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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끝없는 변신

서른에 연기 입문한 신학도 안내상

‘조강지처클럽’의 찌질남? 지금은 대세남!

글·정혜연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2011. 06. 16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의 집중도를 높여주는 연기파 배우들.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주는 이들의 목록에서 안내상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년 동안 출연한 작품만 다섯 편. 이만하면 주연배우 부럽지 않은데 그가 또 도전에 나섰다. 영화 ‘회초리’로 첫 주연을 맡은 것. 이로써 대세남이 된 안내상의 우여곡절 연기 인생과 소박한 꿈에 대해 들었다.

서른에 연기 입문한 신학도  안내상


무능력한 장남에서 재벌 2세로 신분 상승했던 안내상(47)이 또다시 사회부적응자로 강등당했다. 지난해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서 이름부터 건강하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 김건강 역을 맡아 인기몰이를 했던 그가 올해 초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 재벌가 장남으로 변신해 눈길을 끌더니, 얼마 전 영화 ‘회초리’에서는 문제 아빠로 등장했다.
5월 초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안내상과 만났다. 바쁜 스케줄로 인터뷰 전날까지 병원에 있었다는 그는 컨디션 저조에도 기자에게 농담을 걸 만큼 여유와 배려가 넘쳤다. “한동안 달렸으니 휴식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체질상 계속 일하는 게 좋다”며 미소 지었다.
“일을 쉰다는 건 일을 그만둔다는 의미와 같죠. 예전에 한 달 정도 쉬었는데 딱 이틀만 좋고 이내 갑갑해지더라고요. 저는 연기하고 활동할 때가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또 운 좋게 작품이 계속 들어오니까 이럴 때 많이 일해둬야죠.”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회초리’에서 안내상은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그는 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권투 선수지만 사고로 5년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가 깨어난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죽은 애인이 남긴 딸을 찾는 것. 딸로 출연한 진지희와는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그는 지희양의 연기에 감탄했다고 한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했다고 하는데 그걸 못 봐서 지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현장에서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걸 보고 그저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연기에 대한 몰입도가 특출했어요. 가르쳐줘서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감정인지 알고 들어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극 후반에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장면이 있는데 지희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눌리지 않으려고 애를 쓸 정도였죠. 이렇게 긴장감을 주는 상대 배우는 근래 처음이었고 제게는 좋은 자극이 됐어요.”

목사 꿈 잃고 방황할 때 운명처럼 연기 시작
안내상은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2004년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를 통해 TV 신고식을 치렀다. 이어 드라마 ‘반올림’ ‘소문난 칠공주’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다가 2007년 ‘조강지처클럽’에서 뻔뻔하게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밉상 캐릭터 한원수를 연기하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안내상이지만 지난 4월 종영한 ‘로열패밀리’에서 재벌 2세 역은 처음이었다. 신선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을 듯한데 그는 의외로 “유일하게 못하겠다고 거절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대본을 받으면 대부분 ‘그분’이 오셔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겠다는 감이 와요. 그런데 이 작품은 재벌 2세인 걸 떠나서 캐릭터 자체가 저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감이 오지 않는 거예요. 소속사에 못하겠다고 말한 뒤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왔는데 매니저가 ‘당분간 일도 없고 작가님이 캐스팅을 원하셨다’며 꼭 해야 한다는 통에 출연했죠(웃음). 끝내고 나서요? 역시 첫 느낌에서부터 어긋나서인지 잘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네요. 덕분에 ‘작품은 선택할 때 잘하자’는 교훈을 하나 얻었죠.”
배우에게 학력과 전공이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관심 있게 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안내상은 독특하게도 신학을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연기자가 되리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해본 적이 없단다.
“연극 보는 걸 좋아했지만 단순히 취미생활의 일부였죠. 제 가슴속에는 이미 목사라는 꿈이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신앙이 불같이 일어나더라고요. 집안에 성직자가 있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에요. 가족 중 유일하게 혼자 신앙에 꽂혀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교회에서 살았어요. 전공도 신학으로 선택해 대학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공부를 하면서 점차 방향을 잃었지요.”

서른에 연기 입문한 신학도  안내상

안내상의 다양한 연기 변신을 볼 수 있는 작품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수상한 삼형제’ ‘조강지처클럽’, 영화 ‘음란서생’(위부터).



청소년기를 오롯이 바쳤던 믿음에 대한 상실감이 컸던 때문일까. 대학 졸업 후 안내상은 절망에 빠져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가 노동 현장에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먼저 돈을 모아야겠다고 결심해 장사를 시작했다.
“상권도 좋고 목도 좋은 어느 대학가 앞에 영업 의지가 없는 사장 때문에 파리가 날리는 당구장이 있었어요. 잘하면 돈이 되겠다 싶어 사장에게 인수 의사를 밝히자 거의 임대료 수준으로 팔더라고요. 재개업하자마자 학생들이 찾아오면 일단 서비스로 무조건 음료수를 주고 당구비도 할인해주니 곧 소문이 나서 북새통을 이뤘어요. 그렇게 돈을 벌다가 6개월 만에 2천만원을 더 받고 팔았죠. 그때 제 장사 수완이 남다르단 걸 알았어요(웃음).”
그는 또 우연히 인사동에 들렀다가 뒷골목에 자리한 ‘될성부른’ 카페를 발견했고 권리금 없이 인수했다. 여러 고민이 생길 때마다 장사에 몰입한 덕분인지 카페는 날로 번창했다. 하지만 돈이 쌓이는 만큼 안내상의 마음 또한 같은 속도로 공허해졌다. 노동운동에 대한 생각은 접은 지 오래인 데다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만한 지향점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의 고민을 듣던 지인이 “내상이 너 예전에 성극 잘했잖아~ 연기 한번 해봐”라며 농담처럼 한마디 건넸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연기? 그거 재밌겠는데?’ 싶더라고요. 어디를 가면 배울 수 있을까 하고 교육기관을 찾던 중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교육생을 뽑는 걸 알았어요. 원서 접수 마지막 날 공고를 발견했는데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굉장히 기뻤죠. 곧장 지원했고 운 좋게 연기를 배우며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그때가 딱 서른이었죠.”



카리스마 왕부터 밉상 불륜남까지 변신 거듭
안내상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면서 운영하던 카페를 친구에게 맡겼다. 어찌 된 일인지 잘되던 카페는 그날부터 손님이 줄기 시작했고 결국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연극배우로 사는 건 즐거웠지만 궁핍해지는 가계를 메울 방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차 방송국에서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에 출연해달라는 생뚱맞은 제의가 들어왔다.
“시트콤이라 웃겨야 한다는 거예요. 속으로 ‘왜 나한테 시트콤을?’ 싶었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무작정 한다고 했죠. 까부는 것도 웃기는 것도 자신이 없어 녹화 전까지 걱정이 태산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TV를 터부시했던 게 무색할 만큼 재미있는 거예요(웃음). 신동엽, 공형진, 남상미 등 출연 배우들이 괜찮았던 데다 호흡도 잘 맞아서 카메라만 돌아가면 마음껏 놀았어요.”
안내상은 자신도 몰랐던 코믹한 면을 발견해 TV로 이끌어준 방송 관계자들에게 고마워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그에게 드라마·영화 등에서 줄줄이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수많은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는 과정에서 그는 부딪히고 깨지며 연기력을 더욱 단련시켜나갔다.
“2006년 영화 ‘음란서생’에서 왕으로 출연했는데 처음으로 왕 역을 하는 것이라 기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혼자 중심을 못 잡고 있으니까 감독님이 캐스팅을 후회하는 눈치였죠(웃음). 원래는 출연분이 더 많았는데 한 5분의 4 정도를 잘라낸 거 같아요. 극 후반부에는 한석규씨와 팽팽하게 맞붙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래도 그 장면만은 인정받아야겠다 싶어 심혈을 기울였더니 마지막엔 감독님도 시원하게 오케이를 외쳐주시더라고요.”
여태껏 그가 출연한 영화만 36편, 드라마는 20편이다. 그중에서 안내상의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은 무엇일까. 모두가 예상하듯 안내상 역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조강지처클럽’을 꼽았다.

서른에 연기 입문한 신학도  안내상

뒤늦게 연기를 시작했지만 안내상은 어느덧 주연보다 더 빛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처음으로 연예인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죠(웃음). 얼굴을 드러내놓고는 1m도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가 말을 걸어와 모자나 마스크를 항상 들고 다녀야 했어요. 당시 한원수는 국민적 미움을 살 정도로 밉상 캐릭터였지만 저는 오히려 그를 이해하고 연기했어요. 마냥 못된 게 아니라 자기만의 이유가 있었고, 장남을 끔찍하게 아끼는 어머니 때문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던 그런 사람이었죠. 1년 동안 한원수에 빙의돼 소리 지르고 때리고 맞으며 신나게 연기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1백4회를 찍으면서 ‘문영남 작가님이 이 한 회를 찍으려고 나를 그토록 달리게 했구나’ 하는 깨달음까지 얻었죠. 앞으로 그 이상의 작품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 같아요.”
그때 함께했던 오대규, 김희정과는 지금도 종종 만나 술 한잔 할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당시 김희정과는 실제 부부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탓에 촬영장 밖에서는 따로 커피 한잔 마시지 않았다고. 그간 다양한 배우와 많은 작품을 했으니 둘 이외에도 친분을 유지하는 배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는 “오대규·김희정 외에는 없다. 아직도 촬영장에서 배우들을 만나면 일반인이 연예인을 보는 심정이다”며 의외의 발언을 했다.
“이번에 ‘로열패밀리’를 찍는데 전미선씨가 상대 배우라는 거예요. 예전부터 좋아하던 배우라 남편으로 출연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죠(웃음). 한편으로 ‘내가 언제 이런 배우와 연기하게 됐지?’ 싶기도 했는데 저와 다를 바 없더라고요. 사적으로 인간관계를 넓힐 기회가 적은 사람들이니 함께 출연하는 배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또 서로 돕는 모습에서 ‘이들도 여기밖에 없는 사람들이구나’ 싶었죠. 화려해 보이는 직업이지만 사실은 다들 외롭고 현장에서라도 사람을 만나면 그게 마냥 즐거운 게 연예인인 거 같아요.”

“돈 걱정 없이 연극 하는 게 나의 꿈”
다작 하는 배우라 경제적으로 풍족할지 몰라도 가정에선 불만이 적지 않을 터. 하지만 안내상은 “아내와 딸 모두 이해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말했다.
“아내는 대학로에서 같이 연기하면서 만났기 때문에 이해를 잘 해줘요. 딸도 어려서부터 아빠가 연기하는 걸 보고 커서 특별히 싫고 좋고 할 것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웃음). 꾸준히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일상적인 일이 됐기 때문에 아내와 딸 모두 제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말없이 자기 본분을 다 해주고 있어요. 이렇게 아무 탈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게 진짜 행복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의 딸은 현재 초등학교 6학년. 요즘 보통의 청소년들은 열에 여덟 정도 연예인을 꿈꾼다. 딸이 만약 연기를 한다고 나선다면 안내상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민은 될 것 같아요. 무대와 촬영장이 재밌는 공간이긴 한데 절대 호락호락하진 않거든요. 캐스팅 한 번 되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과 고통이 길고 크죠. 제가 연기를 시작했던 때에는 캐스팅이 오히려 쉬웠어요. 연기를 서른에 시작했지만 당시엔 그 나이대 배우가 적어 순조롭게 출연 기회를 얻었죠. 지금은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웬만한 결의 없이는 버텨내질 못해요. 만약 우리 딸이 한다고 하면 응원은 해주겠지만…, 그런데 전혀 그쪽으로는 생각이 없는 것 같던데요(웃음).”
딸의 꿈에 대해 말하다 보니 그의 꿈도 궁금해졌다. 워낙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터라 특별히 더 이상 바라는 역할도 없을 것 같았다.
“맞아요. 어떤 역을 원한다기보다 ‘조강지처클럽’의 한원수처럼 연기를 발견하고 싶죠. ‘안내상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작품을 만나는 게 꿈이에요. 길게 보면 대학로에 극장을 하나 갖고 싶어요. 죽기 직전 삶의 마지막을 무대에서 불태우는 게 소원이거든요.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과 돈 걱정 없이 재미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고요. 예나 지금이나 연기하는 사람들이 대학로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요. 저 혼자의 뜻으로 실현될지 모르지만 종국에는 대학로를 연기 잘하는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제겐 고향이자 여전히 사랑하는 장소니까요.”


장소협찬·충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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