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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빌보드 ‘핫 걸’ SZA 시자의 3가지 매력

강일권 음악평론가·리드머 전 편집장

2023. 03. 09

장르와 소재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SZA.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차세대 디바의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시자’라고 읽는 ‘SZA’ 이름 뒤에는 자신과 알라에 대한 믿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주권적이고 강력한 여성이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시자’라고 읽는 ‘SZA’ 이름 뒤에는 자신과 알라에 대한 믿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주권적이고 강력한 여성이란 의미가 숨겨져 있다.

‘팝의 여왕’ 혹은 ‘R&B의 여왕’이란 칭호를 붙였을 때 조건반사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故 휘트니 휴스턴. 그는 대중음악사에서 놀랄 만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된) 여성의 싱글’ ‘역사상 가장 큰 녹음 계약’ 등이 그것이다.

최근 휘트니와 동일한 업적을 세운 앨범이 등장했다. 싱어송라이터 시자(SZA)의 두 번째 정규 앨범 ‘SOS’다. 발매되자마자 앨범 차트 1위로 올라서더니 폭발적인 스트리밍 수를 바탕으로 휘트니 이후 처음 7주간 1위를 차지한 R&B 앨범이 됐다. 무려 36년 만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빌보드 200’에서 7주 이상 1위를 차지한 앨범을 보유한 세 번째 여성 아티스트가 됐다. 다른 둘은 누구냐 하면… 놀라지 마시라. 아델과 테일러 스위프트다.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요?

이쯤 되면 몹시 궁금해질 것이다. 도대체 시자에겐 어떤 특별한 마력이 있길래 이런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일까. 먼저 이름을 제대로 알고 가자. 미국 현지에서도 많은 물음을 던지게 한 이름이니까. 한동안 ‘SZA’는 3개의 유형으로 발음됐다. 스자, 시자, 시저. 실제로 매체마다 발음에 관한 설명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를 인터뷰하는 이들이 묻기 시작했다.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나요?”

그의 답변에 따르면, ‘시자’에 가장 가깝다. 그 속에 숨겨진 함의는 훨씬 복잡하다. 각 문자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나타낸다. ‘S’는 군주(sovereign) 또는 주권자를 의미하며, ‘Z’는 ‘zig-zag’의 이니셜로 깨달음과 자기 인정이다. 마지막 ‘A’는 가장 높은 알라(Allah) 신을 뜻한다. 이들 단어의 머리글자를 합쳐 만든 이름 ‘SZA’는 전설적인 힙합 그룹 우 탱 클랜의 리더 르자(RZA)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종합해보면, 자신과 알라에 대한 믿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주권적이고 강력한 여성이란 의미로 다가온다. 이처럼 쉬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이름만큼이나 아티스트로서의 재능과 음악 세계 역시 범상치 않다.



첫째, 노래를 잘한다. 물론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시자의 보컬은 우리가 흔히 ‘노래를 잘한다!’ 할 때 연상되는 스타일과는 결이 다르다. 이번 ‘SOS’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어떤 장르와 템포에도 능수능란하게 보컬을 구사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에 동화하게 만든다. 노래와 랩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스타일의 보컬도 강점이다.

둘째, 음악적 모험을 서슴지 않는다. 시자는 2012년 EP ‘See.SZA.Run’으로 데뷔한 이래 ‘S’(2013), ‘Z’(2014), ‘Ctrl’(2017·정규 데뷔작) 등의 작품을 거치면서 얼터너티브 R&B와 솔(soul)의 주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공개된 매거진 컨시퀀스(Consequence)와의 인터뷰에서 특정 장르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고 나섰다.

“사람들이 저를 R&B 아티스트로만 규정하는 것에 너무 지쳤어요. 매우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주장의 기저에는 인종과 장르의 상관관계라는 아주 민감한 문제가 깔려 있다. 그는 단지 불만을 토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앨범으로 스탠스를 대변했다. ‘SOS’에는 시자의 가장 큰 음악 자양분인 R&B와 힙합뿐만 아니라 팝, 팝펑크, 일렉트로닉록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이 수록됐다.

싱어송라이터 피비 브리저스와 함께 부른 ‘Ghost in the Machine’ 같은 얼터너티브 팝이 있는가 하면, ‘Nobody Gets Me’처럼 테네시의 내슈빌에서 당도한 듯한 컨트리 팝도 있다. 게다가 포크 팝에서 록으로 변주되는 ‘F2F’는 팝펑크 세대에 바치는 헌사나 다름없다. 모두 전작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유의 음악이다.
그러니까 ‘SOS’는 본인을 옥죄던 세간의 고정관념에 대한 노골적인, 동시에 예술가적인 반격이다. 당연히 시자 외에도 여러 장르를 넘나들고 융합하려는 아티스트는 오늘날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자처럼 시도를 놀라운 결과로 매듭짓는 사례는 흔치 않다.

셋째, 탁월한 송라이터다. R&B가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다는 건 옛말이다. 물론 여전히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주제이지만, 표현 방식과 세부적인 내용 면에서 굉장히 다양해졌다. 개인사, 철학, 사회 이슈 및 문제 등등. 이젠 힙합 음악 못지않게 폭넓은 내용을 다룬다. 시자는 이 같은 현대 R&B의 흐름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SOS’에서는 개인사와 내면의 상태에 초점을 맞췄다. 가혹한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이후 슬픔, 환희, 고통, 극복 사이에서 널뛰는 감정을 시적인 동시에 거침없는 언어로 쌓은 복수와 자기 구원의 서사다.

일례로 제목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쿠엔틴 타란티노의 복수극 ‘킬 빌’에서 영향을 받은 다섯 번째 싱글 ‘Kill Bill’을 보자. 감미로운 멜로디를 배경 삼아 전 연인과 그의 여자 친구를 죽여 버릴 수도 있다고 서슴없이 경고하는 내용을 극적인 구성으로 엮었다. 가히 머더 발라드(murder ballad·살인을 소재로 삼은 사랑 노래)의 21세기 버전이라 할 만하다. 이런 가사의 노래를 쓸 수 있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다. 시자는 두말할 나위 없는 ‘리리시스트(lyricist)’다.

비욘세 계승할 차세대 디바

2집 앨범 ‘SOS’로 연일 신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SZA.

2집 앨범 ‘SOS’로 연일 신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SZA.

당초 인디 노선을 걷던 그는 힙합 레이블, 탑 독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며 급부상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힙합 슈퍼스타 켄드릭 라마가 소속돼 유명한 탑 독은 메이저 레이블 못지않은 홍보력과 파급력을 지닌 인디 레이블이다. 그런 회사에서 래퍼가 아닌 싱어송라이터를 이례적으로 영입했었다는 점만 봐도 시자의 재능과 잠재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레이블의 많은 남성 래퍼 사이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또렷이 드러났다. 들러리 따위의 명사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힙합에 대한 애정과 이해 또한 남달랐다. ‘SOS’에서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복수의 랩을 읊조리는 ‘Smoking on my Ex Pack’이라든지 기괴한 랩 스타일로 인기를 모았던 우 탱 클랜의 멤버, 故 올 더티 바스타드의 프리스타일 랩이 차용된 곡 ‘Forgiveless’는 좋은 예다.

시자는 몇몇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아티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중 비욘세를 첫손에 꼽는다. 2014년 아직 신예였던 그는 래퍼 니키 미나즈의 싱글 ‘Feeling Myself’의 작곡자 중 1명으로 참여한 바 있다. 당시 피처링을 맡은 아티스트가 비욘세였다. 녹음 당시 비욘세와 조우한 그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 라이브 네이션 엔터테인먼트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비욘세를 이렇게 묘사한다.

“평생 만난 사람 중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존재일지도 몰라요. 엄마 다음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여성입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비욘세는 그저 노래와 춤 실력만 뛰어난 가수가 아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인종차별과 여성혐오로 얼룩진 사회의 이면을 꿰뚫고 흑인 여성과 블랙 커뮤니티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또 앨범 작업 전반을 조율하고 책임지는 총괄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갖춘 매우 드문 여성 아티스트다. 시자는 한때 우러러보던 비욘세처럼 대체 불가능한 아티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자신의 삶과 음악, 모든 부분에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쥔 시자의 전성기가 이제 막 시작됐다.

#SZA #시자 #빌보드차트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인스타그램 RCA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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