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집에서 늘 그림을 그렸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술에 눈뜬 것 같아요. 사실 준호는 여섯 살 때부터 그림 그리며 노는 걸 좋아해 미대에 진학할 것을 권했는데 ‘전공하는 건 부담스러워 싫다’고 하더라고요. 사회대를 갔지만 결국 영화감독이 된 걸 보면 자기 끼를 감출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대성한 아들이 참 대견해요.”
봉상균 이사장은 1959년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무대장치, 영화자막 글자체와 관련된 일을 하던 국내 그래픽디자이너 1세대. 계명대, 서울산업대 등에서 미술을 가르치면서도 11차례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왔다. 봉준호 감독은 아버지의 작품을 둘러본 뒤 “여든을 앞두고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꾸준히 전시회를 여는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님이 작업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많이 봐왔어요. 어릴 때 만화를 좋아했는데 심심하면 그대로 따라 그리며 놀았죠. 어릴 적 경험이 영화작업을 하는 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스토리보드(드라마·영화의 주요 장면을 간단히 그린 그림을 배열해놓은 화판)는 지금도 직접 만들거든요.”
<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small;">지금은 고인이 된 봉준호 감독의 부친 봉상균 교수와 봉준호 감독<span lang="EN-US" style="">, </span>조카 주연 양과 봉지희 교수<span lang="EN-US" style="">(</span>가운데부터 시계방향<span lang="EN-US" style="">).</span></span>
예술가 집안의 피, ‘봉테일’이란 별명 얻게 해
봉준호 감독은 이번 전시에 영화 ‘괴물’ 촬영 당시 그렸던 스토리보드를 선보였다. 엄지손톱만한 크기로 그린 영화의 주요 장면들은 생동감 넘쳤다. 그는 영화를 촬영할 때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쓴다고 해서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뿐 아니라 그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외손자로 문학적 소질까지 물려받았다. 2000년 영화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이후 ‘살인의 추억’ ‘괴물’ 현재 촬영 중인 ‘마더’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쓴 것. ‘살인의 추억’으로는 국내 영화제 3곳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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