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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노래에 사랑을 싣고

국제무대 데뷔 20주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프라이버시 인터뷰

“지금까지 살아온 20년이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삶이었다면 앞으로의 20년은 타인을 위한 삶이길 바래요”

글ㆍ김유림 기자 / 사진ㆍ워너뮤직코리아 제공

2006. 03. 15

성악가 조수미가 국제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현재 로마 근교에 머물며 3월에 있을 유럽 투어 공연을 위한 노래 연습에 한창인 그가 들려준 감회와 싱글 라이프, 사랑에 대한 기억들….

국제무대 데뷔 20주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프라이버시 인터뷰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44)에게 올해는 뜻 깊은 해가 아닐 수 없다. 86년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여주인공 질다 역으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데뷔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인 것. 국제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새 음반을 발표한 그는 3월부터 시작되는 유럽 투어 공연 리허설을 위해 연습실로 향하려고 한다며 맑고 경쾌한 목소리로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바흐, 헨델, 비발디, 퍼셀 등 바로크 시대 작곡가의 곡만을 모아 만든 첫 바로크 음반 ‘바로크로의 여행’은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대중들이 듣기에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발매 한 달 만에 1만 장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번 작업을 통해 바흐와 화해했다”고 말하는 그는 “성악가의 음악 여행에 있어 바로크는 빼놓아서는 안 될 분야”라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바로크 음악이라면 끔찍했어요. 다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방문을 걸어잠그고 안 열어주시는 바람에 바흐의 ‘인벤션’만 하루 8시간씩 쳐야 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작업은 타임머신을 타고 바로크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 만큼 흥미로운 시간이었어요. 특히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녹음할 때는 실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바흐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 시대에도 커피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죠(웃음).”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 그가 가장 추천하는 음악은 2번 트랙에 실린 비발디의 오페라 ‘그리셀다’ 중 ‘폭풍이 몰아치고’다. 가장 힘겹게 녹음한 곡이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이 음악을 ‘스트레스가 풀리는 곡’이라며 베스트로 꼽는다고.

“로마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강아지 세 마리와 살고 있어요”
그는 국제무대 데뷔 2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오는 8월 한국을 방문해 중·고교 음악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 콘서트를 가질 계획이다. 평소 청소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번 아카데미를 통해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음악적 소양이 향상돼 아이들에게도 음악의 참의미를 전달하고, 그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도 아름다운 삶을 지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무대에 서는 것과는 또 다른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2014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와 ‘2012 여수 국제박람회 유치위원회’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그는 “한국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라도 나설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나라가 잘 돼야 고국을 떠나 있는 한국 사람들의 미래도 밝다”고 말했다.
국제무대 데뷔 20주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프라이버시 인터뷰

“외국에 산 지 어느덧 24년이 흘렀어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한국에 대한 애착이 커지고 우리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뭐든 하고 싶어요. 어떤 팬들은 노래할 시간도 모자랄 텐데 다른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하세요. 하지만 제가 콘서트를 백 번 여는 것보다 한국을 위한 국제행사에 한 번 참가하는 것이 저 자신은 물론 고국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외국에 살고 있는 분이라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실감하실 거예요.”
전 세계를 누비며 무대에 서고 있는 그는 지난해 집에 머무른 날이 60일도 채 안됐다고 한다. 그러기에 집에서 지내며 아침마다 강아지들과 산책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그는 로마 시내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프라스카띠’에 살고 있는데 밤이면 로마 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집 안에는 아담한 정원과 배추를 심을 정도의 텃밭이 있다고. 함께 살고 있는 식구는 24년 동안 그를 뒷바라지해준 로마 출신 도우미 아주머니와 강아지 신디, 밀디, 토미. 개를 좋아하는 그는 자신을 엄마처럼 따르는 강아지들의 자랑을 한동안 늘어놓기도 했다.

“내 침대에서 눈을 뜨고 우리 집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평범한 일상이 제게는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곳은 화이트 와인이 유명한데, 햇살 좋은 오후에는 시내로 나가 와인 한 병을 사고, 꽃집에 들러 식탁에 놓을 꽃도 한 다발 사고,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행복을 느껴요.”

술을 좋아하냐고 묻자 그는 “매일 식사 하면서 와인을 한 잔 정도 마신다”고 답했다. 와인 외에도 칵테일을 즐겨 마시는데 달콤하고 상큼한 맛의 ‘애플마티니’를 가장 좋아한다고. 뉴욕에 갈 때면 꼭 들르는 단골 바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기분이 좋을 때면 두세 잔까지도 거뜬히 마신다고 한다.

“유머 감각 있고, 느긋한 성격에 열린 마음을 가진 남자가 이상형이에요”
국제무대 데뷔 20주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프라이버시 인터뷰

애인은 없지만 전 세계에 남자친구들이많다는 조수미는 “이제는 독신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싱글인 그는 현재 진지하게 만나는 남자친구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전 세계에 남자친구들이 많아 나름대로 만족한 삶을 즐긴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의 유일한 여자친구는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캐런 윤. 둘 사이에는 비밀이 거의 없을 정도로 친하다고 한다. 그 외의 친구들은 모두가 남자인데 그중 음악인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제 삶의 99%가 음악이기 때문에 친구까지도 뮤지션이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현재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중에는 유럽 국회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있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 의사 등 그 직업이 아주 다양해요.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면 제가 미처 몰랐던 사회도 알게 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다들 싱글이라 삶의 방식이나 생각도 잘 맞고요.”
결혼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별 진전이 없다”며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어 “괜찮은 사람은 벌써 가고 없는 것 같다. 남의 물건에는 손 안 댄다”며 농담도 했다. 하지만 아직 결혼 계획을 잡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그랬듯이 “너무 바빠서”라고 한다. 한 사람과 오랜 기간을 두고 데이트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제는 독신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결혼은 멋모르는(?) 20대에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만 한번 시기를 놓치니까 다시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아요.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는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인 것 같아요.”
그의 첫사랑은 지난 97년 그가 쓴 수필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에 첫머리에서부터 무려 15장에 걸쳐 등장하는 K군. 대학 2학년 때 같은 학교 경영학과 학생이던 K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사귀자는 제안을 했고 두 사람은 1년 동안 다방, 영화관, 디스코클럽을 다니며 24시간 붙어 지내는 날이 많았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을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K와 결혼할 생각이었고 아이들 이름도 미리 지어놓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K를 만나고부터 음악공부를 완전히 놓아버린 그를 어머니와 담당교수가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결국 그는 83년 반강제적으로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고 그로부터 4개월 뒤 K로부터 이별 편지를 받았다.
“이후로는 그런 사랑을 해보지 못했어요. 제가 아직도 결혼을 못하고 한국인 신랑을 찾는 이유도 첫사랑의 환상, 열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지기 마련, 그는 최근 들어 변했다는 자신의 이상형을 세 가지로 압축해 설명했다. 먼저 그는 유머 감각이 있는 남자를 1순위로 꼽았다.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도 환대 받고 주위를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 두 번째는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 그는 얼마 전 다른 차에 양보도 잘하고 신호도 느긋하게 기다리며 밝은 표정으로 운전하는 남자를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세 번째는 언제나 배우려고 노력하는 남자.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어른들이나 친구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말미에 “이런 조건을 다 갖춘 남자가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는 요즘 매일 아침저녁으로 생각하는 게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청소년 순화와 동물보호, 장애인 복지가 그것인데, 더 이상 개인적인 발전에 얽매이기보다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세계의 발전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 때문이라고.
“지금까지 살아온 20년이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한 삶이었다면 앞으로의 20년은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신으로부터 받은 저의 음악적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야말로 반드시 해야 할 도리인 것 같고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체력 유지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활동적이고 강렬한 운동을 좋아해 3년째 킥복싱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식을 줄 모르는 그의 열정이 일궈낼 또 다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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