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사진. ‘요즘 커뮤말투’를 따라한 내용이다.
한 번이라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한 적 있다면 이 밈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취향의 호불호, 사회 문제에 대한 지적, 고충 토로 등 글의 종류와 상관없이 비난이나 조소를 담은 댓글이 잇달아 달리는 일이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빈번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뿐 아니라 인터넷 뉴스 댓글, SNS 반응 등 온라인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유행어 ‘누칼협?’이 쓰인 모습.
귀 막고 입 막는 인터넷 언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위로를 건네는 주인공 에블린의 친절함과 따뜻한 포옹으로 해피 엔딩을 맞는다.
이 밖에도 온라인 커뮤니티 대화 곳곳에서는 소통의 단절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애들이 꼭 OO하더라’ 등 갈라치기는 기본, ‘뭘 기대하냐’ 등 대부분의 대화는 서로를 비꼬며 공격하는 어투로 진행된다. 한때 드라마 클리셰(cliche)로 통했던 1990년대 PC통신 친구는 정말 옛이야기가 됐다. 랜선에서 비밀 얘기를 털어놓고 공감을 사려면 누가 칼 들고 협박쯤은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오프라인으로 전이된 무관용
왜 온라인에서 우리는 서로 더 날카로워질까.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평소 쌓아둔 감정을 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평소 타인과의 대화 과정에서 부정적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온라인에서 쏟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온오프라인 대화의 환경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만일 일상생활에서 무례한 태도를 취하면 즉각적으로 부정적 반응을 목격해야 한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발화에 대한 리액션을 보지 않아도 된다. 신 교수는 “현대인들은 온라인을 자신의 발화가 안전하게 보호되는 곳으로 인식한다”고 해석했다.
최근의 통화 기피 현상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2020년 시장조사 전문 기업 엠브레인이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음성 통화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 이상(53.2%)이 “음성 통화보다 모바일 메신저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고 답했다. 상대 행동에 따라 즉각적인 반응을 해야 하는 통화와 달리 자신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메신저를 안정적인 소통으로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표현에 익숙해지면 온라인의 문화가 오프라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신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대부분의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온라인상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이미 면역이 생겨 비난이나 혐오 같은 부정적인 표현도 대화체의 일부로 인식한다”며 “혐오·분노 등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역치가 낮아지면 일상생활에서도 타인에 대한 관용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으로 온오프라인 세계가 완전히 분열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신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오프라인에서는 무반응을, 온라인에서는 자극을 추구하면서 각 사회가 양극화돼 서로 소통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해법은 없을까. 신 교수는 “본인의 의견을 개진하고 다른 생각은 존중하는 일상 속 대화 경험이 부족하다”며 “공교육 내 말하기 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아이뿐 아니라 전 연령대에 걸쳐 자기 의견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타인과의 긍정적인 대화 경험을 쌓는 일을 쉽지 않다. 대신 가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등장하는 대사를 기억해보자.
“친절하게 대해줘(Please, be kind). 특히 혼란스러울 때!”
절대 악으로 설정된 ‘조부 투파키’에 맞서는 주인공 에블린에게 남편 웨이먼드는 이렇게 조언한다. 평소 에블린은 실리적이지 못하고 바보같이 구는 웨이먼드에게 환멸을 느끼는 상태였다. 결국 이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슈퍼파워가 아닌 위로를 건네는 친절함과 따뜻한 포옹 때문이었다.
#밈 #누칼협 #bekind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에브리타임 캡처 블라인드 캡처 Waterhole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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