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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정후‧오타니… 세계 최고 스포츠 스타 만든 ‘품성 교육’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4. 05. 01

일본 야구를 넘어 미국 야구에서도 신화를 쓰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 그에 도전장을 던진 ‘바람의 손자’ 이정후, 아시아 축구 역사에서 최초·최고·최다의 기록을 끊임없이 경신하고 있는 손흥민. 이들이 세운 성공의 이면에는 재능보다 더 단련된 품성이 있다.

오타니 쇼헤이, 손흥민, 이정후 (왼쪽부터)

오타니 쇼헤이, 손흥민, 이정후 (왼쪽부터)

“자녀가 성공하길 원한다면, 수학 점수 대신 품성 기량을 높여주라.” 뻔하고 진부하게 들리는 이 조언은 최근 심리학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와튼 스쿨 애덤 그랜트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신간 ‘히든 포텐셜: 성공을 이루는 숨은 잠재력의 과학’에서 “재능이나 자질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며,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 안에 숨은 잠재력을 발굴하고 키워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며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품성 기량’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랜트 교수가 정의하는 품성이란 본능보다 가치를 우선시하는 역량이다. 쉽게 말해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를 품성이라고 보는 것. 품성을 이루는 요소로는 자주적으로 묻고 답을 제시하는 ‘주도력’, 또래와 잘 어울리고 협력하는 ‘친화력’, 수업을 경청하며 딴짓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자제력’, 끊임없이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결의’를 언급했다.

이 4가지를 통해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 일을 미루지 않는 습관, 실수를 인정하고 극복할 방법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이런 품성 교육의 성공 사례가 바로 오타니 쇼헤이와 이정후 그리고 손흥민이다.

실력과 인성 모두 갖춘
오타니 쇼헤이를 키운 교환 일기

오타니 쇼헤이(30)는 LA 다저스와 10년 계약, 7억 달러(약 9700억 원)에 사인하며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고 연봉자로 등극했다. 베이브 루스 이후 104년 만에 등장한 투타 겸업 선수, 놀라운 피지컬과 준수한 외모에 겸손한 성품까지 갖춰 ‘유니콘’이라고 불린다. 오타니의 성공 비결은 그가 받은 가정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오타니의 부모는 “(오타니를) 특별하게 길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지만, 인격과 품성 교육에 힘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KBO 공식 추천 도서인 ‘인생은 오타니처럼’에 따르면, 오타니 부모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한 원칙은 8가지 정도다. 아이들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다, 꾸짖거나 화내지 않는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즐겁게 시킨다, 최대한 열심히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집으로 야구를 가져오지 않는다, 가족들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다, 교환 일기를 쓰게 한다,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가 바로 그것.



부부 싸움은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 소리를 지르는 부모 밑에서는 자녀도 쉽게 소리를 지르게 된다. 아이를 혼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오타니의 어머니 도오루 씨는 “오타니를 혼냈던 기억은 딱 한 번 정도”로 기억한다. 유치원 들어갈 무렵에 아끼던 해리 포터 공책이 구겨지자 “누가 그랬냐”며 화를 내는 아들에게 “겨우 그 정도로 소리를 지르냐”고 꾸중한 일이다. 이런 일화를 통해 평소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오타니의 성품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오타니의 아버지는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최대한 즐겁게 시키고, 부모는 최대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힘썼다. 실제로 오타니의 아버지는 “네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야구를 하고 있으니, 게임하고 싶거나 놀러 가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고 아들을 가르치면서 본인은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어머니는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모습을 보이며 솔선수범했다. 야구가 잘되든 안되든 집으로 야구를 가져오지 않게 함으로써, 야구로 인해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한 것도 슈퍼스타 오타니가 생활인으로서 감각을 놓지 않게 한 비결. 대신 저녁 시간을 오래 함께 보냄으로써 가족이 주는 안정감을 체득하게 했다. 이처럼 인격과 품성에 대한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데 힘쓴 오타니의 부모가 야구와 관련해 가정에서 실시한 교육은 ‘교환 일기’ 정도라고 한다. 리틀야구단 감독인 아버지와 그날그날 훈련장이나 야구장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은, 잘된 부분은 꾸준히 유지하고 부족한 부분을 가다듬는 기회가 됐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된 점이 현재의 오타니를 만든 최고의 비법일 것이다. 누군가의 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점검하고 해결하며 대안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정에서부터 배워온 덕분에 세계 최고 슈퍼스타이면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생활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감독님 말씀대로”
야구 명문가, 바람의 패밀리 가훈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로 불리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으로 불리는 일이 더 잦아졌다. 바람의 아들보다 더 강력한 돌풍으로 성장한 ‘바람의 손자’ 이정후(26)는 청출어람의 가장 바람직한 예다. 다만 야구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는 게 아버지와 아들의 공통적인 말이다. 지난해 12월,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입단식 기자회견에서 이정후는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냐’는 기자의 질문에 “(야구에 대해) 직접적으로 배운 것은 없다. 하지만 인성이나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들을 배웠다. 잘할 때 선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배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실제로 이종범은 아들 이정후가 야구보다는 축구나 스케이트 같은 다른 운동을 하기를 바랐다고.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이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정후가 야구에 입문한 이후에는 ‘왼손으로 치라(좌타자가 돼라)’는 주문 이외에 직접적인 조언은 하지 않고 ‘감독님, 코치님 말씀 잘 들으라’는 태도를 꾸준히 유지했다고 회상한다. 이정후가 ‘누구의 아들’이라는 자만에 빠지지 않고 그때그때 배워야 할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정후 선수 가족. 이종범 품에 안겨 있는 꼬마가 이정후 선수다.

이정후 선수 가족. 이종범 품에 안겨 있는 꼬마가 이정후 선수다.

대신 이종범은 자신의 삶 자체로 이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해태 타이거즈 1차 지명, 정규시즌 MVP 1회, 한국시리즈 MVP 2회, 골든글러브 6회,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주장이라는 큰 족적을 남긴 이종범은 아들에게 이정표이자 목표가 됐다. 실제로 이정후는 2017년 KBO 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 1차 지명으로 역대 최초 1차 지명 부자(父子) 야구선수가 됐고, 이어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대표 팀으로 선발돼 한국 최초 부자 국가대표 야구선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21년에는 시즌 타율 3할 6푼을 기록하면서 타격왕으로 등극해 세계 최초 부자 타격왕에 올랐다.

아들이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 아버지의 인격교육 역시 훌륭하게 발현 중이다.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에피소드가 좋은 예다. 한 음식점에서 팬이 사인을 요청하자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한 이정후가 한참이 지난 후에 돌아와 사인해준 사건이다. 기다려준 팬에게 이정후는 “야구를 하다가 그만둔 친구들이 있어서 그 앞에서 사인해줄 수 없었다”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의 아들로서 받을 수 있는 특별대우를 배제하고 이정후 자신으로 홀로서기 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마음이 주변을 두루 배려하는 청년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선수이기 전에 사람이 먼저,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교육법

손흥민(32)의 기록은 아시아의 기록이 된다. 실제로 영국 축구팀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이 달성한 모든 기록 앞에는 ‘프리미어리그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득점왕, 최다 득점, 최다 도움, 최다 공격포인트, 최다 출장 등 자기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면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위대한 축구선수인 손흥민에게도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다. 아버지에게서 1:1로 축구를 배운 그는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식 교육법은 그의 자서전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엿볼 수 있다. 기본의 중요성을 수도 없이 강조한 손웅정 씨는 축구장 안팎에서 손흥민을 단련했다. 본인 역시 프로 축구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이른 나이에 은퇴한 탓에, 관절과 근육이 성장해야 하는 유소년기에는 손흥민이 슈팅 대신 패스나 드리블 연습 등에 매진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손흥민은 휴일이나 명절도 개의치 않고 매일 2시간씩은 꼭 볼을 다뤘고, 공과 몸이 하나처럼 느껴질 때까지 숱하게 반복연습을 했다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뛰며 솔선수범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양발을 모두 쓰기 위해 오른쪽 축구화의 혓바닥 부분(발등을 덮는 부분)에 압정을 꽂고 스스로 핸디캡을 설정했던 손웅정 씨의 ‘독기’를 물려받은 손흥민은 위협적인 양발잡이 선수로 단련됐다. 손흥민이 유독 많은 골을 만들어내 이른바 ‘손흥민 존’으로 불리는 페널티 박스 양쪽 코너에서의 슈팅 역시, 손웅정 씨가 선수 시절 골을 넣지 못했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훈련시킨 결과다.

필드 밖에서도 엄격한 아버지의 가르침은 꾸준히 이어졌다. “축구선수이기 전에 사람이 돼라”고 주문한 손웅정 씨는 “상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 아무리 골로 연결할 수 있는 좋은 찬스라도 공을 바깥으로 차내라”고 수없이 일렀다고. 스포츠맨은 ‘리스펙트’를 기반으로 하고, 함께 뛰는 선수를 존중하고 존경할 때 스포츠가 완성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그는 아들이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쉽게 만족하거나 안주할까 봐 끊임없이 경계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내 아들 손흥민은 절대로 월드 클래스 선수가 아니다”라고 말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자만심이 손흥민의 선수 생활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한 철벽 방어인 셈이다. 손흥민이 수상한 트로피나 매치볼, 금메달 등도 전시하지 않고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아들 손흥민이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오타니 #이정후 #손흥민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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