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면 행복한 바보가 돼요.” 영화 ‘밀양’ 제작발표회가 열린 지난 4월10일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취재진의 관심은 온통 결혼 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서는 배우 전도연(34)에게 쏠렸다. 지난 3월 중순 아홉 살 연상의 사업가 강시규씨(43)와 비공개로 웨딩마치를 울린 뒤 보름간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터였다. 자신에게 쏠릴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한듯 전날 영화사 관계자들에게 “최고로 예쁘게 하고 갈게요”라고 귀띔을 했다는 그는 이날 단정한 단발머리에 갓 결혼한 신부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흰색 미니 원피스 차림이었다. 표정에서는 여유가 넘쳤고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대사도 없이 주인공이 피식피식 웃더니 맨 마지막에 ‘아, 사랑을 하고 있군요’라고 끝나는 만화가 있어요. 왜,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고 하잖아요. 제가 요즘 그래요. 너그러워지고 웃음도 많아지고….”
전 문화부장관 이창동 감독의 공직 퇴임 후 첫 작품인 ‘밀양’은 경남 밀양을 배경으로 한 멜로 영화. 그는 남편이 죽고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갔지만 그곳에서 아들까지 잃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 신애 역을 맡았다. 이 감독이 연출을 한다는 말에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선뜻 출연을 결정했던 그는, 그러나 촬영을 하면서 큰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고. 동료 배우와 스태프들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감정이 잡히지 않아 촬영을 취소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로서는 지난 92년 연기에 입문한 이래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신애는 나약한 데다 상처도 많은데 어떻게 해서든 상처를 내보이지 않고 혼자 극복하려고 애쓰는 인물이에요. 막상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나선 ‘내가 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나더라고요. 아이가 유괴 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도저히 감정이 잡히지 않아 촬영을 접기도 했어요.‘내가 아이엄마가 아니라 이 상황을 못 느끼는 건가’ ‘내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가’ 등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더군요. 촬영을 못하겠다고 말하는 게 죽기보다 싫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후 감독님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다음 촬영에서는 그 감정을 잡아낼 수 있었죠.”
“저나 남편이나 나이가 있으니 2세 계획도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영화 속 신애와 달리 현실의 전도연은 밀양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무척 행복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지인의 소개로 강씨를 처음 만나 촬영 틈틈이 밀양에서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키운 것. 현실과 작품 속 전혀 다른 감정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을 법도 한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전도연이라는 인물을 최대한 덜어내려 노력했어요. 연애를 하고 있다고 해서 작품을 할 때 방해를 받거나 감정이 헷갈리거나 한 적은 없어요.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은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 거니까요. 일이면 일, 사랑이면 사랑, 둘 중 하나가 인생의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일도, 사랑도 인생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삶의 폭도 그만큼 넓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많은 걸 누리려면 할 일도 늘어나겠죠. 앞으론 무척 바빠질 것 같아요.”
서울 청담동의 고급빌라 펜트하우스에 신접살림을 차린 그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남편과 집 주위를 산책하거나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신혼을 즐긴다고 한다. 그가 남편에게 처음 만들어준 요리는 샐러드라고.
“결혼하면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하게 지내고 있어요. 남편은 늘 옆에 있던 사람처럼 편하고 자상해요. 꾸밈이 없는 데다 저를 배우 전도연이 아닌, 자연인으로 대해줘서 좋아요. 그렇다고 저희 부부가 애정 표현을 안 한다는 건 아니고…. 스킨십은 수시로 해요(웃음).”
일과 사랑에 모두 당당한 전도연은 “되도록이면 빨리 아기를 갖고 싶다”며 한 남자의 아내로서 소박한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영화 촬영과 결혼 준비로 바쁘게 지냈는데 당분간은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요. 저나 남편이나 나이가 있으니 2세 계획도 서둘러야 할 것 같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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