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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fashion

로맨티시즘의 끝 ‘브리저튼’ 여주인공 4인의 패션 분석

글 정세영 기자

입력 2021.02.19 14:00:2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브리저튼’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드라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 공개된 지 한 달 만에 약 8천만 시청자를 홀렸을 정도. 1800년대 영국 브리저튼 가문 8남매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작품으로 ‘미국 로맨스 소설계의 김은숙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줄리아 퀸의 소설 ‘브리저튼 시리즈’가 원작. 총 8권에 이르는 작품들 중 드라마로 제작된 시즌 1의 이야기는 첫 번째 시리즈 ‘공작의 여인’을 각색했다. 

이제 막 사교계에 데뷔한 브리저튼가의 장녀 다프네가 겉으로는 반항심 강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따뜻하고 섹시하기까지 한 독신주의자 사이먼 헤이스팅스 공작과 계약 연애를 하면서 벌어지는 러브 스토리가 중심. 상류층 스캔들이 주된 소재인 만큼 의상과 액세서리, 궁전, 저택 등 동화 속 판타지를 자극하는 환상적인 미장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만과 편견’ ‘엠마’ 등 고전 로맨스의 배경이 되는 영국 리젠시 시대(1811~1820)의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 미국의 전설적인 코스튬 디자이너 엘렌 미로즈닉의 장인 정신으로 탄생한 7천5백여 벌의 의상과 소품을 동원하고, 스와로브스키 같은 커스텀 주얼리 브랜드와 함께 작업했다고. 그 결과 8편의 에피소드에는 고전 명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 생동감 넘치고 화려한 패션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귓가를 매혹시키는 음악 역시 이 드라마의 묘미. 빌리 아일리시의 ‘배드 가이’나 아리아나 그란데의 ‘생큐 넥스트’ 등 귀에 익숙한 팝송을 클래식 버전으로 편곡해 신선한 느낌을 선사한다. 보는 내내 눈과 귀가 호강하는 낭만의 세계 ‘브리저튼’. 그 중심에서 탄탄한 연기력과 남다른 스타일로 남심은 물론 여심까지 사로잡은 여주인공 4인의 패션을 분석해봤다.

로맨틱한 드레스의 향연 다프네 브리저튼

이제 막 사교계 데뷔를 마친 브리저튼가의 넷째이자 맏딸인 다프네. 그녀는 왕비에게 극찬을 받고 ‘사교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로 불리기 시작한다. 다프네의 스타일은 1956년 개봉한 ‘전쟁과 평화’ 속 오드리 헵번을 오마주했다. ‘브리저튼’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한 마크 필처는 다프네의 젊고 심플하며 우아한 이미지를 위해 오드리 헵번의 마이크로 뱅에 주얼리를 장식한 업두 헤어스타일링 등을 참고한 것. 영화 속 배경 역시 ‘브리저튼’과 같은 시대로 헵번의 엠파이어 드레스나 승마 슈트가 다프네의 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의상과 소품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인 드라마답게 8편의 에피소드에서 다프네가 입은 드레스는 약 1백4벌. 사실상 장면마다 다른 드레스를 입고 나온 셈이다. 다프네를 연기한 배우 피비 디네버는 의상이 너무 많아 가장 좋아하는 드레스를 하나만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그중 시청자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룩은 1회에서 등장한 베이비 블루 드레스다. 봉긋한 퍼프소매 아래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엠파이어 실루엣에 꽃과 덩굴을 수놓은 시폰 소재의 이브닝 가운으로,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실크 오페라 장갑을 더해 로맨티시즘을 한껏 끌어올렸다. 다프네의 이브닝드레스는 물론 데일리 룩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사이먼에 대한 감정이 깊어질수록 진하게 변해가는 드레스 컬러를 주목할 것. 드라마를 한층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을 테니까!

시선 강탈 퀸 샬럿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19세기 영국을 다룬 이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또 다른 주인공은 샬럿 왕비다. 실제 영국 조지 3세의 부인이던 샬럿 왕비의 초상화에서 피부가 조금 어둡게 표현되었다는 점을 증거로 혼혈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는데, 명확한 근거는 없었던 이 주장을 ‘브리저튼’은 등장인물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흑인 왕비로 재해석했다. 사치와 향락으로 가득한 리젠시 시대를 통치했던 만큼 영국 배우 골다 로슈벨이 연기하는 샬럿 왕비의 복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8편의 에피소드에서 선보인 약 12개의 가발 스타일링은 길이와 질감, 색상까지 다채로워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그중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스타일은 에피소드 3편에 등장한 아프로 가발. 뒷사람은 물론 배경이 안 보일 정도로 존재감 넘치게 부풀린 아프로 가발에 앙증맞은 주얼리를 장식해 숨어 있는 귀여움까지 발굴했다. 과장되게 부풀린 구조적인 실루엣과 낮은 허리선, 러플과 리본으로 잔뜩 장식한 왕비의 드레스는 리젠시 시대 이전에 유행했던 스타일. 그녀가 옛 트렌드를 선호하는 보수적인 인물임을 의미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왕비는 죽을 때까지 한 가지 스타일만을 고수했다고. 베르사유 궁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사치스러운 가발과 드레스, 여기에 액세서리처럼 곁들인 심드렁한 표정까지. 샬럿 왕비의 무궁무진한 매력에 빠져보자.

숨은 패션 아이콘 페넬로페

페더링턴 가문의 셋째 딸인 페넬로페(니콜라 코글란)는 브리저튼 가문의 다섯째 엘로이즈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집에서 조용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허영 가득한 엄마와 두 언니들보다 똑똑하면서도 순진하다. 엘로이즈의 오빠 콜린을 짝사랑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러서 때론 눈물짓기도 하는 순수한 인물. 페넬로페는 자신이 미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축되어 있지만 사실 드라마 내에 숨은 패션 고수다. 겉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페더링턴 가문의 막내딸답게 채도 높은 색상과 화려한 패턴을 활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그녀의 시그니처 컬러는 노란색으로, 리젠시 시대에 가장 세련된 컬러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사실 비밀과 반전을 상징하기도 한다. 페넬로페가 가장 돋보였던 순간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플라워 앙상블 드레스를 입고 엘로이즈와 함께 군중 속을 거닐 때다. 존재만으로도 세상이 환하게 밝아진 것처럼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액세서리 스타일링에도 능숙한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스꽝스러운 공작새처럼 치장하는 두 언니와 달리 드레스에 어울리는 최소한의 아이템을 매치해 밸런스를 맞추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장식적이고 호화로운 페넬로페의 패션은 로다테, 시몬로샤, 짐머만, 블루마린 등 2021 S/S 컬렉션에서 자연스럽게 재해석되었다고. 마카롱처럼 달콤한 파스텔컬러, 하늘하늘한 시폰, 플라워 패턴과 꽃 장식까지. 페넬로페가 ‘브리저튼’의 패션 아이콘이라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목이다.



사랑스러운 괴짜 엘로이즈

브리저튼가의 다섯째이자 다프네의 동생인 엘로이즈는 여자 주인공 중 가장 진취적이고 똑똑하며 호기심이 많은 인물. “난 다르게 살고 싶어,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다른 인생이 허락되지는 않지만.” 오직 결혼에만 몰두하던 당대 상류층 레이디와는 달리 성별로 인한 사회적 차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원하는 것을 알고, 능력을 펼치고 싶어 하는 엘로이즈를 최애로 꼽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고독한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적 규칙과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는 그녀는 다른 여성들이 깃털·보석·꽃으로 머리를 장식하는 동안 부스스한 헤어를 고수하고, 우아한 엠파이어 드레스 대신 남성성이 가미된 재킷 형태의 드레스를 선보인다. 머리에는 리본이나 헤어밴드만 남기고 주얼리는 거의 매치하지 않거나 아예 안 하기도 한다. 시대가 바라는 여성상에서 한참 벗어나 마치 반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엘로이즈의 스타일링은 21세기와 가장 맞닿아 있을 정도로 쿨하고 트렌디하다. 요즘으로 치면 팝 스타 빌리 아일리시 정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궁금하다면 ‘브리저튼’에서 확인해보자. 특히 친구인 페넬로페와 극명하게 다른 패션 스타일을 감상하는 재미도 놓치지 마시길.

사진제공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여성동아 2021년 3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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