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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유럽 현지 취재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부인 정희자·김선정 모녀

기획·최호열 기자 / 글·김민경‘주간동아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5. 07. 14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이 한창 화제가 될 무렵 부인 정희자씨는 오히려 한국을 떠나 베니스로 향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막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디렉터를 맡은 딸 김선정씨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일 앞에서는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지만 힘들 땐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이들 모녀의 특별한 관계를 취재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부인 정희자·김선정  모녀

제51회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식을 앞둔 지난 6월8일 밤, 비엔날레 취재를 위해 현지에 와있던 한국 기자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한국 귀국 초읽기에 들어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69)의 부인인 정희자씨(69)가 베니스행 비행기를 탔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정씨는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루프트한자 편으로 8일 밤 심야에 베니스에 도착했는데, 같은 비행기를 탄 한국인들도 그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단지 목에 깁스를 하고, 휠체어에 앉은 모습이 시선을 끌었을 뿐이다.
정씨와 함께 베니스에 도착한 한 한국인은 “우리나라 중년 부인이 휠체어에 앉은 채 혼자 공항 복도에 있어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려 했다. 그때 양복 입은 수행원들이 나타났고, 정희자씨인 것을 알았다. 기자들을 피하느라 수행원들과 별도로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우중 전 회장의 귀국이 전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는 상황에서 부인 정씨가 베니스에 나타난 것은 공교롭게도 맏딸 김선정씨(39)가 주관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비슷한 시기에 오픈했기 때문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크게 전 세계 작가들이 참여하는 주제전 ‘아르세날레’ 전과 각국에서 대표 작가들을 내보내는 ‘국가관’ 전으로 나뉜다. 김선정씨는 바로 ‘한국관’(Korean Pavilion) 디렉터로 선임됐다. 운동 경기로 보면 국가대표 감독인 셈이다.
선정씨는 6월9일 밤 한국관 오픈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한 달 넘게 베니스 등 주로 외국에서 전시 준비를 하다보니 너무 힘들었다. 한국 식구들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와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선정씨는 5월 말부터 베니스에서 아파트를 빌려 작가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작품 설치를 했다. 한국에서 미술 관계자들과 친구들이 몰려온 뒤에도 그는 한국관을 비우지 못해 작가들과 함께 피자를 배달해놓고 벤치에서 때우곤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고, 중국이든 유럽이든 일이 있으면 마다 않고 달려가며, 작가들과 밤을 새우며 논쟁을 벌이는 스타일이어서 주변 사람들은 김씨가 일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지친다고 말할 정도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느라 많이 여윈 김씨는 6월8일까지만 해도 화장도 하지 않은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한국관을 공식적으로 오픈한 다음날엔 옅게 화장도 하고 생기를 되찾아 하룻밤 사이에 아주 달라져 있었다.
“아침에 엄마 만났잖아요. 얼마나 힘이 나는데요.”
정희자씨는 이날 오전 9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있는 베니스 지아르디니(‘공원’이란 뜻)에서 딸 선정씨가 기획한 전시를 둘러보고 격려했다.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는 정씨는 거동은 불편했지만 기자들을 피하지 않았다. 질문에도 호의적으로 답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행로에 대해서는 “그쪽대로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내 일이 있다”고만 간단히 답했다. 정씨는 베니스에 머무는 동안 한국인들이 많이 머무는 별 3개짜리 작은 호텔에서 지냈다.

아트선재센터 운영방법 이견으로 모녀가 갈라서기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부인 정희자·김선정  모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이전까지의 한국관은 물론 다른 국가관들과도 컨셉트가 전혀 달라 화제가 됐다. 다른 국가관들이 대부분 1~2명의 개인전인 데 비해 한국관은 무려 15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선정씨와 오래 일해온 스태프는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젊은 한국 작가들을 외국 화상과 비평가들에게 알리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실제로 몇몇 작가들은 실질적인 프로모션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전시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뉜 데 비해 외국 평론가나 화상들의 반응은 “매우 흥미롭다” “신선하다”는 호감도가 높은 듯했다. 개막식에 무려 1천3백 명이 방문하는 기록을 세웠고, 선정씨 역시 “외국 평론가들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나 전시 방식에 많이 놀란 것 같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날 방문한 외국 미술 관계자들은 대부분 그와 오랫동안 친분을 가진 이들이어서 인맥의 폭을 가늠케 했다.
한국관 전시에 비판적인 이들도 “김선정이라는 기획자가 아니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전시”라는 데는 이의가 없었다. 그의 강력한 추진력과 국제적 감각, 인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미술대학과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학위를 받은 김씨는 1993년부터 아트선재센터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현대미술계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김씨가 가장 주력한 것은 미국, 프랑스, 호주 등 해외 현대 미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교류전을 기획함으로써 한국 미술 작가들을 세계 미술시장의 일부로 자리 잡게 한 일이다. 또한 2000년경부터는 아시아 작가 교류에 주력했으며 국내에서 몇 안되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진 큐레이터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부인 정희자·김선정  모녀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딸을 위해 베니스까지 간 정희자씨.


김씨는 대우사태 이후 아트선재센터 운영이 어려워지자 전시운영비를 얻기 위해 직접 뛰었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각종 후원제도를 활성화해 다른 미술관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아트선재센터 운영을 놓고 어머니 정씨와 의견을 달리하면서 부관장직을 내놓았다.
그는 “그동안 너무 바쁘고 힘들게 살았다. 이제 천천히,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트선재센터 관계자는 “정 관장은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을 운영하면서 미술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해 아트선재센터를 지었는데 선정씨가 젊은 작가들 전시 위주로 운영해온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에 아트선재센터 전시를 예정한 한 미술계 인사는 “정 관장을 면담해 전시 일정을 짰다”고 말해 정 관장이 실제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두 사람이 미술관 운영을 놓고 갈라선 후 김씨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디렉터를 맡게 되자 별도의 사무실을 얻어 서울과 베니스, 스위스 등을 오가며 비엔날레 진행에 몰두하자 일부에서 “역시 여느 모녀 사이와는 다르다”는 말이 나왔다. 비엔날레 폐막 후에도 정 관장은 파리로, 김씨는 스위스의 바젤 아트 페어에 들렀다 각각 귀국하는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베니스에서 정희자·김선정 모녀가 상봉하는 모습은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었고, 역시 피는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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