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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사랑을 나눠요

독거 노인들에게 도시락 전하는 주부 송영희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송구슬 ■ 사진·박해윤 기자

2004. 10. 04

송영희씨(37)는 무의탁 독거노인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봉사를 통해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두 딸아이도 함께 도시락을 배달하며 가족과 이웃사랑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 같아 기쁘다는 송씨가 들려주는 훈훈한 봉사활동 체험기.

독거 노인들에게 도시락 전하는 주부 송영희

아침 6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두 딸아이를 깨웠다. “영서, 은서 일어나! 오늘 도시락날인 거 알지?” 영서(10)는 ‘도시락날’이란 말에 벌떡 일어나고 은서(7)는 안 일어나면 언니랑 엄마만 간다는 말에 졸린 눈을 비비며 졸음을 쫓느라 안간힘을 쓴다.
우리에게 매주 목요일은 복지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도시락 데이’다. 평소 잠꾸러기인 첫째 영서는 자기 딴에도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드는지 목요일 아침이면 알람시계를 맞춰놓고 일어나 부지런히 나갈 준비를 한다. 덩달아 둘째 은서도 내 옆에서 빨리 준비하라며 잔소리를 늘어놓기까지 한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도시락 배달봉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봄. 우연히 집 근처에 있는 신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무의탁 독거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해 줄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문득 어느 추운 겨울에 지하철역을 지나다 보았던 할머니 한 분이 떠올랐다. 바쁘게 오가는 인파 속에서 계단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도시락을 드시던 할머니. 일찍부터 좌판을 벌이고 늦은 아침을 드시는 모양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할머니의 어깨 너머로 본 도시락은 찬밥 한 덩이와 희멀건 무짠지가 전부였다. ‘따스한 국물이라도 함께 드시지. 한 푼이 아까워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오셨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그 후로도 종종 숟가락을 쥐고 있던 할머니의 거친 손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그 기억이 떠올라 주저 없이 신청을 하게 되었다.
‘도시락 배달봉사’는 일주일에 한 번 복지관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어르신들께 전해드리면 된다. 특히 신길복지관은 다른 복지관보다 이른 시간에 도시락 배달을 하기 때문에 오전 7시면 봉사가 끝나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있고,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나는 네 분의 할머니께 도시락을 전해드리고 있는데 처음엔 다 만들어진 도시락을 배달만 해드리니 봉사라고 하기에도 무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봉사하시는 분들을 뵈며 내 생각이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그분들은 도시락을 전해드리며 어르신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아픈 곳은 좀 어떤지 등을 꼼꼼히 살핀다. 또한 날씨얘기며 가족얘기, 소소한 일상사를 나누는 동안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려 노력한다. 행여 주변의 시선에 마음 상하지 않도록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깊은 배려를 담는다. 도시락과 함께 따스한 마음을 배달하는 것이다.
복지관에 도착하니 주방 아주머니들이 분주히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은 영서랑 은서 둘 다 지각 안 했네.” 주방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네! 저희 도시락 주세요!” 영서와 은서는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다투어 도시락을 챙긴다. 온기가 남아 있는 도시락은 아침밥을 먹고 나왔어도 군침이 돌만큼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오늘의 메뉴는 콩자반, 깻잎절임, 생선구이, 오징어 조림.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도시락을 받아든 순간. 이 시간이 나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제 곧 할머니들의 시장기를 덜어줄 도시락 하나. 손에 닿는 이 온기가 먹고 사는 일에 지쳐 삭막해진 내 마음까지 훈훈하게 데워주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독거 노인들에게 도시락 전하는 주부 송영희

자신보다 아이들이 먼저 도시락을 챙겨 독거노인을 찾아간다며 흐뭇해 하는 송영희 주부.


“자, 할머니들 시장하시겠다. 서두르자.”
도시락을 가방에 담는 일은 영서의 몫이다. 당뇨를 앓고 계신 할머니의 도시락은 구별이 되도록 맨 아래에 담는 것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이 제법이다.
처음 도시락을 전해드릴 분은 김옥분 할머니(74).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언제나처럼 문 밖까지 뛰어와 반겨주신 할머니는 도시락은 받으실 생각도 않으시고 손부터 덥석 잡으셨다. “오늘은 조금 늦게 왔네, 머리 잘랐어?” 그 짧은 사이 유심히도 보신 모양이다. 그리고 두 아이를 번갈아 얼싸안아 주시며 자꾸 아침을 먹고 가라 하신다. “다음에 한가할 때 올게요.” 당장이라도 상을 차려내실 것 같아 사양하느라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수거할 빈 그릇을 챙겨서 도망치듯 인사를 나누고 다음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최임생 할머니(76)는 항상 아이들에게 요구르트며 사탕을 건네신다. 할머니는 건강이 안 좋으셔서 항상 더 마음이 쓰인다. 얼마 전에는 도시락 배달을 와서 벨을 눌렀는데도 한참 동안 기척이 없어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방정맞은 생각이 들어 문을 쾅쾅 두드렸더니 그제서야 깊은 잠을 주무시던 할머니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그 일을 겪은 후부터 도시락 배달이 없는 날에도 종종 할머니들을 찾아뵙게 되었다. 돌봐드리는 사람 없이 혼자 사시니 언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은 두 할머니들께 도시락을 전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아이들은 할머니가 주신 요구르트를 손에 꼭 쥐고 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챙겨주신 할머니 마음을 아는 걸까? 아이들의 마음이 쑥 자란 것이 느껴졌다. 남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이었지만 어느새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고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일이 되었다. 오늘은 퇴근하는 길에 잘 익은 연시 하나 챙겨서 할머니 댁에 들러야겠다. 연시를 보고 떠오르는 얼굴이 많으니 부자가 된 느낌이다. 올 가을은 어느 해보다 풍성한 가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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