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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서른, 마흔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정교영

3040, 거울 앞에 서다

EDITOR 정혜연 기자

입력 2019.12.10 16:00:02

젊음과 나이 듦 사이에서 방황하는 서른과 마흔. 인생 전환점에 선 여성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무엇일까.
여자 서른, 마흔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정교영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 누구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 마련이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 하루아침에 30대, 40대로 다른 나이 대에 묶인다는 사실이 생경하기만 하다. 제대로 살아온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순 막막해지기도 한다. 

특히 여자 나이 서른, 마흔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기분에 휩싸이는 시기다. 스스로는 충분히 젊다고 느껴지지만 사회적으로는 젊지 않다. 다 떨쳐버리고 오롯이 ‘나’ 하나만 생각하기엔 여기저기 짊어진 짐이 꽤 많다. 새로 시작하고 싶지만 무엇을 하든 이미 늦었다는 마음이 따라붙는다. 

20여 년간 상담을 하며 여러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온 정교영(47)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책 ‘여자 마흔, 버려야 할 것과 시작해야 할 것’을 통해 여성들이 무엇보다 ‘나’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족을 돌보고 살림을 하며 낮아진 자존감은 나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회복된다고. 아주 단순한 진리 같지만 실천이 쉽지 않다. 정 교수에게 어떻게 하면 변화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들었다.

여성의 삶 가운데 서른, 마흔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통상적으로 여성들은 어떤 심리적 변화를 겪나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앞자리가 바뀌면 대부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심정인 것 같아요. 건너긴 해야 하는데 뒤를 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 서글픔과 섭섭함 등이 몰려오는 시기죠. 또 앞을 내다보면 여러 감정이 갈등을 일으키고 전에 없던 혼란을 경험하게 되죠. 저 역시도 그런 감정을 느꼈지만 건너보면 어제와 오늘일 뿐, 큰 차이는 없어요. 그런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좋아요. 

마흔은 정리가 필요한 나이라고 합니다. 책에서 ‘세신을 하듯 인간관계에도 정리가 필요하다’고 표현한 부분이 와 닿는데요. 마흔에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요. 

집 안 분위기를 바꿀 때도 먼저 불필요한 것부터 정리하죠. 가만 보면 간직할 필요가 없는데 미련과 아쉬움 때문에 치우지 못한 물건들이 많아요.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면 불필요한 것부터 정리하며 비우는 습관이 필요해요. 상담을 해보면 나에 대한 고정관념, 사회가 여성에 갖고 있는 고정관념, 성에 대한 고정관념 등 이런 것들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것부터 하나씩 벗어나보려 노력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가족 관계라고 할지라도 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희생만 할 경우 노후에 억울함, 서운함, 배신감 등으로 충격을 받아 많이 힘들어할 거예요. 지금이라도 가족 관계를 점검해보고 나의 희생이 미래에 족쇄가 될 것 같다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경계할 필요가 있죠. 



사람이 중년에 접어들면 살아온 대로 살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변화를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요. 

굉장히 무서운 말이에요. 의지와 상관없이 산다는 소리잖아요. 나를 방치하고, 내 삶에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려면 매 순간이 나의 선택이라는 걸 명심해야 해요. 오늘 하루는 거저 주어진 하루가 아니잖아요. 지금 원하는 삶인지 의문이 든다면 회의가 커지기 전에 궤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모든 걸 떨쳐내기에는 여성들이 맡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짐들로부터 적절히 선을 긋고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주부를 대상으로 상담과 강의를 해보면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온갖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나를 돌아보는 일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치 그 삶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을 하죠. 그러나 아이들이 커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하는 정체성의 위기가 와요. 그걸 예방하기 위해 적어도 하루 30분 만이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야 합니다. 또한 그 시간에는 나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야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화장실 일부를 향초와 러그 등으로 아늑하고 따뜻하게 꾸미고, 책도 몇 권 꽂아두고는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잠깐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고 했어요. 집 안에서 공간을 찾을 수 없다면 자주 가는 산책로, 카페 등 어떤 곳이든 정하기 나름이죠. 


Paul Cezanne, Young Italian Woman at a table.

Paul Cezanne, Young Italian Woman at a table.

버리는 것만큼이나 시작하는 것도 중요한데, 무엇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사실 무엇이든 한 번에 버려지지 않아요. 특히 고정관념은 짧은 시간에 떨쳐내기 힘들죠. 비우는 것과 시작하는 것은 꾸준히 같이 해나가야 해요. 일단 ‘나’라는 사람에 집중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게 필요해요. 안타까운 게, 대부분 뭔가 빨리 시작하려고 해요. ‘비우고 버렸는데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라며 불안해하고, 시간이 지나 뒤처지는 걸 두려워하죠. 절대 조바심 내지 말고 일단 나와 친해지고, 내게 집중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를 위한 일을 시작해보길 권해요.
 
혹시 상담 사례 가운데 내 안의 답을 찾아 변화를 이뤄낸 케이스가 있나요.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상담실을 찾아온 여성이었어요. 항상 옆에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 분이었는데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었죠. 이야기를 나눠보니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완성되고 완전해 보인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몇 차례 엄청난 시련을 겪은 후 ‘누구를 만나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거야’라는 생각에 도달한 상태였죠. 스스로와 대화를 해보길 권했고 자신에게 친구 대하듯 대화하며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선물해주라고 했어요. 이런 시도 덕분에 지금은 좌절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어요. 

꿈이 있는 마흔으로 살아가는 4단계도 흥미롭습니다. 꿈을 탐색하고, 그 꿈을 동기화하며, 걸림돌을 제거하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인데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30대, 40대 주부들 대상 프로그램에서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다들 수줍게 웃기만 해요. 아이들에게는 “큰 꿈을 꾸라”고 하지만 막상 자신의 꿈은 잊고 살죠. 꿈은 어릴 때만 꾸는 게 아니에요. 직업적인 성취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될 수 있죠. 꿈을 찾으려면 일단 어릴 때 꿈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을 탐색부터 해야죠. 조금씩 구체화되면 내 스스로를 이미지화해보길 권해요. 꿈이 이뤄졌을 때의 이미지를 상상해보는 거죠. 관련 사진을 냉장고 앞에 붙여놓고, 시간 날 때마다 살펴보는 식으로요. 이후엔 단계별 계획을 구체화한 로드맵을 작성해야 해요. 세부적으로 계획을 짜두면 오늘 당장 시작하지 않아도 로드맵이 도와줄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일상의 변화예요. 앞서 말했듯 고정관념을 꾸준히 버리고,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삶을 시도해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또 하나 조언하자면 내 꿈을 공유하고 응원하는 파트너를 두세요. 그런 사람이 주변에 한 명이라도 있어야 힘들어도 조금씩 나아갈 수 있거든요. 


여자 서른, 마흔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정교영
교수님께서는 젊은 시절에 꿈꿨던, 마흔 무렵에 이루고 싶은 꿈을 이뤘나요. 

저 역시 어린 시절 ‘꿈을 이뤄야지’ 하는 다부진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니에요. 그저 시기별로 세운 단기적인 목표를 이루면서 살아왔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고, 직업을 찾고, 결혼을 하는 것들요. 그러다가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 공부를 시작하면서 ‘언젠가 개인 상담실을 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졌어요. 아이를 낳고 남편이 발령을 받아 함께 중국 상하이에 갔을 때도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상담일을 꾸준히 했어요. 이후 한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 경기도에 개인 상담실을 열었죠. 요즘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이 많은데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놓지 않고 꾸준히 하길 조언해요. 

책에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희생을 숙명으로 여긴 어머니 세대, 자신의 의지대로 꿈을 펼쳐가는 딸 세대를 바라보는 감정은 어떤가요.
 
어릴 때 엄마로만 바라봤지만 어느 순간 한 여성의 삶이 보이기 시작해요. 윗세대를 생각하면 연민이 크죠. 안쓰럽고, 안타깝고, 화도 나고 복잡한 감정이 일죠. 지금의 30대, 40대는 그분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보고 자란 게 있기 때문에 가부장적인 태도와 가치관이 자기도 모르게 내재된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어려서 딸로만 살 때는 모르다가 결혼하고 시댁에 가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집안일을 할 때 이성적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습성대로 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딸아이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이상적인 엄마로서 스스로의 삶을 잘 가꿔나가는 게 중요하죠. 딸아이를 생각하면 꿈을 지켜주고 싶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또한 ‘너의 꿈도, 나의 꿈도 각자 이룰 수 있게 격려하자’는 파트너로서의 마음도 생겨요. 

저마다 고민을 가지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조언하기에는 저도 인생을 다 산 게 아니라 건방질 것 같네요. 그저 모든 분들이 인생을 뒤돌아볼 때 후회가 적도록, 후회를 줄이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이니까 미래를 알 수 없고, 과거를 돌릴 수 없죠. 주어진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건 할 수 있잖아요. 후회의 양을 줄이며 살길 바라요.


나는 누구일까?
스스로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1.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라고 생각되는 것 50가지를 적어보자.
2. 남이 바라본 나는 어떠한가? 타인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지 적어보자.
3. 나는 어떤 아이였는가? 어린 시절의 꿈, 도전, 성취, 실패, 좌절 경험을 적어보자.
4. 현재의 나는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적어보자.
5. 나를 규정했던 단어는 무엇이고, 오늘부터 다시 정의하고 싶은 나의 단어는 무엇인지 적어보자.
6. 나답게 산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게티센터




여성동아 2019년 1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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