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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우리 모두의 어머니 ‘기숙’

성지연 에세이스트, 국문학 박사

입력 2022.06.19 10:30:02

박완서 작가의 연작 소설 ‘엄마의 말뚝’은 분단 문학의 대표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어머니 ‘기숙’을 여기에만 가둬두는 것은 옳지 않다. 그녀는 한국 근현대사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 가운데 자신의 말뚝을 세워나간 사람이다. 
박완서(1931~2011)

박완서(1931~2011)

한국 소설을 꽤 읽었다. 그 소설에는 다양한 어머니가 등장한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모든 걸 내주는 존재거나 세속의 가치를 대변하는 존재다. 또 너른 품이 한없이 그리운 존재거나 가부장제에 애처롭게 시달리는 존재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의 ‘엄마의 말뚝’ 말고는 딱히 어머니의 이름이 기억나는 소설이 없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어머니 이름이 ‘기숙’임을 밝히며 끝난다. 그녀의 이름을 남기는 의도는 뭘까. 소설 내용을 한번 따라가 보자.

‘엄마의 말뚝’ 연작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던 부분은 두 번째 편의 마지막이다. 어머니는 젊어서 남편을 잃었다. 딸인 화자(話者)의 낙원이었던 고향, 경기도(현 황해북도) 개풍군 박적골에서였다. 어머니는 도시의 양의사에게 돈 들여 수술시키면 병든 남편을 살릴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아들 하나는 어떻게든 성공시켜보겠다고 바느질 솜씨 하나에 기대 서울로 떠났다.

어머니는 서울의 가난한 동네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매일 장작을 한두 단씩 사다 때야 했다. 눈이 쌓인 산동네 비탈길을 오가야 하는 일이었다. 아들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어머니는 거절했다. 장차 공부 잘 해 큰일 하라고. 큰돈 벌어 효도하라는 거였다.

그런 아들을 전쟁에 잃었다. 아들은 의용군으로 입대했다가 탈출해 집안에 숨어 있었다. 집에 찾아온 인민군에 의해 발각돼 총상을 입고 죽었다. 어머니는 가매장했던 아들 유골을 화장해서 개풍군 땅이 보이는 강화도 북쪽 바닷가에서 뿌렸다. 딸은 어머니의 이런 행동이 모든 걸 빼앗아간 분단이란 괴물에 항거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이 장면은 우리 소설사에서 분단 문학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광경으로 읽혀 왔다. 개인의 삶은 역사 안에 내던져지고, 역사의 비극은 개인의 비극으로 나타난다. 바람에 날리는 뼛가루는 그 비극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개인의 처절한 의지다.



아들의 뼛가루를 날리는 어머니 ‘기숙’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기숙을 분단 문제에만 가둬두는 것은 옳지 않다. 기숙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간 인물이다. 인생의 답은 서울에 있을 거라고 믿고 그곳에 말뚝을 박은 그런 사람이다.


어머니는 ‘신여성’이 되라고 하셨다

박완서 작가의 어머니 홍기숙 여사.

박완서 작가의 어머니 홍기숙 여사.

딸을 서울로 데려가던 어머니가 딸의 귀에 속삭인 건 ‘신여성(新女姓)’이었다. 사실 어머니는 신여성을 잘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딸이 도대체 뭔지 몰라 하니 서울로 가는 기차에 타고 있는 여자들을 가리키며 설명해 나갔다. 히사시까미(긴 머리카락을 자른 후 비녀를 꽂지 않고 앞머리와 뒷머리를 둥글게 말아 올려 고정시킨 헤어스타일)로 빗은 머리, 통치마, 뾰족구두, 한도바꾸(핸드백) 같은 게 신여성의 표식이었다.

“신여성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란다.”

어머니가 내놓은 답변이었다. 어마어마하다. 세상에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니. 시골에는 없는 것, 자신은 할 수 없던 것, 이 세상에 없는 것이었다. 신여성을 향한 꿈은 얼마나 힘이 센지 시부모를 이기고, 딸도 이겼다. 기어이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본래 신여성과 거리가 멀었다. 신여성은 어머니에게 없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 어머니가 원하는 건 딸을 신여성으로 만드는 거였다.

시부모의 반대는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갈 때보다 격렬했다. 손자를 도시인 대처(大處)에 데리고 나가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하겠다는 며느리의 결심에는 희망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시부모는 손녀를 신여성으로 만들겠다는 며느리의 의지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성공을 위해 헌신했을 뿐 아니라 딸에게까지 성공을 기대했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 딸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던 기성의 가부장주의와는 다르다. 자식의 성장에는 부모의 기대가 필요하다. 그 희소한 자원을 어머니는 딸에게도 나눠줬다.

하지만 딸은 생각이 달랐다. 오빠가 성공이란 올가미에 걸려 낙원과 같은 박적골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대처가 자신에게는 신여성이란 올가미를 씌웠다고 봤다. 딸은 자신을 무언가로 만들려는 올가미가 무서웠다. 대신 긴 다홍치마, 자주고름 달린 노랑 저고리, 꽃신을 원했다. 차림새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신여성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시부모도 정든 손녀를 곁에 두고 싶었다. “무슨 수로 기집애꺼정 학교에 보내 보내길”하고 펄쩍 뛰었다. 어머니는 딸의 긴 머리를 잘라 단발머리로 만들어 딸과 시어머니의 기를 단숨에 꺾어버렸다.

어머니는 딸을 서울 사대문 안을 뜻하는 ‘문안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노력했다. 어머니에게 ‘문안’과 ‘문밖’은 중요하다. 어머니는 사대문 밖 현저동 이웃들을 상것 취급했지만, 정작 자신도 문밖에 살아 ‘문밖 의식’이란 모순적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딸을 문안 학교로 보내려고 성공하기 전에는 만나지 않을 거라 결심했던 친척을 찾아다녔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딸은 선생님 앞에서 말할 친척집 가짜 주소를 외워야 했고, 아이들 생간을 꺼내 먹는 문둥이가 있다는 산등성이를 넘어 학교를 다녀야 했다.

어머니는 기어코 서울에 집을 사 말뚝을 박았다. 독립문 옆 현저동 꼭대기인 ‘문밖’에서였다. 말뚝은 집, 다시 말해 존재가 거처하는 공간을 은유한다. 어머니는 새로 장만한 집을 고치고 다듬으며 흐뭇해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문밖이라고 업신여겼다. 어머니는 딸을 동네 아이들과 떼어놓으려 했고, 딸은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딸은 어머니가 추구한 성공에 온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벗어나려던 박적골의 편에 가 있었고, 동네 사람을 문밖 사람이라고 상것들로 부르는 어머니에게 불편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딸은 자신 안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문밖 의식’을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이 연작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모성 신화가 드리운 그늘

박완서 작가의 1971년 1974년 1975년 모습(왼쪽부터). 가운데 사진의 청년은 박 작가의 장녀 호원숙 작가다.

박완서 작가의 1971년 1974년 1975년 모습(왼쪽부터). 가운데 사진의 청년은 박 작가의 장녀 호원숙 작가다.

이제 딸도 자신의 가정을 일궜다. 딸은 집에서 일어난 불상사는 모두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바깥 재미에 빠져 집 생각을 한 번도 안 할 때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럴 때마다 섬뜩함이 찾아왔다. 한참 재미에 빠져 방심하다 섬뜩한 느낌이 들며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섬뜩함 자체를 사랑했다. 그 섬뜩함은 일순 무의미한 진구덩의 퇴적에 불과한 나의 일상, 내가 주인인 나의 삶의 해묵은 먼지를 깜짝 놀라도록 아름답고 생기 있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 섬뜩함에 대해 딸이 갖는 감정은 복합적이다. 분명 나쁜 일에 대한 예감일 텐데, 그날이 그날 같은 무의미한 일상에 역설적으로 빛을 비춘다고 했다. 권태가 행복처럼, 먼지가 금가루처럼 빛나는 뜻밖의 삶의 축복이라고까지 여겼다. 나만 없어 봐라, 같은 공갈을 하며 살림의 종신 집권을 한다고까지 했다.

어머니가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했다면, 딸은 일상에서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자신의 삶을 소중히 했다. 어머니가 ‘당위로서의 삶’을 추구했다면, 딸은 ‘존재로서의 삶’을 내세운다. 그런데 당위로서의 의무와 존재로서의 자유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두 가지 가치가 아닐까.

어쩌면 소설의 뒷면, 소설에 쓰이지 않은 순간들에 어머니는 잠시의 여유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딸이 안 볼 때, 아이들이 다 자고 주위가 고요할 때, 그녀는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을 거다. 그때 자아가 숨 쉴 조그마한 틈을 찾아냈을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의 말뚝’ 세 편은 각각 1980년, 1981년에, 1991년에 나왔다. 그 후로 40년이 흘렀다. 아이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성이란 지나간 옛날이야기다. 그렇지만 여전한 신화다. 신화는 시간을 뛰어넘는다. 시간의 구속을 받는다면 그건 신화가 아니다. 이만큼 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그 딸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신화인 줄 알면서도 그 신화를 여기의 삶에서 이루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노력한다. 그게 신화의 힘이다.

외부의 압박보다 더 강력한 게 내부의 압박이다. 신화는 은근슬쩍 내면으로 기어들어와 어찌하기 어려운 죄책감을 만들어 낸다. 이런 방식으로 모성의 신화는 모든 어머니의 신화가 되고, 거부하기 어려운 ‘자기 착취’가 된다. 오늘날 모성이 처한 그늘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란 참 어렵다. 나의 어머니는 9년을 교직에 몸담다 그만두셨는데,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언젠가 어린 나를 붙잡고 “올해가 10년째인데 이제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아쉬워하셨다. 나도 어렸지만 그때 동생들은 더 어렸다. 엄마가 내게 나눠줬던 기대만큼 해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못했다. 나 역시 아이 키우고 살림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보냈고, 사회에는 내가 돌아갈 자리가 없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엄마 노릇 하기가 좀 편해졌는지 모르겠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를 찾아봤다. 가족생계를 남성이 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9.9%다. 2016년 조사에선 42.1%였다. 직장생활을 해도 자녀에 대한 주된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답변은 17.4%다. 2016년엔 53.8%였다. 5년 동안의 변화가 이 정도면 4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돌봄 노동의 고단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맞벌이 가정이라도 여성의 돌봄 시간은 남성의 두 배, 12세 이하 아동이 있는 경우는 세 배라니 말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편안하게 눕기

박완서 소설 ‘엄마의 말뚝’

박완서 소설 ‘엄마의 말뚝’

한국 출산율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꼴찌인 것만 봐도 엄마 노릇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엄마도 사람인데 엄마 노릇이 인생을 다 걸만큼 어려운 거라면 쉽게 마음먹을 일도 아니다. 엄마에게 미뤄 놓았던 돌봄 노동을 어떻게든 덜어줘야 엄마들도 죄책감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을 거다.

“생전의 어머니는 깔끔한 대신 차가운 분이어서 한 번도 그렇게 곰살궂게 군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생애만큼 먼 옛날의 작명이 나에게 그런 위무를 해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함자는 몸 기己 자, 잘 숙宿 자여서 어려서부터 끝 자가 맑을 숙 자가 아닌 걸 참 이상하게 여겼었다.”

연작 세 번째 편의 마지막에서 딸이 어머니의 산소를 보고 떠올리는 생각이다. 어머니는 신여성이 아니었지만 차가운 분이었다. 그에 대한 기억이 외려 따듯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 세상에서 차갑기 만한 사람은 없다. 살아내려면 곰살궂기보다 냉정해야 한다. 딸은 비로소 차가움 안에 있는 따듯함을 발견하게 됐다고 나는 읽고 싶다.

어머니는 생전에 오빠와 똑같이 화장을 해 그때 그 자리에 뿌려달라고 했다.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는 행위가 괴물을 거역할 유일한 수단이었다면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는 게 맞다. 그런데 아들을 앗아간 분단만 괴물인가. 어머니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괴물과 맞닥뜨렸을까. 먹고 사는 데 부딪히는 온갖 악다구니들 역시 괴물이었을 거다.

오빠의 아이인 조카는 할머니, 그러니까 어머니의 평범한 장례를 원한다. 딸은 조카의 방식에 못 이기는 척 동의한다. 엄마, 엄마의 고단한 삶을 여기서 접으세요. 소원을 안 들어드리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어머니는 충분히 열심히 사셨어요. 이제 엄마 이름의 의미대로, 여기 저희가 마련한 땅에 편안히 몸을 누이셔도 돼요. 어머니를 떠나 보내드리는 딸의 심정은 이랬을 터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나도 위안을 받는다. 어머니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고단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하다.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찾고, 그 이름을 새긴 말뚝 아래 편안히 잠든다는 생각만으로도 한결 편안한 심정이 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머니라면 그 누구라도 삶의 당위와 존재가 안겨줄 수 있는 두 기쁨을 모두 누릴 자격이 있다. 박완서의 어머니도, 나의 어머니도 모두 그러하다. 엄마에게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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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녀들
1970년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글쓰기를 하는 전업 에세이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사진 동아DB 사진제공 김용호 세계사



여성동아 2022년 6월 7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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