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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엄마, 그 아름다운 이름

신경숙 작가 어머니 박복례씨 단박 인터뷰

‘엄마를 부탁해’로 미국 사로잡은

글·황인찬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05. 17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엄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신 작가의 뒤에는 작품의 모티프가 된 어머니 박복례씨가 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끝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과 닮은 작가의 어머니를 만났다.

신경숙 작가 어머니 박복례씨 단박 인터뷰


역시 신경숙(48), 그리고 엄마의 힘은 강했다. 2008년 발간돼 10개월 만에 1백만 부 판매를 돌파한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도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4월5일 출간 전 이미 초판 10만 부가 모두 선판매된 데 이어 4월17일에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21위에 올랐으며,미국 여성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추천 도서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국 작품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한 것은 처음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치매를 잃는 어머니가 갑자기 실종하는 데서 시작된다. 가족들은 엄마의 부재 속에서 잊혔던 엄마의 존재,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다. 모성은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인류 보편적인 주제다. ‘모성의 신비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헌사’라는 ‘뉴욕타임스’의 극찬은 작가가 이 주제를 얼마나 깊이 탐구하고 아름답게 구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작가로 하여금 그 절절한 모성과 희생을 작품에 녹여내게 한 힘은 아무래도 그 어머니에게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이즈음에서 작가의 어머니가 궁금해진다.

어려운 형편에도 공부 욕심, 미안하고 기특한 딸

신경숙 작가 어머니 박복례씨 단박 인터뷰

신경숙 작가의 고향집에서 만난 아버지 신현씨와 어머니 박복례씨.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을 펴냈지만 부모는 오히려 딸 걱정이다.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달랑 들고 신경숙 작가의 부모가 사는 집을 찾아나섰다. 전북 정읍 시내에서 차로 10여 분. 한적한 2차선 도로 옆에 10여 가구가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있는 과교동의 작은 농촌 마을. 동네 이웃에게 신씨의 부모님 집을 묻자 “저기 지붕 파란 집”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켜준다. ‘지붕 파란 집’은 내부가 입식으로 바뀐 1층 개량 한옥으로 30, 40년쯤은 된 것처럼 낡은 이웃집에 비해 도드라져 보였다. 그 덕분에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작은 골목길을 돌아 대문이 열려 있는 집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작은 목련나무가 하얀 꽃망울을 터뜨렸고, 작은 백구 한 마리가 개집에 있었다. “어디서 오셨는가.” 느리게 계단을 내려오던 신경숙 작가의 어머니 박복례씨(76)는 약속도 없이 찾은 기자를 “집에 없으면 어쩌려고”라며 맞았다. 내심 내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렇게 박하게 하지 못하는 게 시골 인심이었다. 인터뷰에 앞서 “해가 지기 전에 사진 먼저 찍자”고 하자 노부부는 벽장 속에서 새 옷을 꺼내고 나란히 모자도 쓰고 사이좋게 서기도 했다.
소설에서는 5남매가 등장하지만 신씨의 형제는 6남매. 거실 벽에는 6남매가 나란히 학사모를 쓴 졸업 사진이 ‘훈장’처럼 걸려 있었다. 신씨는 위로 오빠가 셋이고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는, 넷째이자 첫째 딸. 소설 속 아버지는 바람피우고 속 썩이는 인물로 나오지만 아버지 신현씨(79)는 가족을 건사하려고 한평생 농사일에 전념했다. 신씨 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 때, 저기(아내)가 열일곱 때 결혼했다. 걔(신경숙 작가)가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어느새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고생을 너무 시켰다.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 했는데….”
그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렇다. 농사일이 바빴다. 다른 집 부모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농사일을 시켰지만 엄마는 새벽밥을 지어 먹인 뒤 6남매를 학교로 보냈다. 50마지기 논농사에 부모의 허리는 휘었지만 자식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교 개근상을 탔다.



신경숙 작가 어머니 박복례씨 단박 인터뷰


위로 아들 셋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그 아래 넷째(신경숙)가 중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말했다. “다 가르칠 수가 없으니까 너는 일을 도와라. (나중에)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면 된다.” 하지만 그 딸은 “꼭 그렇게 말씀하셔야 되겠냐”며 울먹였다. 결국 딸은 서울 큰오빠 집으로 올라가 낮에는 일하며 야간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펑펑 울었다. 취직자리가 들어왔지만 딸은 “대학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쩌려고, 그러냐”며 혼을 냈다. 딸은 “제가 벌어서 다니면 되잖아요”라고 반발했다. 딸에게 화를 냈지만 어머니는 돌아서서 혼자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소설 속 어머니처럼 박씨도 교육열이 높았다. 그는 “내가 못 배운 게 한이 돼서 힘들어도 끝까지 자식들을 가르치고 싶었다”고 했다. 큰오빠가 서울에서 고시 공부를 하다가 가족을 돌보기 위해 대기업에 취직한 것도 소설과 현실이 같았다. 다만 신씨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는 소설 속 어머니와 달리 정정했다. “딸이 자기 사진을 내 휴대전화 속에 넣어놓고(저장해놓고) 갔는데 얼마 전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딸 얼굴을 이제는 보지 못해 섭섭하지.”
어린 시절 신경숙씨는 어땠을까. “어렸을 때 글 쓰고 상도 받고 했는데 이렇게 될지는 몰랐지. 별로 말도 안 하던 얘가 어떻게 소설을 쓰고,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며 어머니는 웃었다. 미국에서도 소설의 반응이 좋다고 하자 어머니는 “그런가요”라면서 눈이 커졌다.
“좀 쉬러 간다고 말을 하더니 그렇게 됐네. 얼마 전에는 전화가 와서 ‘9시 뉴스에 나오니까 꼭 봐’하더라. 근데 뭐 휙 지나가버리니.”

딸도 어서 ‘엄마’라는 이름 갖게 되길 기도
어머니는 딸의 모습이 그립다고 했다. 신씨는 지난해 8월부터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남편 남진우 명지대 교수와 함께 뉴욕 컬럼비아대 방문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전화가 와서는 ‘엄마, 늙지 마, 늙지 마’하고 말하는데, 내가 뭐 팍 늙어버렸으니….”
어머니는 딸의 소설을 읽지 못한다.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운하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어머니는 “글치”라고 간단히 답했다. ‘엄마를 부탁해’ 가운데 ‘고생하는 어머니’ ‘서울서 공부하는 큰오빠’ 등 얘기를 해주자 그는 “그런 얘기도 나오냐”면서 반가워했다.
딸이 유명해지면서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단체로 찾아오기도 하고, 며칠 전에도 웬 여성(독자)이 찾아왔다고 했다. “딸(신경숙)이 가방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하는데, 다 입지 못하고 그냥 쌓아둔다. 내가 뭐 멋을 부리지 못하는 사람이니.” 다만 몇 년 전까지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쌀을 사다 먹는 ‘호사’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딸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하지만 어머니의 딸 걱정은 여전했고, 성당에서 딸을 위해 기도한단다.
“아이가 좀 들어서라고 기도를 한다. (손자가) ‘엄마, 엄마’ 한번 불러주면 얼마나 (딸이) 좋아하겠나.”
집안 사람들 모두 가톨릭 신자로 성당에 다니는데 유독 딸만 성당에 자주 안 나가 걱정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신씨의 부모님과 한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 그 가운데 절반은 ‘착한 딸, 마음 넓은 딸, 글 잘 쓰는 딸’인 신씨에 대한 칭찬이었다. “혹 서운한 것은 없으시냐”고 물었더니 “없다”며 혹 딸이 흉잡힐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떠나는 기자에게 “욕 봤스요. 가시면서 드시라”며 두유 음료 3병을 투박한 손으로 건넸다. 노부부는 현관 앞까지 나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소설 속 어머니는 여전히 실종 상태지만, 신씨의 어머니는 정읍 한 농가에서 딸과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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