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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the chef

전 청와대 대통령실 조리팀장 강태현 셰프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20년 요리 인생

EDITOR 정혜연 기자

입력 2019.11.24 17:00:01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맨손으로 시작해 청와대 대통령실 조리사로 일하기까지 강태현 셰프의 남다른 인생 스토리.
전 청와대 대통령실 조리팀장 강태현 셰프
운명은 개척하기 나름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태어나서 1년 남짓 지났을 때 부모를 잃고 작은아버지 집에 입양돼 살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누나, 형, 동생과는 부모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누구도 눈칫밥을 주지 않았지만 밥값은 하고 싶어 6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을 했고, 수금도 직접 해 실적을 쌓았다. 중학교 3학년 때 10여 년간 떨어져 살던 친누나가 성인이 돼 함께 임대아파트를 얻어 작은아버지 집을 나왔다. 기쁨도 잠시, 생계는 현실이었다. 치킨 배달, 주유소와 세차장 아르바이트 등 고등학교 3년 내내 돈을 벌며 학업을 이어가다 졸업 후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요리의 ‘요’ 자도 모르던 사람이 요리사를 꿈꾼 건 후임병 덕분이다. 호텔에서 일하다 들어온 후임병은 호텔 주방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고 그는 제대하자마자 자격증을 취득해 음식점에 취직했다. 이후 메리어트 호텔, 리츠칼튼, 더 클래식500 등 내로라하는 호텔 주방에서 경력을 쌓아가다 2013년 5월 청와대 대통령실 주방장 채용에 덜컥 합격했다. 그렇게 5년을 근무하고 지난해 1월 청와대를 나와 지금은 개인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강태현(42) 전 청와대 대통령실 조리팀장이자 정화예술대 교수의 이야기다. 얼핏 들으면 ‘운이 좋아서 잘 풀렸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운이란 것도 노력하는 사람에게나 찾아가기 마련. 자전거를 못 타 두 발로 뛰어다니며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을 돌리고, 호텔에도 제일 먼저 출근해 선배들의 고된 일까지 대신해놓았던 강 주방장에게 운이 지나쳐 갔을 리 없다. 그를 만나 20년 요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 청와대 대통령실 조리팀장 강태현 셰프

#스물, 요리는 내 운명

군대에서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게 특이합니다. 

군 입대하기 전에는 요리에 딱히 관심이 없었어요. 사회에서 호텔 요리사로 일했던 후임병이 들어왔는데, 뭐 했냐고 물으니 이것저것 얘기해주더라고요. 그 경험담을 듣고 ‘이거다’ 싶었죠. 여러 정보를 얻어서 제대하자마자 요리학원에 등록해 자격증을 취득했고, 대학로의 한 일식집에 취직했어요. 칼질이라든지 주방에서 익혀야 할 기본적인 기술들을 이때 배웠죠. 체인이었고, 주방이 시스템화되어 있어서 일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1년이 지나 실장으로 승진했지만 꿈은 호텔에 취직하는 거였으니까 마음 한곳에 늘 아쉬움이 남았죠. 스물네 살에 뒤늦게 전문대학에 들어가 학위를 취득했어요. 일하면서 학업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어요. 

호텔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가요. 

대학에 메리어트 호텔 주방장님이 오셔서 지도해주셨어요. 수업이 끝날 즈음 호텔 일식 레스토랑에 자리가 비었다며 저를 추천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학생들 중 유일하게 일반 음식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추천해주신 거죠. 그때는 정말 기뻐서 무척 열심히 했어요. 아침에 일찍 가서 선배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다 해놨죠. 그렇게 한 6개월 했더니 정규직으로 채용해주더라고요. 거기서 4년 정도 일했는데, 정말 많은 걸 배웠죠. 



여러 호텔에서 일하셨는데, 옮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호텔 스시 바에서 고객 접대를 주로 했어요. 다른 일도 해보고 싶던 차에 리츠칼튼 일식 레스토랑에서 경력직 모집 공고가 떴어요. 거기는 뜨거운 요리를 할 사람을 구하더라고요. 그걸 배워보고도 싶었고, 경력직으로 옮겨 가면 직급이나 임금을 올릴 수 있으니 지원해봤죠. 그렇게 옮기고 5년 가까이 일했어요. 그때가 30대 초반이었어요. 마침 건국대에서 더 클래식500이라는 호텔을 오픈하는데 알고 지내던 총주방장이 함께 일해보자고 해 또 한 번 옮겨 갔어요. 호텔 오픈 전이라 모든 걸 세팅해야 하니까 좋은 경험이 됐죠. 

호텔에서 승승장구하다가 갑자기 청와대 주방장에 지원한 계기가 있나요. 

더 클래식500에서 일하던 당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어요. 선배 중에 청와대 근무하던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청와대 대통령실 일식 팀장 자리가 비었는데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어요. 사실 청와대 주방장은 누구 추천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전국의 내로라하는 호텔 주방장의 이력서가 다 들어가거든요. 명예직이기도 하지만 채용되면 사택도 나오고,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어 이력서를 넣었어요. 면접만 3번을 봤고, 하루 날을 잡아서 코스 요리 테스트를 하고 마지막 신분 조회까지 하는 데 총 6개월이 걸렸어요. 테스트 날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요. 관저에서 VIP가 직접 맛을 보는데, 그 방에 기존 셰프들과 경호팀 등 직원들이 다 보고 있어서 더욱 떨렸죠.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어요. 그때가 2013년 5월이에요. 

청와대 생활은 긴장의 연속일 것 같은데, 잘 맞았나요. 

보람도 있었고 괜찮았어요. 일식 팀장이었지만 일을 혼자서 하지는 않아요. 한식 팀장 2명, 중식과 양식 각 1명씩, 일식 팀장 1명 등 총 5명이 팀으로 움직였어요. 한식 비중이 높기 때문에 주로 그쪽 일을 도왔고, 다른 메뉴 준비도 같이 했죠. 그때 한식, 중식, 양식을 많이 배웠어요. 사실 대통령이 우리가 만든 음식을 드시고 속이 안 좋다고 하면 발칵 뒤집어지죠. 그렇기 때문에 맛보다 안전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날 만든 음식은 당일 폐기를 원칙으로 하고, 순방 시에는 2명씩 따라갔어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돌아가면서 쉬었죠.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이 피자가 드시고 싶다고 하면 양식 팀장이 쉬는 날이라도 출근해야 하는 등 돌발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항시 대기해야 했어요. 또 간장·고추장 등 각종 장류를 관저에서 담가 먹고, 채소류도 거의 재배해서 먹는 데다 김장도 매년 했기 때문에 일이 정말 많았지만 모두 좋은 경험이었어요.


#서른여섯, 청와대 입성

청와대 근무 당시 강태현 주방장 모습.

청와대 근무 당시 강태현 주방장 모습.

박근혜 정부 초창기에 일을 시작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주문이 있나요. 

처음에는 적정 식사량을 모르고, 어떤 메뉴를 선호하는지도 알 수 없으니 골고루 많이 올려드렸어요. 그랬더니 종류도, 양도 너무 많다고 간단하게 5첩만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줄여나갔고, 육류보다는 나물이나 샐러드 등을 선호하셔서 기본 찬 위주로 준비했어요. 가끔 속이 안 좋아서 죽을 끓여달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양사가 짜주는 대로 준비해서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기억에 남는 일화는 없나요. 

언론에 알려지지 않는 비공식 행사들이 있잖아요. 관저에 10명, 20명 모여 회의를 하면서 식사하는 일이 더러 있어요. 그럴 때는 행사가 끝나면 직접 찾아와서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인사도 해주시고 그랬죠. 해야 할 일이니까 하는 거라 굳이 인사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맛있었다”며 격려해주시면 정말 영광이죠.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대통령 내외분 식사를 같이 준비하니까 양이 2인분으로 늘어난 것 이외에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요. 두 분 모두 스케줄이 빡빡하다 보니 끼니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 식사 시간을 맞추는 게 어려웠어요. 또 언제든 원하면 내놓기도 해야 해서 신경 써야 될 게 많았어요. 

문 대통령 내외의 식사 성향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두 분의 식성이 달랐어요. 문 대통령은 생선을 선호하셨는데 특히 조림을 좋아하셨죠. 고향이 부산이라 회도 좋아하셨고, 여름이면 메밀국수도 자주 드셨죠. 또 젓갈을 좋아하셔서 부속실장이 원래 대통령이 드시던 곳의 젓갈을 주문해 상에 올리기도 했어요. 외부 음식은 문제가 생기면 큰일 나기 때문에 식약처 직원들이 일일이 검사를 한 뒤 들여왔죠. 여사님은 기본적으로 한식을 고루 드셨는데 음악을 전공하셔서 그런지 양식을 선호하셨어요. 

2017년 12월에 갑자기 그만두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만뒀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했죠. 부속실 직원들의 고용 형태가 제각각 달라요. 정규직도 있지만 저의 경우 별정 계약직으로 매년 갱신하는 형태였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문 대통령이 인수위 없이 바로 들어오셨으니까 서로 정신이 없었어요. 첫 인사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대통령이 직접 부속실 직원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셨고, 우리도 모두 축하드린다고 잘 모시겠다고 인사드렸어요. 그런데 계약직 주방장 5명과 서비스 직원 4명은 모두 12월 31일 이후로 나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해고 사실을 당일 알았으니까 그야말로 멘붕이었죠. 음식이 입에 안 맞았다면 인정이라도 하겠는데 그간 맛있게 드셨기 때문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쫓기듯 나오느라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 한 게 너무 아쉬워요. 

불합리하다고 항의할 생각은 못 했나요. 

집권 1년 차, 그때 분위기에선 할 수도 없었어요. 막강한 권력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 목소리를 누가 들어주겠어요. 총비서관이 변호사 출신이라 법적으로 문제 삼아도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특수 기관이기도 하고 그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들어서 재입사 얘기는 하지도 못했죠. 다들 정해진 곳 없이 나왔기 때문에 몇 개월은 힘들어했어요. 거의 40대 후반, 50대 초반으로 나이가 있는 분들이라 좋은 곳에는 못 들어가고 각자 알아서 자리를 잡아야 했죠. 

강 주방장님은 청와대를 나와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청와대 조리팀장 타이틀이 양날의 칼이에요. 호텔로 다시 들어가려고 해도 그에 걸맞은 자리가 아니면 서로 불편하거든요. 처자식이 있는 상황이라 넋 놓고 있을 수 없었어요. 일산에 아시는 분이 레스토랑 자리가 하나 났다고 추천해줘서 상권 분석이고 뭐고 할 겨를 없이 3개월 만에 일본 가정식 요리점을 오픈했어요. 감사하게도 기본 수요가 있어서 현재까지 유지는 하고 있어요.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도 하면서 고아원이나 학교 등에 특강을 나갈 정도로 여유가 좀 생겼어요.


#마흔셋, 나 같은 아이들을 위해

전 청와대 대통령실 조리팀장 강태현 셰프
어린 시절이 어려웠다고 들었는데 감당하기 힘들지 않았나요.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누나는 강릉의 친척 집으로, 저는 작은아버지 집으로 보내졌어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가 진짜 아빠 엄마인 줄 알았는데 고학년 때 아닌 걸 알게 됐죠. 눈치가 보여 학교 준비물 사달라는 말도 못 하겠더라고요. 6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 알바를 시작했어요. 양쪽에 신문을 끼고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일대를 매일같이 뛰어다녔어요. 그때는 배달하는 사람이 수금을 했는데 어린아이가 신문 값을 받으러 오니까 잘 주더라고요. 실적이 좋아 신문 보급소 반장한테 칭찬도 받으니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누나가 스무 살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 같이 살게 됐어요. 같이 살면 정말 좋을 줄 알았는데 10여 년을 떨어져 지냈으니 정말 어색하더라고요.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어요. 각자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했고, 군 입대 이후부터는 끼니 걱정하지 않고 살게 됐죠. 레스토랑 일을 시작하면서 제 식사는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그 이유 때문에 요리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덤덤하게 말씀하는 걸 보니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남한테 제 이야기를 할 일이 거의 없으니까 진짜 친한 사람들 아니고는 잘 몰라요. 이런 얘기를 가끔 하면 다들 우울하게 생각하지만 전 전혀 우울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 돈을 버는 게 마냥 재미있었어요. 어릴 때는 동정이나 도움 받는 게 싫어서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회적 괄시 같은 것을 특별히 느낀 적도 없죠.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성향이 강했고 그게 지금껏 이어져온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건 나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에게 힘이 되고 싶기 때문이에요.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되거든요. 앞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을 꼭 설립하고 싶어요. 

지금은 친지분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하겠네요. 

누나도 가족들도 모두 대견해하죠. 초등학교 졸업 이후부터는 스스로 판단하고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왔어요. 그때마다 도와주는 분들이 항상 생기더라고요. 세상에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 열심히 살지만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어요. 저는 정말 운이 좋았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지금 하는 일도 잘 운영하고 앞으로 강연과 특강도 나가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제가 지금은 여러 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섰기 때문에 고아원 친구들이나 요리사를 꿈꾸는 어려운 친구들을 여러 방면으로 돕고 싶어요. 늘 꿈꾸어왔기에 죽기 전까지 돕는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9년 1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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