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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Global Edu Talk

갈 길 먼 소황제들의 홀로서기

글 &사진·이수진

2011. 06. 01

갈 길 먼 소황제들의 홀로서기


몇 년 전 세계 각국 초·중·고 학생들의 가사노동시간 조사 결과 미국이 72분으로 가장 많고, 태국 66분, 프랑스 36분, 영국 30분인 데 반해 중국은 12분이라는 통계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중국에서는 아이들이 게으른 것인지, 아니면 부모들이 응석받이로 키우는 것인지 논란이 일었다. 또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서 자녀에게 가사를 분담시키는 것이 비효율적인 고집인지, 아니면 생존의 기초이자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인지 등에 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맞벌이 주부 저우진은 올 초 유치원에 들어간 다섯 살배기 딸 러즈가 스스로 옷을 입도록 가르치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입혀주면 1분에 끝날 일이 혼자 입으니 10분이 넘게 걸리기 일쑤였다. 유치원 버스를 놓칠까봐 안절부절못하고, 덩달아 자신의 출근시간도 늦어질 판이라 조바심이 났다. “그걸 보고 있자니 속에서 불이 나서 결국 작심삼일 만에 내가 옷을 입히고 말았다니까요.”

갈 길 먼 소황제들의 홀로서기


베이징의 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9% 학생들이 ‘부모가 가방을 싸준다’고 답했다. 59%는 ‘부모가 옷을 입혀준다’고 응답했다. 최소한의 자기 앞가림과 가사일은 아이들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고 그에 따른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이론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법. 어른 못지않게 바쁜 아이에게, 더군다나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애지중지하는 아이 손에 ‘물을 묻히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무엇보다 부모들 자신이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며 ‘성적이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가사를 분담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에서도 ‘공부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이다.

자립심보다 성적이 중요하다



갈 길 먼 소황제들의 홀로서기


그런데 이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허베이 출신으로 베이징에 유학 온 대학교 1학년생 리단단은 지난해 대학입학시험이 끝난 후에야 밥과 빨래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 간단한 요리도 할 수 있고, 청소며 빨래도 대강은 하니까 저는 좀 나은 편이에요. 친구들 중에는 설탕과 소금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어요.”
중국에서는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에게 일상생활의 소소한 뒤치다꺼리는 물론 정신적·경제적으로 의존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취업은 물론, 심지어 결혼 후에도 부모에 의존하는 젊은이들을 ‘츠라오(吃老)족’이라고 한다. 부모를 ‘뜯어먹고 산다’는 뜻인데 실제로 90년대에 출생한 ‘90허우(后)’의 차량 구입자 가운데 75%가 부모의 지원으로 차를 산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아이를 보면 부모가 보인다. 츠라오족의 배후에는 자녀가 다 자란 후에도 끊임없이 주변을 맴도는 ‘헬리콥터 부모’가 있다.
진정한 부모의 덕목은 자녀가 스스로 일상을 책임지는 것부터, 정신적·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일련의 과정을 완주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지혜다. ‘맹자’에 등장하는 옛 고사성어 가운데 ‘발묘조장(拔苗助長)’이 있다. 중국 송나라의 한 농부가 논의 모가 빨리 자라게 할 욕심에 모를 들어올렸는데 그만 말라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아이를 위해서 배려한 일이 도리어 아이를 망치고 사회의 미래에 그늘을 드리우는 것은 아닌지 중국 사회도 경계하고 있다.

이수진씨는… 문화일보에서 14년 동안 문화부·산업부·경제부 기자로 일하다 지난해부터 중국 국무원 산하 외문국의 외국전문가로서 인민화보 한글판 월간지 ‘중국’의 한글 책임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중1, 초등5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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