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b> 베트남, 필리핀, 콩고에서 온 8명의 외국인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이성준씨.<br><b>2</b> 이씨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단순한 한국어 교사가 아니라,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안녕하세요?”
오전 10시30분, 중국어·베트남어·영어가 뒤섞여 시끌벅적한 교실 안에 들어서며 인사를 건넨다. 학생들이 서툰 발음이지만 반갑게 인사에 답한다. 인사를 나누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한글 수업을 시작한다.
내가 안산이주민센터를 찾은 건 지난 2005년 가을 무렵이다. 젊은 시절 남편의 미국 유학길에 따라나섰던 나는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고 싶었다. 인터넷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됐고, 간단한 교육을 수료한 뒤 매주 수요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중국, 베트남, 필리핀, 콩고에서 온 8명의 여성들로 결혼, 아프리카 난민, 이주 노동자 등 한국에 건너온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학생들은 모두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아프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려도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막막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어도 그들에게 나는 단순히 ‘한국어 교사’가 아니라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한밤중에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고 함께 병원에 가거나 가정폭력에 상처받은 젊은 엄마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때문에 한글교실을 맡고부터는 학생들이 언제, 어떤 도움을 청할지 몰라 휴대전화 전원을 꺼놓지 못한다.
본격적인 수업시간. 나는 외국인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인 상황을 들어 단어와 문장을 설명해준다.
“오늘은 맛에 대한 표현을 배워봐요. 설날에는 음식을 많이 하게 되죠? 먼저, 맛이 짜요.”
“맛이 짜요.”
“우리 남편은 짜요.”
베트남에서 온 수지의 농담에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처음에는 기초적인 몇 마디 말 밖에는 하지 못하던 학생들이 이제는 한글도 줄줄 읽고 제법 농담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됐으니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열심히 써내려간 노트를 보면 배움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대화 연습까지 마치고 강의를 정리하니 벌써 정오가 훌쩍 넘었다. 안산이주민센터에서 마련한 무료 점심을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젊은 엄마들에게는 아기에 대해 묻기도 하고, 불법 체류나 임금 체불로 어려움을 겪는 동료의 상담을 받아주기도 한다. 그들에게 비쳐진 한국이 불평과 소외로 얼룩진 모습이 아니길 바라며 그들이 하루빨리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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