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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다, 배우 한승연

글 이현준 기자

입력 2021.09.17 10:42:14

한승연에게 걸 그룹 ‘카라’는 애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연기자로 전향 후 스스로에게 보다 솔직하고 사람다워질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 한승연에게선 과거와는 다른 결의 예쁨이 묻어난다.
“망가지는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요? 전혀 없어요. 하하. 오히려 예쁜 것에 끌리지 않아요. 연기자 이전에 이미 예쁨을 어필하는 게 목적인 직업으로 오래 살았으니까요. 지금까지 연기를 하면서 소위 ‘미녀’ 역을 맡은 적은 없었지만 저는 그래서 더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예쁘지 않아도 되니까요.”

9월 2일 화상으로 마주한 한승연(33)의 말이다. 2007년 걸 그룹 카라로 데뷔한 그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 ‘청춘시대’ ‘열두밤’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자 생활을 병행했다. 2016년 카라 활동이 중단된 이후에는 솔로로 나서며 연기를 같이 해왔고, 올해 9월 9일 개봉한 영화 ‘쇼미더고스트’에서 첫 장편 주연을 맡아 스크린 연기를 선보였다.

‘쇼미더고스트’는 집에 귀신이 들린 것을 알게 된 20년 지기 친구 예지와 호두가 함께 귀신 퇴치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 호러물이다. 한승연은 자취방 보증금을 주식 투자로 날리고 호두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 만년 취업 준비생 예지 역을 맡았다. 코믹 요소가 들어 있는데다 캐릭터가 처한 상황으로 볼 때 예쁜 모습보단 망가지는 모습이 더 많이 나오는 인물이다.

한승연은 예지 역할로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 배우상 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았다. 이는 홀로서기 후 연기자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을 느꼈던 한승연에겐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한승연은 “시상식을 부모님과 함께 봤는데, 소고기를 20만원어치 먹었다. 너무 기쁘고 뿌듯했다. 눈물도 날 뻔했다”며 웃었다.

연기자로서는 아직 성장 단계인 한승연이지만 그는 과거 걸 그룹 카라로 가요계 정상의 자리를 누렸다. 하지만 빛났던 영광만큼 포기해야 했던 것도 많았다. 노출이 있는 의상을 소화하기 위해 손가락 반 마디 정도의 초코바 하나로 하루를 버티거나 일주일 동안 라이스페이퍼 10장 남짓만을 먹은 적도 있다. 극단적인 식단으로 알레르기가 심해지고 피부 상태도 악화됐지만 “보기 좋다.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늘 웃어야 했다. 한승연은 “가수로 활동할 때엔 독하기만 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잤다. 아프면 주사, 피곤하면 링거를 맞았다. 컨디션이나 정신적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대만을 위한 생활을 했다. 첫 끼를 밤 10시에 먹으며 사는 게 여성의 인생에 좋았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 때문일까. 그가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엔 화내는 연기가 어려웠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으로 지내야 했기에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서툴렀다. 한승연은 연기를 하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었고 정상적인 식사를 하며 건강을 되찾았다. 더 이상 예쁨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하면서 “보다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하는 한승연에게선 자신의 생에 대한 만족감이 드러났다.

연기를 하면 ‘생활’하고 있는 기분

영화 ‘쇼미더고스트’

영화 ‘쇼미더고스트’

장편 영화 첫 주연으로서 연기를 선보이게 된 소감이 어떤가요.

낯선 부분도 있었지만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촬영을 하며 많은 위로도 받고 스트레스도 해소돼서 참 행복했어요.

무엇이든 처음은 의미가 크잖아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야기가 주는 매력이 있었고 특히 캐릭터들이 사랑스러웠어요. 등장인물들이 단합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부분이 좋았죠. 팀을 구성하는 건 제게 굉장히 익숙한 일이기도 하고요(웃음).

연기자로 보낸 시간과 가수로 보낸 시간이 반반쯤 되는데, 둘의 차이점을 꼽자면.

열심히 했다는 점은 둘 다 같아요. 하지만 계속 ‘예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스스로에게 가혹해져야 하는 일이고요. 물론 무대에 올라 팬들의 함성을 듣는 일은 행복하죠. 하지만 가수 생활을 할 땐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진 반면, 연기를 하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요. 일상을 보내다가도 ‘오, 이건 연기에 활용할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되고, 실생활과 연기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마음이 편해요.

연기가 더 잘 맞는 건가요.

사실 마음이 편한 건 가수예요. 가수는 연습을 한번 해놓으면 무대에서 3분 30초에서 4분은 고민 없이 흘러가거든요. 그래도 웃어야 한다거나 감정을 숨겨야 하는 점이 없다는 걸 고려하면 성격적으로는 연기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 스스로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아직은 성장하고 있는 연기자라서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감정을 얼굴에 잘 나타낼 수 있다는 점과 컨디션에 따른 외모의 편차가 없다는 점을 꼽고 싶어요(웃음). 아, 카메라에 익숙해 실전에서 더 잘하는 빈도가 높다는 점도요.

한승연의 특성으로 ‘동안’을 빼놓을 순 없다. 그가 대학교 1학년 때 호프집에서 주민등록증을 보여줬음에도 성인임을 믿지 않아 점원에게 쫓겨났던 일화는 유명하다. 카라에서 박규리와 함께 나이가 제일 많지만 막내로 오해받은 적도 다반사다. 앳된 얼굴 때문에 연기할 땐 대개 실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소화하곤 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실제 자신보다 어린 역할을 소화했어요. 동안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데, 그래서인지 밝고 발랄한 역할이 많이 주어지는 듯해요.

사실 배우로서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냥 장점이라고만 생각하고 들어오는 배역들에 감사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일반적인 또래 친구들에 비해, 학교 다니며 함께 놀러 가거나 고민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보다 어린 청춘 혹은 사회 초년생을 캐릭터로서 다시 살아내는 기회를 받고 있는 듯해요. 이렇게 생각하면 동안이라는 것이 크게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진 않네요. 그런데 이제 저는 제가 동안인지 잘 모르겠어요. 실제 나이를 얘기할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나이 얘기를 잘 안 하기는 하지만요(웃음).
‘쇼미더고스트’에서 예지는 이어지는 취업 실패로 자존감이 크게 떨어져 있는 반면 한승연은 실제로 취업 준비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카라 데뷔 초반 그가 겪었던 무명 생활의 서러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데뷔 후 1년 반이 지나 곡 ‘Honey’로 인지도를 얻기 전까지 카라를 알리기 위해 한승연은 혹사에 가까운 스케줄을 소화했다. ‘소녀 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도 이때다.

예지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기 위해 노력했을 듯해요. 데뷔 초 고생하던 시절을 떠올렸다거나.

굳이 취업 실패가 아니더라도 자존감이 떨어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와요. 1년에 몇 번 크게 멘털이 무너지는 날도 있을 테고, 어쩌면 매일 느낄 수도 있겠죠. 물론 제가 예지처럼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거나 ‘탈락하셨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경험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일하는 내내 취업 준비 중이었어요. 촬영에 들어가거나 앨범을 준비하는 기간을 제외하면 항상 연기, 노래, 춤을 연습하고 공부해야 했거든요. 그러다 하고 싶은 작품을 못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예지의 삶이 저와 전혀 다른 삶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고 제 상황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어요. 성격도 닮은 점이 있어요. 상대를 걱정하고 아끼지만 표현에 서툴다는 점이 그래요.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살가운 편이 아니에요. 신경은 많이 쓰지만 투덜대죠(웃음). 예지 딴엔 걱정하는 것이지만 짜증을 내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데, 저와 비슷해요. 예지를 연기하면서 정신적으로 해소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걸 그룹 출신 배우들에 동지애 느껴

해소되는 부분이라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예지가 친구들과의 연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되찾는 과정을 연기하며 힐링을 받았어요. 그동안 세상을 향한 답답함도 있었고, 사물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어요. 원하는 대로 일을 하고 싶고, 더 화제가 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예지를 연기한 후 굳이 남들이 얘기하는 기준과 달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지금의 나도 충분히 괜찮다고 느껴졌어요.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됐죠. 그래서 예지에게 고마워요. 요즘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은 세상인데, 사람들에게도 저와 같은 정신적 해소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번 영화가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길 바라고요.

데뷔 때부터 ‘열일’해왔잖아요. 열심히 사는 원동력이 있나요.

제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죠.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잖아요.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건데 당연히 잘해야지’ 하고 다짐했어요. 저를 믿고 배역이나 곡을 준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요. 또 감사한 마음도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사랑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고 노력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행복한 삶인 것 같아요(웃음).

9월 극장가엔 ‘쇼미더고스트’ 외에도 9월 1일 걸스데이 방민아의 ‘최선의 삶’, 9월 15일 소녀시대 임윤아의 ‘기적’, 9월 16일 시크릿 한선화의 ‘영화의 거리’ 등 걸 그룹 출신 배우들의 작품이 연이어 개봉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극장가의 걸 그룹 대전’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걸 그룹 출신 배우들의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돼요. ‘걸 그룹 대전’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걸 그룹 대전이 얼마 만인지(웃음). 오랜만이라 정말 반가워요. 저보다 더 좋은 필모그래피를 가진 분들이고 배우로서 그분들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시기가 겹쳐 저도 함께 언급되고 있어서 좋네요(웃음). 걸 그룹 대전이라는 말로 시너지가 나는 점도 분명 있을 거예요.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는 건가요.

그렇죠. 사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어요. 하지만 과거 같이 음악 방송을 하고 비행기도 타고, 밤도 많이 새우고 그랬던 얼굴들이에요(웃음). 그분들이 연기자로 사는 모습을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잘하고 있구나’ 하고요.

과거엔 아이돌이 연기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는데, 요즘은 달라진 것 같아요.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부정적인 시선은 항상 존재했어요. 아이돌로 활동할 땐 “아이돌은 비주얼이나 분위기로 승부할 뿐 가수로서의 능력은 떨어진다”는 비판을 들었고, 연기할 때엔 “아이돌 출신이 배우들의 자리를 쉽게 가져간다”는 말이 많았어요. 하지만 요즘엔 부정적인 시선은 거의 느끼지 않아요. 오히려 현장에 가면 제가 아이돌로 활동했던 당시를 기억하시는 분들 덕에 뿌듯함을 느끼곤 하죠. 또 이젠 영역 간의 벽이 있나 싶어요. 아이돌뿐 아니라, 예컨대 코미디언들도 음원을 내고 연기를 하잖아요. 출신이 무엇이든 각자 맡은 일을 잘해내는 게 중요해 보여요.

걸 그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주제는 자연스럽게 카라로 넘어갔다. 카라는 지금의 한승연을 있게 해준 과정이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한승연은 7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데뷔 초기 시절 신문 기사 스크랩을 업로드하며 카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승연은 카라를 “어려운 존재”라고 정의했다.

한승연 씨에게 카라는 무슨 의미로 남아 있나요.

어려워요.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아요. 저에게 큰 영광과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힘든 시간도 많이 줬거든요. 아직까지는 제 삶 자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해요. 이젠 연기자로서 인터뷰를 하지만 카라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아요. 제가 어딜 가서 뭘 하든 카라의 멤버가 아닌 날은 없을 거예요. 카라는 제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이름이고, 멤버들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친구들이고요. 카라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수도 있겠죠. 카라는 소중하고 어려운 존재예요.

재결합 가능성은 있나요.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점은 정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언젠간 하지 않을까요(웃음).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만날 수 없지만 4단계 이전엔 멤버들과 자주 만났고 여전히 잘 지내요. 최근엔 규리의 뮤지컬을 보러 가기도 했고, ‘쇼미더고스트’ 시사회에도 멤버들이 와줬고요.

포털에 자신을 자주 검색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요즘도 그런가요.

매일 검색하고 있어요. 정말 세세하게 한답니다(웃음). ‘한승연이 출연한 작품은 다 재밌다’는 댓글이 하나 있었는데, 정말 큰 용기가 솟더라고요. 이제 제 연기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해요.

배우로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을 듯해요.

지금까지 주로 ‘청춘’이라는 단어가 부각되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아무래도 사람은 안 해본 걸 원하는 마음도 있잖아요(웃음). 형사, 의사, 디자이너 같은 전문직 역할을 하고 싶어요. 자신의 일을 똑 부러지게, 시원하게 잘할 때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요(웃음).

사진제공 인디스토리 YG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21년 10월 6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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