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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hotplace 강현숙 기자의 ‘핫플투어’

지하철역, 문화 놀이터로 변신하다

EDITOR 강현숙 기자

입력 2020.01.31 14:11:30

매일 스쳐 지나가는 지하철역이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으며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이색 지하철역 탐방기.
1 천장 중앙의 대형 유리 돔으로 햇빛이 투과되는 녹사평역. 
2 공덕역 환승 계단에도 대형 작품이 걸려 있다. 3 상도역 ‘메트로팜’에서는 인공광을 이용해 수경재배 방식으로 채소를 키운다.

1 천장 중앙의 대형 유리 돔으로 햇빛이 투과되는 녹사평역. 2 공덕역 환승 계단에도 대형 작품이 걸려 있다. 3 상도역 ‘메트로팜’에서는 인공광을 이용해 수경재배 방식으로 채소를 키운다.

서울 지하철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9백만 명에 달한다. 이토록 많은 이들의 발이 되고 있는 지하철역들이 최근 이색 테마를 갖추며 핫 플레이스로 등극하고 있다. 사실 해외에는 여행 필수 코스로 꼽힐 만한 색다른 지하철역이 많다. 러시아의 지하철역은 그 자체로 커다란 예술 작품이다. 수십 개 역사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지하철 관광과 관련된 투어 프로그램도 많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지하철역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갤러리’라는 애칭이 있을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최근 우리나라 지하철역 역시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며 스치는 공간이 아닌, 일부러 찾고 싶은 명소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즐거운 체험거리가 가득한 서울 지하철역 3곳에 기자가 직접 다녀왔다.


공덕역
스마트폰으로 감상하는 살아 움직이는 예술 작품



스크린도어 옆쪽 광고판에 설치된 대형 작품을 스마트폰으로 인식하면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왼쪽). ‘팝업 갤러리’에서는 VR 체험이 가능하다.

스크린도어 옆쪽 광고판에 설치된 대형 작품을 스마트폰으로 인식하면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왼쪽). ‘팝업 갤러리’에서는 VR 체험이 가능하다.

첫 번째 방문한 곳은 문화예술 갤러리로 변신한 지하철 6호선 공덕역이다. 서울교통공사와 LG유플러스가 함께 개관한 첨단 AR(증강현실) 기술이 적용된 ‘U+5G 갤러리’가 있는 곳이다. 승강장과 환승 계단, 열차 안 등 곳곳에 작품이 전시돼 있어 지하철로 오가는 바쁜 일상에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문화재단과 구족화가협회, 시각예술가, 무용&공연 분야의 퍼모머, 다원 예술가들이 협력해 9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전시했다. 예술 작품에 5G 기술을 더해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인식하면 그림이 360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개찰구를 통과해 계단을 따라 승강장으로 내려오면 가장 먼저 열차를 기다리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스크린도어(승강장 안전문) 옆쪽 광고판에 대형 그림이 여러 개 설치돼 있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자가 가장 먼저 선택한 작품은 춤추는 듯한 여성의 뒷모습을 그린 박정 작가의 ‘또 다른 시선’이다. 아이폰을 사용 중이라 구글 앱을 내려받아 구글 렌즈 버튼을 클릭한 뒤 작품에 카메라를 대고 인식했다(U+5G 스마트폰 이용자는 U+AR 앱을 실행하면 된다). 그림 속 여성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다양한 자세로 회전하며 춤을 춰 무척 신기했다. 승강장을 이동하며 여러 작품을 감상했는데 그때마다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기둥에 그려진 손선경 작가의 재치 넘치는 라인 드로잉과, 승강장에 전시된 나점수 작가의 설치 미술 작품인 ‘땅으로부터 온 식물’도 보는 재미를 더했다. 


‘팝업 갤러리’에서는 EBS 연습생 펭수가 퍼포머로 참여한 360도 AR 작품 2점을 만날 수 있다.

‘팝업 갤러리’에서는 EBS 연습생 펭수가 퍼포머로 참여한 360도 AR 작품 2점을 만날 수 있다.

플랫폼 갤러리의 작품들을 감상한 뒤 응암 방면 승강장에서 환승 경로로 가다 나오는 ‘팝업 갤러리’에 들렀다. 디지털 액자와 AR 체험용 휴대전화 및 기기를 비치해 공덕역 안에 전시된 모든 예술 작품을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요즘 슈퍼스타로 떠오른 EBS 연습생 ‘펭수’ 작품 2점이다. 매장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인식하니 펭수가 살아 있는 듯 춤추며 노래해 미소를 짓게 했다. 팝업 갤러리 관계자는 “방문객들이 특히 좋아하는 건 VR(가상현실) 체험으로 짧게는 1분, 길게는 10분 넘는 길이의 VR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팝업 갤러리는 주중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말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는데, 일평균 1백30명 정도가 방문한다고. 이곳을 찾았던 40대 워킹맘 강모 씨는 “3분 길이의 필리핀 세부 수중 여행 VR을 감상했는데, 잠시나마 힐링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전했다. 



환승 계단과 에스컬레이터의 상단부와 벽면은 ‘환승 계단 갤러리’로 탈바꿈됐다. 지하철을 환승하면서도 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권오철 작가의 ‘독도 2013’, 강선미 작가의 ‘보는 것이 믿는 것’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또한 6호선 전동차 중 한 대를 골라 다양한 예술 작품을 설치한 ‘열차 갤러리’로 꾸몄다. 애나한 작가의 ‘심연의 숲’, 윤병운 작가의 ‘눈부신 그림자’ 등을 만날 수 있다. U+5G 갤러리 전시는 2월 29일까지 진행되니, 종료 전 방학을 맞은 아이와 함께 방문하면 신기한 추억거리가 될 듯하다.


녹사평역
지하에 자리한 예술 품은 초록 쉼터



1 혁오 밴드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알려진 정진수 작가의 ‘흐름’이 영상으로 담겨 있다. 2 원기둥 안쪽 벽면에 설치된 메탈 커튼은 햇빛을 반사해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한다. 3 지하 4층에 자리한 녹색 예술 정원에는 초록빛 식물이 가득하다. 
4 숲을 산책하는 기분을 주는 ‘숲 갤러리’.

1 혁오 밴드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알려진 정진수 작가의 ‘흐름’이 영상으로 담겨 있다. 2 원기둥 안쪽 벽면에 설치된 메탈 커튼은 햇빛을 반사해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한다. 3 지하 4층에 자리한 녹색 예술 정원에는 초록빛 식물이 가득하다. 4 숲을 산책하는 기분을 주는 ‘숲 갤러리’.

6호선 녹사평역은 지하 1~5층(6000m²) 규모에 구조도 독특하고 아름답다. 특히 백미는 지하 1층에서 4층까지 연결되는 천장 중앙의 대형 유리 돔으로, 이를 통해 햇빛이 투과된다. 2000년 서울 시청 이전 계획에 따라 대규모 환승역으로 지어진 녹사평역은 이후 시청 이전 계획이 무산되면서 일반 교통 시설로 이용돼오다, 서울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지하 예술정원’으로 변신했다. 

녹사평(綠莎坪)은 ‘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모티프로 삼아 빛, 숲, 땅을 주제로 공간을 꾸몄다. 우선 유리 돔부터 지하까지 이르는 깊이 35m의 원기둥(메인 홀) 안쪽 벽면 전체에는 ‘익스팬디드 메탈’이라는 독특한 철판 소재를 활용한 메탈 커튼이 설치돼 있다(작품명은 ‘댄스 오브 라이트’). 이 커튼이 유리 돔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해 시시각각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하 1층에서 개찰구가 있는 지하 4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지켜보니 그야말로 빛의 향연이 펼쳐져 멋스러웠다. 

원형 홀과 대합실이 자리한 지하 4층은 녹색 예술정원으로 연출한 시민들의 쉼터다. 원형 홀은 지하 35m까지 들어오는 자연광을 활용한 지하 정원인데, 마치 소규모 식물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다채로운 식물을 모아 미니 정원처럼 꾸며놓은 싱그러운 공간이 눈길을 끌었다. 사진 촬영을 하는 시민들도 종종 눈에 띄었는데, 50대 주부 임모 씨 역시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지하철역은 건조하고 삭막한 기분이 드는데, 초록 잎 가득한 예쁜 정원을 보니 기분 전환이 된다”고 전했다. 지하철역은 난방이 되지 않는데, 찬 바람 쌩쌩 부는 날씨에 식물이 과연 버틸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에 대해 미니 정원의 조경을 담당한 조경 전문가 정미숙 씨는 “추위에 강한 수종을 선택했으며, 특수 배양토를 조합해 식물을 심어 영양에 신경 썼다. 식물로만 채우지 않고, 군데군데 자갈이나 분수 같은 첨경물을 세팅한 것이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다만, 화분이나 미니 정원 속 식물 옆에 이름이나 설명이 표기돼 있지 않아 감상하면서 아쉬움이 남았다. 

원형 홀 옆에 자리한 대합실에는 ‘숲’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천장에는 식물 혹은 숲이 연상되는 알루미늄 선을 이용해 코바늘뜨기로 완성한 ‘녹사평, 여기’가 설치돼 있다. 마치 녹색 식물 터널처럼 보이는 이 작품 건너에는 김아연 작가의 설치 예술 작품인 ‘숲 갤러리’가 있다. 여러 가지 나무가 울창한 남산의 숲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소나무, 산벚나무, 단풍나무 등 남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시각, 촉각, 후각같은 다양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실제 숲처럼 구성했다. 숲길을 산책하듯 설치 작품 사이사이를 걷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지하 5층은 승강장으로, 김원진 작가의 ‘깊이의 동굴-순간의 연대기’ 작품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색연필로 칠한 커다란 그림을 얇은 띠 모양으로 잘라 서로 조금씩 엇갈리게 조합해 만들었다. 작품의 흐름과 무늬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기억들이 시간에 따라 지층처럼 쌓이면서 변하고 잊히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승강장은 물론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듯했다.


상도역
지하철역에서 키우는 최첨단 채소 체험



실험실 같은 독특한 외관이 발길을 사로잡는 ‘스마트팜’ 모습.

실험실 같은 독특한 외관이 발길을 사로잡는 ‘스마트팜’ 모습.

햇빛도 흙도 없는 지하철역에서 채소가 자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하철 7호선 상도역 ‘메트로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메트로팜은 청정 채소를 3백65일 24시간 생산하는 재배 시설인 ‘스마트팜’과 로봇이 재배하는 ‘오토팜’, 수확한 작물로 만든 샐러드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팜카페’, 스마트팜 관련 교육과 체험이 가능한 ‘팜아카데미’로 구성된 복합 공간이다. 지하철역과 채소 재배 시설이라니! 생소한 조합에 호기심이 생겼다. 흡사 실험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독특한 외관 덕분에 지하철을 오가다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메트로팜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오른쪽에 자리한 오토팜이 반긴다. 아담한 규모의 유리 컨테이너처럼 생겼는데, 로봇이 파종부터 수확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알아서 어린잎을 재배한다. 최첨단 미래 농법을 눈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어 신기했다. 

정면에는 메트로팜의 핵심인 스마트팜이 자리하고 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농업에 접목해 원격 및 자동으로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빛과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양분 등을 인공적으로 제어한다. 커다란 유리벽 안은 수직실내농장(Vertical Indoor Farm)으로, 이곳에서 인공광을 이용한 수경재배 방식으로 농약 없이 채소를 키우고 있다. 버터헤드레터스, 카이피라, 이자트릭스, 롤라로사, 뉴햄, 파게로 등 생소한 이름의 샐러드용 유럽 채소가 대부분이다. 메트로팜 관계자는 “국내 노지에서 자라는 품종은 농가와의 공생을 위해 취급하지 않는다. 하루에 50kg 정도, 한 달에 1톤가량 생산 중”이라고 설명했다. 

팜아카데미에서는 메트로팜 투어와 원물 수확, 샐러드 요리 체험을 통해 미래 농업에 대해 공부하는 클래스가 마련돼 있는데, 어린이들에게 최적이라는 평이 많다. 기자가 방문한 날 역시 5~10세 어린이들의 체험 수업이 진행 중이라 분주했다. 아이들이 스마트팜에서 직접 채소를 수확하고 샐러드를 만들어 맛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섯 살 딸아이와 함께 방문한 30대 주부 진모 씨는 “아이가 어려 수업에 잘 참여할까 걱정했는데 열중하며 좋아하니 흐뭇하다”고 전했다. 일곱 살배기 딸이 있는 기자 역시 이달 마감이 끝나면 찾아가볼 생각이다. 클래스는 네이버에서 ‘farm8 팜아카데미’를 검색해 예약하면 된다. 1인당 체험료는 1만3천7백원. 


지하철역, 문화 놀이터로 변신하다
메트로팜에서 재배한 신선한 채소는 팜카페에서 직접 맛볼 수 있다. 카페 메뉴인 불고기오트밀샐러드, 허니리코타치즈샐러드, 시즌샐러드, 그린주스, 망고그린주스 등의 주재료가 되고 있는 것. 실제 맛이 궁금해 시즌샐러드를 주문해 맛보았다. 채소가 부드럽고 싱싱해 입맛을 당겼고, 재배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카페에서는 샐러드용 채소만도 따로 판매하며, 입구 옆에는 샐러드 자판기가 설치돼 있어 간편했다. 메트로팜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며, 5호선 답십리역에도 작은 규모로 마련돼 있다. 7호선 천왕역과 2·3호선 을지로3가역, 2·5호선 충정로역에도 2월 안으로 오픈할 예정이라니 방문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이색 지하철역 3곳을 둘러보며 기자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가족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였다. 좀 더 많은 시민들이 방문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더해준다면 외국처럼 여행 코스로 성장할 가능성 역시 충분해 보였다. 서울교통공사는 올 1월 현재 총 9개의 테마 역사를 운영 중이다. 앞으로 ‘서울 문화예술철도’ 조성 사업으로 개념을 확장해 새로운 역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주말 나들이 장소가 고민이라면 볼거리, 즐길 거리 가득한 지하철역을 추천한다.




사진 홍태식 디자인 최정미




여성동아 2020년 2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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