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에서 남춘천역까지 두 시간여 거리를 운행되는 경춘선 무궁화호 기차. |
남춘천역 직전에 들를 수 있는 김유정역. ‘봄봄’의 작가 김유정을 기념하고자 2004년 신남역에서 김유정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
기차를 타기 위해 운행시간표를 보는 사람들. 춘천행 기차에는 연인이 많다.
기차여행은 어딘가 낭만적이다. 이젠 기차보다 더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 많지만 기차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창 밖 풍경과 어울려 규칙적으로 레일 위로 바퀴가 돌아가는 육중한 ‘철커덕’ 소리를 들으면 새삼스레 ‘지금’ 이 시간을 느끼고, 지나간 시간에 대해 추억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경춘선 무궁화호는 낭만을 음미하기 좋은 곳이다. 시속 70km 남짓한 속력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기분 좋은 흔들거림을 만들고 차창 밖 풍경은 아련한 기억을 불러온다. 물론 ‘춘천 가는 기차’ 속 낭만 어느 즈음에는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도 한몫했으리라.
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오면/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오월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그리운 사람(중략)
-김현철 ‘춘천 가는 기차’ 중
노랫말처럼 춘천행 열차는 지친 마음에 떠남에 대한 기대를 갖고 ‘무작정 몸을 부대어’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없는 선택이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두 시간여 떨어진 거리는 하루 이틀 여행일정을 꾸리기에 부담 없으면서도 성북과 퇴계원을 벗어나면 보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꼬마 손님.
대체로 대학생 무리나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은 금요일과 주말 기차는 좀 더 활기차고 시끌벅적해 들뜬 느낌이라면, 데이트하는 커플과 개인 여행객이 많은 평일 기차는 평온한 분위기에 깊게 사색하게 한다. 흔들리는 기차에서 누군가는 지나간 첫사랑을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함께 여행을 떠나는 옆 사람의 손과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책에 눈을 둔 채로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인물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 서로 다른 추억을 가지고 기차에 오른 이들이 같은 시공간을 배경으로 새로운 추억거릴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청량리 역에서 출발한 춘천행 기차는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보통 10여 개 역을 들르는데 성북,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을 제외하면 시간대별로 들르는 간이역이 다르다. 딱히 특별한 목적을 세우지 않고 떠나는 여행이라면 한번쯤 경춘선 사이사이 위치한 작은 간이역에 들러보기 바란다. 그중에서도 영화 ‘편지’의 배경이 돼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경강역과 역이 위치한 지역에 작가 김유정이 살았던 덕에 그 이름을 따 지은 김유정역 등은 간이역이 주는 세월의 흔적에 더해 특별한 의미도 함께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또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사랑받는 대성리역과 강촌역 역시 간이역으로서 들러보면 좋을 곳. 워낙 빽빽해 하나의 무늬가 돼버린 ○○대학 ○○학과 이 아무개, 김 아무개 들의 수많은 낙서들을 훑다보면 잠시나마 MT를 떠나던 풋풋한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지게 된다.
대학생들의 MT 장소와 자전거 하이킹으로 유명한 강촌역. |
춘천행 열차는 10여 개 간이역에 들러 5분 남짓 정차한다. |
간이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의 모습. |
영화 ‘편지’의 촬영 장소였던 경강역. |
MT를 다녀간 대학생들의 낙서가 하나의 무늬를 이루는 간이역 풍경. |
기차 안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삶은 달걀의 가격은 천원. |
남춘천역 앞에서 강원도의 명물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들(왼쪽), 닭갈비와 함께 춘천 대표음식으로 꼽히는 막국수(오른쪽).
그리고, 이렇게 그러저러한 역들을 거친 후 종착역인 남춘천역에 도착한다. 2009년까지 복선전철화 공사가 진행되는 탓에 현재 춘천 가는 기차의 종착역은 춘천역이 아닌 남춘천역. 혹시 무작정 기차를 잡아타고 ‘떠나온 이’라면, 춘천행 열차의 종착역에 다다른 뒤 다시 목적을 잃고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경우 옆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춘천관광안내지도를 받고 본격적으로 관광명소를 찾아나서거나 명동의 닭갈비 골목, 온의동 닭갈비거리, 강원대 후문 먹자골목 등에 찾아가 닭갈비와 막국수를 시식할 것을 권한다. 혹은 이왕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온 김에 연계버스를 타고 진짜 춘천역에 찾아갈 수도 있고 아무 버스나 잡고 춘천 시가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조금은 과장하고 호들갑을 떨며, 도착지의 낯선 풍경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겨보는 것 역시 목적 없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어차피 이 가벼운 여행의 목적은 ‘떠남’ 그 자체였고, ‘추억’은 덤으로 주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차창 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보니/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 잔 마시고 싶어/저녁 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 -김현철 ‘춘천 가는 기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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