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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story

탈모인들의 희망이 된 남자 대멀 김준석

글 정혜연 기자

입력 2021.11.25 10:30:02

탈모로 의병제대를 한 연극영화과 학도의 인생은 그전과 180도 바뀌었다. 도망치듯 일상에서 멀어진 그는 두문불출하던 끝에 맞춤 가발로 차츰 자신감을 되찾았고, 다시 희망을 꿈꾸게 됐다. 남다른 청춘을 보낸 김준석 씨의 인생 2막 이야기.


가발을 착용한 김준석과 있는 그대로의 김준석. 이미지가 전혀 달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도 있다고.

가발을 착용한 김준석과 있는 그대로의 김준석. 이미지가 전혀 달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도 있다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탈모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른다. 죽을병이 아니라고 가볍게 말하기엔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한다. 탈모의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 때문이라는데,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계속 받아 소중한 한 올 한 올을 잃게 되니 마치 무한지옥에 빠진 느낌이다. 꿈 많은 20대 시절, 심각한 탈모를 겪은 김준석(34) 씨는 그렇게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왔다.

탈모의 조짐은 군 입대와 함께 찾아왔다. 분명 동전 하나 크기의 구멍이었을 뿐인데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 구멍이 늘어나더니 크기도 점점 커졌다. 군의관도 “이 정도면 의병제대를 해야 할 수준”이라고 했고, 8개월 만에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를 의병제대를 했다. 유전이라고 하기에는 김준석 씨 아버지의 머리칼은 넉넉했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쉬다 보면 다시 머리카락이 나겠지’라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일단 휴학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태는 심각해져 모자나 가발로 가리지 않고서는 집밖을 나갈 수 없는 수준이 됐다.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입학한 연극영화과에서 더 이상 휴학을 연장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어쩔 수 없이 가발을 쓴 채 복학했다. 당당히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즐겼던 20대 초반 열혈 청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실기 연습 시간에 구석에 앉아 구경만 하는 어딘지 모르게 그늘진 김준석 씨만 남았다.

상황이 달라진 건 자연스러운 형태의 가발이 나오고 나서부터였다. 기존의 ‘누가 봐도 가발’ 같은 가발로는 행동반경도, 대인관계도 넓힐 수 없었다. 그러나 인모(人毛)로 만들어진 가발은 진짜 머리카락 같았고, 자신감을 얻어 차츰 사회생활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번민의 시간을 지나 차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김준석 씨는 2018년 원래 꿈이던 배우에 다시금 도전해 데뷔에 성공했다.



‘남편감은 대머리만 아니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여자 친구와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유튜브 채널 ‘대멀’을 개설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조언하며 희망을 주는 데서 나아가 지난 11월 1일에는 자신의 경험을 녹인 책 ‘이까짓, 탈모 : 노 프라블럼’(봄름)을 출간해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11월 중순 동아일보 사옥에서 이제는 배우, 유튜버, 작가, 아빠 등 직함도 다양해진 김준석 씨를 만나 탈모인들의 희망이 된 남다른 인생 스토리에 대해 들었다.

‘이까짓, 탈모’가 탈모인 사이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어떻게 책을 내게 됐나요.

탈모 초창기에 로망이 있었어요. 언젠가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내가 원래 가발이었어. 살다 살다 가발을 쓰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라고 자연스레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웃고 싶었죠. 그때는 매일 노심초사하며 살아서 그런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었거든요. 지금의 저는 탈모를 극복했어요.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건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받아들이며 살게 되면서 과거의 그 로망을 실현시키고 싶어졌어요. 그 일환으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 이야기를 고백했고, 이런 사연을 접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콤플렉스에 관한 에세이를 쓰게 됐어요. 저처럼 탈모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 또 다른 콤플렉스로 고민하는 분들이 제 이야기를 접하고 극복했으면 해요.

2018년 12월 개설한 유튜브 채널 ‘대멀’이 구독자 4천 명, 누적 조회수 1백만을 기록했어요. 대머리를 고백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그렇죠. 20대 초반의 남자가 가발을 쓰고 산다는 건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에요. 그런데 어느 정도 극복하고 나서는 ‘세상에 내 비밀을 알려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탈모라는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고, 다른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과도 고민을 나누며 위로하고 싶었거든요. 또 시간이 갈수록 맞춤 가발이 자연스럽고 고정력이 강화되면서 수영 같은 운동은 물론 놀이기구도 탈 수 있게 됐는데 그걸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기존의 가발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을 깨주고 싶었어요.

스스로 “15년 차 대머리”라고 소개하는데, 탈모가 처음 시작된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군 입대하고 생활하는데 선임이 어느 날 “너 처음에 들어왔을 때보다 머리 땜빵이 넓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뒤통수라 전혀 몰랐던 거죠. 시간이 갈수록 구멍이 더 생기고, 더 넓어지더니 전체적으로 탈모가 진행됐어요. 군 생활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 그런 건 없었어요. 그보다는 탈모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어요.

탈모로 군 제대를 일찍 한 경우는 처음 봤어요.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군 병원에서 두상의 50% 이상 탈모가 진행되면 전역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탈모 속도가 빨랐어요. 머리채를 잡으면 한 손 가득 뭉텅이씩 빠졌거든요. 머리카락이 짧아서 망정이지 길었으면 보기 안 좋았을 거예요. 그때는 잠깐 빠지는 거라고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젊으니까 다시 날 거야”라고 해서 전역만 하면 머리카락이 다시 자랄 줄 알았어요. 또 한편으로 ‘배우가 되려면 일찍 군에서 나가는 것이 기회’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좋기도 했고요. 그런데 결국 나아지지 않았죠.

전역 후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당시 시중에서 판매되던 가발은 전문가의 손을 거쳐도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인위적인 느낌이었어요. 학과의 특성상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가발을 쓰고 복학하기가 쉽지 않았죠. 또 텀블링, 아크로바틱 등을 해야 하는 실기 수업도 있었는데 그때는 가발이 고정되지 않아 벗겨질 수밖에 없어 제약도 따랐어요. 필기 수업 위주로만 듣다가 꼭 수강해야 하는 실기 수업에는 “허리가 좋지 않다”며 거짓말을 하고 강의실 구석에서 참관만 했어요.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수업료도 비싼데, 저걸 배워 가야 하는데…’라며 꽤 속상해했죠.

졸업 이후에도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겠어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땀이 나서 가발을 오래 쓰기 어려워 대신 모자를 쓰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거든요. 공장에서 단기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방송국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TV 예능에 잠깐 등장하는 스태프는 복장이 자유로웠거든요. 그날로 방송국 채용 공고에 응시해 가발을 쓰고 면접을 봤고, 합격했어요. 첫 출근 날 가발에 모자를 쓰고 갔어요. 오래 일하면 땀이 나니까 가발 윗부분을 가위로 동그랗게 자르고 그 위에 모자를 쓴 채로 말이죠. 그런데 가보니 사무실에서 일을 시키더라고요. 바로 위 상사가 “조금 있으면 국장님께 인사드려야 하니 화장실 가서 모자 벗고 머리 정리하고 오게”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정리를 해도 가발 윗부분은 어떻게 가릴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길로 방송국을 뛰쳐나와 집에 돌아왔고, 퇴사 의사를 밝혔죠.

유튜브 채널 ‘대멀’을 운영하며 탈모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김준석 씨.

유튜브 채널 ‘대멀’을 운영하며 탈모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김준석 씨.

그런 암흑 같은 시간을 지나 30대 이후로는 상황이 나아졌어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자연스러운 맞춤 가발을 사용하면서부터 콤플렉스를 차츰 극복하게 됐어요. 20대 때부터 가발을 쓰다 보니 거의 전문가가 됐는데, 맞춤 가발이 나오고부터 내 얼굴형에 맞는 헤어스타일을 찾아가게 됐고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쓸까 고민하다 보니 노하우도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대인기피증도 조금씩 나아졌고요. 그때부터 포기했던 배우의 꿈에 다시 도전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대머리를 싫어했던 여자 친구와 결혼하게 된 사연도 인상적이었어요.

와이프와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하루는 둘 다 아는 여자 동생과 같이 식사를 하는데 그 친구가 “남자 친구가 탈모가 심해서 고민”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와이프가 “나는 남자가 키가 작아도 되고, 돈이 없어도 돼. 그냥 대머리만 아니면 돼”라고 말하더라고요. 속으로 ‘이 여자와는 헤어지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연애를 하다가 결혼 이야기가 오가자 마음이 무거워지더라고요. 용기를 내서 “오늘 고백할 게 있어”하고 만났는데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말을 못 꺼냈어요. 제가 계속 뜸을 들이니까 와이프가 “무슨 문제 있어?”라고 묻더라고요. 머리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까 병이 있냐고 물어서 사실대로 고백했죠. 그때 와이프가 “용기 내줘서 고맙다”고 말해서 감동했어요. 지나고 나서 물으니 “사실 그날 당황했고, 고민되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여자 친구도 그렇지만 장인, 장모님께 고백하는 것도 쉽지 않았겠어요.

장인, 장모님께는 방송을 통해 고백했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알리지 않았던 터라 뵐 때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어요. 고백할 타이밍을 찾고 있던 차에 저의 유튜브를 본 방송국에서 TV 출연 제의가 왔어요. 그때 가발을 벗고 출연해서 영상 편지를 썼죠. 주변에서는 방송 잘 봤다고 연락이 왔는데 장인, 장모님은 못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한참 지나서 알게 되셨는데 개의치 않아 하셔서 다행이었어요.

이제 아이 둘을 둔 아빠가 됐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둘째는 11월 초에 태어났고, 첫째는 이제 돌을 갓 넘겼는데 아직 대화를 못 나눠봐서 속마음은 모르겠어요. 평소에 가발을 벗고 지내기 때문에 가발을 쓰면 갸우뚱하며 모르는 사람 대하듯 주저하더라고요. 목소리를 들려주면 아빠라고 아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대머리여서 가발을 쓰는 거라고 얘기해주려고요. 창피한 아빠로 기억되기보다는 앞으로 배우로 꾸준히 활동하면서 다양한 얼굴이 있는 아빠가 되려고요.

2018년 영화로 데뷔한 후 차근히 경력을 쌓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아직 내세울 만한 작품은 없어요.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무래도 대머리인 상태로 출연한 작품이에요. 지성 씨 주연의 영화 ‘명당’에서 스님으로 대사 없이 출연했는데 뭔가 뭉클하더라고요. 처음으로 가발을 쓰지 않고 대머리인 상태로 현장에 서 있었는데 본연의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게 감회가 새로웠고, 뭔가 시원하더라고요.

콤플렉스를 딛고 배우로 계속 활동하고자 하는 데는 그만큼 꿈이 크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따라 연기학원에 등록했는데 처음으로 어떤 일에 재미를 느꼈어요. 제일 먼저 나가서 밤늦도록 연습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은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실기 시험 보던 날도 ‘드디어 나를 보여준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죠. 즐기는 마음이 컸던 덕인지 그해 바로 합격했어요. 군 제대 후 가발을 쓰고 다닐 때, 그 시절의 저를 떠올리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죠. 그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기 싫어할 정도로 성격이 소심했거든요. 그렇게 좋아하는 연기이기에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역할에 도전하고 싶은가요.

지금은 주어지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또 생각해보면 전 운 좋게도 대머리인 모습과 가발 쓴 모습의 이미지가 달라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겠더라고요. 어떤 역할이든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그리고 대머리라도 연기에 진정성을 가진다면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궁극적으로는 진정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탈모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심경 매우 공감해요. 탈모는 매우 난해한, 병 아닌 병이죠. 탈모인들은 미리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 유튜브를 보고 여러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고민 상담을 해오세요. 저처럼 배우의 꿈을 가진 분도 있었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합격되면 합숙 생활을 가발 쓰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분도 있었어요. 또 여자 친구가 있는데 탈모를 고백하면 떠나갈 것 같다고 걱정하는 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대머리라고 못 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배우도, 경찰공무원도, 결혼도 다 할 수 있어요. 저도 이렇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걸요. 가발이든 모발이식이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두 시도해보시고, 그게 아니라도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용기를 가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 역시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탈모 때문에 꿈까지 포기하진 말았으면 합니다.

사진 홍중식 기자 
사진제공 유튜브 캡처



여성동아 2021년 12월 6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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