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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버지의 뒤를 이어

드라마 ‘사랑과 야망’ 출연 중인 고 남성훈 아들 남승민

“20년 전 아버지가 입으신 것과 비슷한 교복 입고 연기하는 데 코끝이 시큰했어요”

기획·김유림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ㆍ권건우 제공

2006. 03. 15

2002년 세상을 뜬 탤런트 고 남성훈의 아들 남승민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 출연 중이다.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추억 & 작가 김수현과의 인연을 들었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 출연 중인 고 남성훈 아들 남승민

지난 2002년 57세의 나이에 다발성 신경계위축증으로 세상을 뜬 탤런트 남성훈.


“지난 2월 초 드라마에 출연하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새벽 1시였는데 자다가 벌떡 일어나 SBS 탄현 스튜디오로 달려가서 대본을 받고 아침 8시30분에 첫 촬영에 들어갔죠.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출연하셨던 작품에 캐스팅 됐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남승민(28·본명 권용철)은 20년 만에 리메이크 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탤런트 고 남성훈씨(본명 권성준)의 아들. 지난 2월12일 방영된 4회부터 아버지가 연기했던 태준(조민기)의 대학 학보사 후배 두식으로 출연하고 있는 그는 “언제까지 출연할지 잘 모르지만, 현재 나와 있는 대본을 보면 12회까지 나오는 건 확실하다”며 웃었다.
두식은 원작에는 없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번에 드라마가 리메이크 되면서 태준을 좋아하는 세미(서민정)를 짝사랑하는 인물로 새롭게 탄생됐다고. 또한 두식 역에 애초 다른 연기자가 캐스팅 됐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도중하차하면서 그가 배역을 맡는 행운을 안았다고 한다.
촬영의 대부분은 전북 익산에 있는 원광대 캠퍼스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촬영 첫날 아버지가 입었던 것과 비슷한 서울대 교복을 입고 거울을 본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나도 이 옷을 입게 됐구나’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했다고 한다. 그는 ‘20년 전 주인공을 맡았던 아버지의 활약을 떠올리며 이번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함께 했다고.
그는 1986년 MBC에서 ‘사랑과 야망’이 첫 방영될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1백여 회가 넘는 드라마를 한 회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봤다고 한다. 주말마다 아버지가 촬영장으로 향하기 전 녹화를 해놓으라는 숙제를 안겨줬기 때문.
“아버지는 모니터링을 한 번도 놓치지 않으셨어요. 지금처럼 예약녹화나 인터넷 다시보기가 없던 시절이라 방영시간에 맞춰 항상 TV를 켜야 했죠. 혹시라도 놓치는 날에는 재방송을 기다려야 했어요. ‘사랑과 야망’이 방송되던 해에는 주말마다 꼼짝 못하고 TV를 봐야 했지요(웃음).”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녹화해두었던 테이프를 지난 96년 이사하면서 모두 잃어버렸다고 한다.

희귀병 진단받고도 딱 한 번 눈물 흘린 강한 아버지
드라마 ‘사랑과 야망’ 출연 중인 고 남성훈 아들 남승민

그는 당시 어렸지만 아버지의 연기를 보고 감탄한 적이 많았는데, 특히 극 중에서 태준이 미자를 떠나보내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끙끙대며 사랑의 열병을 앓는 장면을 보며 어머니와 함께 ‘엉엉’ 울었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그의 아버지 남성훈씨는 지난 2002년 향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는데 병명은 다발성 신경계위축증으로 운동장애가 서서히 나타나다 전신마비 증상으로 발전, 눈을 깜빡거리기도 힘들게 되며 결국 사망에 이르는 병이라고 한다.
지난 98년 처음 병명을 진단받은 아버지는 그보다 2년 전 이미 한 차례 쓰러진 적이 있다고 한다. 원인은 고혈압이었는데 뇌졸중 증상으로 입에 마비가 오고 거동하기도 힘들었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입의 마비를 풀기 위해 볼펜을 입에 물고 구약성서를 10번 이상 읽어 내려가는 끈질긴 투지를 보였고 결국 빠른 속도로 회복, 연기활동을 재개했다고 한다. 그 후로 다시 건강을 되찾은 듯 보였지만 결국 2년 만에 병원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선고를 받게 됐다. 서울 시내의 모든 대학병원을 돌아다니며 검사를 받은 아버지는 마지막 병원에서까지 같은 결과가 나오자 체념한 듯 자신의 병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 출연 중인 고 남성훈 아들 남승민

“아버지는 마지막 검사 결과를 통고받고 그때 딱 한 번 우셨다고 해요. 의사선생님이 ‘앞으로 점점 몸이 마비되고 장기도 서서히 운동을 멈추게 될 것’이라고 말하자 어머니를 잡고 눈물을 떨구셨다고요.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서 의사선생님 방으로 가시더니 ‘혹시 이 병 유전 됩니까’ 하고 물어보셨다고 해요. ‘유전이 아니라 1백만 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는 희귀병’이라는 답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다고요. 저라면 치료법부터 알려달라고 했을 텐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족들을 걱정한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그의 아버지는 희귀병 진단을 받고도 끝까지 연기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해 KBS 아침드라마 ‘너와 나의 노래’의 출연 제의가 들어오자 담당 PD에게 자신의 병을 처음 밝힌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연기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선 것. 당시 아버지의 연기활동은 낙심해 있던 가족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고 가족 모두가 합세해 아버지의 연기활동을 적극 지원했다고 한다.
“주로 김포나 강화에서 촬영이 진행됐는데 아버지의 촬영이 있는 날은 마치 가족여행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누나는 직장생활하느라 바빴지만 저는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촬영장에 자주 갈 수 있었거든요. 현장에서 미리 싸간 도시락을 먹으면서 재밌게 지냈고 아버지도 항상 밝은 표정으로 연기에 임하셨죠.”

병상에 있던 아버지에게 “내 수명 중 10년을 떼어주고 싶다”고 말한 김수현 작가
그의 아버지는 그 뒤로 병세가 점점 악화돼 3년간 튜브로 음식을 공급받으며 투병생활을 하다 지난 2002년 10월 결국 세상을 등졌다. 이미 예상한 결과였지만 가장을 잃은 가족들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고 어머니는 “단칸방 셋방살이부터 시작해 평생을 연기 하나만 알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가엾다”며 몇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다고 한다.
“부모님은 결혼하고 얼마 안돼 단돈 15만원을 들고 분가를 하셨대요. 당시 아버지의 연기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기신 할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으셨나봐요. 분가하고 다음 해에 제가 태어났는데 임신 중 어머니의 영양상태가 좋지 못해 저도 태어날 때 비타민 결핍증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언젠가 한번은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한테 ‘15만원으로 시작할 때 비하면 지금 우리는 부자야. 당신만 벌떡 일어나면 가진 재산 다 남 줘도 좋아. 이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는데 이렇게 가면 너무 허망하잖아’ 하시면서 우시더라고요.”
그는 아버지에 이어 ‘사랑과 야망’ 작가 김수현과 남다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내 사랑 누굴까’ ‘완전한 사랑’에 이어 ‘사랑과 야망’에 출연하게 된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소개로 김수현 작가를 처음 만났고 그 뒤로도 일년에 서너 번씩 꾸준히 김 작가와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그는 “김수현 선생님이 제 이름에 향기가 없다는 말씀을 하셔서 본명 권용철에서 남승민으로 이름을 바꿨다”며 웃었다.
“김수현 선생님은 아버지에 이어 저까지 잘 돌봐주셔서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계실 때도 ‘내 수명의 10년을 잘라서 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아버지를 아끼셨어요. 아버지가 선생님이라고 부르셨던 분을 저 역시 선생님이라 부르기가 조금 어색하지만 할머니라고 부르면 삐치시겠죠?(웃음)”
아버지의 연기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여 무작정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남승민. 그는 자신에게 “훗날 연기자가 된 걸 후회 안 할 자신 있냐”고 세 번 물어본 뒤 허락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연기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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