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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뜻깊은 메시지

“마음의 문 활짝 열라”설파한 ‘출가 50년’ 맞은 법정 스님

기획·이남희 기자 / 글·서정보‘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 사진·홍진환‘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6. 03. 08

‘무소유’와 ‘다 비우고 떠나기’를 실천해온 법정 스님이 올해 법랍 50세를 맞았다. 법정 스님을 만나 ‘출가 50년’에 대한 소회를 들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라”설파한 ‘출가 50년’ 맞은 법정 스님

지난 2월12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은 “굳은 마음을 활짝 열어 내 인생의 봄날을 열자”고 말했다.


“풋중 시절엔 괴팍하단 소리 많이 들었지요. 억새풀같이 가까이하면 베일 것 같다고도 했고…. 한 사진기자는 날 보러 산에 올라왔는데 내 눈이 너무 무서워서 인사도 못하고 그냥 내려갔다고 하데요.”
법정 스님의 얼굴엔 자상한 할아버지 같은 화사한 웃음이 번졌다. 지난 2월12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평소 강원도 산골 오지에서 기거하던 스님은 이날 동안거(冬安居) 해제 법문을 하러 서울 나들이를 했다.
“하지만 ‘괴팍’을 떨었기 때문에 이 길에 매진할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부처의 길이 있다고 해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 선불교의 공통된 가르침인데 당시에는 무의진인(無依眞人)이라고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는 주체적 인간이 되겠다는 기세가 충만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늙어서도 괴팍하면 못써요.”
그의 얼굴엔 여전히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눈가의 주름에서 괴팍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다. 스님은 올해 계를 받은 지 50년을 맞았다. 1954년 출가한 그는 56년 효봉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예비승려)를 받았다.
“나이가 드니까 안팎을 살펴서 스스로 분수를 알게 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돼요. 내 가슴이 따뜻해지면 저절로 나누고 싶어지죠. 수행자에겐 세월이 붙지 않는다고 해요. 수행자는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살 뿐이지요. 그래도 50년이 되니까 그동안 수행자로서 제대로 살았는지 반성해보게 돼요. 그저 시주의 은혜를 입으며 헛이름만 세상에 알린 건 아닌지….”
스님은 출가 후 경남 합천 해인사를 거쳐 서울 봉은사에 기거하면서 실력 있는 젊은 승려로 이름을 떨쳤다. 불교신문 주필도 지냈고 여러 직책도 맡았다.
하지만 그는 75년 절을 떠나 전남 송광사 뒤에 불일암을 짓고 혼자 살기 시작했고 스님의 책이 유명해지면서 불일암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옮겼다. 이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2, 3명에 불과하다.
“불교신문 주필일 때 베트남전 파병 반대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베트남 참전 병사에게 일제가 쓰던 ‘무훈장구(武勳長久)’를 빌어준다고 비판했죠. 그땐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럴 땐데 당시 총무원장이 승적을 박탈하겠다는 등 난리가 났었어요. 그때 제도권 불교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깨닫고 불일암을 직접 지어 살게 된 거예요.”
당시 그의 마음에도 증오가 생겼다고 했다. 증오는 마음의 독과 같은 것. 증오가 있는 상태에선 수행자의 본분을 지킬 수가 없어서 버리고 떠났다는 설명이다.
불일암에 들어간 뒤 그는 ‘무소유’ ‘산방한담’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산문집을 펴냈다.
한 프랑스 철학자가 찾아와 “이렇게 외진 곳에서 사는 것이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스님은 “내 식대로 살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사는 것을 보고 좋아하니까 이렇게 살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스님은 그 후 사회와 더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되지도 않는 글을 쓰는 건 그 때문이죠. 산중 살림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자연에서 얻은 교훈을 나누고 싶었죠. 사람들이 자연과 멀어지면서 더욱 마음이 메말라가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겠다는 뜻이었지요.”
수행자는 고독할 수 있어도 고립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누구든 사회와 인연을 끊고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고독은 스스로를 투명하게 하고 자신을 성찰하게 만들지만 고립은 단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나눌 것은 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라”설파한 ‘출가 50년’ 맞은 법정 스님

지난해 4월 길상사에서 가족을 주제로 법문을 하는 법정 스님.


스님이 강원도 산골에서 홀로 지낸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스님은 “예년 겨울엔 개울 위만 살짝 얼고 밑에는 개울물이 흐르는데 올해는 유난히 추운 날씨에 개울 바닥까지 다 얼어붙어 얼음을 깨서 식수를 구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우리의 마음이 물과 같다고 했다. 물처럼 부드러운 것도 한번 얼면 도끼로 깨도 잘 녹지 않는다는 것.
“마음이 너그러우면 세상을 다 포용하지만 한번 굳으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해요.”
스님은 동안거 해제 법문에서도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통 수행은 마음을 닦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추상적인 표현이고 정확히 말하면 ‘마음을 쓰는’ 겁니다. 마음을 써서 남에게 덕을 베풀어야 그게 올바른 수행이지요. 내 마음만 닦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요.”
스님은 50년 세월 동안 그 이치를 깨달은 것인지 모른다.
“50년 출가에서 이룬 것은 현재의 ‘나’입니다. 재산, 명성 등은 이룬 게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거지요. 내가 평소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떻게 살았나, 그리고 가족과 이웃에게 어떻게 대했나 그런 게 남는 거예요. 어디 갇히거나 고이지 말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요. 그러면 자기 인생에 화창한 봄이 올 겁니다.”
법랍 50년을 맞아 스님의 법문과 산문에서 좋은 잠언들을 골라 엮은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조화로운삶)는 잠언집이 나왔다. 제목대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행복을 기원하는 축시와 같은 이 책은 무소유, 자유, 단순함, 홀로 있음, 침묵, 진리에 이르는 길과 존재에 대한 성찰로 가득하다. 이 책은 미국 일본 대만 중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또 그동안 발간한 20여 권의 산문집에서 스님이 직접 고른 산문을 엮은 책도 4월 중 나올 예정이다.
책의 발간을 책임진 류시화씨는 “이 책은 스님과 스님의 글을 읽고 인생의 행로를 바꾼 사람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스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무엇일까. 책을 들춰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했다.
“더는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도 나누라.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나눌 것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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