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백로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말과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가난한 새의 기도’ 전문
천수만은 1995년 갯벌을 막아 논으로 만든 간척 땅이다. A지구 방조제 안쪽이 간월호, B지구 방조제 안쪽이 부남호다. 새들은 간월호 쪽에 더 많다. 하지만 한겨울엔 호수 바닥이 얼어붙는다. 쉴 곳이 없다. 보통 새들은 쉴 때 천적이 접근할 수 없는 물 가운데에서 나래를 접는다. 결국 천수만 새들은 물이 흐르는 간월호 위쪽 해미천 장지천 쪽에 몰려들 수밖에 없다.
거대한 군무(群舞)로 이름난 가창오리들은 보이지 않는다. 11월께 이미 해남 등으로 내려가 쉬고 있다. 2월 중순쯤 돼야 다시 천수만에 나타날 것이다. 천수만에서 1~2주일 동안 힘을 비축한 뒤 다시 북녘으로 날아간다.
요즘 천수만엔 큰기러기, 쇠기러기, 청둥오리가 가장 많다. 큰고니도 수백 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희귀 새인 노랑부리저어새 40~50마리와 두루미 2~3마리도 가끔 눈에 띈다.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큰기러기 청둥오리 등은 옹기종기 모여 한데 어울리지만, 두루미는 철저히 따로 논다. 그만큼 보기 어렵다. 하기야 두루미는 황새(평균 날개 길이 112cm)보다 약 30cm나 크다. 어찌 오리, 기러기 따위가 봉황과 같이 놀 수 있을까. 다만 황새는 나무에 둥지를 틀지만, 두루미는 나뭇가지에 앉지 못할 뿐이다. 뒷발가락이 짧고 다리 위쪽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황새는 ‘큰새’라는 뜻의 ‘한새(大鳥)’에서 온 말이다.
1 천수만 해안가나 하천에서 쉽게 관찰되는 붉은어깨도요. 2 천수만 기러기들이 이동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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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호 상류는 철새들의 수상비행장
동화 속 백조로 더 알려진 큰고니(천연기념물201-2호)도 겨울철 천수만에서 볼 수 있다.
동틀 무렵 천수만은 부산하다. 얼어붙지 않은 간월호 상류는 ‘철새의 수상비행장’이나 마찬가지다. 뜨거나 내려앉는 새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야행성인 오리는 밤새 들판에서 낟알을 주워 먹고 떼를 지어 물활주로에 내려앉는다. 배부른 데다 엉덩이가 무거워 아슬아슬하다. “첨버덩!” 발보다 꽁지가 먼저 닿는 것 같다. 이제 낮 동안 오리들은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물장구치면서 쉴 것이다.
주행성인 기러기들도 일출에 맞춰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밤새 쉬었으니 이제 먹이를 먹으러 나가야 한다. 들판에 나가 해 질 때까지 낟알을 찾아야 한다. 큰고니도 주행성이다. 밤새 날개에 고개를 파묻고 자다가 해가 떠오르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목을 몇 번 좌우로 흔들어 풀어주고, 물속에 고개를 처박으며 한 바퀴 돈다. “곤! 고온! 고니! 고니!”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너울너울 ‘헛 날갯짓’을 해댄다.
큰고니들은 자주 날지 않는다. 그저 물 위를 소리 없이 미끄러질 뿐이다. 큰고니는 갈대 뿌리 등을 즐겨 먹기 때문에 굳이 날 필요도 없다. 갈대 숲 언저리가 바로 먹이 공급처인 것이다. 사람들이 들판에 배춧잎이나 무 고구마 등을 뿌려주지 않는 한, 멀리 나가지 않고 주로 물 위에서 논다. 몸 길이 140cm 정도로 거의 두루미 체격만큼 큰 탓도 있다. 한번 날 때마다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비된다.
송준철 천수만밀렵감시원(59)은 “잿빛 고니는 새끼들인데 2~3년 지나야 어미처럼 흰색이 된다. 기러기나 오리는 벼 낟알을 즐겨 먹기 때문에 먹이 다툼을 곧잘 벌이지만, 조개 물고기 잡아먹고 사는 노랑부리저어새는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김신환씨(60)는 천수만 지킴이로 통한다. 천수만에서 15년 넘게 야생 동물 보호 활동을 펴고 있다. 지난해는 인터넷 성금 모금과 사재를 털어 2천5백만원 상당의 먹이를 새들에게 나눠줬다. 그는 “천수만 철새가 갈수록 줄고 있다. 천수만은 원래 물고기 산란장인 ‘바다의 자궁’ 같은 곳이었는데, 그걸 도려내고 쌀 나오는 ‘인공 위’를 만들어버렸으니, 그저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한다. 그는 올해도 새들과 먹이를 나누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팝송 중에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라는 노래가 있다.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이 부르는 그 노래를 듣다 보면 영혼이 스르르 맑아진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콘도르’는 잉카인들에게 성스러운 새다. 안데스 산맥 바위산에서 사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맹금류다. 콘도르는 잉카인들에게 ‘절대 자유’를 뜻한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 언제 어디서든 훨훨 날 수 있는 자유. 당연히 안데스를 지키는 텃새다. 왜 이 노래를 우리말로 옮길 때 ‘철새는 날아가고…’라고 했을까. 철새가 텃새보다 더 자유스러운 느낌이 나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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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나그네새의 중간기착지
붉은부리갈매기는 5월이면 시베리아로 떠나는 겨울 철새다.
철새는 유목민이다. 머무는 곳이 집이다. 끊임없이 오고 간다. 먹이가 많고 따뜻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겨울 철새는 한여름 시베리아 등 북녘에서 새끼 낳고 살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남쪽으로 내려오는 새들이다. 오리, 두루미, 황새, 고니, 기러기, 독수리, 칡부엉이, 논병아리가 그렇다.
여름 철새도 있다. 봄철 제비처럼 따뜻한 남쪽에서 날아와 새끼 낳고 살다가, 추워지면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는 새다. 뻐꾸기, 꾀꼬리, 두견이, 뜸부기, 후투티, 물총새, 파랑새, 솔부엉이의 울음소리를 겨울에 듣지 못하는 이유다.
나그네새는 한반도가 중간기착지다. 시베리아에서 호주까지 엄청난 거리를 가는 중간에, 잠깐 우리나라에 머물며 체력을 비축하는 것들이다. 도요새, 제비갈매기, 물떼새, 흰배멧새, 꼬까참새는 봄가을 두 번 우리나라를 통과한다.
떠돌이새는 가까운 부근에서 움직이는 텃새다. 한여름에는 먹이가 풍부하고 시원한 깊은 산속에서 보내고, 가을에서 봄까지는 낟알 등 먹이가 많고 따뜻한 평지에서 보낸다. 굴뚝새, 말똥가리, 물까마귀, 새매들이 그렇다. 한곳에 둥지 틀고 붙박이로 사는 까치나 참새와 다르다.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위해 철새들은 에너지를 비축한다. 뱃살에 글리코겐을 잔뜩 저장한다. 보통 몸무게를 40% 이상 불려야 수천수만 km를 날 수 있다. 도요물떼새는 절반 정도가 지방질이다. 속도도 다르다. 매 종류는 시속 50~65km로 날지만, 작은 새들은 40~50km로 날아간다.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바람을 타는 경우가 많다. 작은 새는 매에 잡혀 먹을까봐 밤에 주로 이동한다.
방향은 어떻게 감지할까. 낮에 이동하는 새는 태양의 위치, 밤은 별자리를 보고 간다는 설이 유력하다. 육지 지형지물을 기억했다가 그걸 보고 간다거나,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안다는 설도 있다. 자기장 변화를 감지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날아가는 높이나 나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두루미같이 V자 형태로 나는 것들은 맨 앞이 우두머리다. 우두머리 새가 상승 기류를 만들며 나아가면, 뒤따르던 것들은 70%의 에너지로 날 수 있다. 리더가 지치면 다른 새가 자리를 바꿔준다. 기러기나 오리는 막대처럼 종대로 날다가 열쇠 모양이 되기도 하고, 바람에 따라 모양을 수시로 바꾸며 난다. 고니는 4~6마리 가족 단위로 난다. 호수에서 먹이를 찾을 때와 똑같다. 당연히 아빠 엄마 고니가 앞장선다. 새끼들은 그 뒤를 따른다. 모가지를 길게 쭈욱 뺀 채 난다. 그래야 공기의 저항이 적기 때문이다. 고니는 물속에서 잘 때도 목을 날갯죽지에 깊숙이 처박고 잔다. 비교적 날씬한 백로가 목을 잔뜩 집어넣고 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난한 시인의 집에 내일의 꿈을 열었던/외로운 고니 한 마리 지금은 어디로 갔나/속울음을 삼키면서 지친 몸을 창에 기대고/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졌다고/날아도 날개가 없고 울어도 눈물이 없어 없어라/이젠 다시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아 우리의 고니 -이태원의 노래 ‘고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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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눈빛을 한 철새 같은 아내여
새의 뼈는 비어 있다. 폐는 더운 공기가 가득한 공기 주머니와 연결돼 있다. 날아갈 연료인 지방을 빼곤 몸을 최대한 비운다. 그런데도 20%가량은 이동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시베리아에 살던 도요새가 호주에 도착했을 땐 날갯죽지를 축 늘어뜨린 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체중은 출발할 때의 절반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구만리장천을 날다 죽은 새는 날갯죽지를 편 채 죽는다. 장엄하다. 몸은 썩지만, 꿈은 영원한 화석으로 남는다. 철새의 꿈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다.
시인의 눈은 절절하다. 먼저 눈을 감은 부인을 그리며 ‘사랑하다 못해, 미운 아내여!’라고 목 놓아 운다. ‘기러기 눈빛을 한 철새’라니! 우리는 모두 잠깐 지구에 왔다 가는 철새임에 틀림없다.
우리 혼인 생활 30년에/밑줄 그을 만한 뜨거운 사랑 없었지만/하늘 높이 날아오를 만한/기쁨 없었지만/아내여 미운 아내여/다음 생에서 또 만나/하늘을 날아가다가/좀 쉬고 싶으면 날개를 접고/가을 논에 흩어져 있는 햅쌀을/냠 냠 냠 쪼아 먹는/기러기 눈빛을 한/철새나 될까 몰라/아내여 미운 아내여
-오탁번의 ‘철새’ 전문
★ 천수만 철새 도래지
교통
승용차 : 서울→경부고속도로→안성 나들목→서평택→서해안고속도로→당진→서산→649지방도→부석→서산 AB지구 방조제→간월암→버드랜드, 서울→서해안고속도로→안산→수원→서평택→당진→서산→649지방도→부석→서산 AB지구 방조제→간월암→버드랜드
버스 : 서울강남터미널(06시부터 20분 간격), 서울남부터미널(06:40분부터 20분 간격) 서산행. 서산공용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 이용
먹을거리
간월도 : 큰마을영양굴밥(041-662-2706), 간월도영양굴밥(041-664-8875), 간월도바다횟집(041-664-7821), 해우리횟집(041-664-9812)
서산 : 서산꽃게장(041-665-8829), 원할머니보쌈(041-666-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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