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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당신의 삶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스스로 부고를 쓰자

문영훈 기자

2023. 09. 05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제임스 R. 해거티 지음 / 정유선 옮김 / 인플루엔셜 / 1만8000원

“맵고 붉은 소뼈 육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찌개. 이희숙의 레시피는 남편에게도 비밀이었다. (중략) 그의 요리는 미국에서 하나의 문화현상이 됐다.”

2020년 8월 27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북창동 순두부를 운영했던 이희숙 대표의 부고 기사 중 일부다. 800단어 분량의 기사에는 이 대표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때부터 미국으로의 이주, 북창동 순두부를 소문난 프랜차이즈로 만든 삶이 요약돼 있다. 한국에서는 이름난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죽음을 다룬 무미건조한 부고가 일반적이지만 미국에서는 고인이 된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전하는 데 초점을 둔다.

제임스 R. 해거티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활동하는 부고 전문기자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자와 편집자로 일했다. 기자 생활의 후반부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는데, 타인의 죽음에 대해 쓰는 일이었다. 그는 관리직에서 벗어나 월스트리트저널 유일의 부고 전문기자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를 펴냈다. 책의 원제는 ‘Your Truly(진심을 담아)’. 대개 편지의 마지막에 쓰는 어구다. 자신 혹은 타인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나의 이야기라는 뜻일 것이다.

해거티는 “내 부고를 나보다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미리미리 자신의 부고를 쓰기를 권한다. 유명해도, 유명하지 않아도 모든 삶은 매력적이지만 타인이 쓰는 부고는 ‘노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 대해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해거티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자답게 그의 책은 매우 실용적이다. 스스로 부고를 쓰기 위해 되물어야 하는 질문, 디테일한 기록의 중요성, 글쓰기가 어렵다면 구술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 방법 등을 자세하게 서술한다. 부고 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썼던 다양한 부고의 사례도 소개한다. 이른바 좋은 부고, 나쁜 부고, 이상한 부고다. 그가 말하는 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죽음이 멀리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인생의 방향성을 재설정하고, 삶에 노을이 드리운 이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책은 다른 데 쓰이기도 좋다. 저자는 두 챕터에 걸쳐 부고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과 부고에 넣지 않기를 추천하는 내용을 설명한다. 전자는 기본적인 개인정보부터 초년의 관심사와 직업, 이름에 얽힌 사연, 가장 재밌었던 추억, 별난 생각과 불만거리 그리고 기이한 버릇 등이 포함된다. 후자는 자랑, 과장, 확신할 수 없는 일 등이 있다. 이 대목은 타인과 대화할 때 소재로 사용하면 좋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포장지를 벗기고 내용물을 열어봐야 진실과 재미에 도달할 수 있다. 아직도 자신의 이야기를 써두는 걸 망설이는 당신께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컴퓨터의 빈 화면이나 백지를 몇 시간씩 바라보며 오래 고민하지 않고도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은 첫 문장을 적어보자.”

#그렇게인생은이야기가된다 #제임스R.해거티 #여성동아

사진출처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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