭 15년 만에 다시 모였다. 경기도 파주시의 조용한 동네에 각자의 남편과 자녀들까지 15명이 함께 살 집을 지은 것. 4층 상가주택을 지어서 1층에는 목공방과 가족실을, 2층부터 다락까지는 네 가족이 각각 살아갈 집과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옥상 바비큐 공간을 만들었다. 함께 살 집을 처음 제안한 정수정 씨는 “집을 팔아서 돈을 번다거나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한다면 이렇게 살면 절대 안 된다”며 “우리는 오직 함께 잘 늙어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같이 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네 가족이 이뤄낸 또 하나의 가족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15년 만에 다시 자매들이 모여 사니 어떤가요.
스무 살에 상경해 결혼 전까지 10여 년을 같이 살아서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각자 가정이 생기면서 달라진 점도 많더라고요. 그래도 함께 살면서 새롭게 맞춰가야 하는 불편함보다는 긍정적인 점이 훨씬 많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같이 키울 때 이점이 커요. 지금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7명이 있는데 서로 친형제자매나 다를 바 없이 어울려 놀아요. 요즘은 형제가 하나둘 있다고 해도 외동처럼 자라기 쉬운데 어릴 때부터 공동체 의식을 기를 수 있어서 좋죠. 사춘기가 오더라도 가족들이 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비교적 평온하게 넘어가더라고요. 맞벌이 가족 경우에는 집에 아이를 두고 출근해도 안심할 수 있고요.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 있으면 서로 비교당해서 힘들어하지 않냐는 말도 들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이 차이가 나기도 하고, 저희 교육관 자체가 공부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주의라 크게 걱정할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비교하려면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하지 않을까요.
남편들은 불편해하지 않았나요.
다 함께 살자는 말을 꺼낸 지 일주일 만에 식구 15명이 모두 동의했어요. 사실 셋째, 넷째 제부는 동생들과 대학생 때부터 연애해서 오래전부터 봐왔어요. 2002년 월드컵 때도 다 같이 모여서 응원할 정도로 친했죠. 저와는 서로 누나 동생 하면서 잘 지냈기에 오죽하면 “내 동생이랑 헤어지더라도 결혼식에는 가겠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어요(웃음). 다들 결혼하고 나서도 식구끼리 여행도 종종 다니면서 오랫동안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 사는 일이 성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남편들도 본인끼리 골프 연습장에 다녀오거나 여행을 갈 정도로 사이가 좋아요. 지방 출장이 잦은 제부는 아내와 아이들만 집에 남겨두는 것보다 안심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살면서 생기는 갈등은 어떻게 해소하나요.
우선 자매들끼리는 함께 살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같이 살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예상하고 대책을 철저히 세웠어요. 쓰레기 버리는 당번이나 주차 자리 등 사소한 것들부터 규칙을 꼼꼼하게 만들었죠. 무엇보다도 ‘내가 좋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게 아니다’라는 원칙을 확고히 세웠어요. 함께 살기 전에 서로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솔직히 터놓고, 꼭 지켜주기로 합의했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성향에 대해서도 깊이 얘기를 나눴는데요. 어떤 활동을 할 때 우리 식구끼리만 하고 싶은 가족도 있고, 다른 식구들이 참여하는 걸 좋아하는 가족도 있죠. 이에 대해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인지했기 때문에 배려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매번 잘 굴러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집마다 차가 한두 대씩 있다 보니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이중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해요. 주차 자리만 세 번 바꿨고, 이제는 1층에다가 차 키를 놔두고 필요하면 다른 사람 차를 직접 빼기도 해요. 사실 이는 가족끼리 함께 살아서 생기는 문제라기보다는 공동주택에 살면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일이죠. 다행히 대화를 통해 조율하고 아직은 큰 갈등을 겪은 적은 없어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네 자매가 먼저 모여서 이야기를 해요. 저희는 ‘피붙이’니까 대화하다가 갈등이 생겨도 이해할 수 있죠. 논의 안건이 정리되면 다른 가족들과도 의견을 나눕니다.
가족 간에 거리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한데요.
물론이에요. 다만 그 ‘거리’가 물리적인 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네 가족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문만 잠그면 다들 따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거든요. 다 같이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항상 함께하려 들지도 않고, 각자의 독립된 공간을 함부로 침범하지도 않아요. 각 가족의 삶, 더 좁게는 부부와 개개인의 삶을 서로 존중하죠. ‘따로 또 같이’도 실천하려고 하는데요. 지난해에는 제가 중고등학생 아이들만 데리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어요. 옥상에서 바비큐를 한다고 하면 시간 되는 사람만 올라와서 같이 먹는 식이고요.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해요.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작년에 제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제부는 외롭고 허한 마음이었는데 대가족이 모여 곁에 머물러주고 위로해줘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가족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해주고 즐거워하는 관계를 넘어서,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가장 든든한 존재예요. 사실 꼭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더라도 공유 주택이나 협동조합식으로 여럿이 함께 사는 주거 형태도 좋은 것 같아요.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는 적극 추천드려요.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고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만약 잘 안 맞아서 나오더라도 인간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일상과 마음을 함께 나눌 존재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네자매의집 #여성동아
사진제공 정수정
료타는 6년간 키운 아들 케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야 자신이 돼먹지 못한 아버지였음을 고백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묻는다. 과연 가족은 주어지는 것인가.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성동아’가 만난 여섯 모양의 가족은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됐다”고 말한다. 한일 커플은 국경을 뛰어넘어 결혼하기 위해, 입양 가족은 내가 낳지 않은 아이와 가족이 되기 위해 수십 장의 서류를 정부에 제출했다. 네 자매는 “언젠가 같이 살자”는 어릴 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남편을 비롯해 15명의 동의를 구했다. 수많은 난관을 뚫었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가족이 되지 못한 레즈비언 커플과 그 딸도 있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사돈지간이 함께 사는 가족), ‘일상과 마음을 나눌 존재’(네 자매 가족), ‘함께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이민 가족),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레즈비언 커플) 등 각각 정의하는 가족은 다르지만 마음은 어딘가 닮아 있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언젠가 꼭 다시 같이 살자.” 결혼 전까지 함께 살던 네 자매는 한 명씩 결혼할 때마다 이런 약속을 했다. ‘언젠가’라는 공수표에 머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뿔뿔이 흩어진 지 꼭 15년 만에 다시 모였다. 경기도 파주시의 조용한 동네에 각자의 남편과 자녀들까지 15명이 함께 살 집을 지은 것. 4층 상가주택을 지어서 1층에는 목공방과 가족실을, 2층부터 다락까지는 네 가족이 각각 살아갈 집과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옥상 바비큐 공간을 만들었다. 함께 살 집을 처음 제안한 정수정 씨는 “집을 팔아서 돈을 번다거나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한다면 이렇게 살면 절대 안 된다”며 “우리는 오직 함께 잘 늙어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같이 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네 가족이 이뤄낸 또 하나의 가족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네 자매가 함꼐 사는 집 ‘다정가’ 건축모형(왼쪽)과 실제 전경.
스무 살에 상경해 결혼 전까지 10여 년을 같이 살아서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각자 가정이 생기면서 달라진 점도 많더라고요. 그래도 함께 살면서 새롭게 맞춰가야 하는 불편함보다는 긍정적인 점이 훨씬 많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같이 키울 때 이점이 커요. 지금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7명이 있는데 서로 친형제자매나 다를 바 없이 어울려 놀아요. 요즘은 형제가 하나둘 있다고 해도 외동처럼 자라기 쉬운데 어릴 때부터 공동체 의식을 기를 수 있어서 좋죠. 사춘기가 오더라도 가족들이 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비교적 평온하게 넘어가더라고요. 맞벌이 가족 경우에는 집에 아이를 두고 출근해도 안심할 수 있고요.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 있으면 서로 비교당해서 힘들어하지 않냐는 말도 들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이 차이가 나기도 하고, 저희 교육관 자체가 공부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주의라 크게 걱정할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비교하려면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하지 않을까요.
남편들은 불편해하지 않았나요.
다 함께 살자는 말을 꺼낸 지 일주일 만에 식구 15명이 모두 동의했어요. 사실 셋째, 넷째 제부는 동생들과 대학생 때부터 연애해서 오래전부터 봐왔어요. 2002년 월드컵 때도 다 같이 모여서 응원할 정도로 친했죠. 저와는 서로 누나 동생 하면서 잘 지냈기에 오죽하면 “내 동생이랑 헤어지더라도 결혼식에는 가겠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어요(웃음). 다들 결혼하고 나서도 식구끼리 여행도 종종 다니면서 오랫동안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 사는 일이 성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남편들도 본인끼리 골프 연습장에 다녀오거나 여행을 갈 정도로 사이가 좋아요. 지방 출장이 잦은 제부는 아내와 아이들만 집에 남겨두는 것보다 안심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다 같이 지내는 일상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다정가’에서의 나날.
우선 자매들끼리는 함께 살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같이 살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예상하고 대책을 철저히 세웠어요. 쓰레기 버리는 당번이나 주차 자리 등 사소한 것들부터 규칙을 꼼꼼하게 만들었죠. 무엇보다도 ‘내가 좋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게 아니다’라는 원칙을 확고히 세웠어요. 함께 살기 전에 서로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솔직히 터놓고, 꼭 지켜주기로 합의했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성향에 대해서도 깊이 얘기를 나눴는데요. 어떤 활동을 할 때 우리 식구끼리만 하고 싶은 가족도 있고, 다른 식구들이 참여하는 걸 좋아하는 가족도 있죠. 이에 대해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인지했기 때문에 배려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매번 잘 굴러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집마다 차가 한두 대씩 있다 보니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이중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해요. 주차 자리만 세 번 바꿨고, 이제는 1층에다가 차 키를 놔두고 필요하면 다른 사람 차를 직접 빼기도 해요. 사실 이는 가족끼리 함께 살아서 생기는 문제라기보다는 공동주택에 살면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일이죠. 다행히 대화를 통해 조율하고 아직은 큰 갈등을 겪은 적은 없어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네 자매가 먼저 모여서 이야기를 해요. 저희는 ‘피붙이’니까 대화하다가 갈등이 생겨도 이해할 수 있죠. 논의 안건이 정리되면 다른 가족들과도 의견을 나눕니다.
가족 간에 거리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한데요.
물론이에요. 다만 그 ‘거리’가 물리적인 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네 가족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문만 잠그면 다들 따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거든요. 다 같이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항상 함께하려 들지도 않고, 각자의 독립된 공간을 함부로 침범하지도 않아요. 각 가족의 삶, 더 좁게는 부부와 개개인의 삶을 서로 존중하죠. ‘따로 또 같이’도 실천하려고 하는데요. 지난해에는 제가 중고등학생 아이들만 데리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어요. 옥상에서 바비큐를 한다고 하면 시간 되는 사람만 올라와서 같이 먹는 식이고요.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해요.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작년에 제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제부는 외롭고 허한 마음이었는데 대가족이 모여 곁에 머물러주고 위로해줘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가족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해주고 즐거워하는 관계를 넘어서,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가장 든든한 존재예요. 사실 꼭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더라도 공유 주택이나 협동조합식으로 여럿이 함께 사는 주거 형태도 좋은 것 같아요.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는 적극 추천드려요.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고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만약 잘 안 맞아서 나오더라도 인간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일상과 마음을 함께 나눌 존재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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